여름날에 관한 시모음 8

여름날의 연정 /박동수
푸른 사랑을 하고 싶다
뜨겁게 불어오는 하늬바람 속을
당신과 뜨거워 못 견디는
진한초록의 사랑을 하고 싶다.
가슴속으로 줄기차게 내리는
여름날 소나기 빗줄기처럼
당신과 끝없는
줄기찬 사랑을 하고 싶다
낙엽이지는 가을
붉게 타버린 세월의 낙엽 사이로
떨어지는 날 있을지라도
한 계절만이라도
불타는 사랑을 하고 싶다
여름날의 단상 /이경화
장맛비 그친 여름 오후는
산야가 온통 푸른 꿈을 꾼다
타는 갈증으로 흥분한 벼들은
논배미에서 연신 혀를 날름거리고
서슬 퍼런 실개천 환호를 지르며
신바람 난 질주를 한다
키다리 미루나무 위
정열적인 매미들
구애의 목청을 돋우면
풀숲에서 오수를 즐기던
선잠 깬 바람이
초목들을 흔들며 잠투정 부린다
힘찬 심장 박동 소리를 내며
열정을 토해내는 계절 위에
절정을 향해 걸어가던 내 발걸음은
더욱 분주해지고
거친 숨결을 뱉어내며
뜨거운 한여름 생을 불태운다.
여름날 전라도 /허소라
세상은 찜통
얼씨구 바람배를 타고
어디론지 모두들 신나게 떠나건만
우리는 뿌리 짤린 질경이
아무리 노를 저으며 달려봐야
풀귀신이 춤을 추는
그 언덕을 넘지 못 한다
덜그덕거리는 시골버스
안내양 없는 전라도길 더디더디 오는데
화물칸 짐짝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저희끼리 뺨을 치누나
얼씨구 멱살 잡혀본 사람 아니면
가슴속 불을 알지 못 한다
바람 한 점 없는 여름날 전라도
아득한 수평선 너머
본적을 가리운 배 한 척. 뒤뚱거리며
하양 평화를 만나러
동포를 만나러 사랑을 만나러
먼 길을 떠나고 있다.
여름날 /김사인
풀들이 시드렁거드렁 자랍니다
제 오래비 시누 올케에다
시어미 당숙 조카 생질 두루 어우러져
여름 한낮 한가합니다
봉숭아 채송화 분꽃에 양아욱
산나리 고추가 핍니다
언니 아우 함께 핍니다
암탉은 고질고질한 병아리 두엇 데리고
동네 한 바퀴 의젓합니다
나도 삐약거리는 내 새끼 하나하고 그 속에 앉아
어쩌다 비 갠 여름 한나절
시드렁거드렁 그것들 봅니다
긴 듯도 해서 긴 듯도 해서 눈이 십니다
여름날 추억 /류인순
여름 산책길에 만난
소낙비에 온몸 적시니
초록빛 추억이 눈앞에서
배시시 웃고 서 있네
굴러가는 쇠똥에도 깔깔대던
장대비 내리던 하굣길에
눈짓 하나로 우산 접어 넣고
온몸 물에 빠진 생쥐 꼴 되어
종달새처럼 재잘대던
긴 머리 소녀들 깔깔 웃음이
하분하분 빗속을 떠다닌다
긴 세월 달려온
황금빛 노을 앞에서도
초록빛 추억 하나 똑 따서
가슴에 살포시 안으면
세월 뒤안길에 잠자던
오색 무지개 다시 뜰까
진초록 추억이
빈 가슴에
자박자박 내리는 날엔
친구들아 쇠똥 보러 가자꾸나.
여름날의 하루 /박태원
산속을 빗어 바위 사이를
흘러 내리는 물속에 발을 담구고
수박 한입 베어 무니
세상에 부러울것이 없습니다
윗도리를 벗어놓고
다이빙 하는 아이들
빙빙 돌아 솟는 물이
사이다로 착각 되어지고
발을 동동걷고 물속에 들어가
고디를 주우며 누운 거울을 보니
물속에 미인이 나를 봅니다
석양에 사람보다 긴 그림자는
하루 해의 아쉬움을 남기고
갈길을 재촉하는 나에게
눈길주는 돌하나 주워
수석될까 하여 이쪽저쪽 바라봅니다

여름날 오후 /강은교
어느 여름날 오후, 젖어 있으며 울퉁불퉁한 땅, 빵 한개가 비에 젖고 있다.
허리가 잘록한 개미 한 마리 빵을 살며시 쓰다듬어보더니 어디로인가 급히 간다.
울타리 하나가 고개를 수그리고 빵을 들여다본다.
비에 빵의 살이 풀어진다. 팥고물이 피처럼 흐르기 시작한다, 안개 뒤에서 태양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허리가 잘록한 개미 몇 마리 빵을 자르기 시작한다,
어디서 들려오는 너의 소리……
울타리가 빵 위에 엎드린다, 젖어 있으며 울퉁불퉁한 땅, 질척이는 고름 사이로, 들여다보는 돌 하나,
네가 빵 위에 넘어진다, 우리 모두 빵 위에 넘어진다, 멀리서 태양의 비명소리, 기적이 들려온다,
여름날 오후.
여름날의 꿈 /김수열
꿈을 꾸었지
사랑하는 그대와 꽃길을 걷던 날
가을 길목에서 청 푸른 하늘
뭉게구름 피어오르는 날
처음 타보는 그네
발바닥이 간지럽다.
두둥실 떠가는 느낌으로 말이야…
가까워진 대지를 지날 때
이미 휙
어느새 창공만 보였어
짜릿한 쾌감을 느끼며
올려다 본 하늘은
새하얀 뭉게구름이
날 부르고 있었어…
얼마나 예쁘던지 혼미해지는
마음을 놓아 버리고 싶었어…
무더위 기승에 설친 잠
어느새 가을위에 놓인
뭉게구름 위
가을타고 연착하는
비행기처럼
희미해지는 기억처럼
여름날의 꿈……
어느 여름날에 /이재환
연못가에 모여
개굴개굴 노래하는 개구리
더운 날 나무 그늘에서
합창하는 매미
소나기 그치고 나니
메밀잠자리 평화롭고 놀고
시원한 계곡엔
개구쟁이들의 행복한 웃음소리
뜨거운 태양에도
폼을 잡는 망초꽃
만추의 계절을 향해
탐스럽게 익어가는 과일
파란 하늘 뭉게구름과
먹구름은 서로 잘난 체 한다
어느 여름날 /안영준
푸른 구름은
조각배 하나 띄워놓고
뱃놀이한다
나무 밑 개망초는
서 있는 바람에 기대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콩밭에 묻혀
비지땀 흘리는
촌부의 한이 배어 있는
여름 들녘
찜통 속에
녹초 된 그는
소나기 한 줌 그리운데
그늘 매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짝 찾는 소리만 외친다
여름날 저녁 /김정택
온종일
뜨거운 사연
가슴에 품은 해
고개를 조아리며
서산마루에 걸터앉아
시큰둥 바라본다.
동네 우물가
두레박은
아낙네들
바쁜 손놀림에
곤두박질치며
멱감느라 분주하면
시원한 강바람
긴 그림자를 몰고 오니
수초 위에
쉬어가는 노을
빛을 잃고 잠이드네.
잔잔한 강물 위에
달빛이 자맥질하여
파문을 일으키면
웅크린 물새들
힘차게 비상한다.
별빛은
바람과 같이
내 마음속에 서성이면
떠오르는
옛 생각
한 가닥 그리움이
여울가에 아롱거려
세월은
가만히 있고
나만 홀로
추억 찿아 달려가네.
여름날엔 /김덕성
살아가는 동안
누구를 사랑하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그 사람은
너무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랑의 심도가 너무 깊어
심장이 빨간 장밋빛을 띄운다면
변화기 쉬운 세상
멋진 사랑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가슴으로 하는 진실한 사랑은
참고 품어주고 아껴 주는
희생이 뒤따르는 사랑
여름날엔
이왕이면 빨간 앵두처럼
우리 사랑도
빨갛게 익어 갔으면
그 해 여름 날 /장수남
해마다 유월이 오면
울컥울컥 가슴 무너지는 아픔들 나는
잊을 수가 없었지.
그 해 여름날
별빛 잊어버린 밤하늘
이맛살 잔주름 깊게 걸어온 길
눈시울 침침해 하얗게
젖어있었지.
이젠 알아 볼 수 없어 생각조차 흐릿한
그 날을 어찌 또 잊으리까.
고사리 꿈 초등학교 입학하고
꿈꿀 때는6.25전쟁의 상처
부모님 따라 남으로 피난 가던 날
그 날의 충격 지울 수 없어
남침하는 인민군 무리들
총부리 앞에 붉은 피 흘리며 죽어가는
우리들의 부모 형제들
내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나는
말 할 수가 없었지.
내 살아생전 정말
그 날은 잊을 수가 없어
남쪽으로 쫓기며 짐짝처럼 밀려오는
부상당한 우리국군 용사도
나는 보았지.
엄마아빠는 폭탄마저 신음하고
혼자 보채며 우는 어린아이도 보았었지.
누가 그 날들을 기억하고 보호하고
이야기 해줄까.
훗날 세월 오래오래 지치면
전설 같은 옛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핵무기 무장하고
제2의 6.25 꿈꾸는 북쪽의 도발행위
반세기 넘게 지나는 동안 하루라도
긴장은 늦출 수가 없었지
이억 만 리 먼 하늘 먼저 가신 호국영영
그 한을 언제 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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