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心에젖어

기차,역에 관한 시모음

채운 (彩雲)신윤정 2023. 6. 12. 18:56

#기차, 역에 관한 시모음 


간이역    /박해선


특급은 서지 않는 간이역
한껏 자란 코스모스 붉은빛이 곱다
지나치는 기차를 바라보다 놓아버린 하루
풀벌레 소리 함께 날이 저문다
나는 기차가 서도 타지 않을 나그네
해도 달도 별도 그림자도 없는 시간
역사의 긴 창문 틈으로

개미들도 다 집에 가는구나
개미들도




추억열차          /鞍山백원기

 기억 저편 그리움 더듬던 열차
 어둠에서 여명까지
 흔적 없는 질주에 빈 레일

 석별의 아픔 간직한 채
 오월은 왔지만
 돌아보면 가지 않고 제자리
 희미한 기억 찾나 보다

 외로운 시간이 위로하는 계절
 달려가고 사랑했어도
 아쉬움만 가득해
 뒷걸음치던 열차 저 멀리 있네

 짐짝 같은 사연 싣고
 떠나던 열차
 잠들지 않는 봄밤 기적소리
 구슬피 뒤로 가고 있다





삼등열차          /이승복

역부의 전호등이 정지신호를
보내면 밤을 지고온 열차가 멈춘다
유성처럼 흐릿한 절은 흔적으로
썰물이 차고 앉은 서먹함도 잠시
눈인사도 없이 껴드는 입씨름 흥정
황새처럼 목을 느려뜨린 기다림이
개찰구에 있고, 아내는 문틈으로
쉬샤폰처럼 귀를 키워 향한다
아랫목 밥그릇을 질질 끓는다
대문쪽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후다닥 문을 열고 반기는 두사람
침목의 다리를 오작교 삼아
길라잡이로 생을 달리는
열차가 가고 있다.





간이역          /古松 정종명


고요한 들녘 가장자리에
철 따라 옷 갈아입고
각양각색의 사람 붐비며
만남과 이별이 짓이겨진
조그마한 낡은 驛 하나 서 있다


세월의 소용돌이가 할퀴고 간
상처 고스란히 안고서
텅 비어 의자 하나 없이
깨어진 창문 굳게 입 다물고
뽀얀 먼지 속에 왕거미의
신접살림이 호화롭다


덜컹거리던 기적을 삼킨 레일엔
아픈 상처의 딱지가 붉게 덧칠하고,


첫차로 떠났다 막차로 돌아오던
사연들이 침목에 덕지덕지 붙어
다시는 기적소리를 내지 못한다


영원히 손잡지 못할 레일의
끝은 어디이며,
언제쯤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질문을 레일 위에 띄워 보내고
답을 기다리지만...


거기 낡은 간이역에 내가 서성인다.




기차는 떠나고 오지 않았네      /정태중


엄마 잃은 슬픔이
역전 카페 은하수 건넜을 때
나는 기억조차 아스라한
어떤 강의 흐르는 물결만 생각기로 했네


어둠 헤치며
기차는 떠나고 오지 않았네


등대와 같은 불빛 꺼지고
등불과 같은 온기 사라져
차표는 더 이상 발권 불능이었네


허공만 바라보다가
어디쯤의 마을 우주라는 정거장엔
푸르고도 시린 엄마별이 쉬고 있을까
어떤 별 무리 속의 유성만 보기로 했네


두어 근의 철이 들었으므로
누군가를 사랑하기로 했네


철이 들었다는 것은
그리움의 별을 잃어버렸다는 것
어둠 헤치며 퇴근하는 길은 적막했네


바랜 그리움은 금별이 되지 못하여
끊긴 철길의 녹슨 메탈로 남아 있기로 하자
기차는 떠나고 오지 않았는데
어떤 강의 물결 속으로 유유한 길이 생겼네


*유유: 깊고 그윽하다




정거장          /민병도

그 때 거기서 내렸어야 했다는 것을
기차가 떠나기 전엔 눈치채지 못했네
창 너머 벚꽃에 취해, 오지 않는 시간에 묶여

그 때 거기서 내렸어야 옳았다는 것을
자리를 내줄 때까진 까맣게 알지 못했네
갱상도, 돌이 씹히는 사투리와 비 사이

그저 산다는 것은
달력에 밑줄 긋기
일테면 그것은 또
지나쳐서 되돌아가기
놓치고 되돌아보는 정거장은 더욱 환했네





기차 속 풍경      /섬그늘 윤용기

휴가 끝 월요일이라 그런가
좌석은 없고 모두 입석만 남았다.
무슨 사연 이고 지고 부산으로 향할까
소곤소곤 주고받는 객실 속 대화는
너무도 다정하게 느껴진다.

서울 사는 아들집에 다녀가는 노부부
배낭을 짊어지고 여행가는 연인들
아이들과 친정에 가는 아주머니
우리네 삶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한쪽에서 따르릉 핸드폰 소리가 들린다.
경상도 사투리에 목소리가 커진다.
홍익회 아저씨는 "맥주요, 귤이요" 하며 지나간다.

차창 밖 풍경들이 너무도 산뜻하다.
며칠동안 많은 비로 묶은 때가 쓸려 가서 그런가 보다.
뭉게 구름 두둥실
이제는 비가 다 온 모양이다.
어느 새 부산 행 열차는
수원역임을 알리는 승무원의 방송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이제 나는 내려야 한다. 내 보금자리를 찾아서 ........ .
5시간의 긴 여정을 떠나는 뭇 사람들을 뒤로하고서....... .





특급 완행열차       /장수남

빈 술병 가득 실은 특급 완행열차
일요일 새벽두시. 

띵동 띵동.
여보 마누라 나 왔소.
 
기다린 듯 현관문이 어렴풋이
열리더니. 아악. 갑자기 이 웬수야.
지금 몇 신데??~~~
나는 죽었구나.

아이고 맙소사.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지금부터 시작이다. 나를 죽여라.
요놈의 마누라
살살해라. 새 애기 깬다.

침대가 뻣뻣이 일어서더니
눈앞에 번갯불이 번쩍 
방바닥이 무너지면서 갑자기 벽이
뒤퉁수 내리친다.

이쯤 되면
술도 다 깨고
쇼파 절벽아래 침몰된 완행열차는
어제밤 일을 기억하는지
새벽 창가엔 햇살 빙그레
아이 부끄러워.

이 고얀 놈 봤나.
삽살이 바지 반쯤 내려놓고 무엇을
그렇게 열심이 바라보았는지
그놈 밤잠 설쳤겠다.





해랑 관광열차        /미산 윤의섭

KTX 기술의 최고봉
해랑열차가 달린다
서부선 동부선 관광열차가 달린다

서울역 플랫폼에서
코발트색 봉황 문양 해랑 海浪
매끄러운 동체가 미끄러지듯이 떠난다

페어 그라스 창밖이
환상으로 흐르는
서울시내를 조용히 빠저 나간다

명승에 하차하면
전속 버스 갈아타고
보트 운행 탐사코스 신나는 여정

점심의 특산 요리
커피 한잔 쉬는 사이
다음 행선지로 달리는 신나는 해랑열차

파도치듯 펄럭이는
들판을 지난 후에
저녁의 남도 명승 토종 끼 만끽한다
 
서울 부산 순천 동해로
전국 명승 유랑하며
총명을 솟게 하는 호텔 안식의 해랑열차여!





어느 간이역의 겨울밤     /김용수

별빛도 차가운 겨울밤
고즈넉한 정적이 흐른다.
커튼을 비집은 형광등 불빛은
새벽을 기다리고
연탄난로위의 늙은 주전자는
보리차를 껴안은 채 졸고 있다.

훈기가 가득한 우보역友保驛 대합실에
기적이 울려오면 형광등 불빛은 반갑고
졸음껜 나이 많은 주전자는
쉭쉭거리며 뚜껑을 들썩거린다.
보리차 입김은 차창을 올라타 인사하고
청량리에서 밤새 달려온 보통열차는
지친 몸 한번 추스른다.

긴 숨을 들이키고 찬 공기를 가르며
보통열차는 새벽을 깨우며 떠난다.
우보역 대합실은 다시 정적이 흐르고
형광등 불빛은 아침햇살을 기다린다.
여전히 연탄난로는 따뜻하고
늙은 주전자는 졸음에 빠지지만
그래도 수많은 인적의 오고감을 지켜보며
세월을 엮어 가는 간이역의 증인이다.





기차를 타려고 합니다     /신석종

모르겠습니다
익히 알고 살았던 것들이
어려워집니다

어느 계절에 불을 피워야
당신이, 시린 두 손을 내밀고
내 옆에 다소곳이 앉아
그 불을 쬐고 싶어하는지

어렸을 때부터 익숙했던
내 고향 첫차와 막차의 구분도
이젠 제대로 못하겠더이다

느릿느릿 흐르는 동강, 그 옆
옛 기와지붕으로 된 영월역에서
차표를 끊었다가 되물리고 하는
촌스런 짓을 되풀이하는 걸

역 대합실 밴치에 앉아 있던
그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는데도
하나두 창피하지 않더이다

전반적으루다가, 내가
쌩다지로 늙어가나 봅니다
그대가 밉기도 합니다





압록역에서        /박만식

휘영청 뜬 거미줄
개찰구 건너 채마밭
대파 줄기마다 초록별 봉긋 뜬다

밤기차, 강과 들판이 담긴 차창은
나의 문학 자습서였다





임피역     /이향아


임피(臨陂)역에서 내려
바람이 잠시 숨 고르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언덕에
내 어머니가 새집을 지어 들었다
만고풍상에 할 일을 마친 후
이제 쉬겠다며 임피로 간 어머니는
작은 망루의 파수꾼처럼
임피역을 바라보며 말동무가 되었다
 
장항선을 타고 천안에서 남포,
남포 지나 서천, 서천 지나 익산으로 가다가
임피에서 내리면 군산이 가까워서
군산시 임피면 술산리 임피역
이제 더는 기차가 정거하지 않는 거기
 
아흔 세 살 어머니가 기운이 쇠진하여 세상과 하직했듯이
임피역도 아흔 살 천수를 누리었는가
젊어서는 만경평야 쌀을 실어 나르고
아침저녁 통근열차 바쁘기도 하더니
돌아보면 궂은일도 아름다웠다고
지평선 노을 같은 추억을 나르는가
그래도 임피역은 아직도 임피역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애잔한 발길로
그리움 누르며 임피역을 지나간다





기차역 풍경     /靑山 손병흥

만남 헤어짐이 공존하는 소소한 풍경 속으로
반가움 아쉬움 그리움이 교차하는 낭만기차역
육신 기쁨 슬픔 설렘 안고서 떠나보는 기차여행

그 옛날 굴곡의 세월처럼 굽이길 쭉 뻗은 직선철로
유유히 흘러가는 강변을 스쳐가며 다가서던 풍광들이
생경스런 일상이 되어 눈앞에 펼쳐 보여준 또 다른 장면

연신 생애 빗질하듯 눈에 들어오는 차창 밖 아롱진 자연
절로 미소 지어 보이게끔 추억 싣고 달리는 두근거림으로
모처럼 하늘빛 흐린 날에 행복 열차타고서 달려가는 여행길





마지막 열차 칸에서       /은파 오애숙

삶이란 누군가에겐 회오리 바람같으나
누군가 어떤 이에겐 봄바람 같다지만
인생의 여울목에선 거거서 거기랍니다

나그네 인생 녘에서 어디서 왔는가 알아
일찌감치 하늘향기 슬은 맘의 기쁨으로
주변 돌아 본다는 건 가장 멋진 일입니다

그 누군가가 그렇게도 올곧게 잡아 주나
제 고집 꺽지 못해 고수하는 우매자들은
공수래 공수거 인생인 걸 알지 못하네요

아~ 삶의 과정 달라도 마지막 고지에서
하늘 향그런 희망날개 붙잡고 산다고 하면
내님과 더불어 본향에서 휘파람 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