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 관한 시 모음
7월에 관한 시모음
칠월의 허튼소리 /김원규
가거라
정녕 소리없이 가거라
용기조차 없으니
기운 필요하거든
발톱의 힘을 빌려 가거라
지워라
때묻은 육체까지 지워라
눈을 가리고 운다고
네 인생 달라지지 않으니
서슴지 말고 꿈까지 지워라
때려라
한 줄의 사연까지 때려라
말라가는 침으로도
느끼지 못하게
배움까지 때려라
부셔라
썩은 영혼까지 부셔라
무더운 여름 병든 자처럼
빛이 사라지는 날까지
검은 재가 되도록 부셔라
죽여라
해맑은 사랑까지 죽여라
태양의 절벽에서
매어 달리지 못하게
양지 같은 생각도 죽여라
칠월의 안부 /김이진
뻐꾸기 소리
정겨움으로 다가와
칠월의 아침을 깨운다
수채화 물감이
가슴으로 내리는 아침
당신의
아침을 불러봅니다
당신의
안부를 묻습니다
잘 있냐고
어떻게 지내냐고
그렇게 칠월의 안부를 묻습니다.
흑백사진 /정일근
내 유년의 7월에는 냇가 잘 자란 미루나무 한 그루 솟아오르고
또 그 위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내려와
어린 눈동자 속 터져나갈 듯 가득 차고
찬물들은 반짝이는 햇살 수면에 담아 쉼없이 흘러갔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착한 노래들도 물고기들과 함께 큰 강으로 헤엄쳐 가버리면
과수원을 지나온 달콤한 바람은
미루나무 손들을 흔들어 차르르차르르
내 겨드랑에도 간지러운 새잎이 돋고
물아래까지 헤엄쳐가 누워 바라보는 하늘 위로
삐뚤삐뚤 헤엄쳐 달아나던 미루나무 한 그루.
달아나지 마 달아나지 마 미루나무야,
귀에 들어간 물을 뽑으려 햇살에 데워진 둥근 돌을 골라 귀를 가져다대면
허기보다 먼저 온몸으로 퍼져오던 따뜻한 오수,
점점 무거워져오는 눈꺼풀 위로
멀리 누나가 다니는 분교의 풍금소리 쌓이고
미루나무 그늘 아래에서 7월은 더위를 잊은 채 깜빡 잠이 들었다.
칠월 /임재화
한낮에 푹푹 찌는 찜통더위에
철길 너머 밭에 옥수수의 키가 쑥쑥 자라고
개울 건너편 논, 밭길 사이로
이름 모를 들꽃 들이 가득 피어나
칠월의 고운 향기를 내뿜습니다.
칠월 어느 날 /박정재
교복 카라 세우고
등교하던 날도
칠월의 햇살은 있었습니다.
풀빵 띄운 단팥죽 먹던 날도
시원한 바람은
가슴을 더듬었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이 나이에도
그날의 그 추억은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흘러가는 시간의 여백마다
우리들의 고운 향기
잊을 수 없어
햇볕이 따가운 창가에 앉아
친구들의 옛 모습을 그려보며
그 옛날 추억에 잠겨봅니다.
나이는 추억을 지울 수 없고
줄어드는 친구들이 아쉬워
밀려오는 고독의 물결 속에
잠수하는
노객의 눈시울에는 어느새
안개처럼 피어나는 이슬이
맺힙니다.
열무꽃 /김달진
- 칠월의 향수
가끔 바람이 오면
뒤란 열무 꽃밭 위에는
나비들이 꽃잎처럼 날리고 있었다.
가난한 가족들은
베적삼에 땀을 씻으며
보리밥에 쑥갓쌈을 싸고 있었다.
떨어지는 훼나무 꽃향기에 취해,
늙은 암소는
긴 날을 졸리고 졸리고 있었다.
매미 소리 드물어 가고
잠자리 등에 석양이 타면
우리들은 종이 등을 손질하고 있었다.
어둔 지붕 위에
하얀 박꽃이
별빛 아래 떠오르면,
모깃불 연기 이는 돌담을 돌아
아낙네들은
앞개울로 앞개울로 몰려가고 있었다.
먼 고향 사람 사람 얼굴들이여
내 고향은 남방 천리,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생각이여.
7월의 거울 /황희순
개미 떼에 끌려가는 무당벌레
포기한 걸까, 왜 반항하지 않나
누구 편을 들어줄까
개미굴로 끌려 들어갈 즈음 무당벌레가
지그재그로 줄행랑친다
장난삼아 앞을 막았더니 딱 멈춘다
광속으로 몰려온 개미 떼가 다시 끌고 간다
왜 참견했느냐 따지지 마라, 재수 없는 네가
재수 없는 인간을 만난 것일 뿐
살아있는 한, 길 막는 발 깨물고라도
잽싸게 도망쳐야지, 누굴 원망해
언제, 어디, 어떤 상황에서나
숨 끊어질 때까지 빡빡 기어가야지
먹거나 먹히거나, 이도 저도 아니거나
그들의 게임이 어떻게 끝났는지, 나는
모르는 일이다
칠월이 내게로 왔습니다 /채화 백설부
백일홍이 백일 기도를
곱게 꿈꾸는 칠월이
내게로 왔습니다
견우 직녀의 애틋한 사랑의
오작교가 보이는 칠월이
내게로 왔습니다
청포도 알알이
축복으로 영글어가는 칠월이
내게로 왔습니다
쪽빛 바다의 넘실거림이
가슴을 뛰게 하는 칠월이
내게로 왔습니다
정수리를 쪼개는
이글거리는 태양의 정열이
감당하기에 벅차지만
욕심 부리지 않고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포용하며 칠월을 안으렵니다
칠월 /허연
쏟아지는 비를 피해 찾아갔던 짧은 처마 밑에서
아슬아슬하게 등붙이고 서 있던 여름날 밤을
나는 얼마나 아파했는지
체념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다니는 빗물을 보며 당신을 생각했는지,
빗물이 파놓은 깊은 골이 어쩌면 당신이었는지
칠월의 밤은 또 얼마나 많이 흘러가버렸는지,
땅바닥을 구르던 내 눈물은 지옥 같았던 내 눈물은
왜 아직도 내 곁에 있는지
칠월의 길엔 언제나 내 체념이 있고
이름조차 잃어버린 흑백영화가 있고
빗물에 쓸려 어디론가 가버린
잊은 그대가 있었다.
여름날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
칠월의 나는 체념뿐이어도 좋을 것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7월의 소망 /김희선
한여름 정점으로 달리는
흐린 계절 위로
상흔의 그림자가
선명한 포물선을 그린다
나를 송두리째 던져서라도
구원하고 싶었던 시간
남은 희망을 쪼개서라도
단숨에 끊어내고 싶다
7월의 자작나무 숲
그 한가운데 서서
허기진 행복 한 줌 움켜잡고
무뎌진 심장 안에 갇힌
옹이진 이야기라도
살갑게 풀어내고
부디!
더는 아픔 없는 맑은 계절을
간절히 만나고 싶다
7월의 예찬 /강순옥
칡넝쿨 쭉쭉
뻗어 차오르는
칠월의 숲에 가면
생명의 소리가 들린다
나뭇잎 파릇파릇
아침 햇살 사르르
산새 오감을 느끼며
어느새
시인이 되어
세상 시름 잊었노라
답답한 마음 씻어 노라
시 한 수
쓱 그어
읊어 놓고서
채워가는
이내 마음을
산은 들어서 알 거야
칠월의 숲에서
꽃처럼 피고 지는
나의 비밀을.
7월, 그 바닷가에서 /藝香 도지현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꿈과 희망이 절망으로 변하는데
거대한 파도는 언제부터인가
푸른 가슴을 테트라포드에 부딪혀
하얗게, 하얗게 부서져 사위어간다
꿈과 드높은 이상을 표출하던
그 높은 기상은 물거품과
소라껍데기가 되어 뒹굴고 있다
갈매기 소리까지 잦아진 바닷가
제 몸을 파괴하는 파도만 넘실거릴 뿐
남아 있는 것이라곤 공허한 울림
처절하게 울부짖는 절규는
파도 소리에 휩쓸려 사라지는데
7월을 사랑합니다 /천준집
따가운 햇살 속에
쏟아지는 소나기는 7월을 적시고
폭음에 찌든 내 마음도 적시 웁니다.
한여름 타들어 가는
아스팔트에 한줄기 빗줄기는
내가 그리워하는 당신의 마음을
씻어내리고
그 그리움은 빗길 되어 내 가슴속
깊은 곳으로 흘러갑니다.
마음을 훑는 소나기가 좋고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있어
7월을 그렇게 사랑해야만
했습니다.
뼛속까지 스미는 찬 바람은 없지만
나를 기다리는 당신이 있고
마음을 적셔주는 그리움이 있기에
7월을 사랑합니다.
그리움이 나를 스치면 나는
그리움 속에 빠져 그대 이름
되뇌며 7월을 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