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의 대중가요로 보는 근현대사 #동동구루무

문풍지 우는 밤, 생각나는 어머니 <동동구루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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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차영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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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애창곡 명품 유행가의 탄생 모티브는 찰나(刹那)인 경우가 허다하다. 지극히 짧은 순간, 1찰나는 75분의 1초(약 0.013초)다.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 이런 찰나의 영감을 바탕으로 탄생한 유행가가 2006년 방어진이 부른 <동동구루무>다. 이 노래는 경북 의성 출생, 안동에서 성장한 김병걸의 손끝에서 조탁(彫琢)된 유행가의 진수. 하지만 가수는 침몰하고 노래만 둥당거리는 대표곡이기도 하다.

 

2006년 어느 날, 김병걸은 남양주시 마석에 사는 중학(예천) 동창 권아무개의 사업처, 한양건재를 향하여 운전대를 돌리고 있었다. 그렇게 금곡을 지날 때쯤 ‘동동구루무’라는 함석 간판을 단 화장품 가게가 눈길에 스쳤다. 천재 예술가는 천둥 같은 영감에 감전된 듯, 그는 도로 옆에 차를 세우고 노랫말과 가락을 동시에 웅얼거리면서 한 곡조를 다듬었다.

 

동동구루무 한 통만 사면 온 동네가 곱던 어머니~. 바람이 문풍지 위에 울고 가는 밤이면 더욱 생각나는 어머니. 아~ 가난한 세월이 서럽기만 하던 어머니~.

 

동동구루무 한 통만 사면 / 온 동네가 곱던 어머니 / 지금은 잊혀 진 추억의 이름 / 어머님의 동동구루무 / 바람이 문풍지에 울고 가는 밤이면 / 내 언 손을 호호 불면서 / 눈시울 적시며 서러웠던 어머니 / 아~ 아 동동구루무

 

예술가의 주관적인 체험이 노랫말로 얽혀서 대중들 기억의 실타래를 풀어냈다. 동동구루무·문풍지·언 손·어머니~ 누구나의 기억 주머니 속에 쟁여있지만, 툭~ 건드려야 떠오르는 생각, 이것이 의식과 무의식의 차이이다. 노래 속의 화자가 대중들 스스로라고 생각될 때 인기 온도계는 달구어지고, 개인의 18번 곡조, 국민의 애창곡이 되어 100년을 흘러간다.

 

<동동구루무> 노래에서 동동동~은 북소리이고, 구루무는 화장품 크림(cream)의 일본식 발음이다. 동동동~ 북소리를 울리면서 시골 동네 길을 풍미하던 화장품 방문 판매자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6.25 전쟁과 베트남전쟁을 통과한 우리 현대사의 풍물, 6070세대들 코흘리개 시절의 기억 속 사회상이다. 아이스케키 통을 걺어진, 국가의 부름으로 전쟁터에 나가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이름과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가치를 지키시다가 한쪽 팔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하여 바치신 외팔이 아저씨의 모습도 아련하다.

 

일본제국주의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중일전쟁이 발발하던 1937년 전후로, 1920년대 우리나라에서 개발 생산되던 화장품 박가분(朴家粉)이 생산을 중단한다. 박가분은 한국 최초로 제조·판매된 화장품 이름.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쌀이나 기장·조로 가루를 내서 사용하거나 분꽃의 씨앗 가루를 분(粉)으로 만들어 미용품으로 사용했었다. 이러한 자연 화장품을 사용하다가 조선 후기부터 납을 섞어 쓰기 시작했다.

 

이후 공산품으로 개발된 박가분은 두산그룹의 창립자 박승직의 부인 정정숙의 아이디어에 착안해 만들어진 제품이다. 정정숙은 한 노파가 백 분을 직접 만들어 포장해 파는 모습을 보고, 남편 박승직과 상의해 백 분을 만들었다. 이 납 분은 인기를 끌어 1920년 상표로 등록, 가내수공업에서 기업체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 이후 서가분이나 장가분과 같은 유사품 및 일본, 중국 제품들이 들어왔고, 납 성분이 몸에 좋지 않다는 소문이 들면서 생산이 중단되었다.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시절, 그나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 여성들과 화류계 꽃새(접객업 종사자)들이 선별적으로 사용할 수 있던 화장품이 사라졌다. 이 틈새시장을 풍악을 울리며, 동네 골목을 동동거리며 판매에 나선 보부상(褓負商) 같던 화장품 행상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러시아(소련) 행상이 서툰 한국말로 너스레를 떨며 크림을 팔았다고 하고, 곧 한국인 아류를 탄생시켰단다. 북을 둥둥(동동)~ 두 번 친 후 크림의 일본식 발음인 구루무를 외친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동동구루무. 이러한 진풍경은 1970년대까지 이어진다. <동동구루무> 노래를 만든 김병걸이 15세를 전후한 풍경인데, 그의 섬세한 기억 되새김이 돋보이는 곡조다.

 

동동구루무 장사는 카우보이모자에 등에다가 큰 북을 짊어졌다. 북채는 발목에 묶고 앞으로나 옆으로 발길질을 하면 북이 둥~ 울린다. 입에는 하모니카까지 물었다. 화장품은 양손에 든 가방 속에 들었다. 이들이 판매(방문판매의 원조 같은)한 동동구루무는 우리나라의 박가분·일본과 중국에서 몰래 들여온 서가분과 장가분 등이었다. 당시에는 분통의 꽃무늬에 따라 진짜와 가짜를 구별했던 것이 코티분이다. 그러나 진짜보다 더 많았던 게 가짜 코티분 이었단다.

 

우리나라에서 가짜 외제화장품의 전성시대는 5.16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막을 내리게 된다. 1961년 9월 1일부터 시행된 특정외래품판매금지법, 정부가 외제품판매를 단속하기 위해 만든 이 법으로 진짜든 가짜든 외제화장품은 단속의 대상이 되었었단다. 그래서 외제화장품의 불법판매원인 보따리장사들은 단속반의 눈길을 피하기 위하여 속치마·속바지 사이에 숨겨 다녔고, 보따리 아줌마와 단속반의 숨바꼭질은 낯선 풍경이 아니었단다.

 

외제화장품에 대한 정부의 규제에 힘입어 국내화장품시장은 1960년대 중반, 이미 제조업체가 100개가 넘을 정도로 호황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러한 급성장 뒤에는 1962년부터 시작된 새로운 영업 방식, 곧 현대판 방문판매(방판)의 저력이 숨겨져 있었다. 화장품 방문판매는 당시 가게에 보탬이 되려는 여성들의 단골 부업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러한 방문판매는 1970년대까지 이어진다. 오늘날 전동차를 손수 운전하고 골목길을 누비거나, 교차로의 요로(要路)에 자리를 펴고 판매를 하는 이동식 야구아줌마(야쿠르트 아줌마)의 원조들이다. 노랫말 2절에는 100년의 세월이 간들거린다.

 

동동구루무 아끼시다가 / 다 못 쓰고 가신 어머니 / 가난한 세월이 너무 서럽던 / 추억의 동동구루무 / 달빛이 처마 끝에 울고 가는 밤이면 / 내 두 뺨을 호호 불면서 / 눈시울 적시며 울먹이던 어머니 / 아~ 동동구루무 / 바람이 문풍지에 울고 가는 밤이면 / 내 언 손을 호호 불면서 / 눈시울 적시며 서러웠던 어머니 / 아~ 동동구루무.

 

<동동구루무> 노래의 원곡 가수의 얼굴은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그의 얼굴은 음반 재킷에서만 대할 수가 있다. 그 가수는 누구인가. 노래는 떴는데, 가수는 사라졌다. 울산 출생인 그는 예명을 방어진으로 사용했다. 스스로 무대 뒤로 걸어간 그의 본명을 들추는 것도 범절이 아니리라.

 

방어진(方魚津)은 울산 동구에 있는 항구다. 바닷고기 방어(方魚·舫魚·魴魚)가 많이 잡히는 곳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1917년경 방어진 등대가 설치되었고, 조선시대에는 경상좌도 병영(兵營)이 있던 울산 근처다. 여기서 좌도란 말은 임금이 있던 한양(서울)에서 내려다봐서 좌측이라는 의미다. 병영은 육군 지휘소, 수영은 해군 지휘소였다. 이순신 장군이 1591년에 부임한 전라좌수영도 이런 맥락으로 기억을 해야 된다.

 

원곡 가수 방어진은 어느 날 PR(노래 홍보)을 접었다. 이런 과정에서 노래방에서는 이 노래가 자주 불리고, 노래 강사들도 자주 인용했다. 이러는 동안 탤런트 가수 김성환이 2007년 리메이크로 음반을 냈었고, 2009년 윤달구, 2010년 임무가 뒤를 이었으며, 김용임, 현철 등도 커버송으로 불렀다. 방어진은 어디로 갔을까. 노래를 만든 천재 예술가 김병걸은 기다림에 목이 마른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1찰나마다 생겼다가 멸하고, 멸했다가 생기면서 윤회한다고 친다. 찰나생멸(刹那生滅)·찰나무상(刹那無常)이라고 하는 불교 철학이다. 찰나(刹那) 또는 차나(叉拏)라고도 표기하며, 일념(一念)이라는 뜻으로 번역한다. 이 순간을 발의경 혹은 생장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반하는 시간은 3~5초 정도라고 한다. 순간의 영감 찰나에 비하면 너무 긴 시간이다.

 

조용필은 한강 밤물결에 일렁거리는 불빛에서 악상의 영감을 받고, 윤수일은 딩동~ 거리는 아파트 초인종 소리를 놓치지 않는다. 정두수는 인천 연안부두에서 낙도로 가는 연락선의 뱃고동 소리를 붙들었고, 그의 수제자 김병걸은 시골 길거리에 나붙은 함석 쪼가리 간판에서 국민애창곡을 얽어냈다. 우리네 인생은 유행가다. 유행가는 역사의 보물이다. 바람이 문풍지에 울고 가는 밤, 저어기 생각나는 어머님처럼.

 

[유차영]

시인

수필가

문화예술교육사

한국유행가연구원 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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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코스미안뉴스 2023.04.20

[출처] [유차영의 대중가요로 보는 근현대사] 문풍지 우는 밤, 생각나는 어머니 <동동구루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