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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에 관한 시 모음 2

민들레에 관한 시모음 2

민들레 /김정화  
 
밤내 누군가 부르는 소리
아침 창 밖을 보니
기다리고 있었구나, 거기에

꿈속에서 찾을 듯한
맑고 깨끗한 얼굴로
서 있는 자리 만족해하며
웃는 너에게
줄 것 없어 빈 손 흔든다.

연약한 듯 강인한 너에게, 이 아침
살아가는 자세를 배우며
흔드는 손가락 사이사이에
눈부시게 되살아나는
찬란한 햇살 너머
너의 부름을 받고 달려오는
저 끝없는 빛을, 밝은 빛을 보아라.

 

 

민들레 꽃밭        /조기조

길섶에나 논둑가 밭뚝셍이 산모랭이 무덤 옆에서

무심히 오가는 발 밑에 짓밟히던 풀 누군가 차마 꽃이나 피울 줄 알았겠느냐 하지만,

짓이겨지던 삶의 고비마다 힘겹게 살아남아 자라지도 못한 채

꽃을 피워 고운 이 드러내고 웃는 모습을 보고 민들레인 줄 알았습니다

봄인 줄 알았습니다
꽃밭엔 갖가지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 저마다 맵시를 뽐내는 봄이지만

꽃밭을 갖지 못한 민들레는 벙글어보기도 전에 무참히 꺾이어

화려한 꽃들의 밑거름이 되기 일쑤였지요
그러나 꽃밭이 아니라도 좋다며 꺾인 채로 끝내 꽃을 피운 민들레는

간신히 익혀 온 미래의 꿈들마저 발길에 채이고 더러는 선남선녀들이

입을 마주하고 사랑을 속삭이며 휘파람이라도 불어버리면 그대로 풍지박산이 되었지요
매운 황사바람을 타고 하염없이 날아가다 어쩌다 길을 잃고 어두운 땅 속

불빛에 시들어 가는 꽃들도 있으나 마침내 한곳에 모여 꽃밭을 이루었습니다
봄날, 공단 운동장에 노란 작업복들이 가득 모여

한 목소리로 어우러져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민들레          /돌샘 이길옥

 

빈 뜰에 돌아와

젖 불은 아낙의 모습으로 피는

수줍은 미소가

한낮 토담 밑에 싱그럽다.

 

혼미한 아지랑이 숲이

바람에 흔들리고

 

가녀린 잎사귀로

내려와 닿은 햇볕 속을

원색의 붓이 지난다.

 

마냥 부끄러운 얼굴 밑으로

타는 마음을 숨긴 채

봄을 노래하다 간

어느 소녀의 기원.

 

그 불후不朽의 마음에서

화신花神으로 피는

네 그 수줍은 얼굴에

한낮 햇볕이 눈을 못 뜬다.

 

 

가을 민들레       /원영애

 

봄밤에 불 밝힌

아기 방 노란 꽃잎이

들녘에 내리더니

가슴속 밀어되어

가을 길에 피어요

 

꿈길 같은 바람 속

하얗게 날아올라

순정의 빛

수 만개 은하 되어

물들어 올 줄이야

 

고운

각시 웃음 띄우며

어두운 밤

님 오시는 길

꽃 빛 지피며

 

눈부신 파란 하늘

뭉게구름 수놓아 깃 달고

갈대가 흔들리는 그 길에

달무리로 오시는 님이여.

 

 

노란 민들레       /강만영

 

풀숲 엎드린 오솔길

노란 민들레 꽃

발끝 채일까 봐

몸을 움츠려 놀라 있다

 

풀잎 틈새에 앉아서

궂은 심술의 바람에도

진둥개비 소낙비를 맞아

곱고 예쁘게 잘도 커간다

 

하늘을 날던 벌 나비가

뱅뱅뱅 돌다 날개 접고

꽃술 속에 앉아서 쪽쪽쪽

사이좋게 뽀뽀를 하고 간다

 

 

민들레의 소망         /문경기

 

솔바람 타고 날아와 정착한

그늘지고 척박한 길섶에서

거친 들꽃 텃세에 시달리며

하얗게 피어나는 민들레 꽃

 

꽃을 피우고픈 열정의 흔적은

어둠속에서도 한줄기 빛을 찾아

계절에 실려 흘러가고 있기에

가슴속엔 아련한 그리움만 남는데

 

기대했던 이상향의 향기 사라지니

새 꿈을 이룰 터전을 찾아가고파

산야를 스치며 불어오는 바람결에

하늘 높이 하얀 홀씨를 날리고 있네

 

가고픈 그곳에는 사시사철

자유와 평온이 그윽하게 나래를 펴는

햇빛이 가득한 밝은 세상이

환하게 열리길 소망하면서

 

 

제주 민들레 1        /고정국

몸집 가벼워
네 씨족은
흩어져야
남느니

문득
바람 멎으면

불안한
제주 사람들

파르르
목줄기 붉도록
마른 기침
참았느니.

 

 

민들레          /구연배

 

옆 축이 헤지고

밑창마저 닳아

길 풀 섶 어딘가에 던져버린 검정고무신 속에

민들레꽃 한 송이 피어 있다.

나 모르는 사이

빗물 고이고 흙먼지 쌓여

씨앗의 보금자리가 됐다는 말인데

발바닥이 화끈화끈 저려오고

핑그르르 눈물이 돈다.

맨발로도 허물없이 좋은

민들레꽃을 바라보며

모진 뉘우침을 갖느니

어디선가 예쁜 꽃을 피우고 있을

내가 버린 인연들!

깊은 정에 신물 낸

내가 밉고

버림받은 그 인연에 뿌리내린

이름 모를 꽃 마음에 자못 미안하다.

 

 

하얀 민들레        /최홍연
  
수줍은 하얀 앳된 얼굴을
돌틈에 끼워 놓고   
무슨 꿈을 꾸는 걸까.
 
잠 못 이룬 많은 생각에
야윈 몸 바람에 흔들리며
소리없이 느끼는 하얀 민들레 
곱게 곱게 피었네
 
임 향한 사랑을 꿈꾸는 걸까
다음 생애서라도 못한 정 나누고 싶어
'내 사랑을 그대에게'
행복을 염원하는 기도를 하겠지.
 
불어오는 바람에 맘 달래고
불어가는 바람에 소망을 빌어보는
하얀  홀씨 날리며 민들레는
낮은 마음으로 사랑을 할 줄 아는데
 
두발로 하늘을 이고 살아도 더 채우려 안달하며
정욕에 눈이 멀어 부끄럼조차 잊고 사는 
한심한 사람아 한심한 사람아
민들레보다 못한 잡초로다, 나는.

 

 

민들레 일생     /전근표

 

햇살 좋은 양지 언덕

푸른 옥쟁반 받쳐 들고

샛 노란 황금빛 민들레 피네

 

하늘 향한 노란 손짓

지나가는 길손에게도 방긋

실루엣 날개짓으로

나비는 꿀샘에 젖고

벌써 하늘 나는 꿈결을 여민다

 

가녀린 손끝마다

새 하얀 깃봉

한 계절 석양을 넘을때

노랗던 순결은 백발이라네

 

가벼히 바람을 빗질하며

삶의 무게 다 내려 놓고

이제는 떠나리라 정처도 없이

하늘에 닿아

계시록 말씀 말씀은

강산을 몇 굽이 넘는다

 

 

민들레 날다.     /박영애

 

흰 이불을 덮고 잠자던

노란 꽃잎이 이불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잠에서 깨어난 자그마한 꽃잎은

노란색 꽃도 되고,

하얀 솜사탕도 되다

구름처럼 피어 날린다.

 

솜털처럼 여린 사랑을

하얀 그리움에 사랑으로

바람이 실어 나르면

내 마음도 덩달아

사랑을 실어 나른다.

 

 

민들레        /송향 도분순

 

자연의 섭리 따라

홀씨가 되어

떠나야 할 가을

 

향긋한 향기도

앙증맞은 화사함도

일장춘몽이구나

 

척박한 삶을

이겨내고 꽃피운 너에게

지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내 가슴은

너랑 다를 게

그 무엇도 없다.

 

 

일만 송이 민들레    /이강산

 

한 송이 두 송이 세 송이

보일 듯 말 듯 언덕을 오르내리다

열 송이, 백 송이, 천 송이

하루 아침 언덕을 점령해버린……

 

저 꽃이 사랑이라면 좋겠네

노랗게 샛노랗게 저희끼리 달아오르다

그대 굽은 등뼈에 짧은 다리에 눈 맞추어 내려앉는

일만 송이 사랑이라면 좋겠네

 

저 꽃이 별이라면 좋겠네

밤하늘 까마득한 별 하나 별 둘이 아니라

몇 발짝 다가서면 금방 옷깃 스치고 숨결이 닿는

일만 개의 별이라면 좋겠네

 

 

민들레         /김진학

꽃잎마다 사랑이
포기마다 향기가
가녀린 순수에
한 마리 나비가
내려앉았다.

네가 좋아
날래야 날 수 없고
뛸래야 뛸 수 없어
그냥 좋아 앉았다.

수많은 꽃들 중에
내가 네게 앉았건만
오누이처럼이나
다정한 짝이 건만

밤이슬 참아가며
날 기다린 너이건만

무심한 바람 불어와

하늘 가장자리로 밀어내니

아 아
민들레


잊고는 내가
잠시라도 살겠니?


잊고는 네가
하루라도 살겠니?

 

 

산민들레        /김승기

 

이제는 너를 알아볼 수 있겠다

건강하게 살았으면서도

구름으로 바람으로 흘러 보낸 날들,

스치며 부딪치며 수없이 마주쳤지만

왜 알아보지 못했을까

 

늘 그랬던 것인가

발밑을 보아야 할 때 하늘 쳐다보고

멀리 산을 바라보아야 하는 순간에도

오히려 발끝을 보며

 

민들레라고

그저 흔히들 말하는 그 꽃이겠거니

일부러 외면했던 것은 아닐까

 

헛디딘 발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고서야

다시 바라본 세상

거기 네가 있었음을 비로소 알아보다니

 

몸에 병이 들면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는 혜안이 열리는가

 

그래, 아픔이 마음의 눈을 뜨게 한다면

때때로 병에 시달려도 좋을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