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생전』의 주인공 허생은 변산의 도적떼를 외딴 섬으로 데려와 평화로운 낙원을 만들었다. 허생은 그곳을 떠나며 남은 사람들에게 당부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잡도록 가르치고, 하루라도 먼저 태어난 사람이 먼저 먹게 해라.”
낙원에서 살아가는 조건은 이것이 전부였다. 오른손으로 밥 먹는 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이렇게 신신당부했을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오른손으로 밥 먹는 행위가 지니는 의미를 알아야 한다. 오른손으로 밥을 먹어야 한다는 말은 『예기(禮記)』 「내칙(內則)」에 처음 보인다. “아이가 밥을 먹을 수 있게 되면 오른손으로 먹도록 가르쳐라.[子能食食, 敎以右手]”라고 했다. 이 구절 뒤에는 연령별 교육의 주안점이 줄줄이 이어진다. 오른손으로 밥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에티켓이 아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교육의 시작이며,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도록 만드는 사회화의 첫걸음이다. 허생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이유가 이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오른손일까? 조선시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았던 『예기』의 해설서 『예기집설(禮記集說)』에 실려 있는 송나라 학자 방각(方慤)의 주석에 따르면, 오른손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이유는 오른손이 강하기 때문이며, 이 점은 남녀가 동일하다.[取其强, 是男女所同也] 남자와 여자는 왼쪽과 오른쪽을 달리해야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른손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밥 먹는 손은 남녀를 막론하고 오른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른손으로 밥을 먹도록 가르치라는 『예기』의 내용은 훗날 주자(朱子)가 편찬한 『소학(小學)』에도 인용되었다. 『소학』은 조선시대의 필독서였으므로 글을 배운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말이다. 그런데 율곡 이이가 편찬한 『소학집주(小學集註)』에서는 오른손으로 밥 먹는 이유를 달리 설명했다. 오른손이 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取其便] 명나라 학자 오눌(吳訥)의 『소학집해(小學集解)』에 근거한 설명인데, 정작 『소학집해』를 찾아보면 ‘강하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다. 율곡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바꾼 것인지 실수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한 글자의 차이가 논쟁을 야기했다. 정개청은 오른손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오른손으로 밥 먹는 이유를 음양(陰陽)의 차이로 설명했다. 왼손은 양에 해당하고 오른손은 음에 해당하니, 임금이 신하를 부리듯 왼손이 오른손을 부려먹는 게 맞다는 것이다. 박태한(朴泰漢) 역시 비슷한 의견이다. 오른손을 사용하는 것이 순리이므로 편하다고 했다.(<讀書箚記>, 『朴正字遺稿』 卷13) 박윤원(朴胤源)은 반대였다. 그는 오른손이 강하기 때문이 맞다고 보았다. 하늘의 서북쪽에 별이 많고, 땅의 동남쪽에 평지가 많은 것처럼, 사람도 한쪽 방향으로 힘이 쏠려 있으므로 오른손과 오른발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答金士達小學問目>, 『近齋集』 卷12) 유중교(柳重敎)의 견해는 정개청과 비슷하다. 사람의 몸은 왼쪽이 양이고 오른쪽이 음이니, 왼손은 가만 두고 오른손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小學說>, 『省齋集』 卷23) 강하기 때문일까, 편리하기 때문일까. 왼손잡이인 내가 보기에는 둘 다 헛소리다. 사람의 몸은 쓰는 쪽이 강해지고 편해지는 법이다. 왼손잡이와 팔씨름을 하면 오른손으로는 이길 수 있어도 왼손으로는 이기기 어렵다. 왼손이 강하기 때문이다. 왼손잡이는 누가 뭐라 해도 꿋꿋이 왼손으로 밥을 먹는다. 왼손이 편하기 때문이다. 오른손이 강해서라느니, 편해서라느니 하는 주장은 모두 오른손잡이 입장에서 하는 소리다. 따라서 반드시 오른손으로 밥을 먹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른손으로 밥 먹는 행위가 모든 교육의 시작이라는 믿음은 건재했다. 안술(安述, 1596~1655)은 딸이 세자빈 후보로 간택되자 “한미한 집안에 마땅한 일이 아니다.”라고 하며 간택에서 탈락하기 위한 작전을 짰다. 딸에게 왼손으로 밥을 먹으라고 한 것이다. 작전은 성공했다. 안술의 딸은 단박에 세자빈 후보에서 탈락했다. 왼손으로 밥을 먹는다는 건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증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오해 때문에 왼손잡이가 흔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문헌을 찾아보면 왼손잡이의 존재를 더러 발견할 수 있다. 송나라 종실(宗室) 조불미(趙不微)는 왼손으로 글씨를 잘 썼고, 육원장(陸元長)과 양자보(梁子輔)는 중년에 들어 중풍을 맞아 부득이 왼손잡이가 되었는데, 오른손으로 썼을 때보다 글씨가 좋아졌다. 원나라 서예가 정원우(鄭元祐)는 어릴 적 유모가 떨어뜨리는 바람에 오른팔을 다쳐 왼손으로 글씨를 썼는데 명필로 이름났다. 그의 호는 상좌생(尙左生), 왼쪽을 높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청나라 화가 고봉한(高鳳漢) 역시 병으로 오른손을 못 쓰게 되자 왼손으로 그림을 그렸다. 정원우를 본떠 호를 후상좌생(後尙左生)이라 했다. 왼손잡이가 생기는 원인은 아직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 유전자의 작용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측할 뿐이다. 왼손잡이가 특별히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라고 한다. 타고난 성향에 불과하다. 다행히 요즘은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이 거의 사라졌다. 나 역시 왼손잡이로 살면서 딱히 손해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남들과 뭔가 다르다는 점은 늘 부담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를 키우면서 혹시 왼손잡이로 발전할 징후는 없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왼손으로 물건을 잡으면 슬그머니 오른손으로 옮겨주기도 했다. 내 아이에게만큼은 똑같은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걱정과 달리 내 아이는 완벽한 오른손잡이다. 내심 다행스럽다. 그런데 조카 하나가 왼손잡이다. 내 탓은 아니지만 왠지 미안하고 안쓰럽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다수 아닌 소수를 신기한 존재로 취급한다. 왼손잡이라는 사소한 성향조차 이럴진대, 그 밖의 사회적 소수자들은 오죽하겠는가. 소수자를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그들에 대한 편견의 역사적 유래를 추적하여 그것이 근거 없는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작업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