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조절 잘하기]
일어나기는 쉽지만 제어하기는 어렵기로 분노만 한 게 없다.
易發難制, 莫忿懥若.
이발난제, 막분치약.
- 이현일(李玄逸, 1627~1704), 『갈암집(葛庵集)』권22 「징분잠(懲忿箴)」
인류 역사상 가장 공부를 잘 하신 분 중 하나인 공자님의 공부법에 보면 ‘발분망식(發憤忘食)’이란 말이 있습니다. 너무 공부에 몰두한 나머지 밥 먹는 것도 잊는다는 건데, 이 중에 ‘성낼 분(憤)’자가 쓰이는 게 제법 흥미롭습니다. 물론 여기서 ‘분’자는 ‘분발하다’는 뜻에 더 가깝긴 하지만, 이처럼 ‘분(憤)’자는 ‘분(奮)’자와 종종 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적당한 분노는 분발(奮發)이나 분기(奮起)로 이어지면서 때로는 큰일을 성사시키는 데 중요한 동인(動因)이 되곤 합니다. 어쩌면 나라가 어려울 때 분연히 의병(義兵)을 일으켰거나 독립운동에 매진했던 조상님들의 의기(義氣) 속에도, 옳지 못한 것에 대해 발발한 분노의 감정이 적지 않은 몫을 차지했을 겁니다. 하지만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선생은 「징분잠(懲忿箴)」이란 글에서, 사람이 태어나면서 자연히 내려 받아 지닌 7가지 감정 중에서 가장 일어나기는 쉽지만 제어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분노’를 거론하며 이를 억누르는 것에 대한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적당한 분노는 좋은 분발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에는 너무 과한 분노의 발발로 수많은 문제들을 초래하곤 합니다. 수년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PC방 살인사건 또한 과도한 분노가 초래한 끔찍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나 요즈음은 세상에 흉흉하다 보니 분노에 차 있는 사람들을 참으로 많이 볼 수 있고, 분노를 잘 못 참는 사람들을 두고 ‘분노 조절 장애’가 있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일상 어디든 분노의 현장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지만, 아마 가장 흔한 곳은 운전자들끼리 부대끼는 도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평소에는 얌전한 사람도 간혹 운전대만 잡으면 난데없이 크락션 난타와 난폭한 핸들질을 통해 내 안에 꿈틀대는 분노 조절 장애를 여실히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불치병 같은 분노 조절 장애가 일순간에 치유의 기적을 맞는 현장이 벌어진 일이 있습니다. 한 유명 격투기 선수가 소형차를 몰고 운전하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난폭 운전을 해가며 계속 그 소형차를 위협했습니다. 급기야는 앞길을 가로막아 차를 세우더니 운전석에서 뛰쳐나와 육두문자를 퍼부으며 당장 내리라고 다그치며 험악하게 소형차에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연약한 여성 운전자가 벌벌 떨고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그 조그마한 차 안에서 갑자기 칠척 장신의 험악한 거한이 등장했습니다. 그러자 중증의 분노 조절 장애는 기적의 치유를 거쳐 어느새 ‘분노 조절 잘해’로 탈바꿈했다는 일화입니다. 앞서 갈암 선생은 인간의 7가지 감정 중 분노를 가장 제어하기 힘들다고 역설했는데, 위의 경우에는 어떻게 이처럼 쉽게 제어할 수 있었던 걸까요? 공자님은 『논어(論語)』에서 이 분노 조절 장애의 특효약에 대해 제대로 처방하신 바 있습니다. 바로 ‘화가 나면 어려움을 생각하라[忿思難]’는 말입니다. 앞서 난폭 운전자 역시 소형차를 상대로 기세등등 화를 냈지만, 그 차에서 자신을 한주먹거리로 만들 것 같은 칠척 거한이 등장하니 당장 눈앞에서 그 거한을 상대해야 하는 ‘어려움’을 떠올리며 금방 분노를 제어할 수 있었던 겁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참 많이도 분노하곤 합니다. 앞서 말했듯 적당한 분노는 때로는 긍정적인 동기 부여의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과도한 분노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다가 낭패를 보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뜻하지 않게 분노 조절 장애에 휩싸여 머리가 뜨거워질 때면, 나중에 뒷수습할 어려움을 생각하며 차분히 머리를 식히는 비결을 항상 명심해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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