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밝은 오례성(五禮城)에-박계현(朴啓賢)
달 밝은 오례성에 혀 남은 벗이 앉아
고향 감루를 뉘 아니 지리마는
아마도 위국단침은 나 뿐인가 하노라.
*(1)-혀 남은- 몇 몇의
2)고향 감루-고향이 그리워 느꺼운 눈물
3)지리마는-흘릴까마는
4)위국 단침-나라를 위한 충성된 마음
민체3
강호에 기약을 두고/정구詩(1543~1620)
평시조
주제:징은의 지중함과 강호에 대한 지향
현대어풀이:자연에 묻혀 살겠다는 약속을하고도
십년동안 일(벼슬)만하고 분주히 살고있으니
내 뜻을 모르는 흰 갈매기는 더디 온다고
탓하겠지만 임금님에 대한 은혜가 지극히 무거우니
그것을 갚고 가려하노라·
정구:조선중기 문신,유학자,철학자,역사학자,,,
민체4
민체5
민체6
녹초 성강상에~
서 익(徐 益) 시조
(1542~1634)년·자는 군수·호는 만죽(万竹)
푸른 풀이 우거진 비 갠 강가·(강호의 뜻도 있다)
굴레벗은 말:구속에서 벗어난 자유의 몸
북향(北向)하여 :신하가 임금 계신곳을 향하여,
임금은 신하에게 남향하여 앉는다·
석양이 재 넘어가매 : 저녁빛이 서산마루를 넘어가므로
나이가 들어 늙어가니~~
민체8
묏버들 가려 꺾어/홍랑(洪娘)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손대
자시는 창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곧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묏버들을 싱싱하고 좋은 것으로
골라 꺾어서 그리운 님께 보내드립니다.
주무시는 창 밖에
고이고이 심어 두시고 늘 보소서.
그리고 그 버들가지에서
밤비에 새잎이 나거들랑,
그것이 나인줄로 여기시고
날 본 듯이 반겨 보아 주소서.
이 글에는 홍랑(洪娘)과 고죽(孤竹) 최경창(1539-1583)의 애틋한 사랑과 이별의 정한이 서려 있다.
작가 홍랑은 선조 때 함경도 경성의 관기(官妓)로서 용모가 수려하고 글과 가무에 뛰어났다. 당시 함경
북도 평사(北道評事)가 되어 부임한 삼당시인 고죽은 그녀와 사랑에 빠졌는데, 홍랑과 고죽은 죽이 잘
맞았고 홍랑은 기생으로서가 아닌 여인으로서 고죽에게 깊은 순정을 바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고죽이 서울로 전근 가게 되자, 홍랑은 영흥(永興)까지 배웅하고 함관령에 이르러 날
저물고 비 내리는 속에서 버들가지를 꺾어 바치면서 눈물로 이 노래를 읊었다. 이후에 홍랑은 고죽이
병석에 눕게 되자 밤낮을 쉬지 않고 서울로 달려가 정성어린 간호를 하다가 쫓겨났었는데, 고죽이 사망
한 후에는 또다시 장지로 내려와 일부러 몸을 꾸미지 않고 일편단심 움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는 등
지극정성을 다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모든 집안 살림살이를 다 버리고, 오직 최창경의 시 원고만을
짊어지고 다니면서 난을 피해, 그 원고가 난리통에 보호될 수 있었다고 하니 그 지극한 일편단심은 놀
라울 정도이다.
버드나무는 이별의 상징이며 “묏버들”엔 홍랑의 애틋한 눈물과 사랑이 알알이 맺혀 있다. 이 시조를
대하면 언제라도 님과 함께 있고 싶어서, “창밖에 심어두고 매일매일 나인 듯 바라보고 손길을 달라”는
애절한 여인의 사랑 음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지금도 파주(坡州) 최씨 문중엔 홍랑의 묘가 낭군을 지키
며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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