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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동요

윤극영 -반달 동요탄생 100년

#윤극영 ‘반달’ 100년과 군산과의 인연

윤극영, 군산 피난살이(1950~ 1953년)… 사업과 문학업적
지역문화사에 전성기 연 토요동인회 창립· 지역문인과 교류에 적극
이중섭 화가의 제주 피난살이 1년 벤치마킹 새로운 관심 보일 때
중앙로에 가칭 ‘반달거리’ 만들자

제578돌 한글날을 맞았다.

한글날 아침 신문에 게재된 한 중앙일간지에 번뜩이는 내용이 나왔는데 동요작가요, 아동문학가인 반달 할아버지 #윤극영 선생 얘기였다.

그 매체에 따르면 ‘반달’은 동요작가 윤극영 선생(1903~1988)이 1926년 내놓은 동요집 <반달>에 수록된 표제곡이다.
윤 선생은 이 동요집에서 ‘반달’을 1924년 10월12일 완성했다고 밝혔다.

이틀 뒤면 ‘반달’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된다.
지난 세기 동안 우리나라에서 이 동요를 부르지 않았거나 모른 이가 있을까.

이 노래가 탄생했을 당시는 일제가 학교에서 우리말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하던 때였다.

하지만 일제도 이 노래가 퍼져나가는 걸 막지는 못했다.
일본, 중국에서도 마치 자신들 노래인 양
착각하고 부른 걸 보면 민중은 국경을 넘어 정서적 공감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뜬금없는 반달과 윤극영이란 말인가.
많은 독자들이 다소 생경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십분 이해한다.
그의 군산과의 깊은 인연(?) 때문이라면 다르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지리한 말들을 소환하며
이 기회에 군산과 윤극영 선생의 인연을 재조명함은 물론 가칭 ‘반달거리’ 조성을
제안해보고자 한다.

그의 군산에서의 활동은 <최영의 군산풍물기>와 <시인 고은의 증언> <오마이뉴스의 조종안 기자> 등의 자료에 근거함을 밝혀둔다.

윤극영(1903~ 1988)은 동요 ‘반달’을
작사· 작곡한 대한민국의 동요 작곡가이자 동화 작가이다.
별명이 ‘반달 할아버지’라고 할 정도로
어린이들에게 사랑받았다.

제비 남매, 우산 셋이 나란히, 고기잡이, 외나무다리, 담모퉁이, 반달, 설날,
까치까치 설날, 할미꽃, 고기잡이,
꾀꼬리, 옥토끼노래, 고드름, 따오기 등
모두 1백여곡의 동요를 지어 우리나라
동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윤 선생은 일본 유학 중이던 1923년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을 피해 귀국한 뒤 본격적인 동요 창작을 했다.
유학 시절 소파 방정환을 만난 인연으로 색동회 창립회원이 되어 우리말 동요의
가치에 대한 신념을 다졌다.

그는 한국전쟁 때(1950~ 53) 군산으로
피난, 구형택시 4대를 가지고 군산의
중앙로에서 택시 회사를 경영했을 뿐
아니라 지역 문학 발전에도 기여했다.

윤극영은 첫 만남에서 고은이 시를 쓴다는 얘기를 듣고 “항구에는 시인이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항구가
쓸쓸하지”라고 격려한다. 그 후 두 사람은 매일 만나다시피했고,
그는 고은에게 하얼빈과 동경 유학 시절
경험담을 들려줬단다.

고은의 문학적인 상상력에 도움을 줬을
뿐 아니라 1953년 창립된 토요동인회의 태동이나 전국적인 문학단체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됐음은 말해
뭘하겠는가.

윤극영 등 전국적인 유명 예술인들은
피난살이동안 군산의 문학 및
예술발전에 견인했고 군산이 예향의
도시로 부상하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군산과의 깊은 인연에도 정작
동요작가 윤극영은 철저히 잊혀진
존재다.

이와 달리 ‘화가 이중섭’을 품은 제주는 그가 1년 남짓한 피난살이 인연을
극대화해 이중섭거리는 물론 미술관까지  만들어 관광을 넘어
자신들의  예술영역을 확대했다.

이중섭의 고향은 평안남도로 월남한
실향민이다.
그와 서귀포가 인연을 맺은 것은 한국 전쟁이 일어난 1951년 서귀포로 피난을
오면서부터다.

통영, 부산을 지나 제주로 온 이중섭이 서귀포에 있었던 것은 고작 1년이지만 그가 머무른 1년은 그의 생애에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단다.

그러면 군산에는 한국전쟁기 무수한 유명 문학 및 예술가들의 피난살이와 예술혼을 살린 곳이었는데, 이렇게 버려두는 것이 합당한 처사는 아닐 것이다.

오는 12일이면 민족 동요 ‘반달’ 탄생 100주년이다.

그가 3년간 활동하고 지역문학발전에 기여한 핵심 공간(옛 비둘기 및 전원다방)이라 할 수 있는 중앙로 주변을 가칭 ‘반달거리’를 조성하면 어떨까.

한편 서울 태생인 동요작가 윤극영(尹克榮, 1903~1988)은 교동초등학교와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에 있는 동양음악학교에서 바이올린과 성악을 공부했다.

유학시절 만난 소파 방정환, 진장섭, 조재호, 손진태, 정병기, 이헌구, 마해송 등과 함께 ‘색동회’에서 활동했다.

윤 선생의 생전 경향신문, KBS 등 인터뷰를 보면 ‘반달’ 창작의 직접적 동기는 큰누나의 죽음이었다. 아침에 뜬 흰 반달을 보고 곧 사라져버릴 그 달이 죽은 누나 같기도 했고 나라 잃은 우리 민족 같기도 했다는 것이다.

#반달

(1절)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2절)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나라로

구름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이는 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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