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린 계절
그 꽃에는 나비가 앉지 않았다
손끝에 붉은빛이 피던 날은 요령 소리가 한 바퀴 돌다 갔다
꽃을 푸는 일은
오래 망설임을 풀며 가지런해지는 일
지워야 할 그를 부를 때
접힌 이름이 바스락, 호흡을 남겼다
들판은 스스로 풀리지만
샛길을 만들지 못한 꽃은 반대의 길로 들고
햇볕에 삭아 내린 면에서는 뽀얀 먼지 냄새가 났다
같은 자리를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오동에 묶이는 꽃들
무게 다른 끝에 불을 지피면 소리도 없이 풀린다
시간을 접던 기억만 남긴 채 어둠 쪽으로 멀어진 길들
남아있는 뿌리는 태우지 못해
다 식은 관절을 뭉친다
눈물에 쉽게 찢어져도
손끝 지문은 쉽게 빠지지 않고
여러 번 접힌 그를 들여다보는 지금
꽃잎 한 장은 그토록 살고픈 순간이었다
- 최연수, 시 ‘풀린 계절’
어릴 적 꽃상여를 본 적 있습니다.
그때 본 죽음은 무서움이었습니다.
종이꽃으로 장식된 상여와 그것을 메고 가던 상여꾼들의 알 수 없는 소리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은,
죽음은 바스락 접혔다가 태워지는 종이꽃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덧없는 것, 다 못한 아쉬움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