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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명구

영상의 시대에 보내는 경고 한 마디


영상의 시대에 보내는 경고 한 마디


머리 흔들고 눈 깜박여도 정신이 쏙 빠지니
자세히 본들 참과 거짓 누가 능히 분별하리
하지 마라! 한 무제처럼 어리석은 생각으로
장막 안에서 멀리 이李 부인을 보려함을

 
搖頭瞬目逞精神       요두순목령정신
諦視誰能辨贗眞       체시수능변안진
莫作劉郞癡絶想       막작유랑치절상
帷中遙望李夫人       유중요망이부인

 
 - 김윤식(金允植, 1835~1922),
『운양집(雲養集)』 권6, “동사만음(東槎漫吟)” 중
<활동사진을 보고〔觀活動寫眞〕>


 
  요즘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움직이는 그림-‘영상(映像)’을 볼 수 있고, 약간만 공부하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영상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 만인에게 공개하여 조회수에 따라 명성과 이익을 얻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뜻을 쉽게 알리고자 영상을 활용하는 이도 많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홀린 듯이 빠져들게 되는 영상의 힘, 실로 대단하지 않은가? '매혹(魅惑)'이란 단어가 어울린다.
 
  그러나 그 힘을 잘못 휘두르는 이들 또한 적지 않다. 자신이 믿는, 그리고 믿고 싶은 이른바 ‘가짜뉴스’를 진리라 생각하고 이를 영상에 담아 퍼트리는 이들이 곳곳에 있다. 그들에게는 ‘사실’이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영상을 통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추종자의 수,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들이는 돈이 중요한 것일 게다. 스마트폰, 텔레비전, 영사기가 처음 발명될 때만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현란한 영상에 '미혹(迷惑)'되는 이들이 여기저기에 넘쳐난다.
 
  조선 말기 관료이자 뛰어난 문인이었던 운양(雲養) 김윤식의 문집을 읽다가 흥미로운 시를 하나 보게 되었다. 김윤식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연루되어 10여 년간 제주도로, 지도(智島)로 유배길을 떠난다. 유배생활 중에도 지역 문인들과 시회를 열어 소통하곤 하던 김윤식은, 1907년(순종 1) 풀려난 뒤 관직생활을 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한시를 지었다. 이 시는 그가 1908년(순종 2) 일본에 가서 50여 일간 머물 때 지은 것 중 하나로, 도쿄에서 어떤 영화를 보고 느낀 바를 풀어낸 작품이다.   
 
  앞에 펼쳐진 크나큰 화면에 사람과 물건이 휙휙 왔다 갔다 한다. 움직이는 장면 하나하나를 보면서 일흔네 살 김윤식은 꽤나 어지러웠던 모양이다. ‘이것이 참인가, 거짓인가?’ 정신이 쏙 빠지는 경험을 하고 나오면서 그는 옛 이야기 하나를 떠올린다. 한나라 무제(武帝)가 사랑하던 후궁 이 부인이 죽었다. 애통해하던 무제 앞에 방사(方士) 하나가 나타난다. “제가 이 부인의 혼을 불러오겠나이다.” 칠흑 같은 밤, 방사는 장막 두 개를 치고 한쪽에 무제를 앉혔다. 그리고 건너편 장막으로 가더니 등불을 켰다. 일렁이는 불빛과 연기 사이로 무언가 어른어른 비친다. “아니, 이 부인 아니더냐!” 놀란 무제는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노래까지 지었다 한다.
 
맞는가, 아닌가? 是邪非邪 시야비야
서서 바라볼 뿐 立而望之 입이망지
어이하여 나풀나풀, 더디게 오는가 偏何姗姗其來遲 편하산산기래지
 
  애절한 이야기다. 하지만 한 꺼풀 벗기면 구독자의 니즈(Needs)를 맞추고자 하는 영상 제작자, 그리고 그의 영상을 보고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다는 모습 그대로지 않은가. 김윤식은 저 신기한 ‘활동사진’에 한 무제처럼 지나치게 빠져들지 말기를 주문했다. 설마 그가 120여 년 뒤 미래를 예상한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김윤식이 영상의 힘, 그리고 그것이 갖는 위험성을 어렴풋이나마 꿰뚫어보았음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 이 순간 이쪽과 저쪽에서 영상 하나에 휘둘리며 웃고 우는 사람들을 바라보자니, 그 옛날 김윤식의 통찰력이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물론 한일강제합병에 적극 반대하지 않고 일제의 작위를 받는 오점을 남겼던 김윤식이지만, 그래도 그는 온 민족이 일어나 독립을 부르짖었던 3.1운동 때 <독립청원서>로 일제에 저항하는 기백을 보여주었다. 
 글쓴이: 강민경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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