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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心에젖어

장마에 과한 시 모음

 

장마와 원고  /기 혁

 

폭우가 쏟아지는데

고작 모자의 둘레 따위를 생각한다

모자가 담게 될 예감과 상상력

뜻밖의 머리통들과 우주까지도

폭우가 쏟아질수록

모자의 둘레가 점점 더 은유로 늘어나고

은유로만 말할 수 있는

햇살과 그늘, 뜨거운 살갗의 온도가

나는 슬프다

우산 대신 모자를 쓰고

위태로운 둑방의 수위를 바라보다가

모자의 둘레가 허공에 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인부들은 모자의 색깔로 나를 부르곤

색깔보다 진한 경고와 욕설만을 남긴 채

통과해버렸다

아직도 폭우가 쏟아지는데

은유가 은유를 낳는 것은 비극이라고

소리치고 있는데 모자는

스스로의 둘레를 지니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고작 폭우 때문에 자신을 불러들인

시인을 비웃으면서 영원히

비가 내리지 않는 화창의 저주 속으로

내가 가진 모든 백지를 감춰버린다

 

 

6월 장마     /未松 오보영

 

가뭄 해갈해주는 널

어찌 반기지 않으리요

 

하지만

숲 뒤흔들 정도의

강풍 동반하여

 

막무가내

퍼부어대는

 

세찬 빗줄기만은

피해다오

 

혹여 잎새 달린

나뭇가지 부러트려

 

숲 푸르름 위해

그간 공들여 피워 올린

 

초여름 초록 잎새

떨어트릴까 심히 염려되어서라

 

혹시라도

숲 더 울창해지길 바라는

 

모두의 기대와

희망이

 

꺾이지 않아야 된다는

간절한 바램이 있어서라

 

 

장마전선         /藝香 도지현

 

하늘은 어찌 저렇게

썩은 동태의 눈처럼 흐릿할까

어찌 보면 흐릿한 하늘은

눈물을 가득 머금은 듯하다

 

금방이라도 후드득

눈물이 방울방울 내릴 것 같은데

누굴 눌리려는 심사인지

올 듯 올 듯하다, 오지 않으니

감질만 나게 만들고 있다

 

기상청의 안내 멘트는

“오늘은 곳에 따라 비가 올 예정이니

우산 하나 챙겨서 외출하십시오”

그날 우산은 애물 덩어리

이제는 믿을 수 없는 기상 예보

 

와야 오나 보다, 오다 말다 하는

비를 기다리다 기린 목이 되겠다

그래도 예보는 장마전선이

한반도에 걸려 있어 비를 내린다, 한다.

 

 

마른장마 2       /이상호

 

서양 말로 사랑이란

죽음에 강렬하게 저항하는 것이라니

 

뜨거운 사랑에 목마른 사람일수록

차가운 죽음에 깊이 빠져든다는 것

 

죽음을 죽이려는 애태움이 사랑이라는 것이라면

우리 노래가 사랑타령 일색인 것을 알 듯도 한데

 

세상에 태어난 사람으로 죽지 않은 사람 없고

세상에 태어날 사람으로 죽지 않을 사람 없으니

 

사랑은 흔해도 진짜

사랑은 없다

 

 

장마 예보        /이효녕

 

흐린 날 나무와 나무 사이 검은 구름이

잎사귀에 앉아 울면서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

 

내게서 부대끼는 바람들은

목이 긴 그림자로 남았으니

 

끝없는 내 마음 어디쯤에서

누가 나를 그리워하며 눈물짓는가

 

누가 나를 어두운 골목에서

스쳐 갈림길을 걸어오며 울고 있는가

실향민 마음처럼 오는 빗소리

 

 

6월 장마      /허정인

 

초록색 하나라도

풍성하고

겹겹 힘차던 유월이

꽃들 보내고

빗물로 밤세워 운다

 

네 울음은

열매를 위한 기도

초록잎 사이 사이

동그란 열매 가득 놓고

유월이 간다 울며간다.

 

 

장마라고 했다       /이도연

 

비가 왔다

장마라고 했다

시간이 저당 잡힌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비는 계속 오고

 

술 취한 사람이 빗속으로 떠나가고

또 다른 사람을 기다린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장마라고 했다

음악은 아날로그로 흐르며

추억을 소환하고

 

널 그리는 음악이 시간 속에 어둠을 가르고 있다

비는 내리고 나는 빗속에서 음악을 듣는다

시간은 자정으로 향하고

장마라고 했다

 

별이 지고 비구름이 밀려오는 밤에

비에 젖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비에 젖는다

창가에 기대여 가로등을 적시는 비는 파스텔 톤의 풍경 속으로 저물어가는 시간

장마라고 했다

 

기다리는 그리움의 단어를 창 넘어 깊어 가는 풍경 속에 보이지 않는 여인을 기다린다

장마라고 했다

 

그날 밤새 비는 내리고 술에 취해 간간이 흐르는 음악은 밤새 비에 젖어도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기 참 좋은 날이다

장마라고 했다.

 

 

장마전선       /김사랑

 

개망초꽃이 비바람에 흔들립니다

달맞이꽃같은 그대가 그립습니다

불어난 물은 돌덩어리를

굴리고 갑니다

강가에 물풀은 쓰러졌다

 

일어서고 일어섯다 쓰러지는

누런 황톳물 먹구름은

몰려왔다 몰려 갑니다

 

반도의 땅 빨간과 파랑이

한줄에 묶여 북상중이면

그대 눈썹달아래

장독대 봉숭화 눈물집니다

 

장대비 하얀 빗줄기 세워가는

그리운 고향 하늘가

뜨거운 맴미 울음도 멈추고

잠자리도 왔다가 떠난 자리

그대 닮은 능소화만 붉습니다

 

 

장마 속으로        /박지원

 

무작정 떠나고 싶었다

눈물은 흐르는 대로 두고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고 싶었다

 

장대비 내리고 비와 하나 되는 눈물

그렇게 흘러가고 싶었다

 

떨고 있을 둥지 밖의 새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걷고 싶었다

 

아스라이 멀어지는 것들을

그리워하며

 

 

장마          /윤봉석

 

외박한 남편 밤을 새워

기다린 얼굴로

세상 시름 다 안고 있다

 

마음이 내키면 연지곤지 찍고

색동옷으로 몸단장하다

 

가끔 오만상을 찡그리고

초상집 상주 되어

눈물을 쏟으며 통곡을 하다

 

때론 활짝 웃는 해바라기로

시시때때로 변덕쟁이

그 비위를 누가 맞출까

 

 

장마        /나동수

 

그거 아니?

네 웃음이

 

장마철에 잠시 비친

햇살 같다는 걸.

 

네가 우울하면

내 가슴에 장마 지거든

 

장마전선      /김사랑

 

굽이굽이 흘러가는 황톳물길

넘실넘실 출렁대는 금강아

 

너는 흘러 어디로 가느냐

서해바다에 넌 가겠지만

 

강둑에 외로운

하얀 개망초꽃아

 

누구 하나 보는 이도 없는데

왜 피었다가 지느냐

 

시간도 멈춰버린

옛 경부선 고속도로

 

옥천 동이면

강물 다리 위

 

쓸쓸히 비만 내리면

지나 간 옛 추억만 아련하네

 

무정한 장마전선은

반도의 땅

 

오락가락 강물도

바다에 다와 가는데

 

온종일 비만 내리면

눈물에 홍수만 나겠네

 

 

장마 지나간 옥상     /박영희

 

된장에 찍어먹으면 딱 좋을

풋고추 대롱대롱 달려있고

 

긴 싸움 이겨낸 늠름한 얼굴로

석편아짐 좋아하는 가지 몇 실하게 매달려있고

 

찬바람 불면 할마씨들 입맛 돋울

대추알들 따글따글 열려있고

 

막걸리 둬 사발에 헤헤 두 다리 풀렸으나

철봉대 꼭 움켜쥔 빨래들 보고 있자니 불알 두 쪽이

포도송이마냥 탱글탱글해집니다

 

열 받으면 가지만해지는 고놈도

덩달아 뜨뜻해집니다

 

열 받아야 크는

풋고추 가지마냥 칠월 옥상은

 

자고 나면 커지고

자고 나면 굵어지는 것들뿐입니다

참 살맛나는 날들입니다

 

 

여름 장마 소식이 들려오네요!     /임영석

 

뉴스에 6월 장마가

온다는 소식이 솔솔 들려

여름 장마가 온다는 기상대 예보

 

소식이 들려오네요

가뭄으로 바짝 마른 대지

유월 장마로 큰 피해 걱정입니다

 

여름 장마 있으면

가을장마 꼭 찾아온다니

풍년의 기대했던 알곡에 큰 피해

 

아름다운 갈 결실

갈증 필요한 충분 충족

장마로 얼마나 커질까 불안하고

 

적당히 내려준다면

희망의 감사할 장맛비여

시원한 빗줄기 차분히 내리소서

 

 

장마         /김사랑

 

어제 내린 비에

내 가슴이 홀딱 젖었습니다

 

오늘도 비 소식에

눈물로 홍수가 나겠지요

 

그리운 그댄 잘있단 소식이 없고

달맞이꽃 강둑에 앉아 마냥 기다려봅니다

 

능소화 꽃빛 노을 아릿따운 그대도

인생은 저물어 가고

사랑에 노을이 지는지요

 

세월이란 흘러 가버린 강물이고

사랑이란 떠나버린 인연이라면

 

세월의 그림자 속에 추억이나 생각하며

강아지풀처럼 바람에 흔들리며 살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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