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원제 때 16세의 왕소군(王昭君)이 후궁이 되어 입궁했다.
당시 원제는 화공이 그린 화첩을 보고 후궁을 간택했다. 간택을 염원하던 후궁들이 화공 모연수에게 잘 그려달라고 뇌물을 바쳤으나, 미모에 자신이 있던 왕소군은 뇌물을 주지 않았다. 모연수는 이를 괘씸히 여겨, 왕소군의 뺨에 검은 점을 하나를 그려 넣었다.
어느날 오랑캐인 흉노족의 선우 호한야(呼韓邪)가 한나라의 공주와 결혼하기를 원했다. 그러자 원제는 화첩에서 못난 후궁들을 보여 주며 선우에게 고르라고 했다.
원제는 왕소군의 실제 미모를 보고 깜짝 놀랐다. 원제가 이상히 여겨 조사한 결과, 뇌물이 오간 사실을 알고 화공 모연수를 참수했다.
결국, 왕소군은 흉노족 선우와 혼인을 마치고 흉노 땅으로 갔지만, 3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후대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왕소군의 심정을 대변하는 시를 지었다.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봄이 와도 진정한 봄을 느낄 수 없었던 왕소군의 서글픈 심정을 묘사한 한시의 싯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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