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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적인 소설 읽기

교과서적인 소설 읽기

              - 세계명작 산책/ 이문열-

 

 

 글을 쓸 때 이론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을 너무 의식하고 쓰다보면

꿰어 맞춘 티가 나서 자연스럽지 못 하고 글을 쓰는 자체도 상당히 부담스럽다.

그러니 앞서 이론에 지나치게 몰두하거나 치우치지 말고

 더불어 작품을 많이 읽는 것이 쓰기에 훨씬 효과적인 공부가 된다.

 그렇게 작품을 많이 읽다보면 이론은 아주 쉽게 정리되고 이해된다.

이것은 詩든 小說이든 마찬가지다.

 

그러나 좋은 글(책)을 고르는 것은 쉽지 않다.

 지나치게 앞서가거나 멋을 부린 작품들을 산발적으로 읽어버리면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고,

 내 글을 씀에 도움은커녕 오히려 혼란만 오게 된다.

이것은 교과서를 공부하지 않고 어려운 참고서를 먼저 들고 끙끙거리는 것과 흡사하다.

먼저 가장 근본이 되는 교과서를 완전히 익힌 다음에

 참고서로 넘어가면 효과적일뿐더러 그것이 바른 순서이다.

 

이문열씨가 좋은 일을 했다.

사랑의 여러 빛깔(1),

죽음의 미학(2),

성장과 눈뜸(3),

 환상과 奇想(4),

삶의 어두운 진상(5),

비틀기와 뒤집기(6),

사내들만의 미학(7),

 시간의 파괴력과 쓸쓸함(8),

병든 조개의 진주(9),

그래도 사랑할만한 인간(10)

등 세계명작 소설을 주제별로 분류하여 10권으로 묶었다.

주제별로 묶음은 공부하기에 상당히 도움을 준다.

주제를 막연하게 헤아리거나 잘못 파악하는 것을 미리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각 작품의 끝부분에 1,2쪽의 해설을 붙이고 있다.

자신의 생각을 곁들인 해설이기 때문에 이해를 도와줄 뿐만 아니라 

마주 앉아 서로 감상과 의견을 나누는 것과 같은 구실도 한다.

엮은이의 해설을 바탕으로 하여 읽는 사람(공부하는)은 더 깊은 생각에 이를 수도 있다.

이 책은 아마도 이문열씨가 소설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교과서용으로 읽으라고 엮어놓은 모양이다.

 

실린 작품들은 중,단편이다.

장편보다는 단편들이 아무래도 더 촘촘하고 섬세하기 때문에

이 또한 공부하기에 더 적합한 조건이 될 만하다.

공부까지는 아니고 그냥 읽기만 해도 그렇다.

장편은 한꺼번에 읽어치우기 때문에 금방 끝에 도달해버리는 허전함이 있지만,

푸짐한 중,단편은 마치 여러 가지 음식을 이것저것,

조금조금 맛보는 듯 한 재미가 있다.

다음에 또 읽을거리가 오고 또 오기 때문에 서운하지가 않다.

게다가 선별되어 실린 작품들은 우리가 이미 읽은 것도 있지만

낯선 작품들이 많아 결코 지루하지 않다.

 

공부하기에도 아주 적합한 읽기 교재이지만, 상식과 교양을 넓힘에도 도움이 되겠다.

‘보물섬’과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는 오래 전에 읽어 어렴풋 기억나겠지만,

그 작품들을 쓴 사람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의 또 다른 작품 프랑스와 비용의 이야기인 ‘하룻밤의 유숙’은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 ‘보물섬과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의 작가를

 따로따로 생각하고 있는 이도 있을 수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해양작가 콘라드로 달달 외우고 있었지만

그의 작품 ‘발전의 전초기지’도 나는 처음 읽었고,

 ‘장거리 선수의 외로움’을 아주 심각하고 진지하게 읽었지만

그 작품을 지은 앨런 실리터의 작품도 처음 읽었다.

교양이 많이 부족했음을 인정한다.

 

별나게도 눈이 많이 오고 추운 올해 겨울,

 어쩌면 이 열 권의 교과서를 읽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줄거리나 구성이나 인물이나 주제 등에 집중하면 소설 공부가 되겠지만,

 시의 촉각을 건드리는 낱말이나 구절 등도 아주 풍성해서

밑줄을 좍좍 그으면서 읽을 수 있다.

 

[출처] 교과서적인 소설 읽기 (시산문(詩散門)) |작성자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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