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고창신(法古創新)
서예에 관한 책을 볼 때마다 자주 만나는 말이 법고창신이다.
서예의 이론서에도 나오고,
서예사에도 나온다.
작품의 비평에도 나오고,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말할 때도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말의 뜻이야 ‘옛 법을 익히고, 새로움을 만들어 낸다.’ 이다
‘옛 법을 익히다.’를 생각해보자. 아니 ‘법(法)’과 ‘창(創)’을 생각해보자.
법(法)이라는 말에는 여러 뜻이 있지만
규칙, 규범, 본보기,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 어떤 모형 등등으로, 대체로 일정하여 변하지 않는다, 는 의미가 강하다.
창(創) 자는 비롯하다. 시작하다, 는 뜻이다. 변화의 뜻이 강하다.
법고창신은 일정함과 변화를 함께 한다는 뜻이다.
서예를 말할 때 하기 좋은 말로 법고창신을 들먹이지만
서로 상반되고 대립되는 뜻이 들어있는 말이니 실제로 실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 미술사를 공부하다 보면 옛 것과 새로운 것을 양 편에 두고
한쪽으로 치우치다 다시 반대 쪽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흔하다.
변화가 나타날 때는 사회적 변동이 올 때다.
변화가 나타낼 때는 원인이 되는 사회적 배경이 있다.
북종화가 유행하였을 때는 유행할 수 있는 사회-지리적 배경이 있다.
남종화가 나타날 때도 이유가 있다.
북종화를 그린 화가는 중국의 북쪽에서 자리 잡은 북송 시대의 화가들이다.
북방의 산수와 지리를 그린 것이 북종화다.
송나라가 금나라에 밀려서 남쪽으로 내려가자
남송 시대의 화가들은 남쪽의 부드러운 산수를 화폭에 담았다.
말하자면 예술은 사회 여건이 바뀌면 따라서 바뀐다.
조선 시대는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탓에
중국의 명칭대로 서법(書法)이라고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의 영향으로 서도(書道)라는 명칭을 많이 사용하였다.
광복이 되고 나서 바꾼 이름이 서예이다.
명칭을 바꾸는 것은 어마어마한 변화이다.
일제강점기를 지낸 우리에게 해방이 주는 변화는 아주 크다.
서예도 그만큼 변화가 있었을까? 아니다.
법고창신을 말하면서도 법에만 매달려 변화를 하지 못한 탓이다.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자연스레 쇠퇴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서예가 법고(法古)에 매달려 변화에 둔감한 것은 숙명인지도 모른다.
서예의 본 고장인 중국에서는
지금까지 서법이라고 부르는데는 강한 역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서법은 문자의 법이고, 문장 만들기의 법이다.
의미의 전달이 우선이라는 뜻이다.
오늘의 서예가들이 예술성을 내세우는 미학 원리는 조형미이다.
말하자면 글자의 형태미이다.
서법이라는 명칭에는 형태에 앞서서 뜻의 전달이 우선이다.
이라는 것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중국인은 글자 쓰기 즉, 필사(筆寫)를 익혔다.
문자를 배우고, 필사의 법을 익혀야 하였다.
필사의 법을 함부로 바꾸면 의미의 전달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에
변화에는 무척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서예 발달사에서 다루는 주제는 오체(五體)가 나타나는 역사적인 사실을 조명한다.
미적인 이유에서 나타난 것일까? 아니다.
실용적인 이유로 나타났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갑골문에서 금문으로, 다시 대전에서 소전으로 바뀌는 이유는
사용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나타났다.
문자의 서체를 간략하게 하고, 통일 시킨 것이야말로 ‘법’을 세우는 일이었다.
필사를 목적으로 글씨를 익히려면 반드시 서법을 알아야 한다.
한국의 근대 서예가 추사에서 유래한 예서에 경도된 경향이 있다.
예서가 태어난 배경을 보면 조형미가 아니고
하급 관료들이 실용적인 이유로 만든 서체이다.
행초가 나타나는 역사적 과정을 보아도 일상에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필사하기가 용이 하도록 만드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부수적으로 미적 표현을 곁들이면서 글자의 형태가 바뀌었다.
뿐만 아니고 종이가 발명되고 붓이 발전을 함으로
필사 재료에 합당한 필체들이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나름대로 사회 변화에 따른 서법의 변화인 것이다.
중국 회화사에서 청대 중기에 이르면 의미 있는 변화를 경험한다.
양주화파라 하여 8명의 화가를 대표로 꼽는다. 양주팔가라고 부르지만,
팔가(八家)보다는 팔괴(八怪)라고 부르는 것이 더 익숙하다.
왜 가(家)보다 괴(怪)로 부르기를 더 좋아할까?
회화의 변화가 괴이하다고 느낄 만큼 심하였기 때문이다.
청대 중기에 양주라는 지역에서 변화가 나타난 역사적 사실을 조명해보면
한국의 서예가 오늘날 어떻게 변화를 해야할지에 대한 답이 나올 수도 있다.
청대 중기의 산수화가 방훈은 시대 상황을 이렇게 말하였다.
“오늘의 중국 화가들은 왕휘의 감옥에 갇혀 있지 않으면,
왕원기의 쇠고랑에 묶여 있다.”
이 시기의 중국회화는 전통파라고 하는 두 화가를 추종하느라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 말이다.
전통 회화를 하는 이들의 화풍은 지배 계층인 관료 사대부들이 좋아 하였으므로
중국 화가들은 두 사람의 화법을 추종하느라 독창적인 기법을 개발하지 못하였다.
작품에는 개성이 없고 답습만 하다 보니 진부함에 빠져 있었다.
양주화파를 좋게 평가하는 이유는
양주에서 전통적인 화법을 벗어나서 독창적인 회화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중국 사회가 변하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발달함으로 문인 사대부가 독식하던 상류층 사회에
부(富)를 배경으로 하는 새로운 계층이 나타났다.
반면에 문인 사대부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양주는 상업이 번창한 도시였다.
돈 많은 상인이 상류층을 형성한 양주에서는
예술의 취향이 문인 사대부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신흥 시민 계층은 구시대의 속박에서 점차 벗어나서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기이한 것을 찾았다.
자극적이고 격동적인 것을 찾았다.
예술에서도 이러한 것을 표현하기를 요구하였다.
양주팔괴는 이러한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여 태어났다.
문인화가이든, 직업화가이든 경제적으로 곤궁하였기 때문에 돈이 필요하였다.
양주팔괴의 공통점은 그림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이 시민의 요구에 따른 그림을 그리는 것은 당연하다.
전통 회화가 쇠락해 갈 때 새로움을 추구하는 양주화파가 중국 회화에 생기를 일으켰다.
법고창신과는 조금 멀어보이는 듯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예술의 발달과 사회의 변화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해방 이후의 사회 변화는 눈부실 정도로 빠르다.
우리 서예가 그 변화를 얼마나 반영하였는지 묻고 싶어서다.
오늘의 한국 서예는 어떤가? 중국 사회가 변화하는 것에 발 맞추어서
양주화파가 나타났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한국의 사회가 변화한 것은 청대 중기의 사회 변화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심하다.
더 엄청나고, 더 빠르게 변화를 하였다. 우선은 한문을 생활어로 사용하던 시대가 아니다.
한문을 습득하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가 되었다.
서예는 조형미만이 아니고 의미의 전달에서 미를 구축한다.
의미 전달(소통)이 안 되는 서예를 붙잡고
예술을 주장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사고이다.
서울 인사동의 서예 전시장에서 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더러 들리기는 하였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휘익 둘러보기만 하였다.
년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들어오시더니
행초로 쓴 글씨를 줄줄 읽으면서 감상을 표현하였다.
나는 그 분을 눈여겨보면서, ‘맞다.
저런 분들이 감상자이어야 서예가 예술이 된다.’라고 생각하였다.
대구의 전시장에 들렸을 때다 나 역시 한문에는 까막눈이다 보니
봉사 삼밭 지나가듯이 둘러보았다.
같이 가신 분이 ‘거 참 잘쓴 글씨다.’라고 하였다.
돌아보면서 ‘한문을 많이 아시나 봐요.
서예에도 조예가 깊으신가 봅니다.’ 하였다.
그 사람은 씨익 웃더니 ‘전시회까지 한다면 무조건 잘 쓴 글씨지요.
하여간에 현판이든, 주렴이든,
’잘 쓴 글씨다.‘라고 하면 되는 겁니다. 라고 하였다.
서로 마주보면서 웃고 말았다.
추사가, 원교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울분을 참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것이 오늘의 우리 사회이고, 현실이다.
서예가 성행하던 시대와 비교를 하면 변화가 온 정도가 아니고 상전이 벽해가 된 일이다.
그런데도 법고에만 매달려 있는 것이 서예의 현실이다. 해답은 자명하다. 창신이다.
창신이라고 할 때 창(創)은 비롯하다. 시작하다, 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서예를 완전히 새롭게 시작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오늘이야말로 어느 때보다 법고창신을 새겨보아야 할 시기이다.
법고보다는 창신에 매달려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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