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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명구

내년에도 예년처럼?

해마다 추위와 더위 반복되니, 내년에도 지난해와 같겠지.

 

亦知寒暑年年有, 來歲猶應去歲同.
역지한서연연유, 내세유응거세동.


- 김팔원(金八元, 1524〜1569), 『지산집(芝山集)』 1권, 「추선(秋扇)」

김팔원의 자는 순거(舜擧), 호는 지산(芝山)이다. 32세 때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고, 문과(文科)에도 합격하였다. 성균관 박사와 전적(典籍), 예조 좌랑, 용궁현감(龍宮縣監) 등을 지냈다.


   ‘추선(秋扇)’. 가을 부채다. 봄 부채, 여름 부채가 따로 있으랴. 여름에는 늘 가까이하다가 선선한 바람 불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어지는 부채. 바로 가을 부채다. 총애를 받던 신하나 사랑받던 여인이 임금과 낭군에게 잊히는 신세일 때 종종 비유된다.


   어느덧, 그야말로 어느덧 9월이다. 해마다 오는 가을인데, 올가을을 맞는 느낌은 조금 특별하다. 원인은 날씨다. 5월 21일 설악산 등산에 나섰다. 도중에 날이 흐려지자 비가 올까 걱정이었다. 하지만 “가뭄이라 비도 와야 하는데.”라는 혼잣말이 저절로 나왔다. 이후로도 계속된 가뭄. “제발 비 좀 와라. 비 좀 와라.”를 매일 중얼거렸다. 간절히 바라던 비는 7월에야 내렸다. “한시름 놓았다.”라는 안도도 잠시, 이번에는 국지성 호우가 쏟아지며 큰 피해를 일으켰다. 범람하는 하천, 무너지는 산, 가옥과 차량의 침수.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그토록 바랐지만 한 달여 동안 비가 이어지자 “이제 좀 그만!”을 외쳤다. 그 와중에 여전히 가뭄에 시달리는 지역도 있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가 발생했다.


   어찌 되었든 이제 9월, 가을이다. 삼복더위에 간절히 바라던 시원한 바람[三伏長思濯熱風], 그런 바람 없어도 되는[九秋無賴滌煩功] 계절이다. 가을이면 상자 속에 던져 넣는 부채처럼 여름내 가까이했던 선풍기와 에어컨을 잊어도 되겠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계절이 변해 여름이 또 온다는 사실이다. 추위와 더위만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가뭄과 홍수의 피해도 반복됨을 기억해야 한다. 자연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의 모습을 수없이 목격했지만, 철저히 대비한다면 피해를 줄인다는 경험도 하지 않았던가. 강남역 일대가 침수된 상황에서도 방수문 설치로 피해를 막았던 한 건물의 사례는 ‘21세기 노아의 방주’라는 찬사를 받으며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1994년 준공 이후 수해를 당한 적이 없다니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그에 반해 하상 주차장과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하는 침수 피해, 계곡에서의 고립 등은 해마다 판박이처럼 반복된다. 불가항력의 재난도 있지만, 주의와 관심으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도 있다.


   부채. 가을 부채는 더운 바람이 다시 불 때까지 상자 속에서 잊힌 존재로 남았다가 해마다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 손에 들려 연신 더위를 식혀주는 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가뭄과 홍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준비가 가을 부채와 같아서는 곤란하다. 뒷전으로 미루고 멀리하다가 예년과 같은 내년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추위와 더위마저 예년 같지 않은 경우가 늘어나는 상황이니, 우리의 준비도 특별해야 하지 않을까. 묵은 부채처럼 진부한 대책 말고. 더 큰 바람이라면 “하늘아, 변치 말자!”

글쓴이 :정만호
충남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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