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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명구

사랑하는 우리 딸 보려무나

사랑하는 우리 딸 보려무나


변방이라 쌀쌀한 날씨에 제철 과일 늦어
칠월에야 앵두가 막 붉어지네
수박은 무산 인근에서나 난다는데
올해는 장마로 모두 물러버렸다지
고을 사람 두 주먹 맞붙이고는
큰 건 더러 이만하다고 자랑하기에
늘 술 단지 만한 수박만 보다가
이 말 듣고는 씹던 밥알 내뿜었네
평생 수박씨 즐겨 까먹었으니
양조처럼 즐겨 먹은 일 절로 우습구나
수박은 구경조차 힘드니 씨는 말해 무엇하랴
여름 내내 공연히 이빨이 근질근질했네
아들이 서울에서 올 때 한 봉지를 가져와
어린 누이가 멀리서 부지런히 마련했다기에
기쁜 마음으로 까먹고 껍질 뱉으며
홍색 백색으로 널려진 모습 보았네
고이 싸서 보낼 때 네 모습 떠올려보니
알고말고, 아비 그리워 줄줄 눈물 흘린 줄
소반마다 거둬 모으느라 손발이 바빴고
아침마다 꺼내 말리느라 애썼을 테지
여종 아이 훔쳐 먹을까 자주 돌아봤을 테고
잘 보관해두라고 늘 새언니에게 당부했겠지
작년엔 무릎에 앉혀 같이 까먹었는데
어찌 알았으랴, 오늘 이렇게 헤어질 줄
늦둥이 딸이라 너를 더 애지중지했으니
두 눈썹은 그린 듯 어여뻤고
병든 어미 뜻에 맞게 잘 간호하여
응대에 민첩하여 입댈 일이 없었지
부모가 세상에 드문 보배처럼 아껴
서로 자랑하느라 입가에 침이 줄줄
좋은 사위 골라 노년의 낙 삼으려 했건만
누가 알았으랴, 나이 여덟에 부모와 이별할 줄
이 아비야 지금 생이별에 애간장이 녹지만
네 어미는 어찌 차마 널 버리고 떠났단 말이냐
지하에서도 눈 감지 못할 터이니
속마음 터놓으려다 문득 입을 닫는다



邊城暖遅時物晩 변성난지시물만

七月櫻桃紅始慣 칠월앵도홍시관

西瓜云出茂山境 서과운출무산경

今歲積雨皆爛幻 금세적우개란환

邑人擧手合兩拳 읍인거수합양권

誇說大者或幾然 과설대자혹기연

常時厭見如甕壜 상시염견여옹담

聽此噴飰遽堆前 청차분반거퇴전

平生愛嚼西瓜子 평생애작서과자

自笑嗜癖羊棗似 자소기벽양조사

西瓜不見子暇論 서과불견자가론

一夏公然負吾齒 일하공연부오치

兒來自京携一封 아래자경휴일봉

謂言小妹勤遠供 위언소매근원공

訢然剝食吐其殼 흔연박식토기각

頫仰紅白相橫縱 부앙홍백상횡종

仍憶糊褁寄託時 잉억호과기탁시

知汝戀我淚如絲 지여련아루여사

案案收聚勞手脚 안안수취로수각

朝朝出曝費心思 조조출폭비심사

顧眄頻防婢兒竊 고면빈방비아절

藏置每囑兄嫂說 장치매촉형수설

前年抱䣛同噉食 전년포슬동담식

豈道今日此相別 기도금일차상별

此女晩出我絶愛 차녀만출아절애

雙眉如畫多妙態 쌍미여화다묘태

扶護病母能適意 부호병모능적의

應對敏給無煩誨 응대민급무번회

父母寶若希世珍 부모보약희세진

相矜口角雙流津 상긍구각쌍류진

儗選佳婿娛晩景 의선가서오만경

誰謂八齡訣兩親 수위팔령결양친

我今生離膓寸毁 아금생리장촌훼

汝母何忍棄汝死 여모하인기여사

泉下之日應不閉 천하지일응불폐

欲說攤胷遽自止 욕설탄흉거자지

- 이광사(李匡師, 1705~1777), 『원교집선(圓嶠集選)』 2권, 「답여아서과자(答女兒西瓜子)」

   조선 시대 문인들 가운데 딸을 위해 시를 지은 아버지가 얼마나 될까. 문인들의 문집(文集)을 보더라도 딸을 위해 지은 시를 보기는 쉽지 않고 남아 전하는 경우는 더 드물다. 위의 작품은 이광사가 함경도 부령에 유배된 그 해에 서울에 있는 늦둥이 딸을 그리며 고마움과 애틋함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간 시이다.


   이광사는 1755년 나주괘서사건에 연루되어 의금부 옥사에 갇혔는데, 아내 유씨 부인(柳氏夫人)은 남편이 참형을 면하지 못하리라 짐작하고 먼저 목숨을 끊었다. 이광사는 아내의 주검과 풍비박산 난 집안을 수습할 겨를도 없이 어명을 받고 유배길에 올랐다. 당시 서울 서대문 집에는 긍익(肯翊), 영익(令翊) 두 아들과 며느리, 여덟 살 먹은 막내딸이 남아 있었다. 낯선 유배지에서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괴로워할 때 서울에서 아들이 문안을 왔고, 막내딸이 오라비 편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비를 위해 정성껏 말린 수박씨를 보내왔다. 평소 수박씨를 즐겨 먹던 터라 울적하고 무료하던 유배지에서 딸이 보낸 수박씨는 이광사에게 더할 나위 없는 큰 기쁨이었다.


   수박씨를 씹으며 자연스레 먼 곳에 있는 아비에게 보내려고 아침저녁으로 고생스레 수박씨를 말리고 행여 여종이 훔쳐먹을까 감시하며 아비가 그리워 눈물지었을 막내딸이 눈에 아른거린다. 마흔이 넘어 얻은 늦둥이였기에 또 한창 부모의 사랑이 필요한 어린 나이에 어미를 잃었기에 더 마음이 쓰였던 딸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구절구절에서 애틋한 부정(父情)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행복했던 추억에서 다시 딸과 생이별하게 된 참혹한 현실로 돌아와 그리움이 한(恨)으로 바뀐다. 가족과의 생이별에 애간장이 녹는 자신도 견디기 힘들지만 자신 때문에 어린 막내딸을 두고 세상을 떠나야 했던 부인에 대한 미안함과 부모의 보살핌 없이 힘들게 살아갈 막내딸에 대한 먹먹한 마음에 말을 잇지 못한다.




   이후 이광사는 부령에서 신지도로 유배지를 옮겼고, 꿈에도 그리워하던 막내딸을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유배지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였다. 강준흠(姜浚欽, 1768~1833)이 『삼명시화(三溟詩話)』에 이광사의 이 시를 선별해 수록한 이유도 구절구절 사랑하는 딸을 그리워하는 아비의 애타는 마음을 절실하게 잘 표현했기 때문이 아닌가한다.

글쓴이:이승용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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