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 서봉:2,086.6 M
남봉:2,154M
저 산 그대로 봉황의 날갯짓이자 용의 승천
38개 암봉으로 승경 이룬 도교 발상지 5대 명봉 답파
중국인들의 산악신앙의 대상이 된 5악 중 산세가 가장 뛰어난 산이 화산이다.
깎아지른 듯한 암벽과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계곡은 웅기험준(雄奇險峻)하여
지난 수 세기동안 무수한 침략자들로부터 장안을 지켜낸 일등공신이며,
대황하의 물줄기마저 바꾸어 버린 산이다.
화산은 산세가 워낙 험해 신비로운 기운마저 감돌기 때문에 무협지의 주무대가 되었으며,
무림고수들의 마지막 결투가 이곳 화산에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화산론검(華山論劍)이라는 말이 나왔다.
- ▲ 화산과 황하.
- 또한 화산은 도교(道敎)의 발상지이자 진흥지로도 유명하다.
- 현재도 200여 개의 크고 작은 도관(道觀)이 있으며, 양귀비가 양태진(楊太眞)이란 도호(道號)를 가지고 여도사 생활을 한 곳도 이곳이다.
- 다른 명산들은 도교의 도관과 불교의 사찰이 혼재되어 있지만, 화산은 유일하게 불교사찰은 전혀 없고 도교의 도관만 존재한다.
화산은 섬서성 서안에서 동쪽으로 120k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 크고 작은 봉우리가 38개나 솟아 있다.
- 이중에 높은 5개 봉우리(落雁峰, 朝陽峰, 蓮花峰, 云臺峰, 玉女峰)를 지나는 것이 주요 산행로다.
- 산 전체가 험준한 화강암봉군으로 이루어져 있어 클라이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도 충분하다.
- 이 웅장한 화산을 보고 나면 여백 없이 하늘 끝까지 채우는 중국 산수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서안은 전시 관계로 자주 찾는 곳이 되어 낯설지 않다. - 그래서 혼자 배낭을 메고 선뜻 나서 보았다.
- 오늘 따라 잔뜩 흐린 날씨에 방금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만 같다.
- 서안은 연평균 강우량이 600mm라고 하니 비가 귀한 곳이다.
- 그래서 이곳에서는 손님이 비를 몰고 오면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옛말이 있다.
무림고수들이 혈투 벌인 화산 북봉
- ▲ 영객송과 남천문.
- 화산 입구에 도착,
- 화산 전용 미니버스로 갈아타고 굽이굽이 심산유곡을 찾아든다.
- 차창 밖으로 아무리 고개를 빼고 위를 쳐다봐도 끝없이 높은 산정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 인적 하나 없는 협곡을 30여 분 달려 삭도(케이블카)정류장에 도착,
- 물건 파는 소리로 왁자지껄한 가운데 일단 삭도를 타고 북봉으로 오른다.
운무로 인하여 북봉의 비경을 확연히 조망할 수는 없지만 잠깐씩 드러낸 북봉의 위용에 - 이백, 이상은, 백거이, 관회 같은 장안에서 이름난 시인들이 화산을 노래한 시심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三峰却立如欲 세봉우리 우뚝, 꺾고 싶어라
翠崖丹谷高掌開 푸른 절벽 붉은 계곡 높이 손 벌려 펼치네.
白帝金精運元氣 서쪽의 쇠 기운은 천지 원기를 돌려
石作蓮花云作臺 돌로 만든 연꽃 구름봉우리 짓네.
이백이 북봉에 올라 남긴 싯귀다.
북봉 정상에 오르니 운집한 군중 속에 ‘華山北峰’(1,614.7m) 표지석이 반긴다.- 바로 그 옆에 ‘華山論劍(화산론검)’이라 새겨진 키보다 큰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 무림고수들이 혈투를 벌인 곳이라고 한다.
- 북봉은 삼면이 천길 낭떠러지이므로 길은 외길, 최후의 승자만이 올라온 길을 내려갈 수 있었다고 한다.
- 뿌연 안개 구름 속에서 칼바람 같은 바람소리를 들으며 북봉에서 내려섰다.
- ▲ 운대산장과 북봉.
- 이제부터는 화산에서 제일 소문난 험도, 푸른 용의 등을 닮았다는 창룡령(蒼龍嶺)을 오른다.
- 정말 아차 실수라도 하면 시신은 찾을 길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 모두들 쇠줄을 붙들고 조심스럽게 오르는데 계단을 내려가던 두 아가씨가
- 아예 주저앉아 소리를 내어 엉엉 울음을 터뜨린다.
- 체면을 따질 겨를도 없나 보다.
- 오를 때는 멋모르고 따라 올랐다가 내려서는 길이 천길 낭떠러지로 보여
- 금새 굴러 떨어질 것만 같아 더욱 공포감이 드는 모양이다.
창룡령을 오르며 등골에 땀을 오싹 빼고 나니 오운정이다. - 이제는 내가 바라볼 수 있는 시력만큼 멀리 보인다.
- 조금 전에 구름 속에 가린 북봉은 이제는 흰 구름이 산허리를 감고 돌아 운대봉이라는 이름과 잘 어울린다.
- 석도의 기운 생동하는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 석도는 말하기를 ‘그림이라는 것은 인간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의 큰 법이요,
- 산천의 모습과 기운의 정의로운 피어남이요, 예부터 지금까지 천지를 창생하는 기의 조화요,
- 음양기상의 큰 흐름이다.
- 붓과 먹을 빌어 천지만물을 화면으로 옮기면서
- 그 천지만물이 나라고 하는 존재 속에서 생성되고 노닐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다.
- [한국화로 둘러보는 중국 명산] 5 화산
- 저 산 그대로 봉황의 날갯짓이자 용의 승천
38개 암봉으로 승경 이룬 도교 발상지 5대 명봉 답파
- ‘내 명은 내게 있지, 하늘에 있지 않다’
오운정 폐방을 지나 오운봉 빈관에 오르니 피리 부는 짐꾼아저씨가 미소로 반긴다. - 얼굴 표정이 참으로 맑다.
- 바지를 반쯤 걷어 올린 종아리에는 힘든 세월만큼 굵은 힘줄이 튀어 나왔다.
- 육체적 고통을 괴로워하기보다는 이곳의 삶을 즐기는 진정한 도인 같다.
안개 속에 아스라이 비친 노송 너머로 흑백의 서봉(西峰)이 우뚝하니 화산의 정기가 가슴속을 파고든다. - 이렇듯이 산은 일기가 불안정할 때 오르면 위험도 따르지만 예상 못했던 희열을 맛볼 수도 있다.
- ▲ 화산선장(華山仙掌)의 운해.
- 금쇄관으로 조금 올라 쉼터에서 바라본 운해속의 거대한 암봉들은
- 하엽준법을 응용한 만장의 산수화 같아 가슴속 심장은 더욱 세차게 피를 뿜어낸다.
- 보라, 대해의 저 연봉들을. 봉황의 날갯짓이며, 창용의 화려한 승천이니.
- 설경에 더욱 검게 보이는 천년 노송은 손을 들어 이별을 아쉬워하는데,
- 놀란 까마귀는 깊은 계곡이 떠나갈듯 울어댄다.
- 류 경리도 서봉의 웅장한 자태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운해 위의 연봉들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
- 부인 채 경리는 실눈을 뜨고 절경에 흠뻑 취했다.
금쇄관 주위에는 수많은 열쇠꾸러미와 붉은 댕기가 바람에 요란하게 펄럭이고 있다. - 금쇄관에서 조금 더 오르니 지난밤 내린 눈이 제법 많이 쌓여 은백의 세계를 이룬다.
- 산 아래는 도화꽃이 만발하거늘.
십팔담교(十八潭橋)와 진악궁이 있는 서봉으로 가는데 수령 천 년이 된 화산대장군 소나무가 우람하게 버티고 서 있다. - ‘靑杆(청간)’으로 표기되어 있는 1급 보호수다.
- ▲ 계자번신(병아리 날아오르다).
- 화산에서 가장 큰 도관인 서봉 취운궁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상투를 올린 도사를 바라본다.
- 검정 도사복에 상투를 틀어올린 모습에 나이는 알 수 없으나 도사의 얼굴이 참으로 천진스럽고 욕심 없어 보인다.
- 도교에서 머리를 틀어 올리는 이유는 범인의 삶의 방향과 역행해 하늘을 향해 올라가겠다는 의지의 표상이라고 한다.
- 사람이 태어나서 자식 낳고 살다가 늙고 병들어 죽는 과정이 순행(順行)이라면 선도의 수련은
- 여기에 반기를 들고 불사(不死)의 경지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한다.
- 그래서 도가 수행자들은 말하기를,‘아명재아불유천’(我命在我不由天) 즉,
- 내 명은 내게 있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취운궁을 벗어나 서봉 정상 연화봉(2,038m)을 오른다. - 서봉 정상은 넓은 너럭바위로 되어 있어 수많은 시인묵객이 풍류를 즐길 만한 곳이고 좌선하기에도 좋다.
- 바위 위에서 기도를 올리면 기도발이 잘 받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도처는 바위가 있는 산이다.
- 어지럽게 씌인 대형 글씨들은 하나같이 녹색이다.
- 이곳에 서면 위하가 발아래 보인다고 하나 오늘은 심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 너럭바위 중앙 바위틈에는 수령 300년 된 회수송(回首松)이 외로운 도인처럼 서 있다.
- ▲ 남봉에서 바라본 첨봉.
- 구름과 산릉들의 변화무쌍한 조화를 바라보며 남봉으로 향한다.
- 남봉을 오르는 가파른 계단 옆 단애에 선 노송이 동양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주연급 소나무처럼 고풍적이다.
- 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땀을 흠뻑 흘리며 봉일송(捧日松)을 지나 힘들게 계단을 올라 오후 5시가 되어 남봉 정상에 도착했다. - 화산 최고봉 남봉(2,160m)은 기러기가 날아와 앉아 있는 모습이라 하여 낙안봉(落雁峰)이라고도 한다.
- 정상에는 화강암 자연석으로 된 표지석 바로 옆에 어천지(御天池)가 있다.
- 복을 빌며 던져 놓은 돈을 검정도복을 입은 도인이 낚시질하고 있다.
- 도인은 물에 젖은 1원짜리 지폐를 조심스럽게 편다.
- [한국화로 둘러보는 중국 명산] 5 화산
- 저 산 그대로 봉황의 날갯짓이자 용의 승천
38개 암봉으로 승경 이룬 도교 발상지 5대 명봉 답파
- 너무도 아름다워 붓을 꺾고 싶은 풍경 만나
정상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화산의 운기(雲氣)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 이래서 화산은 중국의 수많은 시인과 화가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나 보다.
- 산수화가이자 이론가인 곽희는 여행을 많이 하기로 이름난 사람인데,
- “동양의 산수는 결코 하나의 산, 하나의 사물을 사실에 가깝게 모방하려는 것이 아니고,
- 수많은 산수를 경험하고 미적 관조가 가능한 이상적인 산수로서 창조해내는 것이다.
- 그러므로 예술가는 새로운 산수를 독창적으로 창조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 그저 그대로만 그린다면 지도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 ▲ 창룡령과 서봉.
- 나는 지금 선경에 드는 듯한 심경으로 이토록 아름다운 풍광 앞에서 스스로 도인이 된다.
- 적어도 지금은 붓을 꺾고 싶다. 자연을 화폭에 담는다는 일 자체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내려서서 남천문으로 향했다. 거대한 돌계단을 내려서니 남천문 도관이다. - 문을 들어서니 장공잔도(長空棧道)의 모험적인 사진들이 걸려 있으며
- ‘華山第一險道, 全眞崖’(화산제일험도, 전진애)라고 표기되어 있다.
- 종루 옆 석문을 통과하니 장공잔도가 나온다.
- 나도 모르게 벽에 붙은 쇠고랑을 꼭 붙잡고 있다.
- 엉금엉금 쇠줄을 붙잡고 거인의 불룩 나온 배 같은 암벽을 돈다.
끝이 안보이는 천길 직벽에 커다란 석굴로 된 대조원동(大朝元洞) 도관이 있다. - 촬영을 하려니 도사가 손짓으로 거부한다.
- 동봉으로 오르는 길은 울창한 송림 숲길이다.
- ▲ 백운봉과 운해.
- 사색하는 마음으로 숲길을 조금 걸으니 동봉빈관 현판이 보이는 바로 아래 360년이 되었다는 화산 영객송이 반긴다.
- 황산의 1,200년 되었다는 영객송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 자태와 기세가 당당하며 너럭바위에 조망 좋은 곳에서 신선들의 벗이 될 법도 하다.
- 이곳에서 바라본 영객송과 어우러진 남천문의 풍광은 한 폭의 그림이다.
동봉 정상(朝陽峰ㆍ2,100m)에 올라 ‘계자번신(鷄子 身)’의 기정(棋亭)을 바라본다. - 주위에 기석선경이 얼마나 웅위로우면 저 높은 봉마저 병아리가 날아오르는 모습에 비유하였을까. 그
- 곳에서 신선들의 바둑 두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저 암봉 위 정자에서 북송 초기에 120년을 살았다는 수공(睡功)으로 유명한 진희이(陳希夷)와
- 송나라 태조인 조광윤이 내기바둑을 두었다고 한다. 진희이가 그 바둑에서 이긴 댓가로 화산은
- 정부로부터 세금을 면제 받을 수 있었다.
- 이렇게 세금을 면제 받으면서 화산은 도교만의 성지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 ▲ 서봉을 오르며.
- 이후 화산은 중국 북파의 중심지가 되었다.
- 지금도 매년 화산바둑대회를 열고 있으며 조훈현 9단과, 김용(金庸·염황배 바둑대회 창시자)도 화산에 올라
- 네워이핑 9단과 대결한 적이 있다고 한다.
스케치를 마치고 직벽 철난간을 붙들고 운제를 내려서서 중봉으로, - 또다시 중봉에서 금쇄관을 거쳐 운대산장에 도착하니 사방이 어두워졌다.
- 화산의 ‘秀而雄’(수이웅·수려하고 웅장함)과 ‘雲捲天睛’(운권천정·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맑게 개임),
- 그리고 강한 원기(元氣)를 10년 우정의 지극한 마음들과 함께 온몸에 채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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