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
지명 |
총유역면적 2만 3860㎢, 본류 길이 525.15㎞ |
강원도 태백시 |
지리/자연지리 |
요약 강원도 태백시 함백산(咸白山, 1,573m)에서 발원하여 영남지방의 중앙저지(中央低地)를 통하여 남해로 흘러드는 강.
요약문
낙동강은 강원도 태백시 함백산에서 발원하여 영남지방의 중앙저지를 통해 남해로 흘러드는 강이다. 본류의 길이는 525.15㎞로, 남한에서는 제일 긴 강이며 북한을 포함하면 압록강 다음으로 길다. 총유역면적은 2만 3860㎢로 남한 면적의 4분의 1, 영남 면적의 4분의 3에 해당한다. 낙동이란 명칭은 가락의 동쪽이라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가야와 신라 천년 동안의 민족의 애환과 정서가 서려 있고, 임진왜란과 6·25전쟁의 비극을 간직하고 있는 강이다. 오늘날은 특히 우리나라 근대화와 산업화의 동맥으로서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개설
개 관
본류의 길이 525.15㎞. 남한에서는 제일 긴 강이며, 북한을 포함하면 압록강 다음으로 길다. 총유역면적은 2만 3860㎢로 남한면적의 4분의 1, 영남면적의 4분의 3에 해당한다. 함백산에서 발원한 본류는 남류하다가 안동 부근에 이르러 반변천(半邊川, 116.1㎞)을 비롯한 여러 지류와 합류, 서쪽으로 흐르다가 함창과 점촌 부근에서 내성천(乃城川, 107.1㎞)과 영강(穎江, 69.3㎞)을 합류한 뒤 다시 남류한다.
이 유로(流路)에서 상주와 선산에 이르러 위천(渭川, 117.5㎞)과 감천(甘川, 76.6㎞)을 합하고 다시 대구광역시 부근에서 금호강(琴湖江, 118.4㎞)과 합류한다. 경상남도에 접어들면서 황강(黃江, 116.9㎞)과 남강(南江, 193.7㎞)을 합한 뒤 동류하다가, 삼랑진 부근에서 밀양강(密陽江, 101.0㎞)을 합친 뒤 남쪽으로 유로를 전환하여 부산광역시 서쪽에서 바다로 흘러든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낙수(洛水)로 표기되어 있으며 『택리지』에는 낙동강으로 되어 있다. 본래 낙동이란 가락의 동쪽이라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영남지방의 거의 전역을 휘돌아 남해로 들어가는 낙동강은 가야와 신라 천년간의 민족의 애환과 정서가 서려 있고, 임진왜란과 6·25전쟁의 비극을 간직하고 있으며, 오랜 세월 동안 영남인들의 삶의 젖줄이 되어왔다.
오늘날은 특히 우리 나라의 근대화와 산업화의 동맥으로서 낙동강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자연환경
유역의 자연
본류의 주방향은 남북이나 두 구간에서는 지질구조의 지배를 받아 동서 방향으로 흐른다. 즉, 안동 부근에서 점촌까지는 안동 단층곡(斷層谷)의 지배를 받아 서쪽으로 흐르고, 점촌 부근에서는 변성암지대와 중생대 퇴적암의 지질경계를 따라 남류하며, 남강의 하류지점에서부터는 동서구조선(東西構造線)의 지배를 받아 다시 동쪽으로 흐른다.
부산 서쪽에 이르러 언양 단층선의 남쪽 연장선을 따라 남류하여 바다로 흘러든다. 낙동강은 경사도가 극히 완만하여, 하구에서 약 344㎞ 상류에 있는 안동 부근도 하상고도(河床高度)가 90m에 불과하다.
하상의 평균경사는 1만분의 17로서 압록강보다 완만하다. 전 유로 가운데 가장 경사가 급한 곳은 태백산지중의 유로로 경사도가 1만분의 46에 이르며, 네 곳에 경사의 천이점(遷移點:경사가 급변하는 지점)이 있다.
그러나 태백산지를 지나 경상누층군(慶尙累層群)의 퇴적암지대로 들어서면 하상의 경사는 1만분의 3 정도로 완만해진다. 이에 따라 중류나 하류는 평형상태에 달하고 흐름이 완만해지며 사행유로(蛇行流路)를 취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마지막 160㎞ 구간에서의 경사는 1만분의 1 정도로 극히 완만하다. 이렇게 유로의 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에 과거에는 안동까지 배가 올라갈 수 있어서, 낙동강은 영남지방의 내륙수로교통의 동맥이 되었다.
하안에 발달한 하단(下湍)·구포·삼랑진·수산(守山)·남지(南旨)·율지(栗旨)·현풍·왜관·낙동·풍산·안동 등은 과거의 나루터취락이거나 선착장들이었다.
낙동강은 구릉성의 저산성산지(低山性山地)를 흐르기 때문에 상류에서 왜관까지는 분지성평야나 소규모의 곡저평야(谷底平野)를 이룰 뿐이지만 하류 쪽으로는 자연제방과 배후습지 등 범람원의 경관이 곳곳에 나타난다.
특히 고령 부근부터 삼랑진까지에는 자연제방 후방에 배후습지성 소택지(沼澤地)가 무수히 분포하는데, 용호(龍湖)·우포(牛浦)·사몰포(蛇沒浦)·춘산호(春山湖)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대개 소지류가 본류에 합류하기 수킬로미터 전에 나타난다. 이것은 후빙기(後氷期) 해면상승으로 지류들이 침수된 뒤 본류의 자연제방이 막았기 때문이다. 하류인 삼랑진에서 물금(勿禁) 사이의 약 19㎞ 구간은 홍수 때 강물의 소통이 잘 되지 않는 협곡(峽谷)을 이루고 있어 남강댐과 안동댐이 건설되기 전에는 범람이 심하였다.
낙동강의 하구에는 삼각주(三角洲)가 발달하여 우리 나라 최대의 충적평야인 김해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양산협곡을 벗어난 본류는 구포의 상류쪽 2㎞ 지점에서 2대 분류로 갈라지며, 이들 분류는 다시 2차적인 분류로 갈라진다. 갈라진 분류는 하류에서 다시 만나면서 대저도(大渚島)·맥도(麥島)·일웅도(日雄島) 등의 하중도(河中島)를 형성한다.
이 삼각주는 전체적으로 동서 16㎞, 남북 18㎞의 대충적지를 이룬다. 20세기 이후에는 홍수방지와 삼각주개발을 위하여 인공제방을 많이 축조하였으므로, 수향(水鄕)과 같은 경관이 나타난다. 최근에는 염해(鹽害)의 방지와 용수공급을 목적으로 하구에 거대한 하구언(河口堰)을 건설하였다(1987년 11월 완공).
낙동강 유역은 서쪽과 북쪽은 소백산맥, 동쪽은 태백산맥으로 막혀 있고 남쪽은 남해에 열려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분지상(盆地狀)을 이루며, 여기에 낙동강이 북에서 남으로 종관한다.
유역 내에는 기류의 유입 방향, 지형, 해안과의 거리 등에 따라 기후의 지역차가 나타나지만, 전체적으로는 내륙적 분지성 기후의 특성이 현저하다.
연평균기온은 12∼14℃이며, 최한월(最寒月)인 1월 평균기온은 -3.0∼2.2℃, 최난월(最暖月)인 8월은 25∼26℃가 되어, 겨울이 여름보다 지역차가 크다. 특히 전형적인 내륙분지인 대구는 우리 나라의 극서지(極暑地)로서 일최고기온이 40℃를 넘는 때도 있다. 그러나 하구 주변의 남해안지역은 겨울이 비교적 온화한 해양성기후의 특성을 가진다.
강수량의 분포는 지형과 기류의 방향, 또 온대성 저기압이나 태풍 등의 통과 위치에 따라 지역적인 차가 크다. 연강수량의 분포를 보면, 대구분지를 중심으로 하는 내륙지역은 소백산맥·태백산맥의 우음작용(雨蔭作用)으로 인하여 900㎜ 이하의 과우지역을 이루는 데 반하여, 하류 유역으로 갈수록 여름 남서기류의 바람받이지역에 해당하고, 또 남해해상을 빈번히 통과하는 온대성 저기압이나 태풍으로 인하여 1,400㎜ 이상의 다우지를 이룬다.
계절적으로는 동계에 강설량이 적어 우리 나라의 과설지역(寡雪地域)이 되고, 하계에는 전선이나 태풍의 통과로 인한 집중호우가 빈번하여 매년 범람과 침수의 피해가 크다. 일조율과 증발량의 분포를 보면, 대구를 중심으로 한 내륙분지지역이 높고 하류지역이나 주변 고산지역이 비교적 낮다. 최근 안동댐의 건설로 안동지역에 안개일수가 증가하고 있다.
낙동강 유역의 주요 식물상을 보면 중류·상류 유역은 남부난온대낙엽·활엽수림대, 하류유역은 조엽수림대(照葉樹林帶)에 속한다. 전자는 주로 온대성 식물과 만주계식물(滿洲系植物) 및 한국고유식물이 혼재하며, 극히 일부 난대성 식물이 포함되어 있다.
대표적인 온대성 수종으로는 잣나무·육송·구상나무·노간주나무 등의 침엽수와 굴피나무·박달나무·떡갈나무·상수리나무·느티나무 등의 활엽수가 있고, 만주계식물은 전나무·분비나무·사시나무·가래나무(산추자)·피나무·물푸레나무 등이 있다. 한국고유식물로는 떡졸참나무·참조팝나무·떡갈매나무·철쭉나무·개나리 등이 있다. 최근 낙동강 하류의 식물조사에 의하면 총 151과 910종에 달한다.
이 가운데 낙동강 하류의 명지(鳴旨) 지역에서만 74과 366종의 식물이 조사되었는데, 이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해안식물로는 갯줄고사리·갯메꽃·보리사초·좀보리사초·왕보리사초·달뿌리풀·모새달·갈대·갯잔디·갯갓사초·갯논쟁이·나문재·수송나물·갯솔나물·갯질경이·갯씀바귀 등이 있다.
이 지역에 많은 식물이 분포하는 원인은 내륙성 식물이 이 강물에 의하여 운반되고, 또 대한해협의 조류(潮流)나 철새에 의하여 일본·시베리아 등 해외의 식물이 운반되어 왔기 때문이다.
동물상(動物相)으로 유명한 것은 하구 일대의 철새떼이다. 낙동강하구의 을숙도(乙淑島)에서 사자도·십리 등과의 사이에 펼쳐진 갈대밭과 모래톱은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로, 196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하구 일대는 다른 하천과 달리 넓은 삼각주를 형성하고 있는데다 수심이 얕고 해수와 담수가 교차하기 때문에 각종 동·식물성 플랑크톤, 연체동물, 갑각류, 소형 어류, 그 밖에 여러 해조류가 번식하고 있어 조류의 먹이가 풍부한 곳이다.
또 겨울이 비교적 온화하고 여름은 시원한 해양성기후에 속하므로 겨울철새의 월동지, 여름철새의 번식지로 매우 적합한 지역이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조류는 약 120종으로, 이 가운데 사철을 두고 머무는 텃새[留鳥]가 10여 종이고 나머지 110여 종은 철새[候鳥]들이다.
텃새로는 참새·꿩·때까치·매비둘기·딱새·노란턱뫼새·붉은머리오목눈이 등이 손꼽힌다. 이들 텃새 중 겨울에는 주변의 갈대밭에서 머물다가 여름에는 산에서 서식하는 종류도 있다.
겨울철에 오는 새는 10월 상순부터 3월 중순까지 머무는데 백조와 오리종류로, 청둥오리·흑부리오리·쇠오리·고방오리·흰쭉지·쇠기러기·큰기러기·두루미·저어새·느시·아비·농병아리 등이 있다.
여름철새는 대체로 4월부터 9월 사이에 볼 수 있는 새들로, 백로·황새·왜가리·듬불해오라기·게게비·흰물떼새·뜸부기·쇠제비갈매기·물총새 등이다. 이 밖에 우리 나라를 통과하면서 봄·가을 동안 잠깐씩 머무르다 가는 나그네새로서 마도요·뒷부리도요·노랑발도요·좀도요 등의 도요새무리와 왕눈물떼새·검은머리물떼새·게꿩 등이 있다.
전세계적으로 완전 멸종되어 현재 3점의 표본으로 남아 있는 원앙이사촌 두 마리가 우리 나라에서 포획된 것인데, 그 가운데 한 마리는 1913년 12월 낙동강하구에서 잡힌 것이다. 그러나 1970년을 전후하여 이들 철새류는 점차 감소하고 있다.
중류와 상류나 부산 주변의 공업단지에서 배출되는 여러 가지 오염물질과 농업 및 생활폐수의 유입, 인위적인 남획 등으로 철새수가 급격히 감소하는데다, 을숙도를 지나는 하구언의 건설로 철새가 정박할 터전이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와 문화유적
역사와 문화유적
낙동강 유역에는 역사시대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유적이 곳곳에 산재하여 있다.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면 중동(中東) 일대는 특히 영남지방의 대표적인 구석기시대 유적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구미산업단지가 건너다보이는 낙동강 동편의 중동 일대에서 구석기인들이 사용하였던 돌망치 등 석기가 발굴되었다. 이들 석기는 구석기시대 중기의 것으로 보인다.
낙동강 유역의 선사문화는 신석기시대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대체로 한반도의 신석기문화가 시베리아를 거쳐 두만강으로부터 들어왔다면 영남지방의 신석기문화는 낙동강 유역에서 비롯되었다. 한반도의 신석기문화로 대표되는 빗살무늬토기는 압록강·대동강·한강·낙동강·서남도서(西南島嶼)·두만강 등의 여섯 군으로 나누어진다.
낙동강 유역에서는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서생(西生)과 부산 영도의 동삼동과 조도(朝島:아치섬)·다대포(多大浦) 등지의 패총이 신석기시대 유물의 출토지이다.
역사시대로 접어들면서 낙동강 유역의 영남지방은 특히 청동기와 초기 철기문화의 꽃을 피운 곳이다. 이 시대의 유적이 집중되어 있는 곳은 대구·영천·경주 일대로, 이곳은 대동강 유역을 제외하면 가장 대표적인 지역이다.
철기문화와 병행하여 삼한이 형성되는데, 대체로 마한이 경기·충청·전라도지방을, 진한이 낙동강 동쪽의 경상도지방을, 그리고 변한이 낙동강 서쪽의 경상도지방을 각각 차지하였다.
따라서 삼한 중 진한과 변한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역사의 터전을 잡은 것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진·변한조에 따르면 3세기 중엽에 진한과 변한에는 모두 24개의 국가가 있었다.
사실 1세기 무렵부터 낙동강 유역의 변한과 진한지역은 상당한 수준의 철기시대를 맞게 된다. 울산·동래지방의 제철유지(製鐵遺址) 등이 철기시대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또 김해 등지의 김해식토기와 사천·진주·고성·밀양·동래 등지의 패총·지석묘·옹관묘 등에서 출토되는 석검·철검 기타 철제유물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김해패총 등에서는 탄화된 쌀알이 나와 이미 저습한 충적평야에서 벼농사가 시작되었음을 말하여 준다. 특히 낙동강 하류지역은 남쪽 바다를 끼고 있어 해륙교통의 요충지였고, 또한 비옥한 충적평야와 이어져 있어 농경생활이 발달하였다.
이 같은 여건에 힘입어 낙동강 연안을 중심으로 가야와 신라문화가 발달하였다. 낙동강 연안의 경상남북도 일대에서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이는 삼국시대 이전의 유적은 고분유적이다. 현재의 행정구역상으로 보아 각 군마다 몇 군데씩 군집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며, 특히 경주·대구·고령·의성·상주 등지에 무수한 고분이 분포되어 있다.
고분 중에서도 적석목곽분은 경주시내에 집중되어 있고, 간혹 유사한 것으로서 대구 구암동과 의성의 탑리에 유존한다. 특히 3면의 벽과 천장을 먼저 쌓고 관을 측면 입구로 넣은 뒤, 입구에서부터 돌을 쌓아 벽으로 만든 횡혈식(橫穴式)이 낙동강변에 간간이 분포하고 있다.
고구려나 백제의 고분은 그 구조가 석실로 되어 있어 일찍부터 도굴당하기 쉬웠으나,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경상북도지방의 경우는 묘제가 도굴하기 어려운 적석목곽분이고, 또 냇돌벽으로 된 석곽이어서 많은 유물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4세기까지 낙동강을 경계로 한 사로국은 강 서쪽의 대가야 등 비교적 큰 국가와 대항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6세기 중엽인 560년대를 전후하여 낙동강 유역은 신라의 핵심 부분이 되어 이를 바탕으로 1세기 뒤에는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삼국통일로 커다란 영토를 지배하게 된 신라는 685년(신문왕 5)에 새로운 지방행정구역으로 9주 5소경제도를 채택하였다.
9주 가운데 옛 신라 및 가야의 땅인 낙동강유역을 사벌주(沙伐州:지금의 상주)·삽량주(歃良州:지금의 양산)·강주(康州:지금의 진주)의 3주로 나누었다. 낙동강 유역의 경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나라가 신라인 데 반하여, 이보다 앞서 순전히 낙동강 하류에서 이 강을 중심으로 산재하여 있던 수십 개의 부족국가들이 이룩한 나라가 가야국이다.
가야는 42(?)∼562년 사이에 융성하였던 나라로 금관가야(지금의 김해)·아라가야(지금의 함안)·고령가야(지금의 진주)·대가야(지금의 고령)·성산가야(지금의 성주)·소가야(지금의 고성) 등 6개 국으로 분립되어 있었다. 이 가야국의 건국과 관련된 유적인 구지봉(龜旨峰)과 수로왕릉이 김해시에 있고, 수로왕비인 허왕후(許王后)가 아유타국에서 돌배를 타고 육지에 처음 상륙하였다는 곳이 낙동강 하구인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있다.
낙동강 연안의 주요 사적지를 상류로부터 헤아려 본다면, 제일 먼저 부석사(浮石寺)와 소수서원(紹修書院)이 손꼽힌다. 소수서원은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 있는 1963년 지정된 사적으로 우리 나라에서 맨 처음 세워진 서원이다.
소수서원은 1543년(중종 38)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周世鵬)이 주자학의 전래자인 안향(安珦)의 학풍을 계승하기 위하여, 사당을 짓고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라고 부른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1550년(명종 5) 이곳 군수로 부임하여온 이황(李滉)의 건의에 따라 명종이 ‘소수서원’으로 사액하였다.
이 서원에는 안향 초상(국보, 1962년 지정)·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보물, 1968년 지정)와 ‘소수서원’이라는 사액현판이 보관되어 있다. 부석사는 영주시의 소수서원보다 북쪽에 있는 사찰로 676년(문무왕 16)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의상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화엄종(華嚴宗)을 열었다. 이곳의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1962년 지정)은 고려 때 건조된 건물로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다. 또한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1962년 지정)·부석사 소조여래좌상(국보, 1962년 지정)·부석사 조사당(국보, 1962년 지정)·부석사 조사당벽화(국보, 1962년 지정) 등 모두 5개의 국보가 보존되어 있다.
낙동강을 따라서 안동쪽으로 가까이 가면 조선 유학의 거봉 이황이 그의 고향인 안동시 도산면낙동강변에 세운 도산서원(陶山書院)이 있다.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는 하회탈(국보, 1964년 지정)이 전해 오고 있는데, 이 곳 동민들이 음력 정월 2∼15일 사이 동제(洞祭)를 지낼 때 사용하던 탈이다.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에는 직지사(直指寺)가 있고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에는 고려 때 일연(一然)이 『삼국유사』를 쓴 인각사(麟角寺)가 있다.
인각사에는 일연이 열반한 지 3년 뒤인 1295년(충렬왕 21) 그의 문인 법진(法珍)이 세운 기념비가 있다. 높이 190㎝, 너비 1m의 크기였는데 파손되어 높이 120㎝로 줄어들었다. 충렬왕은 일연에게 보각(普覺)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을 정조탑(靜照塔)이라 하였다.
낙동강이 발 아래 내려다보이는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에는 도리사(桃李寺)가 있다. 도리사는 고구려에서 신라로 넘어온 아도(阿道)가 맨 먼저 자리잡고 살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또 선산 금오산 기슭에는 고려왕조의 신하로서 조선의 신하가 되기를 끝내 뿌리치고 은거하며 살았던 길재(吉再)를 기리어 지은 채미정(採薇亭)이 있다.
경상남도로 접어들면서 황강 상류에 합천 해인사가 있고, 그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에서 흘러내리는 황강이 낙동강 본류와 합류하는 지점의 삼각주가 밤마리라고도 불리는 율지리(栗旨里)이다.
이 곳에서 오광대(五廣大)가 시작되어 「진주오광대」·「통영오광대」·「고성오광대」·「가산오광대」로 전파되었고, 낙동강의 동편인 부산으로 전래되어서는 「동래야류 東萊野遊」와 「수영야류 水營野遊」로 연희되었다.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에는 신라진흥왕이 중신들을 거느리고 국내를 순수하며 민심을 보살피고, 그곳에 국방요새를 설치하면서 세운 기념비에 해당하는 순수비가 있다. 국내에 있는 4개의 순수비 가운데 창녕의 순수비는 너비와 높이가 비슷한 167㎝, 두께 30㎝ 크기에 모두 27행이며, 각 행마다 18∼27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561년(진흥왕 22) 2월 1일에 세웠다는 연대가 적혀 있어 사료적 가치가 가장 높은 것으로 지적된다.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변에는 진주성과 촉석루(矗石樓)가 있다. 진주성은 처음에는 백제의 거열성(居烈城)이 있었다고 하나 정확한 축성연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곳은 예로부터 왜구를 방비하기 위한 기지로 사용되어 왔으며, 임진왜란 때는 김시민(金時敏)이 왜군을 크게 무찔러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1593년 6월 왜군의 재침시에는 군관민(軍官民) 6만여 명이 최후까지 항쟁하다가 장렬한 최후를 마쳤으며, 이 무렵 논개(論介)는 적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하였다.
당시 도요토미(豐臣秀吉)의 15만 대군이 부산항으로 몰려왔을 때 죽음으로 저항하던 곳이 동래·부산지방의 전투였다. 파죽지세로 밀려드는 왜적에 대항한 주민들 중에는 이름도 성도 모르는 부녀자와 관기(官妓)들도 상당수에 달하였다.
이 동래성 항전을 기리기 위하여,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이 순직한 지 13년 뒤인 1605년(선조 38)에 동래부사로 부임한 윤훤(尹暄)이 송공사(宋公祠)를 건립하였다.
그 뒤 인조가 충렬사(忠烈祠)로 사액하였다. 이 밖에도 밀양시의 영남루(嶺南樓)와 조선유학자 김종직(金宗直)의 예림서원(禮林書院), 그리고 수영성(水營城) 등 많은 유적이 곳곳에 산재하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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