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순례 -그 위대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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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같은 금강(錦江)의 유장한 물길도 기실 그 시원(始源)은 ‘뜬봉샘’이라는 작은 옹달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사철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어느새 첫 실개천인 ‘강태등골’을 만나고 다시 길을 재촉해 ‘수분천’을 지난 후 여러 지천과 합류하면서 비로소 금강으로 흘러듭니다. 그 뒤로도 물길은 오랫동안 이어져 옛 백제 땅을 굽이굽이 돌다가 마침내 서해 군산 앞바다의 품에 안기고서야 천리 머나 먼 대장정을 마칩니다.
이렇게 물은 반도의 산맥을 따라 수만 년을 굽이돌아 흐르면서 물고기와 새들의 고향이 되어주었고, 산과 숲과 들의 심장에도 말없이 스며가서 그 안의 생명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어왔습니다. 우리 민족은 언제나 그 주변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며 풍요로운 물의 축복 속에 어우러지고 부대끼고 울고 웃으면서 강물 같이 유장한 이야기를 써왔습니다.
반면에 세계 최대 습지 브라질의 판타날과 아시아의 대평원 몽골 초원은 우리에 비해 훨씬 더 절박합니다. 그들의 삶은 우기가 만드는 초원과 황량한 건기의 사막으로 양분됩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놓이는 건기가 되면 동물들은 모래바람을 뚫고 물웅덩이와 초지를 찾아 필사의 대이동을 시작합니다. 판타날의 목동 판타니에로도, 몽골의 유목민들도 구름과 비와 강과 호수로 변모하는 물의 순환, 그 위대한 여정을 따라 질서에 순응하며 고난의 순례길을 떠납니다.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한다[知者樂水]’고 공자가 말한 것도 지혜로운 자의 삶이 물의 속성을 닮았으며, 늘 물에게서 지혜를 배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물은 순리를 따르는 합리성과 아래로 내려가는 겸손함과 밤낮을 쉬지 않는 근면성과 먼저 가려고 다투지 않는 배려심과 채운 뒤에 흐르는 여유로움이 있습니다. 또한 생명을 기르지만 자랑하지 않는 덕스러움과 부딪쳐도 화내지 않는 인내심과 떨어질 때 주저하지 않는 용맹과 중도에 꺾이지 않고 끝내 목적지에 도달하는 강인함을 지녔습니다. 노자가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한 것도 이러한 무위(無爲)의 자연스러움을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이렇게 늘 물처럼 살라고 이르는데, 자유로이 흘러가라 하는데, 공존이 아니라 정복을 택한 자본은 어느새 보(洑)의 수문 안에 강물을 가두고 생명이 회귀하는 길마저 끊어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 마음 속 시원의 강물도 흐름을 멈추고 온통 검푸른 녹조로 뒤덮인 지 오래입니다. 이제 더 이상 눈부신 햇발 아래 빗살치는 유년의 꿈이 자라던 강은 없습니다.
어쩌다가 정말 우리는, 달빛 머금은 계곡 물소리를 실컷 들으며 가슴으로 쏟아지는 별을 헤다 잠들던 여행이, 아이들의 또 다른 삶의 여정을 밝히는 영혼의 안식이 되게 하지 못한 채, 매일매일 들이치는 차디찬 일상의 순서와 희박한 생존의 굴레 속을 반복 질주하며, 영혼을 잠식해오는 메마른 불안과 두려움에 뒤척이거나 혹은 허허로운 갈망에 목말라하면서 끊임없는 탐닉과 순간의 욕망들을 소비하고만 있을까요?
그리하여 결국 영혼이 고갈되어버린 우리에게 이제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삶도 물처럼 흘러가야 한다는 사실을 시리게 자각하는 일입니다. 길을 떠난 순례자들이 배낭을 줄이려고 짐을 버리듯, 등이 휠 것 같은 생존의 무게 가운데 덜 필요한 것부터 하나씩 내려놓는 일입니다. 결국 삶은 ‘만나고 사랑하고 비우고 작별해가는 여정’임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내디딜 수 있는 오늘 이 작은 발걸음에 감사하며 햇살에 몸을 맡긴 채 충만한 풍경과 계절 속을 길동무와 함께 걷다가 마침내 다다른 바다에서 황혼을 붉게 물들이는 장엄한 일몰을 마주한 후, 나도 모르게 시원의 샘물 같은 벅찬 눈물이 솟아오를 때, 문득 ‘살아 있는 나날은 모두 순례’임을 깨닫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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