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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명구

[고전명구]술에 취해

<술에 취해>

복사꽃 붉은 빗속 새들은 재잘재잘,
집을 두른 푸른 산엔 여기저기 아지랑이,
이마 한 편 검은 사모 귀찮아 그냥 둔 채,
꽃 핀 언덕 취해 누워 강남을 꿈꾸노라.

桃花紅雨鳥喃喃 도화홍우조남남
繞屋靑山閒翠嵐 요옥청산간취람
一頂烏紗慵不整 일정오사용부정
醉眠花塢夢江南 취면화오몽강남

 

- 정지상(鄭知常, 미상~1135), 『동문선(東文選)』 제19권, 「칠언절구(七言絶句)」. <술에 취해[醉後]>

   사방으로 집을 둘러 있는 푸른 산에서는 아른아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붉은 복숭아 꽃잎이 비처럼 흩날리는 속에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려오는 봄의 어느 날. 정지상은 넘치는 봄의 흥취 속에 거나하게 술을 마신 채 흐드러지게 꽃이 피어 있는 언덕에 누워 단잠을 이룬다. 세상의 굴레나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토록 가고 싶었던 강남을 꿈꾸면서.


   이 시는 남호(南湖) 정지상의 대표작 중 하나인 <술에 취해[醉後]>라는 시로, 이전부터 우리 선인들에 의해 수없이 거론되었던 작품이다. 이 시에 대해 김종직은 『청구풍아』에서 “곱디고운 모습이 너무 심하다[艶麗太甚].”라고 했고, 최자는 『보한집』에서 “이 시는 그림으로 여겨 볼 만한 시이다[此詩可作圖畫看也].”라고 했으며, 신흠은 「청창연담」에서 “놀랍도록 빼어나고 시어가 아름다워 우리나라의 시 중에서 비교할 만한 시가 드물다[警拔藻麗, 我東之詩, 鮮有其比.].”라고 했을 정도로 인정받았던 시이다.


   선인들의 평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시는 봄날의 그림 같은 풍경과 그 풍경 속에서 술에 취한 시인의 행위를 몽환적으로 그려낸 시이다. 비처럼 흩날려 떨어지는 연분홍 복사꽃 사이로 들려오는 지저귀는 새소리와 사방을 둘러싼 싱그러운 초록빛의 산 그리고 그 산에서 아른아른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는 시인이 있는 곳을 환상의 공간으로 만든다. 굳이 이 공간을 분석하여 붉은색과 푸른색의 색감 대비, 인간이 만들어 내는 인위적인 소리와 행위를 배제하고 새소리와 흩날리는 꽃잎의 움직임만을 강조하는 인위와 자연, 유성(有聲)과 무성(無聲), 정태(靜態)와 동태(動態)의 대조로 이루어진 환상의 공간이라고 설명하지 않더라도 초봄 흩날리는 벚꽃 아래에 한 번이라도 서 있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공간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떠올릴 수 있다.




   이런 공간에서 정지상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흥을 풀어낸다. 거나하게 취해 흐드러지게 꽃이 피어 있는 언덕에 누워 자는 것으로 말이다. 정지상이 이 공간에서 거나하게 술을 마신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정지상의 모습을 언제나 위태로운 자신의 정치적 상황과 너무나 대조되는 풍경에서 북받치는 마음을 견디지 못해서라고 볼 필요까지는 없을 듯하다. 그보다는 그저 환상적인 봄 풍경에 느꺼워진 마음을 견디지 못해서라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것은 정지상이 이 공간에서 관리를 상징하는 오사모조차 멋대로 팽개친 채 거나하게 술 마시고 흐드러진 꽃 속에 누워 자며 강남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오사모를 내팽개쳐 두는 것은 세상의 시선과 권위에서의 탈피를 뜻하고, 강남을 꿈꾼다는 것은 이상향의 추구를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강남은 원래 양자강의 남쪽을 말하는 것이었으나 이곳이 토지가 넓고 비옥하며 물산이 풍부하고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어서, 이전부터 낙원 혹은 이상향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이 시에서도 강남은 특정한 지역을 의미하기보다 정지상이 꿈꾸는 세상, 살고 싶고 가고 싶은 곳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을 것이다.




   이 시를 읽다 보면 정지상이 마냥 부러워진다. 그가 이런 풍경 속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무엇 때문에 술을 마셨는지, 꿈꾸는 강남은 어떤 곳인지 모르지만, 굳이 알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안다고 하더라도 부러운 마음에는 어떤 변화도 없을 것인데, 그것은 이런 풍경 속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술에 취해 자면서 자신이 그리는 강남을 꿈꾸는 것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 되어서도 여전히 쌓인 일에 쫓기며 살고, 세상의 시끄러움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돌아볼 때마다 이 시의 정지상이 자꾸 부러워진다.

글쓴이:윤재환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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