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삼짇날에 온갖 꽃들이 새로 피니 자각의 그대 집이 봄과 잘 어울리겠지 하늘거리는 아지랑이는 도성 거리에 많겠고 길게 이어져 있는 방초는 누구에게 주려나 만리 펼쳐진 풍광에 괜스레 고개 돌릴 뿐 해 넘도록 약물은 몸에서 떠나지 않는다오 남쪽 성곽에서 옛날 놀던 일 온통 꿈만 같아 백발로 저문 강가에서 읊조리며 바라보노라 三月三日雜花新 삼월삼일잡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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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삼짇날은 음력 3월 3일로, 올해는 4월 11일이다.
지금은 사라진 명절이지만, 옛날에는 들판에 나가 꽃놀이를 하고 새로 돋은 풀을 밟으면서 봄을 즐겼으며, 진달래꽃을 넣어 만든 화전(花煎)을 먹었다고 한다. 이때는 날씨가 맑고 화창한 데다 온갖 꽃들이 서로 아름다움을 경쟁하듯 어여쁜 자태를 뽐내기 때문에, 집에 있지 못하고 모두 나와 봄놀이를 즐겼다.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는 〈여인행(麗人行)〉 시에서 “삼월 삼짇날 날씨가 화창하여, 장안의 물가에 미인들 많이도 놀러 나왔네. [三月三日天氣新, 長安水邊多麗人.]”라고 읊었다. 멋진 풍광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지만, 젊은 여인들이 특히 좋아하기 때문에 두보는 여인(麗人), 즉 미인을 시의 제목으로 삼았다. 이렇듯 삼월 삼짇날은 누구나 나와서 봄을 즐기는 때이건만,
시의 작자인 신광수(申光洙)는 봄을 즐기지 못하고 예전 즐거웠던 때를 회상하고 있다. 수신자인 권중범(權仲範)은 신광수보다 2살 연상인 권사언(權師彦)이다. 그의 집은 남산(南山)에 있었는데, 2구의 ‘자각(紫閣)’이 곧 ‘자각봉(紫閣峯)’인 남산이다. 이때 남산에서 보는 서울의 풍경은 무척 아름다웠을 것이다. 도성 거리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들판에는 향기로운 풀이 파릇파릇 돋아나며 산에는 꽃들이 만발한, 그야말로 별천지(別天地)였으리라. 작자는 예전 벗들과 함께 삼월 삼짇날 권사언의 집에서 봄놀이를 실컷 즐겼었다. 그런데 이제는 병이 들어 약물을 끼고 있는 신세라 남산에는 가지 못한 채, 그 예전을 추억하며 강가에서 남산 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 시의 두 번째 수에서도 작자는 “당시 자각 앞에서 시와 술로 즐겼었는데……
지금은 그저 병이 많아 서호 가에 있으니, 쓸쓸하여라 봄빛이 또 일 년이 되었구나.
[詩酒當時紫閣前……秖今多病西湖上, 寂寞春光又一年.]”라고 읊었다. 첫 번째 수와 마찬가지로 예전 즐거웠던 때를 회상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당시’라고 한 그 ‘예전’이 아주 오래전이 아닌 불과 1년 전이라는 것이다. 즉 1년을 전후로 뒤바뀐 몸 상태 때문에, 봄놀이를 즐기지 못한 것이다. 작자의 또 다른 〈삼월 삼짇날[三月三日]〉 시를 보면 “삼월 삼짇날이 병중에 빨리 지나가는데, 빙설이 강에 가득하여 봄기운 애처롭네.…… 문 닫으니 봄 풍경은 온통 부질없는 일이라, 쌀쌀한 날씨에 눈물이 뺨을 적시려 하누나. [三月三日病中催, 氷雪滿江春氣哀.……物色閉門渾漫事, 凄凄時侯欲沾腮.]”라고 하였다. 삼월 삼짇날이 되었는데 작자는 병이 들었고, 특히 이 해는 기온이 매우 낮아 봄이 되었는데도 빙설이 강에 가득한 겨울 날씨를 보였다. 이런 날씨 때문에 한창 꽃이 피어야 할 시기에 꽃이 피지 않아 봄 경치를 구경할 수 없자 예전 추억에 눈물이 난 것이다. 이렇게 작자는 꽃다운 때인 삼월 삼짇날에 병이 들거나 기후가 맞지 않아 제때 즐겨야 할 꽃놀이를 하지 못한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꼭 그 시기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예를 들면, 부모가 살아계셨을 때 부지런히 봉양하는 것이나 아이가 자랄 때 열심히 양육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그 시기에 꼭 하지 않으면 부모가 돌아가시거나 아이가 훌쩍 자란 뒤에 봉양하거나 양육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다. 꽃놀이도 마찬가지다. 올해 즐기지 못하면 내년에 즐기려 해도 병이 들거나 궂은 날씨 또는 다른 일로 못할 수도 있다. 지금 거리나 산에 꽃이 예쁘게 피었다. 잠시 하던 일을 내려놓고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과 꽃놀이를 즐기는 여유를 갖는 것은 어떨까? |
글쓴이 :최이호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