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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心에젖어

초봄에 관한 시 모음

초봄에 관한 시모음 4

이른 봄 /푸름 김선옥

 

긴 잠에서

몸 털고 일어나

옮매였던 가슴 펴고

심호흡 하는 소리

 

쏜살같이

둑방 가르며 지나는 바람

조각난 겨울 밟으며

강물 위로 걸어가고 있다

 

아지랑이 속에서

배시시 눈 뜨고

햇살 퍼지는 가지마다

생명 잉태하고

젖멍울 푸는 산수유

 

임 부르는 콩새

감나무 가지끝에 앉아

깃털을 세운다

 

조춘(早春)   /김희경

 

빈 뜰이 새 빔을 준비하나 봅니다

바람의 기척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지난밤은 참 메마르게 추웠습니다

 

별이 옅어지는 걸 보니

지상의 눈들이 빛을 따가는 시간인가 봅니다

아직 밀리지 않아 용을 쓰는

바람의 수레 뒤에서

힘껏 밀어보고 싶어 좀 더 가벼워지기로 합니다

 

수척한 시간에도

막막한 시간에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각각 다르겠으나

긴 기다림이 벌이 아니라

축복임을 생각하는 시간은

흐린 눈을 비비며 자주 서성이게 합니다

 

바람이 밤새 바빠 보이더니

별을 하나 흘려두고 갔습니다

가지 하나가 낭창낭창 흔들립니다

수선 떨지 않고 바라보기로 합니다

 

아직 무거운 나의 눈이

그를 아프게 할지도 모르니까요

 

 

조춘(早春)  /문태준

 

그대여, 하얀 눈뭉치를 창가 접시 위에 올려놓고 눈뭉치

가 물이 되어 드러눕는 것을 보았습니다

 

눈뭉치는 하얗게 몸을 부수었습니다 스스로 부수면서 반

쯤 허물어진 얼굴을 들어 마지막으로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내게 웅얼웅얼 무어라 말을 했으나 풀어져버렸습니다 나를

가엾게 바라보던 눈초리도 이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한 접시 물로 돌아간 그대를 껴안고 울었습니다 이제 내겐

의지할 것이 아무데도 없습니다 눈뭉치이며 물의 유골인

나와도 이제 헤어지려 합니다

 

 

풋봄  /손진은

 

여린 추위가 남아 있는 캠퍼스

솔숲 옆 아스팔트 길에 들어서다, 어머 저것 좀 봐

생머리를 늘어뜨린 여학생 둘이

이제 갓 눈을 뜬 듯한, 추워서 붉은 목도리를 목에 두른

아기뱀

그 어린 강물 줄기 받으려

새로움을 잃어버린 헐거운 사십대의 사내도 거들어

백지며 책받침을 갖다대는 풍경이라니!

구불텅거리는 그 물은 그걸 타고 흘러내릴 뿐

허릴 붙잡아 보려 해도

혀의 불에 델까 움찔거리는,

오 사랑스럽고 미끄러운 울렁거림이여

결국 손아귀를 빠져나와

저녁 연기처럼 태연히 숲으로 스며드는

그 물줄기 따라가며

어머, 어쿠 어쿠! 정적을 찢으며 뿌려대는

잘 익은 소리들이 대기에다 구멍을 내는지

어떨결에 곁의 벚이며 진달래 같은 것들

몸을 막 열어놓고 꽃들을 터뜨리는 봄날 아침

봄은 그 어린 것을 앞세워서 왔던 것이다

필시 겁과 당황에 잔뜩 움츠렸을 법한 풋봄도

울창한 황홀의 가슴 풀무를 일으킬 줄 알고 있었다

 

첫봄 미용실  /이희은 

 

입김 닦은 거울에 날 비춰보았죠

 

어둠 속에 던져진 구근처럼

빛나던 머릿결은 색을 잃었군요

언제나 기다리겠다던 당신이

밤을 웅크리다가 꽃잎 떨구었으니까요

 

몇 번의 계절이 바뀌었는지

창틀 화분마다 초록의 손가락, 날 부르는 손짓

가윗날 벌어지듯 점점 커지네요

푸석하던 마음에 물기가 돌았죠

 

어깨에 커트보를 두르고

첫봄이 되기로 했어요

가위질 소리, 얼어붙은 심장을 두드리네요

빗살이 머리칼 사이 지나갈 때마다

짧게 더 짧게 자르고

큐티클 녹여 크로커스 꽃을 피워 달라 했죠

죽었던 색, 한 방에 살아나도록 말예요

당신 손길 스치듯 미풍이 지나가고

낯선 나, 축배의 와인처럼 향기로워졌어요

여기는 흑백사진이 환해지는 곳

새치의 감정도 새순처럼 반짝이네요

 

오늘은 새로운 내 청춘의 첫봄,

당신 별자리 보이지 않아도

얼룩진 가운 벗고

랄랄라, 봄의 꽃말을 노래하겠어요

 

 

이른 봄 /김광규

 

초등학생처럼 앳된 얼굴

다리 가느다란 여중생이

유진 상가 의복 수선 코너에서

엉덩이에 짝 달라붙게

청바지를 고쳐 입었다

그리고 무릎이 나올 듯 말 듯

교복 치마를 짧게 줄여 달란다

그렇다

몸이다

마음은 혼자 싹트지 못한다

몸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해마다 변함없이 아름다운

봄꽃들 피어난다

 

이른 봄  /이환규

 

창밖으로 비켜가는 햇살이

따뜻하게 얼굴을 부비는 오후

 

구름한점 없는 맑은 하늘을

두줄로 가르는 비행운

 

파란 하늘에 하얀 물감으로

봄을 그려보고 싶었을까

 

눈돌려 끝을 찾아보아도

구름은 햇살에 부서지고 얇아진다

 

마당 한구석에 패다만 장작더미

비스듬히 기대어 졸고있는 도끼

 

아직은 찬바람에 군불 지핀 아궁이

뜨거운 열기에 놀랬나 보다

 

긴터널에서 뛰쳐 나온 봄

겨울이 그 발목을 부여 잡는다

 

 

겨울 속의 봄  /서금순

 

마른 낙엽 속에서 쏘옥

얼굴을 내밀고

방긋 웃음 짓는

노란 복수초

 

눈 쌓인 비탈길

양지 바른곳에 핀

노란 양지꽃

 

보일 듯 말 듯

작고 여리지만

귀를 쫑긋 세우고

봄을 부르는 보랏빛 광대나물

 

수줍은 새색시를 닮아

순수한 미소 머금은

홍매화, 백매화

 

봄은 남녘에서부터 온다고

꽁꽁 얼음이 언 섣달에도

붉은 연정으로 타오르는 동백꽂

 

모두가 아직은

겨울이라고 말할 때

 

"봄이 오고 있어요 "

속삭이지요

 

 

바닷가에 초봄  /정찬열(鳳岩)

 

절기가 시작되는 입춘이 지나자

소한에 얼었다 흘러내린 성엣장*

남극의 귀를 열어 파도에 밀려온다

 

목련화 개나리 보고 싶음일까?

파도 波濤가 전해주는 주파수에

갈매기 날아들어 사랑놀이하고

긴긴 봄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차고 넘치든 지난날의 만선도

썩어가는 밧줄에 목을 매달고

추억을 한가득 실은 채 저만큼

출렁이는 파도에 몸을 맡긴 채

 

피고 지는 봄소식만

짭조름한 물길에 몸을 맡기고

아득한 꿈속을 더듬질하고 있다.

 

*. 물 위에 떠도는 얼음덩어리

 

이른 봄 아지랑이 /박동수

 

아직

칼끝 같은 차가움 속에서

나른한 봄빛이

남녘 벽 모퉁이에 모여들 때

긴 꼬리 아지랑이는

어디로 가는지

 

가도 가도

끝내 다다를 수없는

안타까움은

나른한 봄 밤새도록

한발자국도

가까워지지 못하던

내 꿈속

내 마음 같네.

 

 

초봄 초심 /최이천

 

이른 봄 첫 마음

개구리 눈 떴을까?

궁금하여 챙기는 모습

이웃사촌이다

 

관심은 연심이 되어

확인해보고 싶고

물어보고 싶어

까치발을 세운다.

 

동구 밖 매화꽃 피웠겠지

개나리 산수유 벚꽃

진달래 지금쯤 꽃눈을

뜨고 있겠지요

 

초봄의 일상은

잠자는 꽃가지 흔들어 깨우고

초심의 일상은

흩어진 마음가짐 다잡게 한다.

 

초심으로 깨어나자

처녀림 같은 시 밭에

초봄 햇볕으로 찾아가

 

단비가 오는 날

장원급제 어사화 쓰고

청초하게 일어나보자

 

초봄 /허연

  

초봄은 우스웠다.

탈탈 털어도 나는 혼자였다.

친구들은 맥 빠진 자전거 바퀴처럼

거처에서 버려지기 시작했고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어젯밤에는 독주 몇 잔을 마셨고,

별자리처럼 늘어선 알약도 한 움큼 먹었다.

몸을 일으켰을 때 미세먼지 덮인 사거리에서

빛나는 방주 같은 게 하나 솟아오르는 걸 봤다.

귤 파는 노인에게서 얼마간의 삶의 무게를 덜어내고

어떤 여행의 추억을 생각했다. 

비틀어 짜낼 말조차 말라 있었고,

푹 꺼진 보도블록 위에서 넘어지며 자멸파처럼 웃었다. 

흔쾌하지 않은 길 끝에서 방주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50킬로쯤 떨어진 곳에서

아버지가 신을 영접하고 있었지만

내겐 두렵고 어색했다. 

아버지의 단어들이여 안녕.

방주에 오르며  탈탈 털어도

혼자여서 나는 웃었다.

 

가는 겨울 그리고 봄이 오는 길목 /나상국 

 

가는구나 올 때처럼 그렇게 흩날리어

머나먼 길 찾아서

또 그렇게 많은 날을 흩날리어 가는구나

너 오는구나 오고 있구나

땅속 두꺼운 얼음 켜켜이 밀어 올리고

피어나는 설련화 노랑 꽃 앞세워

봄의 전령사 되어

봄을 가늠하여 오는구나

차가운 구들장 얼음 속 발 담그고

온몸으로 몸부림치더니

솜털 옷 두껍게 입은 버들강아지

바람난 처녀의 봉긋 벙글어 오른

가슴 같은 설레임 으로

손 흔들며 산들산들 흔들리며

워킹 하듯 오는구나

저 추운 시베리아 너른 벌판

꿈에도 그리던

네 고향을 찾아서 떠나가는

찬 겨울 바람

가지 말라고

붙잡아도 갈 것이고

봄 오는 너는

오지 말라고 길목을 막아도

올 것이다

 

오는 너는

너른 학교 운동장 담벼락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파릇파릇

고사리같이 어린 손 흔들어

어린 시절 코흘리개 친구들의

쫀드기 같은 기억속

봄을 이야기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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