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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명구

새해 다짐

고전명구
2020년 1월 29일 (수)
삼백쉰여섯 번째 이야기


새해 다짐
  
앞으로의 남은세월, 일분일초 아껴야지. 다시한번 놀이하면, 망한인생 확실하다.

 

 

此後歲月, 一刻可惜. 若復把翫, 虛生也必.
차후세월, 일각가석. 약부파완, 허생야필.


- 조익(趙翼, 1579-1655), 『포저집(浦渚集)』28권 「원조잠(元朝箴)」

  
해설

   이 글은 조선의 정치인 포저(浦渚) 조익이 새해 아침에 지은 「원조잠(元朝箴)」의 한 구절이다. 조익은 이 글을 지은 까닭을 “갑진년 새해 아침, 세월은 금세 지나가는데 공부는 충실하지 못함이 한스러워, 닭 우는 소리에 일어나 앉아도 전혀 즐겁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을 다잡고자 잠(箴)을 지었다.”고 말하였다. 모두 64구 256자의 짧지 않은 글로, ‘허송세월 말고 마음을 다잡아 공부에 정진하자’며 다짐하는 내용이다.

 

   글의 내용은 특별하지 않지만, 재미있는 것은 위에 소개한 “다시한번 놀이하면, 망한인생 확실하다.〔若復把翫, 虛生也必.〕”라는 구절이다. 여기서 ‘놀이’란 한담·음주·장기·바둑으로 당시 젊은 선비들이 어울려 즐긴 놀이이며, 필자가 ‘망한인생’으로 번역한 “허생(虛生)”은 아무 성취없이 헛되이 보낸 인생이다. 아무리 열심인 삶이라도 놀이 한 번에 무슨 인생까지 망치겠냐마는, 다소 장난스럽고 과장된 표현에서 새해 아침을 맞아 자신을 반성하며 다잡는 결의가 보인다. 게다가 ‘잠(箴)’은 네 자(字) 한 구(句)로 짓는 글이라 본래 딱 떨어지는 형식의 미학이 있는데, 더욱이 ‘必’자를 앞의 부사어 자리가 아닌 끝의 서술어 자리에 놓아 단호하게 끊어서 맺었다. 그 단호함 때문에 일종의 표어(標語)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훗날 요직을 역임해 정승까지 지내고, 대동법을 비롯한 개혁 법안을 드라이브하여 청사(靑史)에 길이 이름을 남기게 되는 조익이지만, 이 글을 쓴 당시의 조익은 이제 갓 관직을 시작한 스물여섯의 젊은 청년이었다. 오늘날 청년이 사회에 나서는 즈음의 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연보를 보면 조익은 24세에 문과에 급제해 26세에 승문원(承文院)의 선발에 들어 정자(正字)를 맡고 있었으니 당시로서는 출셋길이 훤한 엘리트이지만, 여전히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고, 앞날을 가늠하기 어려운 창창한 사회초년생이었다. 지난날에 대한 뼈저린 반성과, 앞날에 대한 막연하면서도 절박한 불안이 교차했을 새해 아침, 갓 조정에 출사한 스물여섯 청년 조익은 오늘날의 여느 청년과 다름없이 새해를 맞아 결의를 굳게 다졌다.

 

   놀거리도 훨씬 많아졌고, 놀이의 의미도 가치도 옛날과는 달라진 시대이지만, 일분일초가 소중한 시간임을 알고 순간순간을 충실하게 살아내자고 말하는 청년 조익의 다짐은, 오늘날에도 마치 우리 시대 청년의 다짐인 양 친숙하다. 그러고 보면 청년스러운 과장된 패기가 엿보이기도 한다. 지금도 인스타를 뒤져보면 비슷한 새해 다짐을 수없이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역사가 부여한 가공된 권위를 걷어내고 사람과 말만을 들여다보면, 위인도 그저 한 사람일 뿐이며, 격언도 그저 한 사람의 말일 뿐이다. 새해에 자신을 다잡으며 지난해보다 더 나은 자신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인가. 조익의 말에서 오늘날의 청년을 본다.

글쓴이김지웅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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