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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心에젖어

여름에 관한 시 53

여름에 관한 시모음 53)

여름궁전 /성영희

 

폐허를 두들겨 빨면 저렇게 흰 바람 펄럭이는 궁전이 된다. 매일 바람으로 축조되었다 저녁이면

무너지는 여름궁전은 물에 뿌리를 둔 가업만이 지을 수 있다. 젖은 것들이 마르는 계단, 셔츠는 그

늘을 입고 펄럭인다.

 

몸을 씻으면 죄가 씻긴다는 갠지스 강 기슭에서 두들겨 맞다 이내 성자처럼 깨끗해지는 옷들, 어

제 죽은 이의 사리*를 계단에 펼쳐 놓고 내일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헹구는 도비왈라들, 거품 빠진

신분들이 명상처럼 마르고 있다.

 

이 강에서 고요한 것은 연기 뿐,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온다.

 

밤이면 강물은 다시 태엽을 감고 소리를 잃은 것들은 물결이 된다. 화장장의 연기도 무시로 강물

따라 흐른다. 앞 물결과 뒷 물결이 섞여 흐르는 이곳에 오늘이 있고 산자만이 빤 옷을 육신에 걸칠 수

있는 내일이 있다.

 

물소리를 베고 잠들면 잠결에도 물이 흐를까, 사내들의 팔뚝은 강기슭을 닮았다 끊임없이 궁전을

세우지만 그 안에 들 수 없는 불가촉 타지마할, 하얗게 펄럭이는 그들만의 궁전이다

 

* 인도의 여자 의상

 

 

여름철 비상      /하영순

 

부유스름한 먼지 속에도

생명이 살아 숨 쉰다

그 생명

받아 들여야 할지

배척해야 할지

손끝에서도 나를 조롱하는 작은 생명

내 체내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존재 하고 있을까

작은 바이러스가

큰 적 보다 더 무서운 계절

적의 나팔소리 들린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적이 언제 닥쳐올지

 

 

여름 날 기대     /민경대

 

오늘은 큰 그림속에 우리는 방울처럼 출렁거리며

기다린 삶속에 희망의 소리 듣고

맑은 사람들의 서성거림속에

나도 방울 소리 들으며

이것은 하나의 기대속에 큰 소리듣는다

 

 

여름이 머문 곳에서     /김옥자

 

여기

그대와 나

 

하얀 물거품처럼

천사가 되어

바다를 만나고

 

여기

그대와 나

 

하나된 마음 물들어

초록이 되고

 

여기

그대와 나

 

손짓하는 행복

가슴에 사랑으로 움직일때

 

이렇게 좋은 시간

사라질까봐

 

까치발 들어도

가을은 아직 보이지 않았으면

 

초록 잎 새 사이로

그대와 나

 

걸어 가는 길에

그림자도 이뻐라.

 

 

여름 미소     /이옥순

 

고즈넉한 곳 넓고 넓은 들 바라보니

곱게 자란 푸르른 들녘

바람에 푸른 파도 물결치며 출렁인다.

계절 따라 변화하는 드넓은 생명의 땅

파랗게 뜨거운 여름을 즐기고 있다

 

땀방울 송송 농부의 손길

때때로 스치고 어루만져

그 사랑 속에 자라나 여물 어가는 모습

가슴 설레는 풍성한 기쁨을 부른다.

 

여름날 백일홍 꽃봉오리 톡톡 터트려

활짝 피어낸 꽃가지 흔들며 정다운 미소

주홍빛 저고리 곱게 차려 입는 능소화

화사한 얼굴 고귀한 자태 품어낸다

 

그윽한 커피 향 코끝에 맴도는데

푸른 하늘 하얀 구름 몽실몽실 꽃피우고

음악의 향기 가슴 가슴에 수놓으며

은빛 물결 반짝이는 바다 내음과

달콤한 시간 시원한 바람에 한껏 취한다

 

밤하늘 높게 달빛 반짝이고

소곤소곤 목소리 별빛처럼 달콤하다

계절의 순응과 인내를 배우며

가을 날 황금빛 휘날리는 들녘 익어가듯

내일 향해 소망 담은 여름 아침 밝아온다.

 

 

여름 열매 속삭임     /이영지

 

나뭇잎 세포에다

하늘의 바람만을

얹어서 놓으세요

바람을 놓으세요

빠알간 가슴 속으로

들어가서

살게요

사랑이 가슴만큼

오늘은 얼마만큼

사랑이 둥글둥글

온 날이 열어놓아

알알이 여물어가며

여름 열어

드려요

 

 

여름 자리       /원영애

 

봄은 어슬렁거리며 오더니

여름은 잽싸게 마을을 휘 감는다

두엄 냄새 밭두렁 날릴 때

감자 꽃피어

탱글탱글 알맹이가 익어 가면

감자 긁던 반달 된 놋수저

감자 물 찌든 어머니의 손

밥 대신 삶은 감자

 

흙무덤 두엄 냄새 진동하던

코끝에 절은 그 향 없었던들

감자 꽃 닮은 어머니 웃음

어디서 볼까

 

멍석위에

아이들 나란히 뉘어 놓고

모기 불 날려주던

어머니의 손부채

피난살이 하던

산 밑 오두막집

한여름 밤의 날 파리처럼

눈앞을 어른거린다.

 

 

한여름 조심스레 안부를 묻다    /양재건

 

가까이에서 함께 하면서도 조심스러워 애만 태울 때도 있습니다.

평안과 더불어 건강하시지요. 그래요 평안하시다니 마음이 놓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업어라도 드리고 싶습니다만, 아무튼 계속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언제부터 이곳이 우기가 되었는지, 시도 때도 없이 여름비는 하염없습니다.

찌뿌드드한 날엔 갈증도 더없이 짓궂은 친구가 되어 찾아듭니다.

어젠 철학이 실종되어 오후 땡볕이 기승을 부렸습니다.

그럴 땐 묵묵히 그대 생각으로 그 긴 시간을 잠재웁니다.

 

잠결에 가끔 그대 몸속을 흐르는 물의 소리를 듣습니다.

졸졸 시냇물 흐르는 듯한 그 소리가 꿈길로 이어지곤 합니다.

숲속 여기저기서 서늘한 바람이 몸을 풀고 있습니다.

곧 가을이 허리 굽혀 인사를 하러 올 것입니다.

 

계절이 몇 바퀴 바뀌어도 평안함이 내내,

그대 마음속 깊이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여름        /정윤목

 

여름 사르락

흰 눈처럼 빛나던 빛

간 데 없고

흐려지는 안개비

소스락

강 만들 때

 

아이들

천방지축 뛰어놀고

땀방울

기쁜 열기

 

여름빛

쨍쨍하지만은,

우수의 습기 가득할 때

그리움 더욱 간절하여지고

희망조차 옅어지며

하나의 이름,

묻어둘 때

새들의 노래

풀들의 소리

끊임없는 파도

마음과 마음

 

 

그 여름        /김용화

홍수로 깊어진 대흥내를 건너
한낮의 뙤약볕 속을
열무단 이고 늙은 노새처럼 걸어오시는
할머니, 낮은 어깨엔
여치 풀무치 기름챙이도 함께 붙어왔다
소낙비에 전 베적삼에선 눅눅한 쉰내가 피어났다
보릿집 후둑이며 아궁이 불 지피면
부뚜막에 쪼그리고 앉아 할머니
수제비를 뜨셨다
해꽃은 꺾여 시드는데
쇠품팔러 간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

 

 

여름 과일       /노정혜

 

앗! 뜨거워라

참아야 한다

 

익혀 주리라

맛나게 새콤하게

 

누굴 위해 아파야 하나

우리의 운명이라

 

주는 것이 행복

아파야 맛난다

 

익혀라

우리는 참는다

아픔이 사명이라

 

산짐승 들새들도

나누어 주리라

 

더위 속에 영걸어 가는 과일

과일은 행복하다.

 

 

올해 여름        /석옥자

 

여름만 즐기는 매미는

나뭇가지를 타며 열심히 노래한다.

 

아무리 코로나가 위험을 줘도

만날 사람은 만나야 한다.

 

식사한 다음 후식으로

더운 여름을 먹기 위해

스타벅스 찻집을 갔다

 

먹음직한 팥빙수 4인분이

유리그릇에 수북이 담겨

탁자에 앉아 유혹한다.

 

투명한 유리그릇은

사랑과 만남을 혼합해서

주걱은 열심히 골고루

휘휘 저어 섞는다.

 

앞접시에 담아서 더위를 식히며

더운 올해 여름이 제법 체온을

서늘하게 식혀준다.

 

빙설도 녹고

애틋한 내 사랑도

주걱 끝에 녹아내린다.

 

 

여름2               /정병옥

-물위를 걸어 다니는 세월

 

호젓한 강가 기슭에 올라 서니

묵은 갈대가 기운 잃어 누워있고

물위의 바람이 그림자 같이 떠돌며

물속에 구름도 세상 같이 흐르고나

 

뒷짐진 채 바라보는 낙동 벌판에는

마치 세상을 잊은 듯 삶도 멈추고

말없는 정자만이 무게를 인 채

유유히 흐르는 강물만 지켜 보네

 

억만년을 지켜왔을 고목들은

수많은 사연을 가슴에 품은 채

쏟지 못할 가슴앓이에 주름만 지고

힘겨운 몸을 세월에 기대며

 

어제도 그제도 흘렀을 강물위로

그 해 여름을 보내고 또 보내니

사람은 바뀌어도 청산은 그대로나

흐르는 강물은 한마디 말이 없구나.

 

 

여름휴가       /노정혜

 

태풍이

지나간 자리

신록이 짙다

 

청아한 잎새들이 반짝반짝

더위에 지친 자연이 쉬어가게

숲을 이룬다

 

산과 바다는 기다린다

 

하늘은 높고 푸르다

바다는 파도 소리 시원하고

숲속 계곡은 물소리 청아하다

 

태풍이 오염된 지구를 청소하고

발길을 재촉한다

 

산으로 바다로

휴가길 분주하다.

 

 

여름나무의 추억      /채호기

투명한 햇빛으로 들끓는 텅 빈 정적 속에서
모가지를 꺾고 툭툭 떨어지는 붉은 꽃들은
결코 네 피가 아니다, 네 얼굴이 아니다.

한여름 잎들의 샤워꼭지에서 짙은 그림자들
쏟아 붓는 진초록 그늘이 한결 너답다.
머리카락 그림자를 깊게 빨아들인 너의 얼굴,
검푸른 수면에 무지개 반짝이는
기름을 띄운 듯 너의 얼굴에 햇빛 조각들이
가볍게 떠돈다.

햇빛 조명이 정오의 적막함을 밝게 비추고
불붙은 뜨거운 공기 사이로
짙푸른 잡풀들이 몸을 비튼다. 온갖
날벌레들의 날개 소리만이 귓속에 가득해서
거기 너로부터 아득히 먼 곳으로 나는 허공을
날개짓도 없이 날아왔다.

저기 저 아래 바다 위에 촘촘히 떠있는
섬들은 내가 네밑에 물결처럼 드러누웠을 때 본
너의 진 초록 잎들 같다.

올려다 본 하늘 바다에 별이 된 너의 섬들,
섬으로 떠 있는 너의 잎들.

네게서 멀리 떠나왔을때. 나도 모르게 나는
열매처럼 입안에 넣어본다.
너의 맛을 모른다고는 할 수 없겠지. 하지만 이 여름
나는 결코 너의 이름을 입 밖으로 뱉어낼 수가 없겠구나.
안녕, 나의 진초록들이여.

 

 

여름의 수반     /이용임

 

서성이는 육체

나리우는 육체

맴도는 육체

 

묽어지는 육체

붉어지는 육체

환하게 사라지는 육체

 

입김으로 흩어지는 육체

한 점으로 떠 있는 육체

가장자리가 흔들리는 육체

 

바람을 가둔 육체

거울이 되는 육체

눈 위에 손을 올리고 기다리는 육체

그림자에 빠져 익사하는 육체

 

꽃잎을 얹은 육체

푸른 얼굴의 육체

가둔 향기에 빙빙 돌면서

말라가는 육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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