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조(落照) /평보
바다 넘어
무엇이 있는가?
안식을 찾아 가는 해
하늘을 불살라
누구에게 보이려는가?
노을빛에 기대에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
윤슬의 빛이
소멸될까 조바심 한다
지친 나그네
놀랜 가슴 가다듬고
한 세상 머무는 이치가
이와 같으니
그대 젊음을 노래
하려든
지는 해 설어워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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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가면 / 박인혜
거센 파도를 내며
온몸으로 울면서도
바람이 쉼 없이 달리는 것은
동쪽 끝의 빛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바다는 언제나 넉넉한 마음으로
있었다.
적은 가슴 바다에 담그면
넓은 마음 내게 보여 주었지
폭풍을 뚫고 가는 그곳에는
새벽 별이 먼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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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오는 이유 / 이생진
누군가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니다.
모두 버리러 왔다.
몇 점의 가구와
한쪽으로 기울어진 인장과
내 나이와 이름을 버리고
나도
물처럼
떠 있고 싶어서 왔다.
바다는 부자
하늘도 가지고
배도 가지고
갈매기도 가지고
그래도 무엇이 부족한지
날마다 칭얼거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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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 대하여 / 정호승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잠자는 지구의 고요한 숨소리를 듣고 싶을 때
지구 위를 걸어가는 새들의 작은 발소리를 듣고 싶을 때
새들과 함께 수평선 위로 걸어가고 싶을 때
친구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리지 못했을 때
서럽게 우는 어머니를 껴안고 함께 울었을 때
모내기가 끝난 무논의 저수지 둑 위에서
자살한 어머니의 고무신 한 짝을 발견했을 때
바다의 뜬 보름달을 향해 촛불을 켜놓고 하염없이
두 손 모아 절을 하고 싶을 때
바닷가 기슭으로만 기슭으로만 끝없이 달려가고 싶을 때
누구나 자기만의 바닷가가 하나씩
있으면 좋다 자기만의 바닷가로 달려가 쓰러지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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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 신현림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나무를 보면 나무를 닮고
모두 자신이 바라보는 걸 닮아간다.
멀어져서 아득하고 아름다운 너는
흰 셔츠처럼 펄럭이지
바람에 펄럭이는 것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서
내 눈 속의 새들이 아우성친다.
너도 나를 그리워할까
분홍빛 부드러운 네 손이 다가와
돌려가는 추억의 영사기
이토록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구나
사라진 시간 사라진 사람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해를 보면 해를 닮고
너를 보면 쓸쓸한 바다를 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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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이 바다 / 정현종
바다 한 송이를
애기 동백들은
감당하지 못한다.
붉고 붉고
수없이 붉어도
이상하리만큼 무력하다
한 송이 바다 앞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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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바다 / 신경림
친구가 원수보다 더 미워지는 날이 많다.
티끌만한 잘못이 맷방석만하게
동산만하게 커보이는 때가 많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남에게는 엄격해지고 내게는
너그러워지나보다
돌처럼 잘아지고 굳어지나 보다.
멀리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스스로는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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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바다 / 권오훈·아동문학가
아버지가
바다에 일 나간 밤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은
온통 바닷물결로 출렁거리고
뱃머리에 부딪치는
물소리, 물소리는
내 베갯머리에 와 찰싹인다.
식구들의 무게를 지고
바닷일을 하시는 아버지의 어깨에는
찬바람, 파도 소리
쏴!
쏴!
물이랑에서
힘겹게 건져 올리는 그물에는
퍼덕, 퍼덕거리는
은빛 무게들.
아버지가 일 나간 밤에는
내 방 안은
물결이 일렁이는
아버지의 바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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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쉴 때는 /이해인
여름에 왔던
많은 사람들로
몸살을 앓던 바다가
지금은 조용히 누워
혼자서 쉬고 있다.
흰 모래밭에
나도 오래 누워
쉬고 싶은 바닷가
노을 한 자락 끌어 내려
저고리를 만들고
바다 한 자락 끌어 올려
치마를 만들면서
수평선을 바라보면
내가 혼자인 것이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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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처럼 바다처럼 /이해인
산을 좋아하는 친구야
초록의 나무들이
초록의 꿈 이야기를 솔솔 풀어 내는
산에 오를 때마다
나는 너에게 산을 주고 싶다.
수많은 나무들을 키우며 묵묵한 산
한결같은 산처럼 참고 기다리는 마음을
우리 함께 새롭히자.
바다를 좋아하는 친구야
밀물과 썰물이 때를 따라 움직이고
파도에 씻긴 조가비들이
사랑의 노래처럼 널려 있는
바다에 나갈 때마다
나는 너에게 바다를 주고 싶다.
모든 것을 받아 안고 쏟아 낼 줄 아는 바다
바다처럼 넉넉하고 지혜로운 마음을
우리 함께 배워 가자.
젊음 하나만으로도
나를 기쁘게 설레이게 하는
보고 싶은 친구야
선한 것, 진실한 것, 아름다운 것을
목말라하는 너를 그리며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산의 깊은 마음과 바다의 어진 마음으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
[출처] 바다에 대한 시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