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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心에젖어

여름에 관한 詩

여름에 관한 시모음 56)


나그네의 여름       /정심 김덕성


초록 바람 불고
잎사귀들의 사랑의 속삭임을 들으며
오늘도 활기차게 자기의 길을
모두들 가고 있다


초록빛 숲을 지나
앞이 알 수없는 긴 터널을 지난다
저마다 부푼 꿈을 한 아름 안고
너나 모두 길을 간다


요즘 거리두기로
비록 서로 스치는 일은 없어도
입은 가린 미지의 사람들은
무정하게 지나가는 세상


노을이 지니 어두움이 온다
지쳐 힘들어도 삶은 이러려니 하면서
내일도 또 이리가도 되는가
길을 묻는 나그네




여름         /미산 윤의섭


강이 구비 도는 영산에
봄꽃이 붉고 싶어도


과일 따기 서두는
여름이 재촉하네


제철의 과원은 바쁘기만 한데
외래 과실이 저 먼저 왔네.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나희덕

살았을 때의 어떤 말보다
아름다웠던 한마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 잎을 노랗게 물들였다

지나가는 소나기가 잎을 스쳤을 뿐인데
때로는 여름에도 낙엽이 진다
온통 물든 것들은 어디로 가나
사라짐으로 하여
남겨진 말들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말이 아니어도, 잦아지는 숨소리
일그러진 표정과 차마 감지 못한 두 눈까지도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그 순간
삶을 꿰매는 마지막 한땀처럼
낙엽이 진다

낙엽이 내 젖은 신발창에 따라와
문턱을 넘는다
아직은 여름인데





여름날 불꽃이 튄다.     /初月 윤갑수


쪽빛 하늘에서 햇살이 쏟아지니
헉헉 거리는 나그네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겁다.


허리춤을 졸라맨 세월의 무게를
못 이겨 그만 두 동강 난 허리 띠
나의 자화상인 듯 처량하다


더위 먹은 아스팔트길은 녹아
빗물처럼 검게 흘러내리고
살인적인 폭염의 속삭임은 나그네
발목을 잡는다.


여름날 태양은 불꽃의 심지를
가슴에 꽂고 불을 댕기니
심술궂은 무더운 바람이 슬슬
부채질을 해대고 벌겋게 익은
얼굴엔 구슬 같은 땀방울이 맺혀
열꽃을 피운다.




여름            /오경옥

화사한 봄꽃을 꿈꾸던
계절을 지나
아름다운 그 계절을 보내야 한다

넓은 그늘을 만들던
큰 느티나무의 잎새
푸르러 가는데
깊어만 가는 짙은
마음의 그림자

끈적거리며 달라붙는 떼어지지 않는 정
이별후유증의 처절한 불면 같은
무더운 열대야

어디에선가
온 몸을 휘감고 쟁쟁하게 울려퍼지는
매미소리
매에맴~ 매에맴~

어디에선가
온 마음을 낭랑하게 흔들어놓은
화사한 계절을 기억하는
저 질긴 매미소리
매에맴~ 매에맴~





여름 계곡의 단상       /권경우


천년바위 비껴 돌아
내리 걷는 잔도 물결
푸른 색채로 영롱하다


칠월 앞바람 한 줄기에
곤불 고수 추임새라
비말 춤사위도 예쁘다


나도 한 몸 되어 보자
눈 맞춤에 옷고름 풀고
애무 없이 품을 안는다


합창 속에 젖은 이끼
방울방울 사랑 이야기
물개구리 한 눈 감는다




고마운 여름       /이해인


푸른 잎으로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들이
새삼 고마워서
나무야 나무야
친구를 부르듯이
정답게 불러 봅니다
나의 땀을 식혀주는
한줄기 바람이
새삼 고마워서
바람아 바람아
노래를 부르듯이 정답게
불러 봅니다
장마뒤에
쨍쨍 내리쬐는 햇볕이
새삼 고마워서
해님해님 하느님을 부르듯이
반갑게 불러 봅니다
해 아래에
해에 익은 둥근수박 여럿이 나누어
먹으며 크게 넓게 둥글게
열리는 마음
지구 모양이 수박을
먹을 때마다
지구 가족
우리 가족
하나되는 꿈을 꾸는
고마운 여름




그때 여름의 끝         /심의운


비 맞은 기와지붕이 축 쳐지고
움푹 패인 초가지붕 고지박이
마당 한 가운데 떨어져 딩굴고
마루 밑에 뱀이 갈곳이 없어
밥상머리에 어슬렁 어슬렁 거렸다


천둥 번개가 집이 내려 앉은 것처럼
괭음을 내며 번쩍번쩍 이고
뒤 산에 황토물이 밤새도록 괄 괄
소리내며 감나무 우찍우찍 뿌러지는
소리가 들려 오고있었다


도둑 고양이처럼 눈만 반짝 반짝
번개치는 문살만 쳐다보고 있었다
먼동이 밝아오자 보리짚 우의를
덮어 쓰고 감나무 밑에 우수수 떨어진
상처난 생감 한 주먹 쥐고 들어와
맛을 보고 있는사이에


뒤산 개곡에 하얀 폭포가 무섭게
떨어지고 이골목 저골목 황토물이
누런 들판을 덮고 말았다
프라다라스 가로수가 넘어지고
신작로는 어디로 사라지고 논과 밭
귀퉁이를 먹어 치우고 큰 물 파도
이루며 바다가 나타난것 같았다


덜 익은 풋 감을 단지에 싹혀
한 개씩 나누어 먹던 시절
고추장에 보리밥이 먹고 싶었다
일천구백오십구년 구월 십이일 추석
사라호 태풍 그해 여름의 끝에서




여름날엔         /윤춘순


온통 달구는 대지
바람 한 줌 이슬 한 방울도
자연에 순응하며 군가를 부르리


한낮의 수고에
숨 고르는 밤이 오면
달콤한 사랑에 물들어 새큰새큰


초원에 누워
바라본 밤하늘
은하수의 전설이 둥둥 떠다니고


그리움에 아파하는
여름날 비애에 가슴 적시며
아롱지는 사랑 이야기도 떠다니리


불붙은 사랑에
작은 열매까지도 살찌우며
살아있는 모든 것은 익고 또 익어가야 하리.




여름 내리는 냇가       /정심 김덕성

벚꽃도
꽃비 되어 떠나고
짙은 아카시아 꽃향기
간 곳 없고

붉은 빛으로
화려하게 빛나던 장미도
아쉽게 떠나니
세상은 허황하구나

떠난 자리엔
폭염만 내리고
마스크는 떠나지 않은 채
아직 채워져 있는데

냇가에 앉아
냇물을 바라보노라면
떠오르는 고향
그리움만 쌓이고





여름 일기         /안정순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삼복더위
그늘막 하나 없이 보이는 것은
광활한 벌판에 출고를 앞둔 자동차뿐


가뭄에 소낙비처럼
주체할 수 없는 땀방울은
온몸을 순식간에 잠식해버리고


포도당을 먹어가며
폭염과 사투를 벌이던 삶의 현장에서
먹음직한 자둣빛처럼
익어버린 네 얼굴을 보니
까맣게 타던 가슴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듬직한 널 품에 가득 안아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게
자식이라 했던가
역경도 달게 지는 그 깊은 속 내는
나를 대신하며
한 잔 술에 환하게 웃고 있구나!




무르익어 가는 여름       /은별


풋풋한 여름 향기
내뿜는 수채화 같은
예쁜 하늘 아래
아침 이슬 눈물처럼 맺혀 뚝 둑
가슴에 촉촉이 젖어오면
그리움은
쪽빛 바다를 향해 흐른다..
뜨겁게 드리운 창가에
칠월의 태양이 유리알처럼 부서지고
조용히 내려앉은
싱그러운 아침 풍경
초록잎 나풀나풀
상큼한 바람 가슴을 적시며
따가운 햇볕 속에
알록달록 고운 빛깔들이 어우러져
여름이
예쁘게 무르익어 간다..




여름나무는       /김덕성


비옥한 땅에
뿌리를 깊숙하게 내리고
사철 생수가 철철 흘러넘치는
풍족한 영양을 지니고 선
냇가에 나무


줄기는 푸른 하늘로 치솟고
무성한 초록 잎사귀들이
한들 춤추며
사랑의 노래하는
시원한 칠월을 꾸미는 나무


뜨거운 한여름
열기로 달아올라도
초록바람 시원하게 식혀주고
사랑의 짙푸른 여름나무는
그늘이 되어 주며 사는
사랑의 쉼터입니다




한여름        /정찬경


작열하는 태양 아래
개미 한 마리 없다
세상이 잠시 정지하였다


맹꽁이는 숨 고르기
저승사자 초고리처럼
세상을 주시하고 있다


뱀이 늘어지니
모든 중생이 흐느적거린다


삶이 무기력하고
권태가 이 땅을 지배할 때
벌 한 마리가 날아온다


한여름에
마른벼락보다
벌침 한방 쏘여 보자




여백을 넓히는 여름의 끝자락    /미산 윤의섭


녹음으로 가득 채운 숲의 정령
작은 바람 불 때 마다 돌 틈에 이끼 끼고


맑은 물이 고이는 푸른 물가에
텅 비운 허공을 수평으로 떠안았네


독서의 삼매경을 정자 바닥에 깔고
매미와 합창하는 여백의 풍경


입속에서 흥얼흥얼 낭독의 유희
책장에 부드러움을 손끝에 부친다.




뜨락의 여름     /강대실

짙푸른 강물
넘실대는 뜨락

찾아든 바람
해들해들

별이 쏟아진 감나무
가을 단꿈에 졸고

고개 떨군 분꽃
하품질 해대면

한마당 땡볕
어슬어슬 용마루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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