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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心에젖어

그림자에 관한 시 모음

#그림자-함민복

금방 시드는 꽃 그림자만이라도 색깔 있었으면 좋겠다

어머니 허리 휜 그림자 우두둑 펼쳐졌으면 좋겠다

찬 육교에 엎드린 걸인의 그림자 따뜻했으면 좋겠다

마음엔 평평한 세상이 와 그림자 없었으면 좋겠다

#그림자는 착하다-신천희

내가 하는 짓을

보고 그대로 배우는

그림자는 착하다

밝은 곳에서

떳떳하게 하는 짓은

좋다고 따라하지만

어두운 곳에서

몰래하는 짓은

절대 따라하지 않고

도망가 버린다

#그림자 절제수술 -박경현

그림자를 잘라내자

내 머리보다 앞서가고

내 키보다 길어지는

오만의 그림자.

그림자를 도려내자.

내 마음 검어지면 더욱 짙어지고

내 가슴 깨끗하면 좀더 옅어지는

변덕의 그림자.

그림자를 줄여보자.

내 모습보다 품위 있고

내 몸집보다 풍만한

거품의 그림자.

그림자를 지워보자.

햇빛 피하면 엉큼하고

달빛 아래선 음흉스런

불손의 그림자.

숨기고 감추는 게 많을수록 늘어지고

밝히고 드러낸 게 적을수록 넓어지는

선명한 낙인(烙印)의

그림자를 떼어내자.

#그림자도 나이를 먹는다-양전형

내 그림자

등 점점 오그라들고

내딛는 발걸음 비치적거린다

흔들리는 팔이

태엽 풀린 시계추 같다

하늘을 쳐다보는 일보다

땅 바라보는 일 잦아져

내 그림자와 자주 만난다

내 그림자

밤도시 헤매는 일 줄어들고

방구석에 누울 때 많아진다

그림자도 나이를 먹는다

차츰 눕는다

#그림자-정진명

  허공에 한껏 부풀려진 제 영혼을 위하여

그림자는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드러눕습니다.

모양과 부피가 각기 달라도

영혼의 두께는 다 같은 법이라고

모든 존재의 뒷모습을 납작하게 펼쳐놓습니다.

높이만을 최고로 알고 중력과 싸우느라 버둥거릴 때도

소리 없이 바닥으로 내려와

높을수록 커지는 위험을 길이로 재어줍니다.

알록달록한 꿈 자랑하며 휘날릴 때

화려한 빛깔들을 가장 단순한 색으로 바꿔서

더위에 지친 사람들을 품는 쉼터가 되어 줍니다.

감당 못할 무슨 일로 풀죽은 저녁 무렵이면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며

지평선 끝까지 키를 늘이고 어깨 다독입니다.

해를 쳐다보는 동안에는 못 보지만,

방향을 조금만 돌리면 보이는 가까운 곳에서

해로 하여 가려진 세상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평생 곁에 머물러 날 지켜주다가

무덤에서 비로소 함께 사그라지는

당신, 내 영혼의 짝.

 

 

#고독한 신의 그림자-정성수

은하계 너머

또 다른 은하계 너머

다시 먼 은하계 너머

터무니없이 아득하고

더욱 아득한

끝없이

끝이 없는 우주의

외딴섬 같은 핵의 자궁으로부터

신의 손짓 내려와

내 숨소리 곁에서 출렁인다

어깨가 많이 굽은

깡마른 독수리처럼 앙상한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오래오래 웅크리고 앉아있는

저 고독한

신의 그림자 하나.

#청춘의 그림자 -임영준

들창에 어린 그대 모습

달무리 속에서 일렁이네

꿈은 사라지고

은하수도 말랐는데

눈물은 왜 이리 맑고

넘치는지

아련한 청춘의 그림자

시린 발자국 또렷

새기려는가

#그림자 놀이-정은아

만날 사람들은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는 말처럼

이미 만날 운명으로

정해져 있었던 건 아닐까

좋은 느낌

몰래 간직한 채

서로 해바라기 하다

이렇게 만나게 된 건 아닐까

한발만 내디디면 되는데

먼저 손만 내밀면 됐었는데

관객 없는 그림자놀이만 하고 있었나 봐

이제 서로의 마음 확인하고

진실한 마음 내려놓았으니

그리워했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서로 아껴주면서 지내고 싶어

사랑의 그림자놀이를 하면서...

#그림자에게 길을 묻다-김내식

삶에 대해서 나는

묻고 또 묻는다

어떻게 사는 삶이 참된 삶인지

수많은 현인들이 그 방법을 제시하나

시간과 장소에 따라

각자에게 주어진

여건과 환경이 다르기에

진정한 나의 길은 내가 찾을 수밖에

길 위에 이정표가 또 다른 길을 가리키어

세상의 모든 길은

길에서 길을 묻다 결국

내 안의 길로 이어지느니

거기서 나의 길

찾을 수밖에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나를 위한 삶이기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으니

이제는 텅 빈

나의 문에 이르기 위해

홀로 나를 따르는

내 그림자에게 길을 물어

진정한 나의 존재

만나야 하리

[출처]그림자에 관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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