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새기는 일은 한자리를 견디는 것, 비 오는 줄도 모르고 도장을 팠다 벼락 치는 소리와 대추나무 쪼개지는 소리와 내 가슴 찢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양각하는 이름 석 자, 손때 묻은 조각도가 젖고 이름이 되지 못한 나무 티끌들이 낡은 책상에 빗방울처럼 흩뿌려졌다 이름 앞에 구부정히 앉아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목도장뿐이었다 인주를 묻혀 찍어보는,
붉은 입맞춤
견딜수록 한자리가 아팠다
- 박은영, 시 '도장'
늘 나로 존재하는 이름과 그 이름을 새겨준 한자리의 노고. 이름값을 한다는 것은 거창한 게 아니라 여전히 나라는 한자리를 지키며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