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비 / 고은
물결이여 네가 잠든 물 우의 고요에
봄비는 내려와 죽는다.
물 우에 물속의 어둠이 솟아올라도
물결이여
네가 담든 물 우에 받는 봄비로
먼데까지도 봄비로
먼데 바위까지도 봄이게 한다.
아 너와 내가 잠든 물 우에 여기에서
한 덩어리가 바위가 침묵으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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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 김영준
투신하여 내 몸을 꽂고 나면
어느 만큼 지나
그 자리, 구멍마다
제 이름 달고 투항하는 풀잎
그렇게 온갖 것들이 일어서고 난 후
드디어 그 눈짓 속에 파묻히는
나무
3월 지나며
어디선가 잦은 꿈들이 뒤척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 꿈속에서
많은 이름들이 가방을 열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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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 김용택
어제는 하루종일 쉬지도 않고
고운 봄비가 내리는
아름다운 봄날이었습니다
막 돋아나는 풀잎 끝에 가 닿는 빗방울들,
풀잎들은 하루종일 쉬지 않고 가만가만
파랗게 자라고
나는 당신의 살결같이 고운 빗줄기 곁을
조용조용 지나다녔습니다
이 세상에 맺힌 것들이 다 풀어지고
이 세상에 메마른 것들이 다 젖어서
보이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는
내 마음이 환한 하루였습니다. 어제는 정말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고운 당신이 하얀 맨발로
하루종일 지구 위를
가만가만 돌아다니고
내 마음에도 하루종일 풀잎들이 소리도 없이 자랐답니다.
정말이지
어제는
옥색 실같이 가는 봄비가 하루 종일 가만가만 내린
아름다운 봄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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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 김윤배
세상이 빗방울 위에 놓인다
겨우내 마른 소리를 내며 떠나려던 나무들이
슬며시 뿌리를 내리고 발등에 누워 젖고 있는
제 그림자를 내려다본다
내, 지난 겨울이 저랬던가?
숲이 빗방울을 조용히 내려서고
오랜 잠 괴로워했던 산갈대
툭툭 마디를 꺾는다
내, 지난 봄이 저랬던가
저처럼 작고 조용한 빗방울에 얹혀
뜨거운 나이를 버리면
내 굽은 그림자가 끌고 온
메마른 마음 햇솜처럼 부풀어
꽃망울 벙그는 세상을
혼자는 갈 수 있으리
내 비록 네 마음속에
싹 틔울 꽃씨 하나 묻어두지 못한
붙임의 세월을 살았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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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 김태원
첫 돌을 맞은 아기가
어머니 손을 잡고 걸어온다네
아기똥 아기똥
곱게 신은 미투리가
한 쌍의 나비같다네
길가의 나무들이
눈을 비비고 또 비비고
모두들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네
얼굴도 만져 보고
덥석 안아도 보고
신이 난 아기는
어머니 손을 놓고도
넘어지지 않는다네
이 골목 저 골목
아기의 살내음 물씬 피어오르고
나무들마다
가지가지 축복의 꽃망울 내어달면
온 동네, 꽃사태 나겠네
맨발의 어머니
발걸음 더욱 바빠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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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 노향림
지난 겨울 누드로 버티어온 나무들이 유심히 제 몸을 들여다본다
수없이 많이 튼 살갛을 아프게 때리는 빗줄기,
한때 농익은 열매 매달고 놀던 무성생식의 까만 젖꼭지를 퉁겨본다
어디서 보았을까
몇채의 집들이 들판에서 등 돌려 앉는 것을
쑥대머리들이 귀를 쫑긋거리고 키를 늘인다
온종일 속옷이 벗겨진 하늘에선 미처 피신하지 못한 바람들만 산발한 채 뛰어다닌다
스스로 물소리를 만들며
흘러가는 비,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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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 박신규
늦잠 잘 때 내린다
낮잠 잘 때 내린다
어머니 목소리 창가에 듣는다
하이고ㅡ
게으름쟁이 잠 자알 오게 비가 오신다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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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 송연우
애기 엄마 냄새가 난다
창문에 기대어 선 별 목련나무
꽃눈에 맺힌 빗방울
젖꼭지처럼 물고 있다
놀랠까 살금살금 발끝으로 건넌다
연잎에 나부시 엎드린
아침 이슬처럼
다만, 맑음으로
흙 밑의 풀싹들
기지개 켜는 손
일으키는 소리
젖은 손 하나가 내 안에서
중얼거리는 듯
나무의 굳은 시간들
부드러운 가위질로 잘라내며
온 세상
풀빛과 꽃 빛으로 솟음치게 한다
============
+ 봄비 / 송정숙
봄비는 어머니다
젖을 먹이듯 어루만져
싹을 틔우고
얼른얼른 자라라 기도발로
만물을 키워준다
동전 한 닢 받지 않고
높고 낮음 없이
무상으로 받는 자연의 혜택
이것만 알고있으면
우리는 행복하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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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 신경희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와
창가에 흩어지는 빗방울이
당신의 소식인가 싶어서
창가에 다가섰습니다.
맑은 빗방울 하나를
손 위에 올려놓고
투명한 물방울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당신의 웃음이 내게 다가섰습니다.
먼 하늘 끝에는
당신이 있을 것 같아
눈을 들어 멀리 까지 내다보았습니다.
당신은 당신 마을에서
저 봄비를 바라보고 계시겠지요.
당신도 문 두드리는 빗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마음은 먼저 동구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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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 심훈
하나님이 깊은 밤에 피아노를 두드리시네.
건반 위에 춤추는 하얀 손은 보이지 않아도
섬돌에, 양철 지붕에, 그 소리만 동당 도드랑
이 밤에 하나님도 답답하셔서
잠 한 숨도 못 이루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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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 이경임
새벽 2시에서 3시를 향해 움직이는
커다란 초침소리처럼
나의 출생신고에 사용된 숫자들처럼
나의 사망신고에 사용될 숫자들처럼
천진한 울음처럼
발랄한 체념처럼
그렇게 무엇인가가 땅으로 내려와
하늘을 향해 속삭였다
시계 우물 속 개구리처럼
마음 우물 속 개구리처럼
분주하게 폴짝거리며 힘 빼지 말고
하늘을 꼭 껴안고 더 많이 놀아야지
땅과 뒹굴며 더 많이 놀아야지
차갑고 메마른 입술 위로
흘러내리는 봄비의 촉감처럼
죽음의 촉감과 더 친밀해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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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 이동순
겨우내
햇볕 한 모금 들지 않던
뒤꼍 추녀 밑 마늘 광 위로
봄비는 나리어
얼굴에
까만 먼지 쓰고
눈감고 누워 세월 모르고 살아온
저 잔설을 일깨운다
잔설은
투덜거리며 일어나
때묻은 이불 개켜 옆구리에 끼더니
슬쩍 어디론가 사라진다
잔설이 떠나고 없는
추녀 밑 깨진 기왓장 틈으로
종일 빗물이 스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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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 이상복
누군가 창밖에서
경쾌한 물의 왈츠를 추고 있다
피아노 건반의
때론 강하게 때론 약하게
사분의 삼박자 리듬에 맞춰
부드럽게 발끝을 바닥에 사선으로
톡톡 치며
가볍게 손바닥을 터치하며
한 바퀴 커다랗게 둥근 원을 그리고 돌며
서로가 서로를 적당한 거리에서
상냥하게 바라보며 보듬으며
반갑다고 꾸벅 대지에 인사하며
자박자박 똑똑 딱딱
잠의 메마른 대지의 감성을 일깨우는
섬세하고 따사로운 어머니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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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 이수복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에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랭이 타오르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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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 이원식
4월이 떠나갑니다
입술 깨문 벚나무
눈물 배인 꽃잎을
하나 둘 떼어냅니다
해마다 그러했듯이
하얀 시(詩)를 남길 겁니다
============
+ 봄비 / 장석남
풀린
봄
물결이여 내 고요 위에
봄비는 내려와
둥글게 둥그렇게
서로서로 몸을 감고 죽는다
둥그런, 둥그런 물의 관들
물 위로 물 속의 푸른 어둠이 솟아올라와
둥근 그 소리에까지도 푸른 어둠이 스민다
풀린
봄
물결이여
네 몸 위에 받는 봄비는
먼데 골짜기까지도 봄이게 하며 몸을 터서 죽는다
아 너와 내가 잠들었던
이 한 덩어리 기슭의 바위에도 봄비는 와서
둥글게 둥그렇게
앉음새를 고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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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 정한용
강을 건너자 비가 가늘어졌다
산발치에 닿아선 하늘까지 맑아졌다
땅은 이미 충분히 젖어
검고 부드럽게 나무뿌리에 담았던 향을 풀어냈다
포클레인이 모래흙 한 무더기
내 키만큼 쌓아놓은 뒤였다
새로 파낸 사토(沙土)는 새 봄비를 맞아 빛이 더 맑았다
이미 마음을 궁글렸으니
세상 전부가 함께 묻힌다 한들 이상할 게 없었다
흙을 가리고 방향을 잡아 자리를 정한 다음
조용히 내려 놓았다
내 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평온한 세게로 들고 있었다
구름 걷히고 햇살 퍼지면서 흙내음 진한 달구노래 들렸는지
어머니는 하나님을 믿었으니
그 후 어찌 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포르릉 산새가 날아간 것인지
산역을 마친 이들이 햇무덤에서 내려오고 나서야
나는 문득 손이 텅 비었다는 것을
상처가 아리다는 걸 느꼈다
봄비 걷히고
내 알몸 위로 울음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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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 주용일
밤새 누에 뽕잎 갉아먹는 소리
자다 깨어 간지러운 귀를 판다
세상 잘못 살아온 나를
어디 멀리 있는 이가 욕을 하는지
귓속 간지러움 밤새 그치지 않는다
잎에서 잎맥으로 잎줄기로 옮겨가며
점, 점, 점, 사나워지는 누에들의
뽕잎 갉아먹는 소리,
내 귓속 간지러움도 달팽이관을 따라
점점 깊은 곳으로 몰려간다
세상 함부로 살아온 나를
이제는 가까이 있는 누가 욕을 하는지
뽕잎 갉아먹는 소리 갈수록 거칠어지고
자다 깨어 죄지은 사람처럼
무릎 꿇고 앉아 간지러운 귀를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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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 최지언
새싹이 길을 모를까봐
안타까운 구름이 모여서 궁리하고
마침내 가벼운 빗줄기 되어
조심스레 땅을 두드립니다
보드라운 빗소리
빗소리에 씨앗은 눈 틔워
봄비가 스며들어 낸 길 따라
땅 위로 손을 내밉니다
흙 속에 숨어 있던 뿌리들도
기지개 켜며 발을 뻗습니다
작은 보살핌으로
새싹은 새로운 날 만들고
이파리 무성한 날을 기약합니다
화분에 새싹이 어우러지는
'봄'이라는 소리글자
다시 보니까 상형문자네요
'ㅁ'화분에 마구
싹이 오르는 모습
봄비가 길을 내어
화분의 새싹 올립니다
=============
+ 봄비 / 한효상
조용히 내리는 봄비
들뜬 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다
그대와 마주 보며
해맑은 웃음 지며 걸었던
그 길에 어제 같은 비가 내린다
라일락 꽃
흐드러지게 핀
나무 아래서 우리 사랑
꽃 피웠는데
덩그런 그리움만
내 가슴에 남겨 놓고서
그대는 어디쯤 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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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2 / 노향림
빠르게 흐르는 빗줄기. 라일락이 밥알 같은 꽃을 매단
주위는 온통 환했다. 묵은 김칫독을 들어낸 구덩이에는
겨울의 긴 뿌리가 언 채로 드러났다. 채 녹지 않은 꿈
이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끌려나온 흔적. 이름 없는 나
무들의 저 빈 가지 끝 숱한 얼굴 속 어디에 단발머리
중학생 시절의 내가 있는지. 사진첩을 펼친 듯 봄밤이
환히 어두워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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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여! / 양재건
입춘이 지났느냐.
그런데도,
발이 시리고 코끝이 찡하다.
모든 계절의 서사는 북쪽에 있는가.
명멸하는 수천 년의 절기에
누군가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는가.
빙하기가 오기 전에
가자! 얼음의 나라로!
누구도 모르는 계절의 전이.
그런데도,
왜곡되어 비가 내리고,
겨우내 움츠렸던 살과 뼈가 요동치며
물살 가르듯 정수리를 향해 솟구쳐 올랐을까.
밤새도록 아파서 끙끙 앓는 비통한 모습 말고,
누군가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듯
그렇게 그렇게, 그르렁거리며,
맑은 문장이라도 되어 더 세차게 울어다오,
봄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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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사랑 / 오보영
오늘은 너도
나만큼이나 촉촉이
젖어들면 좋겠다
늘 목말라하면서도
앞으로 잘 나서지를
못하는 여린 성격 탓에
뒤늦게서야
남에게 스미고 남은
빗방울로 겨우 몸 적시우는
네가 많이 안쓰러웠는데
이번 비는
모두에게 다 흡족하리만큼
충분히 내렸으니
주저하지 말고
어서 네 온 몸 젖게 해
너도 남처럼 진한 초록 빛깔로
당당히 네 모습 드러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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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여자 / 김찬일
여간 걸어도 줄지 않을 것 같은
들길 걷다 봄비 만났네
내리는 빗줄기에 가려, 먼 들판은
풍경의 잔해로 눈꺼풀에 스며들고
들판 자욱이 봄 안개로 피어있던
야산의 진달래만, 허전한 눈망울 채웠네.
아직 찬비였지만 봄비에 젖은 진달래꽃
가슴에 붉은 아픔으로 떨어지고
봄 아지랑이에 숨어
지금까지 겨울 꿈 키워 온 여자 마을
봄비 따라 흘러가 보이지 않았네
아 아 겨울이면 잉잉거리는 바람으로 나타나
빈 나무가지 흔들던 여자
흰 눈 내리면 눈 위에 이름 모를 새
발자국으로 찍혀 있던 여자
그 오광대 각시 탈 망상 같던 여자
봄비 따라 어디론가 흘러갔네. 키워 온
겨울 꿈 꺾어 놓고, 봄비의 여자
그 몸 벗어 놓고 봄비 따라
어디론가 흘러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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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비 / 김영은
나그네 등 떠밀어 거리로 내 몰듯
겨울을 보내고자
돌아서는 세월 앞세워
봄을 만나러 갔지
비 내리는 거리로
후두 둑 정적을 깨는 소리
끝없이 푸르러질 그곳 바라보니
놀라 자빠진 누런 들판이
황급히 자리 털고
빗속으로 달려가는데
서둘러야한다
봄의 속도는 알 수 없기에 붙잡을 수 없듯
그렇게 잴 수 없는 속도로
하늘에서 쏟아 져 내리고 있다
인고의 세월을 품고
황달 걸린 들판과
스며드는 다른 계절이
환한 기척으로 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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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종된 봄 / 김영은
텃밭에 몸통을 구겨 넣은 사내 발가벗은 몸이 갈아엎은 흙을 덮고 있었네 두 손이 허공을 말아 쥐고 있었네 잠귀 밝은 시어머니는 찜질방 가서 돌아오지 않았고 남편은 백구와 누렁이 짖는 소리 듣지 못했다 하네
산수유 노랗게 걸린 현장, 봄이 출입 금지 당했네 키 작은 시금치는 잠에 빠져 있었다고 도리질 하고 부추는 산바람에 실려 온 비명을 설핏 들었다 하네 얼결에 잠이 깬 텃밭 묵비권을 행사했네 남자의 얼굴엔 피다 만 개나리꽃 수북했네
성북역 CCTV에 앵벌이 하는 봄이 자주 찍혔다는데, 나이키가 그 봄을 짓밟았다 하네 옆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주검이 된 봄, 역한 냄새 난다는 이유로 코뼈가 부러지고 장파열이 됐다네, 집 나온 지 3년이 되었다는 봄의 이름은 노숙자라네
탁족을 뜨던 수사관의 예감 정확 했다네 토란 입 혀가 꼬이고 말이 얽혀 거짓을 탐지당한 나이키, 의심의 한 꼭지를 툭 땄다고 하네 범인은 십대, 철이 없는 잔인한 봄이었다네
그 남잔 죽어서도 역한 냄새 떼어내지 못 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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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로도 봄비 / 정흥순
비 맞은 꽃이 더 예쁘다면서
음악을 얹어 사진을 띄웠다
꽃이 걸고 있는 저 빗방울은
물 좋은 새벽 비란 것을 알겠다
광어랑 농어 수족관에 넣고
칼을 문지르는
나로도 일육수산 여자가
흔들어대는 진주귀고리 닮았다
사양도 동백꽃 꺾어 물고
갈매기 날아와
쑥섬에 같이 젖어 흐르는
자르르 물 구르는 소리에
바다가
비에 젖어 핀다는 것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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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가 되어 / 강선옥
소리 없이 내리는 봄비는
온 세상의 대지를 적시고
소리 없이 내리는 봄비는
살포시 새벽을 거두며
상큼한 아침을 깨웁니다.
소곤소곤 내리는 봄비는
온 세상의 산천초목을 깨우고
어머니의 손길처럼 어루만집니다.
새벽을 깨우는 봄비의 속삭임처럼
늘 잔잔한 미소와 같이
사랑의 호수에 물을 담아
흐르는 시냇물이 되어
깊고, 넓게,
긴 사랑의 전도사가 되어
행복의 천사가 되어
봄비의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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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그치면 / 이길옥
곱게 접어두었던 일들이
부산해진다.
앞다투는 소리들로 분주한
가지 끝이나
밀치기로 시끄러운
양지쪽에서
봄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들썩인다.
야무진 놈들이 먼저 나와
봄볕에 데워진
아지랑이 가슴을 파고든다.
젖은 날개 다 말린
종달새
출렁
하늘을 휘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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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얄미운 봄비 / 구분옥
붕붕
아침잠을 깨우던 트랙터
소리가 멈추었다
칭얼대는 봄비가
농부 발목을 잡고
어린아이처럼 운다
거름 뿌리고 밭갈이
감자 피복 씌우기
점점 일손이 늦어져
농심은 타들어만 가는데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얄미운 봄비
애타는 남편 한숨 소리
하우스 모종 아우성치는 소리
하늘은 아는지 모르는지
발만 동동거리는
남편의 뒷모습에서
하얀 연기가 난다
머리에서 불이 났다
철없는 시인
심장이 쿵 무너진다
봄비 내리는 창가에서
추억을 불러내며
그리움을 마셨다
농심은 까맣게 타
숯 검둥이 되어
불이 난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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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속에서 / 조창환
창을 닦으니 봄비 내린다
얼룩진 마음과 몸 몰래 껴안고
진달래 무더기 진 먼산을 본다
한때는 쇠창처럼 단단하던 비
이제 녹차 같은 그늘만 남아
아득한 길들을 삭혀 내린다
이 비 그치면
새 잎 돋으리
진달래 무더기 진 먼산 바래며
종일토록 마음의 길을 닦는다
==================
+ 봄비 내리면 / 고재종
봄비 내리면
저 대그늘진 뒷마당의
층층 더께진 삼동얼음 녹으려나
봄비 내리면
저기 저 시퍼런 탱자울 너머
꿈결인 듯 유유히 앞 강물도 풀리려나
동네 한복판쯤에
두발 뻗고 퍼질러 앉아
딱 공딱! 되게 한번 먹이고
아이고 한울이 ㅡ임
목 넘기면
봄비 내리면
내 마음 속 자갈밭 귀영치에도
강파른 씨톨 하나 이윽고 눈을 떠서
이제는 하늘도 젖은 하늘 아래
저 둔덕 밑의 꽃다지며 황새냉이꽃
벌써 저렇게 차오르는 보리밭이랑
한 번쯤 목 메임으로 흐르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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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내리는 밤 / 구분옥
창가에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정겹게 들리는 2월의 마지막 밤
혼자라는 여유가 참 좋습니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 사이로
주룩주룩 하염없이 내리는 밤비
감성에 젖어 빗속을 걷고 걸었습니다
촉촉이 밀려드는 그리움에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덜컥 추억을 불러내고야 말았습니다
가슴속으로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발등에 부서지며
어디론가 흔적 없이 사라집니다
겨우 내 메마른 대지
긴 용트림으로 새 생명을 잉태한
나뭇가지들 행복한 비명
빗소리와 오케스트라 연주하듯
귓전을 난타하고
내 마음도 덩달아 흥이 납니다
자연이주는 선물을 마음껏
누리는 특권 이 특권이야 말로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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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내리는 밤 / 윤월심
산안개 뿌연 적막을 뚫고
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가로등 불빛마저
고독으로 잠들어 가는 밤
그리운 사람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아
창문을 열어보니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봄비만 하염없이 내린다
눈 감으면 아련하게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 하나
그대여 봄비처럼
내게로 사뿐히 오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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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내리는 날 / 손병흥
긴 침묵 어린 온통 무거워져 버린 마음속에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순식간에 자리한 채
오래 간직하고 싶은 봄기운 가득한 흔적들
추억들을 불러모아 살며시 스며드는 발자국
머뭇거리듯이 다가서 버린 그리움이란 꽃향기
저절로 가장 멋진 푸른빛이 되어버린 이른 봄날
촉촉해진 대지위로 새싹 돋게 하는 그 멋진 풍경
그냥 그렇게 활짝 핀 봄 싣고 부슬부슬 내리던 날
마냥 떠오르는 아련해진 사람의 다정한 목소리처럼
빗방울 되어 돋아난 아직도 내 안에 머물렀던 정겨움
====================
+ 봄비는 즐겁다 / 송수권
며칠째 봄비가 지난다
한 떼씩 마치 진군의 나팔 소리 같다
샤넬 향수병을 따놓은 병마개 같다
촉촉이 마음에 젖어드는 얼굴
세상이 보기 싫다며 손나발을 입에 대고
불던 친구가 있었다
물구나무 서서 가랑이 사이로
세상을 건네보던 친구가 있었다
젖지도 못하고 마른 종이처럼 구겨졌으면 어쩌나
큰길로 나서니 빨강 초록 파랑 우산 속에
소녀들의 밝은 표정이 갇혀 있다
한 떼의 봄비처럼 조잘거리며 내를 건너 숲을 건너
밀림 속으로 사라져 간다 저 가벼운 종아리들
문득 발을 막고 제재소가 나무 켜는 톱질 소리가 들려온다
향국하다 눈을 감는다
거대한 삼나무 숲 속살들이 톱밥으로 무너져 내린다
자꼬만 밀림 속에서 휘파람 새 휘파람새가 운다
생각이 발통이 되어 축축한 통나무들을 물고 간다
나무 찍는 우리나라 강릉 크낙새의 빨간 주둥이가 보인다
뚝방길 위 버드나무에 하얀 젖니를 뱉고 가는 봄비는 즐겁다
아, 들길에 서서 나는 명아주 싹이라도 세어볼 건가
강을 건너 북상하는 한 떼의 봄비, 뒤발꿈치가 다 젖는다
오늘은 강가에 나가 남풍에 실려 종종걸음 치는 한 떼의 봄비
조용한 전별식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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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닮은 그대 / 서명옥
좁다란 길목
작은 탁자 위에
새겨진 이름 하나
누가 볼까
애틋한 마음 흐르는
빗물에 내 사연 띄우고
고운 인연
삶이 다하는 날까지
함께 할 봄비 닮은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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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날의 달리아 /김종태
나지막하게 읊조려야 한다
한때 네 심장 속에도
요절의 꿈이 동면(冬眠)하였으나
한 몸이 다른 몸에서 미끄러져 나올 때
신생(新生)의 풍경만으로
여생을 보란 듯 견딜 수 있을 것이므로
란아 너 또한
소리 내지 말고 울어야 한다
구근의 얽힌 실타래를 풀며
껍질이 껍질을 벗고 알몸으로 태어나듯
그렇게 살 비비며
비릿한 흙내 속에서 새살림 차려 보자
봄비가 온몸을 적시기 전에
속옷을 내려야 한다
백일쯤 견디어 가을이면
천축의 꽃이 필 것이다
라일락 그늘에 하얀 등불 걸릴 때
아지랑이처럼 이목구비도
그림자도 없이
나지막하게, 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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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밤의 반가운 비 / 두보
좋은 비 시절을 알아
봄이 되니 때맞춰 내리기 시작하네
바람 따라 밤에 몰래 숨어들어
소리도 없이 촉촉이 만물을 적시네
들판 길 구름 낮게 깔려 어둡고
강 위에 뜬 배의 불빛만이 밝네
이른 아침 분홍빛 비에 젖은 곳 보니
금관성에 꽃들 활짝 피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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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가 내리던 날 / 신선호
어제밤엔 무척이나
바람이 불고 소란스러웠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조용히 봄비가 내리고 있다
창밖의 목련나무 가지에
꽃망울이 예쁘게 맺혀있고
망울마다 물방울이 매달려
송알송알 그 빛이 아름답다
이런 날 아침에는
숨어있는 시상을 떠 올려
멋진 시 한 편을 지으면
봄비처럼 행복해 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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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가 음표처럼 / 김금자
추녀 끝에 떨어지는 봄비
음표가 장단을 맞추듯
리듬이 들녘에 퍼져간다
실개천 버들강아지에
빗방울 아스라이 매달려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통통 튄다
실눈 뜬 진달래 꽃봉오리
속살 보일 듯 말듯
수줍은 자태 꽃으로 피어나고
묵은 갈잎 적시는 가랑비
나이테로 두꺼워진 고목에
허기진 배를 채워주면
늦둥이 새싹은 기지개를 켠다
필까 말까 망설이는 꽃망울
터뜨리기에 딱 좋은 비 내린 후
햇볕은 봄비가 뿌려놓은 음표 찾아
꽃망울과 새싹을 춤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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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내리는 날엔 / 손미경
창가에 봄이 오는 소리가
가슴 간지럽게 다가설 때마다
당신이 보고 싶어집니다
저 먼 곳에서도 나를 볼 수 있을까
문득
날 부르는 감미로운 목소리
뒤돌아보니 바람 소리였습니다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세월이 흘러도 제 가슴속에는
잊지 못할 첫사랑인 당신이
새록새록 돋아납니다
봄비 내리는 날엔
제 마음속에 고인 눈물처럼
창가를 바라보며 추억에 젖어듭니다
언제나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랑은 당신뿐이라는 것을
애절하게 띄워봅니다
죽는 날까지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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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에 젖은 사랑 / 이재옥
아름다운 것은 느리다는 걸 증명하듯
나뭇가지의 졸린 그리움 사이로
추적추적 봄비가 소리 없이 내립니다
당신을 만났던 별빛 쏟아지던 거리와
노을이 뜨거워서 철철 낭만이 흐르던 저녁
혼자 지는 붉은 해를 바라보던 야릇한 미소
알몸 위로 쏟아지던 가냘픈 한숨까지
당신과의 모든 것 지금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자해한 손목 같은 튤립 붉은 꽃잎에
첼로의 저음으로 나부끼는 봄비는
날개 붓을 휘저어 사랑을 적시고
온 세상을 적십니다
고뇌로 점철된 퇴색된 추억이
비바람에 밀려도 아니
폭풍우에 세상 끝까지 실려가 뭉개져도
항거하지 못할 봄비의 의뭉한 허밍에
사랑이 까무룩 잠들 듯 젖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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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님 오시는 날 / 가혜자
겨우내
눈 이불 속에서
써놓은 손 편지
눈물로 띄웁니다.
빨랑빨랑
청소하고 화장하고
뽀송뽀송
때때옷 입고
안개구름 헤치고
하얀 미소 머금은 당신
오신다는 소식에
우산도 안 쓰고
터질 듯 부풀은 얼굴에
볼 터치 섀도우 립글로스 지도록
벙그는 봄 봄
온종일 꿈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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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나무는 시위 중 / 마경덕
신림동 오복연립
벽에 ×가 크게 그려져 있다
×표 밑 붉은 페인트로 써놓은
이사 갓씀 이사 갓씀
두어 집을 남기고 벽은 붉은 글씨로 덮여 있다
연립주택 앞 늙은 벚나무
찢어진 현수막을 붙들고 시위 중이다
-재건축 결사반대-
오래 앓았던 글씨가 바람에 날리고
삼층 꼭대기 빨랫줄의 수건 한 장
백기처럼 펄럭인다
가스통이 뒹구는 앞마당
문짝 없는 장롱과 부러진 의자들
봄비에 시름시름 앓고 있다
벚나무 아래, 낯선 사내들 앉았다 가고
벽을 타고 퍼져간 붉은 글씨
깨진 유리창으로 하나 둘 기억이 빠져나간 집
머리띠 두르고 구호를 외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가
혼자 남아 시위 중인 오복연립 벚나무
종일 허공에 꽃잎을 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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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옷을 빌려입고 / 김종삼
온종일 비는 내리고
가까이 사랑스러운 멜로디
트럼펫이 울린다
이십팔 년 전
선죽교가 있던
비 내리던
개성
호수돈 女高生에게
첫사랑이 번지어졌을 때
버림받았을 때
비옷을 빌려 입고 다닐 때
기숙사에 있을 때
기와 담장 덩굴이 우거져
온종일 비는 내리고
사랑스러운 멜로디 트럼펫이
울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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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을 걷는 봄비 / 고은영
절망을 맛보지 않은 자는
행복의 진정한 가치를 가늠할 수 없다
한 때 나의 절망은 위험 수위를 넘었고
미치광이처럼 광폭하게 내게로 달려들었다
이 도봉산 언저리에
산 안개 뿌연 장막의 심연으로
봄 비가 추적추적 밤을 적신다
몇 개의 가로등만 구획을 가르고
점점이 고독한 빛들은 흩어진 채 출렁인다
아, 빗줄기
그리움에 흠씬 젖은 리듬은
어김없이 새벽 침묵을 깨트리고
피를 토하듯
그리운 이름들을 호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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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그의 이름 같은 / 김승동
저렇게
가슴이 부풀은 가지사이로
촘촘히 내리던 봄비가 있었다
젖은 온돌방 아랫목에서 이불깃을 끌어안고
속으로만 그의 이름을 쓰던...
우산을 쓴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분주함이란 찾아 볼 수 없는
단발머리 같은 봄비가
어차피 당도하지 않을 가슴앓이가
강을 이루고
증류된 생각들이 향기도 없이 빗물에 젖는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있었다
며칠 지나면 의례 새싹이 움트고
주책없이 여기저기 철쭉이 몸을 풀던
그 봄
오늘
창 밖 가로수 키가 자라
전깃줄에 매인 물방울에 입 맞추며
간간이 나누는 얘기가 봄비일 성싶다
아직도 분주함이 없기는 마찬가지이겠지만
이 비 지나도
내겐 언제나 새순이 움트지 않던
말라 버린 가슴에
이제와 뿌려질 그의 이름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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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봄비를 타고 / 고은영
단비에 젖는 거리를 보라
사랑은 봄비와 함께
잿빛 하늘을 훌쩍 너머
안개 숲을 지나 걸어오느니
거리마다
봄비에 마음 적신 사람들
가슴에 그리움이 새순처럼 돋고
사랑이 너울너울 휘돌아 내리네
안개꽃 닮아 방울방울
카페 창가에 흐르는
빗물의 눈동자마다
천년을 거슬러 오르는
전설이 열리고
후리지야 향이 천지를 진동하나니
사랑은 빗줄기 사이사이
아른거리는 그리운 낯빛
짙은 커피 향으로
아름아름 애달픈 눈물처럼
온 세상에 아름답게 흘러넘치네
이 비 그치면, 비 개인 하늘가
꽃술마다 무지개 빛 오색등 켜고
고운 발걸음 나풀나풀 날개 달아
활짝 웃는 미소, 가슴마다 촉촉하게
싱그러운 초록으로 피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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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내리는 날 강가에서 / 강고진
강가 바람 남서풍 안고
차작차작 봄비가
구름 속에 숨었다 사방팔방
흩어져 뿌려대고 있고
우산 속 데이트에 웃음꽃이
피고 쏟아지는
빗속을 터벅터벅
나란히 팔짱 끼고 강가 둔덕을
걷고 걸어 보네요
천둥오리 가족 떼를 지어
물속을 들락날락 자맥질에
물고기 잡아 물고 즐기는
짓이 곱고 아름다워 젖어든다
강변에 누런 갈대 바람 일자
사그락사그락 춤추듯이
일렁 이는 갈대꽃
지나는 우리를 유혹하니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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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는 추억을 데려오고 / 나영애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산만한 덩치
듬직해 보이던 모습은
무거워 보였다
나를 후끈하게 했고
술렁이게 하고
손 끝 스침에
내 몸은 스프링이 되었지
우리 사이
건널 수 없는 강이 놓였지만
탱탱하던 오감
보이지 않던 그것이 내게 와
감정을 쥐락펴락 하더니
손가락 사이
시간 빠져나가 듯 사라졌다
뜨거움도 울렁거림도
질투도 죽고
팔짝 뛰어오르던 자리에
꼼발로 내리는 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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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비 속에 서 있는 그대에게 / 이상철
속살거리는 봄비에
목련이 꽃 깍지를 벗듯이
따스한 내 입김에
그대 두꺼운 옷을 벗으려오.
두둑 거리는 봄비에
애기 꽃이 꽃망울을 부풀리듯
따스한 내 눈길에
그대 가슴에 불 지피려오.
꽃밭에 튀는 봄비에
새싹이 떡잎을 벌리듯이
나로, 나로 하여금
그대 두 팔에 안기게 하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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