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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心에젖어

한 여름에 관한 시 모음2

한여름에 관한 시모음 2

한여름 밤 그리움     /大元 채홍정

 

희미한 초승달이 별 숲에 갇혀 졸고

가끔씩 운석 행렬 길 잃은 별똥별들

반딧불 깜박 지새며

쏟아지는 여름밤

 

어머니 팔베개에 못 다한 옛 얘기꽃

별빛도 아스라이 멍석 위 같이 누워

정겨움 한 뼘씩 자라

살몃살몃 쌓인 밤

 

길섶에 터줏대감 수줍던 달맞이야

달콤한 그 속삭임 은하수 정갈 따라

또 언제 한껏 나뉘랴

사무치는 그날이

 

 

한여름 조심스레 안부를 묻다      /양재건

 

가까이에서 함께 하면서도 조심스러워 애만 태울 때도 있습니다.

평안과 더불어 건강하시지요. 그래요 평안하시다니 마음이 놓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업어라도 드리고 싶습니다만, 아무튼 계속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언제부터 이곳이 우기가 되었는지, 시도 때도 없이 여름비는 하염없습니다.

찌뿌드드한 날엔 갈증도 더없이 짓궂은 친구가 되어 찾아듭니다.

어젠 철학이 실종되어 오후 땡볕이 기승을 부렸습니다.

그럴 땐 묵묵히 그대 생각으로 그 긴 시간을 잠재웁니다.

 

잠결에 가끔 그대 몸속을 흐르는 물의 소리를 듣습니다.

졸졸 시냇물 흐르는 듯한 그 소리가 꿈길로 이어지곤 합니다.

숲속 여기저기서 서늘한 바람이 몸을 풀고 있습니다.

곧 가을이 허리 굽혀 인사를 하러 올 것입니다.

 

계절이 몇 바퀴 바뀌어도 평안함이 내내,

그대 마음속 깊이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한여름의 미소     /초야 박상종

 

여름 산빛 바다 빛 어우러지고

산등성이 갯바위 위에 얹어

손발 물에 담가 시원한 가슴

 

실바람 나풀거리고

초록빛 해초 바위

나란히 춤추며 일렁이는

 

저기 무리 지어 어울리는

듬성듬성 보이는

작은 물고기 떼

 

여울져 가는 한 시절에

미소가 화사하게 머리에

아른거리고 있을 때

 

그 한여름에 미소가

다시 떠오르는 저 산기슭에

붉은 태양처럼

 

반사하여 서서히 바다를

검붉게 물들이고 있는

저녁노을은

 

천년이고 만년이고

한번 올까 되새기다

돌아가는 시나브로

 

다시 세월 딛고 또 다른

삶을 기다리고

넌지시 남 시선 애태우는

 

눈에 뜨인 시야는 그렇게

점점 멀어져

기약 없는 손을 내밀어

 

그렇게 다시는 오지 않을 미소로

너스레 웃음 살며시 머금고

돌아가는 초록빛 여울

 

 

한여름 밤의 기도     /정연복

 

대지를 뜨겁게 달구던

태양이 서산너머 가니까

 

간간이 시원한 바람 불어

한결 숨통이 트입니다.

 

땡볕에 조금은 더

초록이 짙어졌을 이파리들

 

오늘 하루의 고단함을 씻으려

가만히 잠들어 있습니다.

 

아직은 한여름

가을이 오려면 한참 남았으니

 

밉다고 등 돌리지 말고

더위를 사랑으로 품게 하소서.

 

하루하루

한여름 밤마다

 

불꽃같이 열정적인 사랑이

가슴에 꽃 피는 꿈을 꾸게 하소서.

 

 

한여름       /정찬경

 

작열하는 태양 아래

개미 한 마리 없다

세상이 잠시 정지하였다

 

맹꽁이는 숨 고르기

저승사자 초고리처럼

세상을 주시하고 있다

 

뱀이 늘어지니

모든 중생이 흐느적거린다

 

삶이 무기력하고

권태가 이 땅을 지배할 때

벌 한 마리가 날아온다

 

한여름에

마른벼락보다

벌침 한방 쏘여 보자

 

 

한여름 밤에 쓰는 편지     /김순진

 

쬐어라 쬐어라

젊은 가슴팍 등골에 땀 괴도록

풀무질한 대장간 불덩이 처럼 쪼이더니

여우고개 길섶 인동덩굴 시들하고

텃채마밭 오이덩굴 조립도록 쪼이더니

서산에 숨은 태양아

이 여름밤 한 여인을 위한

주빈메타의 씸포니 오케스트라를 듣는가

반딧불이 세 마리 불빛이라도 좋구

등잔불 호야불이라도 좋으며

오왓트 전구 불빛이라도 좋다.

조금의 달빛이라도 새어들거들랑

한 여인을 그리는 젊은 가슴으로

편지를 쓰리라.

 

한여름의 오후     /정찬열

 

파란 하늘에

솜털 같은 하얀 구름

동영상을 보는 듯 환상에 나래 속에

 

외롭게

질주하는 철탑 사이로.

모였다 흩어지는 푸른색 도화지에

 

뜨거운 바람결

흐느적거린 솜털 그림에

들짐승 날짐승 새털구름 새로워라

 

언덕배기

저만큼 뒤집힌 초록 잎이

갈증에 목이 말라 뒤 짚인 잎 세

한 자람 커 보겠다던 끝 오름 넝쿨 새순

 

한낮 땡볕에

검은 구름 그리워도

넓게 펴진 구름에 열기를 식혀보지만

 

유례없는 8월의

타는 열기에 목이 말라, 한낮 오후

비 내려줄 먹구름이 몹시도 기다려진다.

 

 

한여름 밤의 실루엣      /최영준

 

열대야 밤이면 선풍기 바람에서 살 냄새가 난다 체온의 열기가 목까지 차오르고 알몸뚱이를 핥는 바람의 혀끝이 귀를 간질인다 어둠속에서도 관성처럼 방향과 속도를 잃지 않고 궤도운동을 반복한다 뜨거워진 심장에서 절정에 이른 열기를 내뿜자 밤하늘 하트성운이 붉게 타오른다 주변의 놀란 별들은 눈망울만 깜박거리고 수줍은 별들은 꼬리를 감추지 못한 채 멀리 달아난다


은하수의 꼭지점, 변광성이 보내오는 보랏빛 혹은 물빛 모르스 신호, 잠이 없는 별나라 여자와 나누는 대화, 열대야 밤이면 별이 된 내 몸에서도 누군가에게 보내는 뜨거운 전파가 쏟아져 나온다

 

 

한여름 꿈의 장례식      /박미산

한여름이다
잠에 자물쇠를 채웠나보다, 그녀는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는데도 눈을 뜨지 않는다
눈을 뜨지 않는 게 아니라 눈동자를 버린 거다
여기저기 매달린 링거병을 따라
그녀의 눈동자를 찾으러 간다

초록빛 당근을 키우던 꿈도
탐스럽게 매달던 포도알 꿈도
색색의 실로 토끼의 귀를 짜던 꿈도
고양이 눈을 그려 넣던 꿈도
호미도 대바늘도 코바늘도 다 버린,
그녀와 나를 이어주었던 배꼽에 얼굴을 묻는다

급박하게 숨 쉬던 그녀
매미의 복화술사 같은 숨소리가 잦아든다
텅 빈 동공에서 쏟아져 나온 아이들이
무기력하게 얼어붙는다, 한여름인데도

13층 병실에서 밖을 내려다본다
가로수, 자동차, 오토바이, 십자가,
자전거, 사람들이 뒤섞여 이승의 험한 길들을 자유롭게 건너가고 있다

 

한여름 밤에 모닥불을 피우는 것은    /정세일

 

한여름 밤에도 모닥불을 피우는 것은

당신과 함께 강가에서

서로 밤을 밝히면서

가슴에 숨겨진 뜨거움을 강물에 비쳐보려고 해서입니다.

 

당신의 강물에 붉게 비치는 얼굴은

강물 불빛속에서도 여름만큼이나

뜨겁고 자신이 있어보입니다

한여름밤 모닥불에 비치어 빨간빛으로 돌아가는 강물을

우리는 바라보면서

슬프고 외로운 일이 있을때면

저 강물처럼 돌아서 가자고 마음을 비쳐봅니다.

 

그리고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을때는

저 강물에 비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운 저 산처럼

마음을 두드려 주고 변함없이 어깨를 기대어주어서

서로 말없이 기뻐하며 웃어주자고 말을 합니다.

 

우리는 강물에 우리들의 마음을 비쳐보면서

행복처럼 언제나 가슴을 따뜻하게 해줄수 있는

언덕이 되어주자고 생각을 합니다

한 여름밤에도 우리들이 모닥불을 피우는 것은

가슴에 활활 타오르는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같은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강속으로 마음이 같이 빨려들어 가고있습니다.

 

 

한여름       /김수영

 

마흔 나이에 막내 낳은 어머니

몸져 누웠다

젖은 나오지 않고 비 오듯 땀을 쏟으며

온몸이 짓물러 갈때

 

외당숙 할아버지 술 한병 가져왔다

푸른 솔잎 사이 먹구렁이 한 마리

머리를 꼿꼿이 쳐들고 새까만 눈을 뜬 채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 구렁이 어머니 몸을 빌려

뒤란의 우물에 가득 찬 서늘한 기운을

다 들이켜고 그림자 없이 사라졌다

 

그뒤, 쓴것이 입에 당긴다고

쓴 것만 골라먹고 다시 젖이 돈 어머니

 

 

한여름으로 가는 길목    /은파 오애숙

 

여름으로 향하는 길목

봄 날의 향그럽던 향기로

만개한 찔레꽃은 그 옛날

내 엄니 품 맘껏 누리라

온누리 웃음꽃 피더니

 

하늬바람 결 따라서

저만치 낙조 타고 갔는데

훅~ 스미는 진한 치자향에

엄니가 그리운 건 이순을

훌쩍 넘긴 까닭인가

 

황금색 물감 쓰려고

어린 날 무명옷감에다

물 드리던 유년의 기억과

어깨 부상당했을 때의

아련한 기억의 회로

 

여름으로 가는 길목

내 엄니 해박한 지식과

풋풋한 사랑 치자 향기 속

그리움의 물결들 퐁퐁퐁

가슴에 피어나는구려

 

한여름밤      /고종목

 

설설 한여름밤이 끓는다.

북태평양 고기압 기류가 세력을 확장

설설설說舌卨 한반도 땅이 폭설爆舌로 끓는다.

속옷만 걸친 설舌 설레발친다.

한강변의 풍설風舌 날개에 날개 달고

여의도 공원 소나무 벚나무 단풍나무 흔들고

풀뿌리 틱틱 건드리고

배꼽 바지 배꼽 티 사이 배꼽을 흘끗흘끗

폭탄머리 꽃미남의 어깨 가슴 툭툭 친다.

붉은색 노란색의 악마떼

서울 천도 설화舌火 거리로 쏟아져

도로를 설설 넘쳐 설설舌舌 끓는다.

와 와 와 짝짝짝 엇박자 끓는다.

지구 밖으로 롱―슛

한여름 설전舌戰 열대야

 

 

한여름의 초록      /休安 이석구

 

가랑비가 자분자분

싱그런 초록 위에 내려앉은 뒤

영롱한 빛이 그리는

아름다운 희망을 본 적 있나

 

바람 한 줄 세차게

우악비 몰고 지난 뒤

모진 삶에 주저앉아 방울방울 눈물 흘리는

초록의

다친 영혼을 본 적 있나

 

어뜩하여라

한여름의 초록

그 자그마한 세계에조차

끊임없이 갈마드는 희망과 절망

 

구름 더러 거니는 하늘

오늘은 또 그것이

가랑비일까

아니면 우악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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