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정연복
꼭 얼굴을 마주대해야만
만남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없어도
생겨나는 만남이 있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크다 못해 깊고 간절하면
둘의 몸이 떨어져 있고
설령 지구 반대편에 있을지라도
시간과 공간 너머
정신과 영혼으로 만날 수 있다.
만남 /정연복
지금까지 지상에서
육십 년 나그네길 걸으면서
만남과 이별을 가진 사람들
손가락으로 다 헤아릴 수 없는데.
물리적 거리로는
나랑 가장 가까운 존재요
내 안에 있으면서도 문득
낯선 타인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나.
이 목숨 끝나는 날까지
결코 헤어질 수 없는
나와 만나서 그동안
보낸 시간은 얼마쯤이나 될까.
다시 만남 /나태주
한 줌 향기로만
전해져 오는 그대 마음
하늘의 별이라도
쏟아져 내렸는가
커다란 눈 껌벅껌벅
너무 그렇게 예쁘게
웃지 마시구려
어지러워 어지러워
나는 그만 눈을
감을 수밖엔 없었습니다.
흥겨운 만남 /임보
늦은 봄날 오후
종로3가 허름한 추어탕집에서
옛 친구들(고교 동창생) 몇이 만나
보쌈에 소주, 막걸리, 맥주 몇 가지 술을 놓고
각기 제 취향대로 마시며 떠들어댄다
동장을 지낸 P군이 얼마 전에 프랑스 다녀온 얘기를
외교관으로 출세한 아들 자랑 곁들이면서
신명나게 한다
“……어느 바닷가를 갔는데 말이시
금발의 한 미녀가 아이를 데리고 백사장을 거닐고 있어서
‘내 귀는 하나의 소라껍질…’
장콕도의 시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흔들더라고…”
(그것도 며느리에게 통역을 시켰다나
그 며느리 속으로 별종의 시아비라고 했으리)
방송국 앵커 출신의 R군은 일곱 살짜리 손자에게 푹 빠져
그놈을 위한 시를 매일 쓴다며 한 편 가져와서 읽어주는데
제목이 「차라리」다
“…… 녀석이 요새 ‘차라리’라는 어려운 부사를 터득해서
즐겨 사용하고 있단 말이시… 차라리 잘래, 차라리 밥 먹을래…”
고슴도치도 제 새끼를 함함하다 한다는데
늦게 본 손자 얼마나 귀엽겠는가?
사업가 S군은 고등학교 때 극장에 몰래 드나들다 정학당한 얘기
(그때는 왜 그랬는지 생활지도부 교사들이 극장에 온 학생들을
검거하여 정학을 시키곤 했다)
‘로마의 휴일’의 그레고리 팩, 오드리 헵번 정도는 나도 알지만
그는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영화들과 배우들의 이름을
청산유수로 꿰고 있다
대학 입학시험을 보기 위해 처음 서울에 와서
내 나이 또래의 여관집 딸이 그의 어머니에게 들려주던
신명난 영화 얘기를 문틈으로 엿들으며
감미로운 서울말씨에 흠뻑 빠졌던 추억이 떠올랐다
‘OK목장의 결투’! 버트 랜커스터, 커크 더글라스…!
한잔씩 들어가자 오입 얘기다
종3, 전에는 이 근처가 얼마나 유명한 성지(性地)였던가?
붉은 등들이 골목마다 밤을 밝히고
멋모르고 붙들려 들어가 동정을 빼앗겼던 얘기며
체콘지 유곤지― 어느 서양나라에 가서
푸른 눈의 슬라브 여인을 어쩌지 못하고 눈만 들여다보았다는 얘기며
탱탱한 흑인 여인… 그래도 역시 동양여성이라는…
힘은 다 빠지고 입만 살아 있는
산수(傘壽)에 접어든 늙은이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젊은 날의 추억에 빠져
채신머리없이 허덕이고 있다.
만남에 대해 /임재화
이 세상 삶의 이치가
그 어떤 것, 모든 것 알고 보면
모두 다 하나로 귀결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전생의 인연이 있어
오늘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돌고 도는 윤회의 업장에 따라
언제나 다시 만나고
또다시 헤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때로는 한 조각의 구름이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것처럼
인간의 삶의 모습도
자연의 섭리와 이치를 닮아서
모였다 흩어졌다 하겠지요
작은 구름이 모여서
비, 바람, 천둥과 번개를 부르고
또다시 흩어지는 것처럼
한바탕 인생 연극 마무리할 때
이 세상 소풍도 잘 끝내고
귀천하는 것이겠지요.
만남 /민만규
만남에 만남을
더해가니
새록새록 정이 쌓이고
안 보면 보고 싶고
잠시라도 소식 없으면
몹시 궁금해지고
이렇듯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봄 햇살처럼 다가옵니다
꽃 피고
벌 나비 춤추면
새로운 추억을 담을
기대와 설렘으로
내 마음은
벌 나비 길동무하고
꽃길 따라나섭니다
푸른 가시연꽃의 노래 13 /임보
- 만남
이제껏 내가 넘고 넘은 수많은 산들은
당신을 만나러 가는 지름길이었고
이제껏 당신이 건너고 건넌 수많은 강들은
이 몸을 어서 만나려는 나룻길이었습니다
우리의 만남을 위해 두 생애는 빚어졌고
우리의 오늘을 위해 천고는 비롯했습니다
참 신비롭기도 해라
아득한 두 생명의 길이여
설령 누가 영원의 삶을 내게 준다 해도
당신과의 하루와 바꾸지 않겠습니다
만남 /유화
그대가 그리울 때는
아무 말 없이 여행을 가요.
한적한 시골길에서
그리움 지칠 때까지 있지요.
그것은 입이 무거워 지는 일
그것은 말이 소중해 지는 일
사랑이 그리울 때는
한적한 골짜기에서
별 없는 밤 헤이며
잠들을 때까지 있는 거지요.
이제 우리는 비로소 별의
그리움을 알게 되는 겁니다.
만남 /이재환
인생길 희로애락
굴곡도 많다지만
계곡물 굽이굽이
바다로 흘러가듯
인연은 돌고 돌아
언젠간 만나겠지
지금은 힘들어도
조금만 힘을 내자
견우와 직녀 /정연복
일년에 단 한번
음력 칠월 초이렛날 밤
우리 둘은
오작교에서 만나요.
그리움의 시간은
너무 길고요
만남의 시간은
너무 짧아요.
뭇 사람들의 가슴속
전설이 되어버린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만남과 이별 /정연복
지상을 거니는
나그네 인생길에서
모든 만남의 끝에는
이별이 있다.
미치도록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때가 되면
헤어지게끔 되어 있다.
영원한 만남
영원불멸의 사랑은 없어
이별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으니.
아직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
매 순간 최후의 만남이라 여기며
더욱 애틋이 사랑하자.
간절한 만남 /鞍山백원기
그 옛적 에덴에서부터
평화롭게 살기를 바랐지만
제멋대로 살다가 쫓겨났지
떼어놓아 만나고픈 간절함
목소리만으로는 되지 않게
애가 타는 벌 받고 있다
몸의 벌은 참으면 되지만
마음의 벌은 풀 죽은 삶
서로 숨결 못 느끼고 볼 수 없어
안타까운 고통의 흐름
못 만나는 벌은 마음 아픈 벌
북적이던 때 그리운 울적한 마음
살다 보니 이상한 시절도 있네
눈도 바라보고 입도 바라보아
어쩌고저쩌고 주고받았으면
갓난아기로부터 어른까지
따로따로 외딴섬에 살고 있다
만남의 설렘 /손계 차영섭
달이 밤에 나에게 오는 것도 반갑지만
해와 아침에 만남보다는 못 하고
자연이 나에게 베풂이 크다 하지만
왠지 사람의 베풂보다는 못 하네
누굴 만난다는 건 대단한 일이야
도움을 주고받는 비중 보다는
만났다는 자체에 의미가 많지
그의 과거와 현재를 몽땅,
일생을 짊어지고 만났기에,
있고 없고를 가리지 말 것
높고 낮고를 재지 말 것
좋고 나쁘고 문제 삼지 말기를,
전화만 통해도
몸은 오지 않고 정신만 만남이니
그런대로 참 반가운 일이야
꽃의 향기를 맡는 것처럼,
만남 /김용호
누가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만나
더불어 산다는 것은
고통과 기쁨이 동반된다는 것을
다 알 수 있는 세상
언제나 함부로 팽개쳐 버릴 수 없는
시간 속에 만남은 안 해도 될
허공에 떠도는 안개 같은 서로의
근심을 마주 앉아 서로 흡수하는 것
둘이 하나가 되어 어느 부위를
떼어 내고 이 때문에 아프고 허전해서
후회가 되더라도 묵묵히 아픔을 참고
꽃이 향기를 풀벌레에게 빼앗기지 않고
어느 소중한 부위를 아픔을 참고
떼어 내지 않고서는 열매가 될 수
없듯이 만남과 과정과 결과는 온전한
자기 상실임을 기억하며 사는
우리가 되자
만남 /송근주
강이나 내를 건널 수 있는
인공 구조물 다리
불편함을 없애고
편리하다
사람과 사람
친구와 친구
만남
징검다리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