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詩心에젖어

낙엽에 관한 시

낙엽 / 이생진

한 장의 지폐보다
한 장의 낙엽이 아까울 때가 있다
그때가 좋은 때다

그때가 때묻지 않은 때다
낙엽은 울고 싶어하는 것을
울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은 기억하고 싶어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은 편지에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낙엽을 간직하는 사람은
사랑을 간직하는 사람
새로운 낙엽을 집을 줄 아는 사람은
기억을 새롭게 갖고 싶은 사람이

 

단풍 / 정건우

한 줄기에 살았었다고
똑같이 물드는 건 아닌가 보다

이파리 하나마다
바람 한 뼘, 햇살 한 줌
이슬 몇 방울
마디 하나하나가 온통 절박하구나
저마다의 세상을
울긋불긋 매달은 사연들

층층으로 뻗어 나간
가지 끝에서
서로 다른 애절함으로 속을 끓이다
끝내 혼절해버린
저 생각 있는 빛깔들.

 

낙엽 / 이생진

가을은 향수(鄕愁)가 병이다
나무는 나무대로
벤치는 벤치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낙엽과 유사한 병을 앓는다.

 

낙엽송 / 신달자

가지끝에 서서 떨어졌지만
저것들은
나무의 내장들이다

어머니의 손끝을 거쳐
어머니의 가슴을 훑어 간
딸들의 저 인생 좀 봐

어머니가 푹푹 끓이던
속 터진
내장들이다

 

 

가을, 읽지 않음 / 허영숙

단풍 보러 가자는 말
몇 번이나 미루고
열흘 후쯤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약속만
너에게 남겼던 것인데
성급한 단풍이 저물까
혼자 단풍버스를 타고
온몸에 단풍을 적셔 돌아오는 길에 너는 그만
그 가을을 베고 모로 누웠다

바스락거리는 낙엽
눈으로라도 밟아 보라고 차곡차곡 쌓아 보낸
사진 속 너의 가을을 읽고
내년에는 같이 단풍 보러 가자고 전송한
나의 답은 여전히 읽지 않음,
영원히 읽지 못할 문장으로 박제되었다

미룬 약속의 후회가 슬픔을 후벼파고
바싹 마른 가을 숲이
천근의 눈물에 젖어 그렁그렁 휜다

너를 태운 운구버스 곁으로
여전히 단풍버스는 단풍단풍 달리고
남은 자들의 가을을 밝으며 너는
조문하는 은행나무 노란 잎그늘을 지나
그 가을로 가서는
영원히 귀가하지 않았다.

 

단풍든 나무들에게 / 김용두

예수처럼
허공에 매달려서 피를 흘려야겠다
추위가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도
바람이 희롱하며
옷을 나눠 가져도 견뎌야겠다
알몸으로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하늘만 보고 서 있어야 한다

당분간
주검으로 있다가
예수처럼 부활해야겠다
푸른 생명을 위해.

 

 

낙엽의 자유 / 이남일

세상에 한 번도 다가가보지 못한
한 가닥 길을 향해
끝없는 낙엽이 하늘을 떠도는 길
날개처럼

떨어지고 싶지 않은데
하늘과 땅이 서로 그리워하는
그 구름처럼
낙엽은 자기의 꿈을 버린다

 

 

노란 잎 / 도종환

누구나 혼자 가을로 간다
누구나 혼자 조용히 물든다

가을에는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대 인생의 가을도 그러하리라

몸을 지나가는 오후의 햇살에도
파르르 떨리는 마음

저녁이 오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저 노란 잎의 황홀한 적막을 보라

은행나무도
우리도
가을에는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의 풍경 속에서 우리는 마치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듯,

삶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나하나 떨어지는 낙엽은 단지 자연의 일환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잔잔한 울림을 남깁니다. 

가을의 바람에 실려 떨어지는 그 낙엽은 

마치 지나간 시간들을 담은 작은 기억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삶의 덧없음을 고백하는 듯 합니다. 

그렇지만, 낙엽은 단지 떨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이 다시 땅에 쌓여 새로운 형태를 이루는 과정 속에서, 

변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낙엽이 주는 쓸쓸함과 아쉬움 속에서도, 

그것이 다시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며 완성되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삶의 끝과 시작이 이어지는 순환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됩니다. 

낙엽이 말하는 것은 단지 끝이 아니라, 

그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입니다.

가을의 낙엽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은 복잡합니다.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삶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발견하려 합니다.

 낙엽은 그 자체로 우리가 가진 감정의 깊이를 풀어내는 매개체이자, 

마음 속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낙엽은, 잠시 동안 우리를 슬프게도 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지며, 

그 답을 찾도록 이끌어줍니다.

결국, 낙엽이 주는 이 감동은 우리에게 자연의 순환과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무한한 아름다움을 일깨워줍니다. 

떨어지는 낙엽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의 예고편과도 같습니다. 

그것이 다가오는 겨울의 추위를 맞이하기 위해 사라지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며,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낙엽은 그저 계절의 변화일 뿐 아니라, 

삶의 작은 파편들이 모여 결국 한 편의 시를 이룬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詩心에젖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첫 눈 오는날 만나자-정호승  (0) 2024.11.27
고향에 관한 시 모음  (0) 2024.11.20
고향에 관한 시 모음  (0) 2024.11.19
11월-나태주 詩  (0) 2024.11.07
11월의 시 모음 및 해설  (0) 2024.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