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관한 시모음
고향산천 가는 길 /반기룡
나무와 새와 수풀이
덥석 악수를 청하며
달려드는 댓속 같은 오솔길이 심술을 부린다
그많은 사람들은
눈길 한번 주지않고
상여꾼처럼
꾹꾹 발걸음만 던져놓은 채 사라진다고
깔깔대던 까치도
꼬리치던 강아지도
발매한 산처럼 헛헛한 웃음만 토해내고 있다고
그렇구나
문명의 이기가
흙내음 신발창에 매달고 가던
푸른 추억을 삼켜버렸구나
고향산천 가는 길은
황토흙 같은 엄청난 쓸쓸함 즈려밟고
끈적거리는 발걸음만 동여맨 채 사납게 달음질 친다
고향의 강물 2 /강현옥
짙은 황토 빛
거품 물고 애끓는
강물로 다가가 보면
사람들의 근육에서 발생한
유행성 균들이 걸어 다닌다
발걸음에 울렁거리는
가슴속을 들여다보면
발자국마다 묻어 나온
세균들이 불면의
눈을 뜨고 어디론가 길을 낸다
한 무더기 어둠을 풀어놓고
떠나가는 밤은
수렁배미 논길 지나
정처 없이 사라진다
내 어미와 어미의 어미가 살던 땅
흐르다 지친 강물 마시며
노 쇠된 손들만 닳고닳은 삽으로
강바닥의 앙금을 파 올리고 있다
고향은 언제나 /정태중
돌아 가고 싶다
어릴적 내가 뛰놀던
개울 흐르는 고향으로......
맑은 공기
맑은 햇살
틔없이 맑은 마음 간직한
그 시절로.......
어둠 내리면
바다 같이 깊은
별빛 헤아리던
아스라한 기억
멀리 보이는
목장 산 기슭
칙 뿌리는
어찌나 좋았던지
잠시 나마
세상 시름 벗어 두고
돌아 가고 싶다
고향으로......
내 고 향 /박태원
떠나 살면 설웁더라.
못 가면 그립더라
생각하면 아련하고
마음만 찡하더라
세월을 뒤로하고
살아온 지난날이
십 년을 몇 번 세어
주마등 되어 떠오르네
내 놀던 뒷동산을
꿈속에 달려갔네
초가집 지붕에
박 익는 내 고향
고향 그리며 /유영서
보리밭이랑
종다리 우짖는 소리에
봄은 오는가
재 너머
긴 밭에 워낭소리 울리고
한 점 떠가는 구름에
소 풀 뜯기며
보리피리 불던
어린 시절 그립구나
향기 따라 뛰놀던
고향 산천 아
낯선 도회지에
마음 붙이지 못한
외로운 나그네
고향 하늘 그리며
하염없이 눈물 흘린다.
고향이 허전해진다 /돌샘 이길옥
또 한 분이 꽃상여를 타고 이사를 가신다.
고락을 같이 하던 친구 두어 분 담벼락을 등지고 앉아
마지막 선물로 받은 하얀 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먼저 가서 좋은 자리 잡아놓으라 손을 흔든다.
부러움과 서운함이 손끝에서 펄럭인다.
떠나신 분의 빈자리를 바람이 앉았다 간다.
젊음이 출렁이고
개구쟁이들이 헤집고 다니던 골목으로
간난 아기 울음소리 따라나서던 때 언제였던가.
할아버지 불호령이 담을 넘던 때 언제였던가.
젊은 새댁이 샘 길 밟던 때 언제였던가.
골목에 적막이 뱀처럼 기어 다닌다.
주인 잃은 폐가에서 푸석푸석 먼지가 인다.
마당에 돋은 잡초도 힘이 없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나오는 발길에 으스스 한기가 밟힌다.
흥청거리던 옛날이 삭아 내리고 있다.
꽃상여가 동네를 떠난다.
또 한 채의 집이 주인을 보내고 서운해 한다.
싸늘한 추위가 몰려와 자리를 차지한다.
고향이 허전해지고 있다.
고향 사람들 /최홍윤
내 고향에,
고향에 가면은
낯선 사람은 보이질 않고
군대(軍隊)생활 빼고는 단 한번도
고향을 등지지 않은 사람들이
오순도순 살고 있네
읍내 오일장 중매로
맺어진 청순한 사랑,
평생 연분으로 살아온 한 백 년의 언약.
순백의 사랑이 아직도 다 영글지 못해
못다한 사랑의 언어, 입가에서
오물 오물거리는데,
이제
몇 안 남은
저 도타운 정(情)마저 끊기면 어쩌나
나도, 고향처럼 훌쩍 늙어버리고
해거름에 뻐꾹새 더 슬피 우는데
이 일을 어찌하나?
그리운 고향 /문경기
전원의 정취 풍기던 그리운 고향
흐르는 세월의 변화에 순응하며
번화한 멋진 신도시로 변모하였는데
어린 시절 뛰어놀던 산과 들녘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채
아파트 대단지로 조성되었고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으로
가족의 웃음꽃이 피어나던
고향 옛 집터는 공원이 되었다
추억이 깃든 집터 버드네 공원
그리움이 동백꽃으로 피어나
그 향기 거리 거리를 가득 채우면
사라진 옛 고향의 정든 흔적들은
아름다운 모습을 고이 간직하고서
추억 속으로 강물이 되어 흘러간다
우리 故鄕 /장건섭張建燮
열 길은 가도
별 하나는 거기 있어라
철선을 두르고
몇 발자국 멀어져 간 땅
거기
우리 故鄕 안동네엔 아직도
물 좋은 우물
그 선한 마음들
여전히 있을까
계절은, 또 다시
국방색으로 익어가도
저 쪽 너머로는
새 한 마리 날지 않는다
지금은
별을 이고 사는 이들
그대도 새로운 날에는
금속성 불발탄이
자꾸 터져 나오는 것을 본다
우리의 가슴속엔
귀에 맺힌 피멍울
그대로가 담겨져
짙게 슨 녹빛 비슷하게
바투 쥔 나의 주먹
거기에
먼 곳의 사람들
지금은
고구마를 바치는 힘없는 노인네의
헤벌어진 입을 생각한다
저 쪽 앞산엔
또 나 같은 녀석
별똥 떨어지는 그리운 우리 땅으로
넘치는 눈물만 총부리로 겨누는
우리는 고향 그리는 나이 든 젊은이.
고 향 /이한명
당신은 오늘도
시장 모퉁이 술집에 앉아
찌그러진 빈바구니
두드리고 있습니까
떠는 해 지는 달에 주름잡힌
당신 모습
보고파 천리길 찾아왔지만
정 두지 못해 돌아선
이 마음 어이하리요
재 너머 뒷논에
우거진 잡초랑
마을어귀 메마른 논밭은
또 어이하리요
이 봄 안타까와
떠나지 못하는데
당신은 오늘도 시장모퉁이
술집에 앉아
찌그러진 빈 바구니 두드리고 있습니까
고향 길 /오보영
편안한 길
생각을
다듬던
나만의 사색 길
언제 걸어도
다시 또 걷고 싶은
좋기만 한 길
추억이 서린
사랑이 깃든 길
내 故鄕 /김억金億(岸曙)
내 고향은 곽산의 황포가외다
봄노래 실은 배엔 물결이 놀고
뒷산이란 접동 꽃 따며 놀았소.
천리 길도 꿈속엔 四.五십리라
오가는 길 평양은 들려 놀던 곳
어제 밤도 가다가 또 못 갔쇠다.
야속타 헤매는 맘 낸들 어이랴
지는 꽃은 오늘도 하늘을 날 제.
아지랑이 봄날을 종달새 우네.
육로천리 길 멀다 둘 곳 없는 밤
이날도 고향 찾아 떠나는 것을.
고향의 추억 /신성호
봄이 오면 아름답던 뒷 동산엔
지금도 뻐꾸기는 울고 있을까
많은 세월이 흘러 갔어도
그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빨간 철죽꽃 곱게 핀 산마루 위에
종달이 높이 날아 노래하던 곳
달빛 아래 친구들과 함께 뛰 놀던
그 작은 잔솔밭은 어디로 갔을까
그 시절 흙담 위엔 나팔꽃이 피고
초가집들 머리 맞대고 속삭이던 곳
그 아름다운 시절을 그리려 하니
그곳이 나의 살던 고향이었네
고향 /강선기
먼 하늘을 보았는데
구름이 떠나고 있었노라
그대 어딜가냐고 물어오는 달빛
마음이 가는 곳 그리움을 만나로
바람에게 길 물어 떠나리
내마음 두고온 그곳에
아직도 봄꽃은 수줍고
여름나무는 푸른데
떠날 준비하는 가을낙엽은
그저 슬피우는 처량한 기다림
이기지 못하네
눈물 같은 이슬만 머금네
고향이라 떠나온 날
찿아가는 그날에는
아침안개만이 마중나오네
바람이 지나는것처럼
나도
그곳을 지나는 바람인가보다
'詩心에젖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雪)에 관한 시 모음 (0) | 2024.11.27 |
---|---|
첫 눈 오는날 만나자-정호승 (0) | 2024.11.27 |
낙엽에 관한 시 (0) | 2024.11.19 |
고향에 관한 시 모음 (0) | 2024.11.19 |
11월-나태주 詩 (0) | 2024.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