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봄, 첫 봄, 이른 봄에 관한 시 모음
이른 봄, 전정 /강희창
언몸에 볕이 왔다고
어여어여 나오라지만
무성하다고 튼실한 건 아니다
조바심은 웃자라고 시간은 번거롭다
곁가지에 곁가지로 움터 내비둔 싹수
한때 반야봉을 보고 음심을 품던
젊은 날들을 하마 용서하련다
제일 두려운 것은 나였으므로
치렁한 겉치레에 몸은 진실을 말하라네
그래 단박에 근심을 쳐낼 일이다
열매 맺지 못한다면
그건 참 나무가 아니다
깨우는 말씀은 여전하여서
잠시 허공을 찌르던 생각들 꺾어
깡똥한 매무새로 하늘을 안는다
살구나무의 무릅이 가뿐해졌다
초봄 앞에서 /조남명
어김없는 봄기운은
숨은 얼음장을 녹이고
냉기를 온화하는데
꽃샘추위야 어찌
자연의 섭리를 당할 수 있으랴
암토暗土에서 솟아오르는
여린 몸짓들
그 활기찬 생명력
숲 속엔 꽃, 나무의
숨소리 거칠고
땅속 생명은 요동친다
눈 속 복수초는 핀지 오래고
개울물 소리에
버들강아지는 솜털 눈을 부릅뜨는데
봄은 이미 여인 치맛자락에 와 있었네.
이른 봄 /제산 김대식
매화가 하얗게 꽃잎을 여는데
부푼 꽃망울에 봄인가 하였더니
꽃샘 난 추위가 아직 봄이 아니라네.
따뜻한 양지에 고개 내민 새싹들
작은 꽃들도 고개 들고 폈는데
매서운 찬바람, 아직 봄이 아니라네.
얼음 풀리고 개구리도 나오고
물오른 나무들 움이 트는데
하얗게 내리는 눈, 아직 봄이 아니라네.
꽃 소식에 봄이 왔다. 마음 활짝 열었는데
하얗게 덮인 흰 눈, 가지 않은 겨울
아직은 겨울이 세상을 덮고 있네.
이른 봄 /나태주
나뭇가지에
둑길에
강물 위에
하늘, 구름에
수채화 물감으로
번지는
햇살
방글방글
배추 속배기로
웃는 아가
웃음
밝은 나라로
더 밝은 나라로
초봄 그리고 꽃샘바람 /김선욱
바람에게 덜미 잡혀
옴짝도 못한 채
논두렁 밑에 잔뜩 웅크렸던 햇살
졸졸졸 유혹하는 도랑물 소리에
바람이 먼눈파는 새...
천지사방으로 내려앉으며
온땅에 온기 한껏 불어 넣는다
큰개불알꽃
이제야 내 세상이다, 며
굳게 닫아뒀던 몽우리 활짝 펼치고
후생은 하늘정원에서 피어나리라, 꿈도 꾸고
잠시 헛눈팔아 억하심정이 된 바람
먼 강 살얼음 깨지는 소리로 치달려오고
웅덩이에 넙죽 엎드렸던 고요도
슬몃슬몃 도망가고
애먼 꽃이 된
큰개불알꽃
바람의 포살로 찰카닥
모가지 끊어지며 바닥에 나뒹군다
우리네 인생사도
가끔은 이러하다
첫 봄 /김계반
잔설 소복한 징검돌
돌돌아 흐르는 산 개울
돌 틈새 종아리 걷고
물장구치는 올롱강생이
올롱 올롱 올롱강생이
올롱 올롱 올롱강생이
통통 튀는 물방울에
살얼음 오른 뺨
호 호 입김 불어
무지개 꽃피우는 봄볕
* 올롱강생이~버들강아지의 경상도 방언
산골짝의 이른 봄 /홍대복
주인 없는 외양간 기웃대며
산자락 넘나드는 바람 난 샛바람의 외출
덩달아 씨 강냉이
처마 밑에 매달려 한가롭게 그네 타고
곳간의 잡동사니 잠꼬대가 드높다
실눈 뜬 누렁이 일광욕이 여유롭고
가파른 자갈밭에 늙은 황소 쟁기질 버겁지만
산골짝에 찾아든 또 한 해의 이른 봄은
새소리, 워낭 소리, 부지런한 농부가가 정겹다
이른 봄 계곡 /박명용
겨우내
무겁게 쌓였던 변비
통쾌하게 풀렸다
소리까지 시원하게 내지르며
흘러내리는 물
산이 쏟아낸 찌꺼기인가
제 속 다 비워
오히려 푸른 몸 되는 지혜
벌써부터 눈앞이 울창하다
버릴지 모르고
뱃속 가득 채운
내 돌 같은 변비
이 봄도 그냥 지나는가
계곡에 앉아 걱정하다가
악취 없는 폐수를
벌컥벌컥 들이마시는
이른 봄 계곡
이른 봄산을 오르다 /윤성택
빈몸으로 초대하는 나무들이 있다
걷다 보면 산은 돌아누우며 어느새
좁은 샛길을 열어 보인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올라
오르는 것이 산 앞에 조금더 겸손해 질 즈음
바람은 나뭇가지를 빗질하며
눈부신 햇살을 쏟아 놓는다
좁은 길 하나 사이로 서로 뿌리를 잇대고
가지를 잇댄 나무들
사랑하라 사랑하라
고개를 끄덕이며 귀엣말로 속삭이는 것 같다
언제나 갑갑한 넥타이에 매여
꽉찬 만원버스에 섞여
이정표도 없이
지금껏 얼마나 흘러 왔던가
세상 살아가며
한 해 한 해 나이테를 생각하며
봄산에 올라간다 묵묵히 겨울을 이겨낸
나무들의 수화를 배우러 간다
층계를 밟아 오르며 나를 짓눌렀던
삶의 무게 떨쳐 버리고 싶을 때
하늘을 나누어 이고
서로 넉넉히 몸 맞대다 보면 알 수 있을까
저 아래 도시에서 키웠던 허물 많은 것들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얼마나 슬퍼지는가를
가리울 것 없는 이른 봄산에 올라서면,
나의 황량한 정신에 초록 물을
들이고 싶다
이른 봄 /장충열
햇살에 물들어 졸고 있는 노파
손등에서 봄이 쭈글거리며 고개를 든다
좌판에 생을 늘어놓고 앉은 모습이
푸릇한 유년 속의 어머니 같아서
안부처럼 꼭 들르게 되는 시장 한 켠
칠십을 훨씬 넘겼지만
나물 캐던 아가씨 적 그 시절이 어제 같다고
"나도 아직 여자인가 봐"하시는…
불우이웃을 위해 번 돈의 일부를 기도로 낼 때
제일 행복하시단다
단골이 많아 자식 공부 시킬 수 있었다며
소녀처럼 웃으신다
살아온 흔적이 맑은 할머니의 웃음
나는 무엇으로 웃는가
씁쓸한 양심이 부끄러워 웃는가
진한 봄내 가득한 할머니가
넉넉하게 웃음을 듬뿍 담으신다
모처럼 가족들과 봄 앞에 둘러앉겠다
이른 봄의 詩 /천양희
눈이 내리다 멈춘 곳에
새들도 둥지를 고른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웃으며 걸어오고 있다
바람은 빠르게 오솔길을 깨우고
메아리는 능선을 짧게 찢는다
한줌씩 생각은 돋아나고
계곡을 안개를 길어올린다
바윗등에 기댄 팽팽한 마음이여
몸보다 먼저 산정에 올랐구나
아직도 덜 핀 꽃망울이 있어서
사람들은 서둘러 나를 앞지른다
아무도 늦은 저녁 기억하지 않으리라
그리움은 두런두런 일어서고
산 아랫마을 지붕이 붉다
누가, 지금 찬란한 소문을 퍼뜨린 것일까
온 동네 골목길이
수줍은 듯 까르르 웃고 있다.
이른 봄 /이규리
그 분하고 같은 된장찌개에 숟갈을 넣었을 때
그렇게
아찔할 수가 없었다
냄비 안에서 숟갈이 부딪혔을 때
그렇게
아득할 수가 없었다
먼 곳에서 희미하게 딩딩 종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이것이 끝이라 해도 끝 아니라 해도
다시 된장찌개에 숟갈을 넣었을 때
하얗고 먼 길 하나 휘어져 있었다
같은 아픔을 보게 되리라 손가락이 다 해지리라
어떻게 되든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다
누추하기 이를 데 없는 곳으로 한 순간이 다가와 연(緣)을 두었고
슬픔을 결심하게 하였으니
지금도 아련히 더듬어 가 보는 그 햇빛 속
수저 소리 흐릿하게 남아 있던 그 점심나절에
내 일 모르듯 벙글던 흰 꽃들 아래에
이른 봄 /이환규
창밖으로 비켜가는 햇살이
따뜻하게 얼굴을 부비는 오후
구름한점 없는 맑은 하늘을
두줄로 가르는 비행운
파란 하늘에 하얀 물감으로
봄을 그려보고 싶었을까
눈돌려 끝을 찾아보아도
구름은 햇살에 부서지고 얇아진다
마당 한구석에 패다만 장작더미
비스듬히 기대어 졸고있는 도끼
아직은 찬바람에 군불 지핀 아궁이
뜨거운 열기에 놀랬나 보다
긴터널에서 뛰쳐 나온 봄
겨울이 그 발목을 부여 잡는다
이른 봄 아침 /정지용
귀에 설은 새소리가 새여 들어와
참한 은시게로 자근자근 얻어맞은듯
마음이 이일 저일 보살필 일로 갈러저
수은방울처럼 동글동글 나동그라저
춥기는 하고 진정 일어나기 싫어라
쥐나 한마리 훔켜 잡을 듯이
미다지를 살포-시 열고 보노니
사루마다 바람 으론 오호! 치워라
마른 새삼넝쿨 새이 새이로
빠알간 산새새끼가 물레ㅅ북 드나들듯
새새끼 와도 언어수작을 능히 할가 싶어라
날카롭고도 보드라운 마음씨가 파다거리여
새새끼와 내가 하는 에스페란토는 회파람이라
새새씨야, 한종일 날어가지 말고 울어나 다오
오늘 아침에는 나이 어린 코끼리처럼 외로워라
산봉오리 ㅡ 저쪽으로 몰린 푸로우ㅇ피일 ㅡ
페랑이꽃 빛으로 볼그레 하다
씩 씩 뽑아 올라간, 밋밋하게
깎어 세운 대리석 기둥 인듯
간ㅅ뎅이 같은 해가 익을거리는
아침 하늘을 일심으로 떠바치고 섰다
봄ㅅ바람이 허리띄처럼 휘이 감돌아서서
사알랑 사알랑 날러 오노니
새새끼도 포르르 포르르 불려 왔구나
이른 봄 산에 오르니 /손계 차영섭
이른 봄 산에 오르니
굳었던 흙이 녹아
찰떡 같구나!
뿌리들이 몸을 풀고
물도 마시니
가지마다 희소식 전하겠네
가지와 가지 사이로
연한 기운이 맴돌고
노란 산수유며 분홍 진달래 빛,
연지 곤지 찍었구나!
졸참나무는 아직도 깊은 잠,
낙엽마저 꼬옥 쥐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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