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배우는 이유 |
또한 수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마음을 집중하고 생각을 다잡아 인성을 수양할 수 있고 숨겨진 원리를 탐구하고 깊은 의미를 찾아내어 지혜를 증대시킬 수 있으니 이러한 수학의 효능이 음악이나 독서와 어찌 다르겠는가. 且習是法者, 其潛心攝慮, 足以養性, 探賾鉤深, 足以益智, 此其功豈異於琴瑟簡編哉! 차습시법자, 기잠심섭려, 족이양성, 탐색구심, 족이익지, 차기공기이어금슬간편재! 홍대용(洪大容, 1731~1783), 『담헌서(湛軒書)』 「주해수용서(籌解需用序)」 |
대체 수학을 왜 배워야 하지?
많은 사람들이 학창 시절에 수학 시간마다 혹은 수학 성적이 나올 때마다
입버릇처럼 하던 질문이다. 물론 수학을 배우는 이유를 깊이 성찰해보겠다는 의지를 담은 질문은 아니다. 그저 너무 어렵고 재미도 없고 평균 점수만 깎아 먹는 수학에 대한 미움의 표현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의문은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 홍대용은 『주해수용』이라는 수학서를 저술하고서 서문에서 수학의 ‘실용(實用)’을 말했다.
먼저 ‘회계(會計)’로 글을 시작한다. 지금 쓰는 회계와 거의 같은 의미이다. 재정을 담당한 관리들은 당연히 수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수입과 지출 관리, 세금 부과와 수납, 환곡의 운용, 농지의 측량 등 수를 다루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재정 뿐이 아니다. 천문이나 음악에서도 수에 대한 연구는 필수적이다. 즉 수학은 쓸모가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통일신라 때부터 산학, 즉 수학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제도를 운영하였고 취재(取才)라는 채용시험을 통해 인재를 선발해 필요한 부서에 임용하기도 하였다. 현대에도 수학의 쓸모는 크다. 사실 옛날보다 훨씬 크다.
과학 기술과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의 바탕에 수학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이 글을 보기 위해 사용하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역시 수학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는 물건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수학의 실용성이 과연 우리가 수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될까?
홍대용의 시대에 회계를 담당하는 사람의 숫자는 한정적이었다. 지금 시대에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여기에 사용된 수학을 이해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업무나 일상생활에서 수학의 필요성을 체감할 일은 없다. 그러니 실용성만으로는 수학 교육의 가치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수학은 그밖에 우리에게 또 무엇을 줄 수 있을까? 홍대용은 인성의 수양과 지혜의 증대를 수학 공부의 목적 혹은 효능으로 제시한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몰입하는 행위는 집중력과 인내를 기를 수 있다. 인성의 수양이다. 답이 나오기까지의 풀이 과정과 적용된 원리를 깊이 사유하여 이해함으로써 논리적인 분석력과 독자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얻을 수 있다. 지혜의 증대이다. 수학이 만들어낸 현대 문명은 역설적으로 이러한 수학의 효능을 필요로 하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도파민을 폭발시키는 온갖 볼거리, 즐길거리가 해야 할 일에 몰입하는 능력을 고갈시킨다. 알고리즘은 세상의 다양한 측면보다 각자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하고 그중에는 가짜 뉴스도 많다. 이는 스스로 통찰하고 판단하는 습관을 마비시킨다. 사람들은 점점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인 정신 상태에 익숙해진다. 이미 오래 전에 현대 문명의 폐해를 간파하고
해결책을 탐색했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수학적 사고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진실에 관한 가장 확연하고 아름다운 서술은 결국 수학적 형태를 취해야 한다.
산술의 규칙뿐만 아니라 도덕 철학의 규칙도 그렇게 단순화할 수 있어서, 하나의 공식이 그 둘 다를 나타낼 것이다. -Henry David Thoreau, A Week on the Concord and merrimack Rivers,
Penguin Classics, 1998, p.291. 에드워드 프렌켈, 『내가 사랑한 수학』에서 재인용. 우리가 수학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
배워야 하는 것은 단순히 수를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불필요한 주관과 감정을 배제하고 대상의 본질을 논리적으로 인식하고 분석하고 표현하는 정신의 습관을 기르는 법이다. 그럼으로써 수학은 홍대용이 말한 것처럼 예술이나 인문학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인격과 지성을 도야하는 데에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즉 우리가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게 만들 수 있다. 머리는 좀 아프겠지만. |
글쓴이: 최두헌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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