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강 / 고증식
건널 수 없어라
네 사슴에
비수로 꽂은 말 몇 마디
긴긴 젖은 편지로 달려
밤새 울음이고 싶은데
안개 속 서성이며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 고증식,『하루만 더』(도서출판 애지, 2010)
새벽 강 / 이성선
가을 새벽
벽과 마주 앉으면
그 사람이 몸 던진
강물에
한 그루 나무가 비친다.
썩은 손가락 떨어질 때마다
비어진 그 자리가 더 번쩍이던
문둥병자처럼
그대
잎 다 떨어져 뒹굴고
붉게 타던 몸뚱어리 모두 흩어져
앙상한 뼈대로만
강에 떠 있는 사람
강물이 내게로 흘러온다.
빈자(貧者) 하나를 데리고
새벽 강이 내게로 흘러온다.
- 이성선,『새벽꽃 향기』(문학사상사, 1989)
새벽강에서 / 이상국
밤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나무와 풀들이
서로 모르게
몸에 묻은 피를 씻어내고 있다
어둠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늘도 강에 내려와
찬물에 아랫도리를 씻는 새벽
누가 밤새 울던 소 같은 밤을
강가에 내다 매고 돌아간다
어둠을 내다 버리고 돌아간다
- 이상국,『어느 농사꾼의 별에서』(창비, 2005)
새벽 강에서 / 박노해
이 너른 세상에
서로 마주보는 두 사람의 모습은
얼마나 가슴 떨리는 기쁨인가
마주보던 두 사람이
함께 앞을 보는 모습은
얼마나 눈물겨운 아름다움인가
우리 길을 잃어버렸네
그대와 나 사이에 강물은 말라가고
함께 바라볼 앞이 무너져버렸네
나 이제 조용히 가슴 치며
다시 사랑을 배워야 하네
뜨거운 마주봄이 아니어도
일치된 한 길이 아니어도
서로 속 아픈 차이를 품고
다시 강물을 이루어야 하네
건널 수 없는 산과 산이 무릎을 맞대며
빈 들판을 휘감아 흐르듯이
이 아득한 천지간에
먼 듯 하나인 듯
새벽 강물로 다시 흐르는 두 사람의 모습은
얼마나 큰 슬픔인가 아름다움인가
- 박노해,『겨울이 꽃 핀다』(해냄출판사, 1999)
새벽 강에서 / 김은숙
신새벽 물안개 입고서
웅성거리는 얼룩 씻어내는
저 강 물살 센 뒤척임 불현듯
내 안으로 길을 내 든다
이제껏 흘러온 어제와 오늘 뒤엉키고
저 생에서 이 생으로 오래 건너온 인연 줄기
서로 다른 뿌리들 뒤섞여 흐느긴다
아직도 서늘한 물밑 뒤척임 거칠고
삭지않는 울음줄기 무겁고 길다
섧다 저리 담담히 각각의 줄기로 흘러도
물밑 깊은 속 그 바닥에 닿으면 이미
속속들이 한 몸으로 섞여흐를 것인데
바닥에 이르지 못하는 발길 홀로 쓸쓸하니
저 바닥 깊은 곳부터
웅숭깊이 여물어 가는 강물소리에 귀기울이며
그리움도 푸르른 새벽 강으로
무명(無明)의 내 몸 물빛 길을 낸다
- 김은숙,『아름다운 소멸』(천년의시작,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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