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채운◈글방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상촌 신흠 詩



매화는 일평생 추위에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언젠가 좌석에서 '매화는 일평생 추위에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  매일생한불매향)라는 말이

퇴계 이황선생의 좌우명인데 알고 있느냐고 묻는 사람을 보았다.

 그러더니 한 술 더 떠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더라고 하였다.

널리 알려져 있는 것처럼 이 말은 퇴계 선생의 좌우명이 아님은 물론이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말하니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인데 말하는 사람은 당당하게 소리를 높이고 있다. 


퇴계선생께서 이승을 떠나시면서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

 “매화분에 물을 주라”고 하셨다는 일화, 매화를 ‘매형(妹兄)’,

‘매군(梅君)’, ‘매선(梅仙)’으로 호칭하신 기록, 지극하신 매화 사랑,

그리고 매화시를 75제(72제?) 107수 지으시고, 그 중 91수를 추려서

따로 ’매화시첩‘ 책을 제작하신 사실 등을 알고 있다 보면

위와 같은 ’가짜뉴스‘가 나와도

긴가민가하여 말을 잘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이 자료를 올려본다.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이나

 ‘매한불매향(梅寒不賣香)’  같은 표현은

이미 고대 중국 육조(六朝)시대부터

 특히 송나라이래로 문인이나 선비들이 즐겨 사용하던 표현들이다.


 그것은 매화가 동지섣달 눈서리 내릴 때 피기도 하고, 정월, 이월 한 겨울일 때,

이미 꽃부터 피어나기 때문에 삭막한 추위 한파에도 굴하지 않고

 피어나는 그 모습이 의리와 지조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군자, 선비들에게는 닮고 싶은 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바로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문장은

조선 선조 때 상촌 신흠(象村 申欽 1566~1628)선생이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읊은 한( 漢詩)  ‘야언(野言)’에 나오는 것으로서

지금도 병풍 글씨 등에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상촌(象村)선생은 퇴계선생께서 돌아가실 때,

겨우 네댓 나이인데 이것이 어찌 퇴계선생의 좌우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상촌선생의 한시 ‘野言’ (야언)은 표절 작품이 되고 만다.

상촌선생의 한시 야언을 올려본다.


            野言(야언)


                象村 申欽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노항장곡)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柳經百別又新枝(류경백별우신지)


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가락을 품고 있고


매화는 한평생 추위에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질은 그대로이고


버들은 백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돋아난다.


상촌 신흠(象村 申欽)선생은 평산신씨(平山申氏)로 조선시대 사대문장가에 속한다.

학문과 인품이 높고 문장에도 뛰어났으며 행정 능력도 인정받은 분이다.

또한 개혁적인 학문태도로 그 당시 조선 성리학계에서 이단으로 철저히 비판받아

 설자리조차 없이 무시당하던 '양명학(陽明學)’을 높이 평가하는 태도를 가진 분이다.

 광해군 때, 도승지(都承旨), 병조판서(兵曹判書) 등을 역임하였으나,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폐위시키는 계축옥사(癸丑獄事, 1613)때

 영창대군을 죽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다가 파직되어 고향인 강릉에서 칩거하였다.

그 때, 광해군이 상촌을 살려준 것은 아버지 선조와 상촌이 사돈지간이었기 때문이었다.

후에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일어난 후 다시 복직되어 좌의정, 영의정을 지냈다. 

 

출처:몽천미래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