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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詩


 

5월을 드립니다 / 오광수 시인

당신 가슴에
빨간 장미가 만발한
5월을 드립니다

5월엔
당신에게 좋은 일들이 생길 겁니다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좋은 느낌이 자꾸 듭니다

당신에게 좋은 일들이
많이 많이 생겨나서
예쁘고 고른 하얀 이를 드러내며
얼굴 가득히 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
당신 모습을 자주 보고 싶습니다

5월엔
당신에게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좋은 기분이 자꾸 듭니다

당신 가슴에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5월을 가득 드립니다.


 


 
5월의 시 / 이문희 시인


토끼풀꽃 하얗게 핀
저수지 둑에 앉아
파아란 하늘을 올려다보면
나는 한 덩이 하얀 구름이 되고 싶다.
저수지 물 속에 들어가
빛 바랜 유년의 기억을 닦고 싶다.

그리고 가끔
나는 바람이 되고 싶다.
저수지 물위에 드리워진
아카시아꽃 향기를 가져다가
닦아낸 유년의 기억에다
향기를 골고루 묻혀 손수건을
접듯 다시 내 품안에 넣어두고 싶다.

5월의 나무들과
풀잎들과 물새들이 저수지 물위로
깝족깝족 제 모습을 자랑할 때
나는 두 눈을 감고
유년의 기억을 한 면씩 펴면서
구름처럼 바람처럼 거닐고 싶다.
하루종일 저수지 둑길을 맴돌고 싶다.

 

 

 5월이 오면

무언가 속을 흐르는 게 있다.
가느다란 여울이 되어
흐르는 것.

이윽고 그것은 흐름을 멈추고 모인다.
이내 호수가 된다.
아담하고 정답고 부드러운 호수가 된다.
푸르름의 그늘이 진다.
잔 무늬가 물살에 아롱거린다.

드디어 너, 아리따운
모습이 그 속에 비친다.
오월이 오면
호수가 되는 가슴.

그 속에 언제나 너는
한 송이 꽃이 되어 방긋 피어난다.


(김용호·시인, 1912-1973)


 

 오월의 숲에 들면

어지러워라
자유로워라
신기가 넘쳐 눈과 귀가 시끄러운
오월의 숲엘 들어서면

까치발로 뛰어다니는 딱따구리 아기 새들
까르르 뒤로 넘어지는 여린 버드나무 잎새들
얕은 바람결에도 어지러운 듯
어깨로 목덜미로 쓰러지는 산딸나무 꽃잎들

수다스러워라
짓궂어라
한데 어울려 사는 법을
막 터득한 오월의 숲엘 들어서면

물기 떨어지는 햇살의 발장단에 맞춰
막 씻은 하얀 발뒤꿈치로 자박자박 내려가는 냇물
산사람들이 알아챌까봐
시침떼고 도넛처럼 꽈리를 튼 도롱뇽 알더미들
도롱뇽 알더미를 덮어주려 합세하여 누운
하얀 아카시 찔레 조팝과 이팝꽃 무더기들
홀로 무너져 내리는 무덤들조차
오랑캐꽃과 아기똥풀 꽃더미에 쌓여
푸르게 제 그림자 키워가는 오월의 숲

몽롱하여라
여울져라
구름밭을 뒹굴다
둥근 얼굴이 되는
오월의 숲엘 들어서면


(김금용·시인, 서울 출생)



 

5월이 오면

언제부터 창 앞에 새가 와서
노래하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심산 숲내를 풍기며
5월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 산의 꽃이 바람에 지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꽃잎 진 빈 가지에 사랑이 지는 것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오늘 날고 있는 제비가
작년의 그놈일까?

저 언덕에 작은 무덤은
누구의 무덤일까?

5월은 4월보다
정다운 달

병풍에 그려 있던 난초가
꽃피는 달

미루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듯
그렇게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달
5월이다.


(황금찬·시인, 1918-)




 오월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득료애정통고 -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 실료애정통고 -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피천득·수필가, 1910-2007)




5월

저, 귀여운 햇살 보세요
애교떠는 강아지처럼
나뭇잎 핥고있네요

저, 엉뚱한 햇살 보세요
신명난 개구쟁이처럼
강물에서 미끄럼 타고있네요

저, 능청스런 햇살 보세요
토닥이며 잠재우는 엄마처럼
아이에게 자장가 불러주네요

저, 사랑스런 햇살 보세요
속살거리는 내 친구처럼
내 가슴에 불지르네요


(김태인·아동문학가)


 5월의 느티나무

어느 비밀한 세상의 소식을 누설하는 중인가
더듬더듬 이 세상 첫 소감을 발음하는
연초록 저 연초록 입술들
아마도 지상의 빛깔은 아니어서
저 빛깔을 사랑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초록의 그늘 아래
그 빛깔에 취해선 순한 짐승처럼 설레는 것을
어떻게 다 설명한다냐
바람은 살랑 일어서
햇살에 부신 푸른 발음기호들을
그리움으로 읽지 않는다면
내 아득히 스물로 돌아가
옆에 앉은 여자의 손을 은근히 쥐어보고 싶은
이 푸르른 두근거림을 무엇이라고 한다냐
정녕 이승의 빛깔은 아니게 피어나는
5월의 느티나무 초록에 젖어
어느 먼 시절의 가갸거겨를 다시 배우느니
어느새
중년의 아내도 새로 새로워져서
오늘은 첫날이겠네 첫날밤이겠네

(복효근·시인, 1962-)

 




 논물 드는 5월에

그 어디서 얼마만큼 참았다가 이제서야 저리 콸콸 오는가
마른 목에 칠성사이다 붓듯 오는가

저기 물길 좀 봐라
논으로 물이 들어가네
물의 새끼, 물의 손자들을 올망졸망 거느리고
해방군같이 거침없이
총칼도 깃발도 없이 저 논을 다 점령하네
논은 엎드려 물을 받네

물을 받는, 저 논의 기쁨은 애써 영광의 기색을 드러내지 않는 것
출렁이며 까불지 않는 것
태연히 엎드려 제 등허리를 쓰다듬어주는 물의 손길을 서늘히 느끼는 것

부안 가는 직행버스 안에서 나도 좋아라
金萬傾 너른 들에 물이 든다고
누구한테 말해주어야 하나, 논이 물을 먹었다고
논물은 하늘한테도 구름한테도 물을 먹여주네
논둑한테도 경운기한테도 물을 먹여주네
방금 경운기 시동을 끄고 내린 그림자한테도,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구한테 연락을 해야 하나
저것 좀 보라고, 나는 몰라라

논물 드는 5월에
내 몸이 저 물 위에 뜨니, 나 또한 물방개 아닌가
소금쟁이 아닌가


(안도현·시인, 1961-)




그해 오월의 짧은 그림자 / 진수미

 

사랑을 했던가 마음의 때,

그 자국 지우지 못해 거리를 헤맸던가
구두 뒤축이 헐거워질 때까지

낡은 바람을 쏘다녔던가
그래 하기는 했던가

 

온 내장을 다해 엎어졌던가

날 선 계단 발 헛디뎠던가

하이힐 뒤굽이 비끗했던가
국화분 위 와르르 무너졌던가
그래, 국화 닢닢은 망그러지든가

짓이겨져 착착 무르팍에 엉겨붙던가

 

물씬 흙 냄새 당기든가
혹 조화는 아니었는가
비칠 몸 일으킬 만한던가
누군가 갸웃 고개 돌려주던가
달려오던가

 

아야야, 손 내밀던가
그래, 그 계단 밑,
아픈 복사뼈, 퉁퉁 붓고, 화끈 화끈 그게
사랑이라며
탈골하며 환하게 바람 스미던가 그래
사랑이던가 그 누군가는 혹.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5월 / 오세영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부신 초록으로 두 눈 머는데

진한 향기로 숨막히는데


마약처럼 황홀하게 타오르는

육신을 붙들고
나는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아아 살아 있는 것도 죄스러운
푸르디푸른 이 봄날

 

그리움에 지친 장미는 끝내
가시를 품었습니다

먼 하늘가에 서서 당신은
자꾸만 손짓을 하고..

 


 


5월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부신 초록으로 두 눈 머는데
진한 향기로 숨막히는데

마약처럼 황홀하게 타오르는
육신을 붙들고
나는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아아, 살아있는 것도 죄스러운
푸르디푸른 이 봄날,
그리움에 지친 장미는
끝내 가시를 품었습니다.

먼 하늘가에 서서 당신은
자꾸만 손짓을 하고......,


(오세영·시인, 1942-)




 5월의 그대여

그대여
눈부신 햇살이 저 들판에
우르르 쏟아지고
계곡마다 초록선율 넘쳐흐르는데
아직도 그리움에 목말라
웅크리고만 있는가
때는 바야흐로
소박한 아카시아도 불붙는 날들인데
가시를 두른 장미도 별이 되는 날들인데
어이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는 건가


(임영준·시인, 부산 출생)




 5월의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

당신이 빨간 장미라면
나는 하얀 안개꽃이 되고 싶어요
나 혼자만으로는 아름다울 수 없고
나 혼자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고
당신 없이는 온전한 풍경이 될 수 없는 꽃

당신의 향긋한 꽃내음에 취해
하얗게 나를 비워도 좋을 꽃
그 잔잔한 꽃잎마다
방울방울 맺힌 그리움으로
당신만의 고요한 배경이 되고 싶어요

가끔 당신의 빛깔이 지칠 때나
가시 돋친 당신의 가슴이 아플 때면
당신을 위해 하얀 노래를 부르겠어요
눈 내리는 어느 날, 한 마리 겨울새가 불렀던
그 순백의 노래를

제발 내 곁을 떠나지 말아 달라고
알알이 꽃망울을 터뜨리며
애원하듯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꽃
당신의 어깨에 기대어
이대로 하얗게 잠들었으면

당신 곁에 있으면 작아서 더 예쁜 꽃
여린 꽃 숨결이 멈출 때까지
소망의 은방울 종소리를 울리며
당신과 단둘이
사랑의 꽃병에 영원히 갇히고 싶어요


(이채·시인이며 패션 디자이너)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꽃봉오리 벌어질 때
나의 마음속에서도
사랑의 꽃이 피었어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새들 노래할 때
나의 불타는 마음을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했어라.


(하인리히 하이네·독일 시인, 1797-1856)




 

5월의 시... 이해인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축복의 서정시를 쓰는 오월
  
하늘이 잘보이는 숲으로 가서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게 하십시오
  
피곤하고 산문적인 일상의 짐을 벗고
당신의 샘가에서 눈을 씻게 하십시오

물오른 수목처럼 싱싱한 사랑을
우리의 가슴속에 퍼올리게 하십시오
  
말을 아낀 기도속에 접어둔 기도가
한송이 장미로 피어나는 오월
호수에 잠긴 달처럼 고요이 앉아
불신했던 날들을 뉘우치게 하십시오
  
은총을 향해 깨어있는 지고한 믿음과
어머니의 생애처럼 겸허한 기도가
우리네 가슴속에 물 흐르게 하십시오
  
구김살 없는 햇빛이
아낌없이 축복을 쏟아내는 오월
어머니 우리가 빛을 보게 하십시오

욕심 때문에 잃었던 시력을 찾아
빛을 향해 눈뜨는 빛의 자녀가 되게 하십시오

 

 

 

 

 

5월의 노래(1) / 괴테 

오오 눈부시다 
자연의 빛 
해는 빛나고 
들은 웃는다.

나뭇가지마다 꽃은 피어나고 
떨기 속에서는 
새의 지저귐 
넘쳐 터진는 
이 가슴의 기쁨.


대지여 태양이여 행복이여 환희여!
사랑이여 사랑이여!

저 산과 산에 걸린 
아침 구름과 같은 금빛 아름다움.

그 크나큰 은혜는 
신선한 들에 
꽃 위에 그리고 
한가로운 땅에 넘친다

소녀여 소녀여.. 

나는 너를 사랑한다 
오오 반짝이는 네 눈동자 
나는 너를 사랑한다.

종달새가 노래와 
산들바람을 사랑하고 
아침에 핀 꽃이 
향긋한 공기를 사랑하듯이 
뜨거운 피 가슴치나니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게 청춘과 
기쁨과 용기를 부어라. 
새로운 노래로 그리고 춤으로 나를 몰고 가나니 
그대여 영원히 행복하여라 
나를 향한 사랑과 더불어.. 

 

 

5월 아침의 노래 / 밀턴

 

마침 낮의 사자, 눈부신 햇볕이 
동쪽에서 춤을 추며 나타나 
꽃같은 5월을 이끌면 
그녀는 푸른 무릎에서 노란 구륜초와 
여린 빛 앵초를 집어 던진다.

환희와 젊음과 따스한 모정을 북돋우는 
풍요한 5월이여, 환호하라

숲과 잔풀은 그대의 옷으로 단장했고 
언덕과 골짜기는 그대의 은덕을 자랑했나니

그래서 우리는 아침 노래로 그대를 맞아 
환대하며 오래 머물러 주길 기원하노라.

 

 

5월의 노래(2) / 괴테 

밀밭과 옥수수밭 사이로, 
가시나무 울타리 사이로, 
수풀 사이로,

나의 사랑은 어딜 가시나요? 

말해줘요!

사랑하는 소녀 
집에서 찾지 못해

그러면 밖에 나간 게 틀림없네 

아름답고 사랑스런 
꽃이 피는 5월에

사랑하는 소녀 마음 들떠있네 

자유와 기쁨으로

시냇가 바위 옆에서 
그 소녀는 첫키스를 하였네

풀밭 위에서 내게 
뭔가 보인다! 
그 소녀일까?

 

 

 

아, 오월 / 김영무

파란불이 켜졌다 
꽃무늬 실크 미니스커트에 선글라스 끼고
횡단보도 흑백 건반 탕탕 퉁기며 
오월이 종종 걸음으로 건너오면..

아, 천지사방 출렁이는 
금빛 노래 초록 물결 
누에들 뽕잎 먹는 소낙비 소리 
또 다른 고향 강변에 잉어가 뛴다.

 

 

 

 

고귀한 자연 / 벤존슨(1572-1637) 영국

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나무가 크게만 자라는 것과 다르다

참나무가 3백 년 동안이나 오래 서있다가

결국 잎도 못 피우고 마른 통나무로 쓰러지기 보다

하루만 피었다 지는

5월의 백합이 훨씬 더 아름답다.

비록 밤새 시들어 죽는다 해도

그것은 빛의 화초요, 꽃이었으니

작으면 작은대로의 아르마움을 보고

삶을 짧게 나눠보면 완벽할 수 있는 것을..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하이네

 

(독일시인-Heinrich Heine 1797-1856)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꽃봉오리 벌어질 때

 

나의 마음 속에서도

 

사랑의 꽃이 피었어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새들 노래할 때

 

나의 불타는 마음을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했어라.

 

모든 꽃봉오리 벌어질 때

 

나의 마음 속에서도

 

사랑의 꽃이 피었어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새들 노래할 때

 

나의 불타는 마음을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했어라.

 

 

 

 

그해 오월의 짧은 그림자 / 진수미

사랑을 했던가 마음의 때,

그 자국 지우지 못해 거리를 헤맸던가 
구두 뒤축이 헐거워질 때까지

낡은 바람을 쏘다녔던가 
그래 하기는 했던가

온 내장을 다해 엎어졌던가 

날 선 계단 발 헛디뎠던가

하이힐 뒤굽이 비끗했던가 
국화분 위 와르르 무너졌던가 
그래, 국화 닢닢은 망그러지든가

짓이겨져 착착 무르팍에 엉겨붙던가

물씬 흙 냄새 당기든가 
혹 조화는 아니었는가 
비칠 몸 일으킬 만한던가 
누군가 갸웃 고개 돌려주던가 
달려오던가

아야야, 손 내밀던가 
그래, 그 계단 밑, 
아픈 복사뼈, 퉁퉁 붓고, 화끈 화끈 그게 
사랑이라며 
탈골하며 환하게 바람 스미던가 그래 
사랑이던가 그 누군가는 혹.

 

 

5월 / 권경업

물오른 보릿대궁 
하늘대는 밭고랑 끝에 
산자락은 
버선발을 살며시 올려놓고 
짙푸른 짧은 치마 
수줍다고 얼굴 가리네


재넘어 영마루에 
뭉게 구름 피어오르고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빛 속에 
칡 캐는 아이들의 마음은 
짖궂은 바람 따라 
이리저리 물결치며 
푸르른 오리나무 숲으로 가네. 

 

 

 

5월 / 김상현

나와 봐
어서 나와 봐

찔레꽃에 볼 부벼대는 햇살좀 봐 
햇볕 속에는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려고 
멧새들도 부리를 씻어

들어 봐
청보리 밭에서 노는 어린 바람소리 
한번 들어 봐 
우리를 부르는 것만 같애 
자꾸만 부르는 것만 같애 .

 

 

 

5월 김영랑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진다

바람은 넘실 천이랑 만이랑 
이랑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꾀꼬리는 엽태 혼자 날아 볼 줄 모르나니 
암컷이라 쫓길 뿐 
숫놈이라 쫓을 뿐 
황금 빛난 길이 어지럴 뿐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山 봉우리야 오늘밤 너 어디로 가버리련? 

 

 

 

5월 / 오세영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부신 초록으로 두 눈 머는데

진한 향기로 숨막히는데 
마약처럼 황홀하게 타오르는

육신을 붙들고 
나는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아아 살아 있는 것도 죄스러운 
푸르디푸른 이 봄날

그리움에 지친 장미는 끝내 
가시를 품었습니다

먼 하늘가에 서서 당신은 
자꾸만 손짓을 하고..

 

 

 

창 밖은 오월인데 / 피천득

창 밖은 오월인데

너는 미적분을 풀고 있다

그림을 그리기에도 아까운 순간

라일락 향기 짙어가는데

너는 아직 모르나 보다

잎사귀 모양이 심장인 것을

크리스탈 같은 미라 하지만

정열보다 높은 기쁨이라 하지만

수학은 아무래도 수녀원장

가시에도 장미 피어나는데

'컴퓨터'는 미소가 없다

마리도 너도 고행의 딸.

 

 

 

 

푸른 5월 / 노천명

靑磁빛 하늘이

육모정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

연당 창포잎에 ㅡ

여인네 행주치마에

첫여름이 흐른다.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같이 앉은 정오

계절의 여왕 5월의 푸른 여신 앞에

네가 웬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

밀물처럼 가슴속 밀려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어

눈은 먼데 하늘을 본다

긴 담을 끼고 외진 길을 걸으면

생각은 무지개로 핀다.

풀냄새가 물큰

향수보다 좋게 내 코를 스치고

청머루순이 뻗어나던 길섶

어디선가 한나절 꿩이 울고

나는 활나물 가잎나물 젓갈나물

참나물 고사리를 찾던 ㅡ

잃어버린 날이 그립구나 나의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라도 부르자

아니 서러운 노래를 부르자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이 모양 내 맘은

하늘 높이 솟는다

5월의 창공이여

나의 태양이여..

 

 

 

5月 恨 / 김영랑

모란이 피는 오월달

월계月桂도 피는 오월 달

온갖 재앙이 다 벌어졌어도

내 품에 남는 다순 김 있어

마음 실 튀기는 오월이러라.

무슨 대견한 옛날였으랴

그래서 못 잊는 오월이랴

청산을 거닐면 하루 한 치씩

뻗어 오르는 풀숲 사이를

보람만 달리던 오월이어라.

아무리 두견이 애닯아해도

황금 꾀꼬리 아양을 펴도

싫고 좋고 그렇기보다는

풍기는 내음에 지늘꼈건만

어느새 다 해-진 오월이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