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스름 새벽빛이 베란다로 다가오는 기척에 그만 일어나
머리를 툭툭 치고 거실로 나왔습니다.
저라고 일요일에 늦잠을 자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강촌으로의 산행에 합류하지 못할 것 같아
아이들 식사 준비 해놓고 허겁지겁 배낭을 챙겼습니다.
물 끓여 보온병에 넣고, 사진기도 넣었습니다.
글감을 얻든 못 얻든 필기구는 빠트리면 안 되죠.
“이젠 끝”
현관을 나서자 미처 모습을 숨기지 못한 어둠의 꼬리가 막 아파트
마당에 내리는 아침 햇살에 스러지고 있었습니다.
청량리 역에서 출발하는 강촌행 열차는 한동안 여행을 하지 못한
저에게 풍선 몇 개를 가슴에 달아 주었고 차창을 스치고 지나가는
풍광으로 제 몸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었습니다.
강촌역에 도착하자 우리 11인의 전사(?)는 바로 검봉(劍峯)을 향해
진군을 시작했습니다.
검봉은 우리의 점령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초반부터 그 저항이
대단했습니다.
여행은 밥 먹기보다 좋아하지만 등반은 서투른 제게 초반부터의
난코스가 힘들긴 했지만 다행히 아이젠을 가져간 덕분에 그다지
괴롭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오를 수가 있었습니다.
힘든 코스를 지나자 능선의 연속이었습니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은 모처럼 제게 동심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뽀드득”
눈 밟히는 소리가 일상에 지친 저에게 풋과일 같은 청량함을 가져다
주었고 머리끝부터 맑은 기운을 쫙 내리붓고 있었습니다.
쭉쭉 뻗은 잣나무 숲은 금방이라도 눈의 요정이 나올 것 같은
서기(瑞氣)로 충일해 있었고, 햇빛이 닿는 양지쪽은 탄성이 절로
나오는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아~~~~~!!!
하얀 설원에 유리처럼 부서지던 빛의 파편들....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면 아마 전 그 눈밭에 뛰어들어 마구 뒹굴며
얼굴을 비벼댔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해후를 기뻐하듯 차가운 눈발에 입을 맞추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을 겁니다.
수없는 감동의 파노라마를 넘고 넘어 드디어 검봉 정상에 우리는
승리의 깃발을 꽂을 수 있었습니다.
정상에서의 간식 시간은 빼 놓을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컵라면과 김밥 한 줄은 어떤 요리보다 맛있는 별식이지요.
목젖을 넘어 오장을 타고 내리는 한 잔의 술에 모든 피곤을
날려 보내고 하산해 강촌 역 앞에서 다시 한 번 용사들은
의기투합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본격적인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소중한(?) 시간인 셈이죠.
강촌 역에서 기념 촬영도 하고, 서울로 오는 기차에선 다들
피곤한 탓인지 눈들이 감겨 있었습니다.
시나브로 청량리 역에 도착한 선남선녀들,
광장엔 어둠이 장막처럼 커튼을 두르고 있었고 우리는 그냥 집으로
가기엔 뭔가 허전했지요.
“그냥 갈 수 없잖아~ 돌격 앞으로~”
네 명의 주선(酒仙)은 일행에게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또 한 번의
향연을 즐기기 위해 게딱지처럼 엎어진 포장마차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청량리의 밤은 사위어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