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의 네 계절 중 가을> 정신없이 농가의 일 수고롭다가 가을 들어 잠시 잠깐 틈 얻고 보니 단풍 물든 언덕에는 기러기 날고 비 맞은 국화 둘레 귀뚜리 울며 목동은 피리 불며 안개 속 가고 나무꾼은 노래하며 달빛 속 오네 일찍 주워 모으기를 사양 말게나 산 배 산 밤 텅 빈 산에 널렸을 테니 搰搰田家苦골골전가고 秋來得暫閑추래득잠한 雁霜楓葉塢안상풍엽오 蛩雨菊花灣공우국화만 牧笛穿煙去목적천연거 樵歌帶月還초가대월한 莫辭收拾早막사수습조 梨栗滿空山이율만공산 |
- 김극기(金克己, 1150(추정)~1209), 『동문선(東文選)』 제9권,
「오언율시(五言律詩)」. <농가의 네 계절[田家四時] 4수 중 제3수 가을>
참 징그럽게도 덥다. 지금쯤이면 한 풀 기세가 꺾일 만도 한데 아직도 한낮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다. 8월 8일이 입추(立秋)였고, 8월 10일이 말복(末伏)이었으니 그만 더워도 될 듯하지만, 더위는 도통 가실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사정이 이런데도 연구실 에어컨은 외려 더운 기운만 내 뿜는다. 여름이 되면 약속이나 한 듯 늘 고장 나는 에어컨의 모습이 꼭 나와 같아 보인다. “삼복지간(三伏之間)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는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복날은 여름 중에서 가장 무더운 20일을 말한다. 24절기에 속하지 않는 관습적인 절기로, 하지(夏至)로부터 세 번째 경일(庚日)을 초복(初伏), 네 번째 경일을 중복(中伏), 입추로부터 첫 번째 경일을 말복이라고 하는데 열흘 간격으로 오는 복날이 모두 경일이기 때문에 삼복을 삼경(三庚)이라고도 한다. 복날의 ‘복(伏)’자는 여름철 더운 기운에 사람이 개처럼 엎드려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십간(十干) 중에서 가을을, 오행(五行) 중에서 금(金)을 의미하는 경일을 복날로 삼아서 하지 이후의 무더위를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입추는 “가을이 들어선다.”는 의미로, 계절이 바뀌는 것을 알려주는 절기이다. 24절기 중 열세 번째로 대서(大暑)와 처서(處暑) 사이에 있는 절기인데, 올해와 같이 양력으로는 대개 8월 7, 8일 무렵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입추부터 입동(立冬) 사이를 가을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입추와 말복을 다 지난 지금은 가을이어야 하는데, 어디를 보아도 가을 같지 않다. 아니 가을 기운은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다. 가을이 아니라 가을이 간절히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김극기의 이 시를 보면 왜 가을이 기다려지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지금처럼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정신없이 농사 일을 하다가, 가을이 되어 얻은 잠시의 한가함에 둘러본 주위의 풍경은 가을을 기다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단풍으로 물든 골짜기 위를 날아가는 기러기와 비 맞은 국화 떨기 주변에서 울고 있는 귀뚜라미, 피리를 불면서 안개 속을 걸어가는 목동과 노래하면서 달빛 아래 걸어오는 나무꾼의 모습은 수련의 둘째 구에서 말한 잠시 잠깐의 틈[得暫閑]을 통해 얻게 된 가을 풍경으로 한적함과 여유로움 그 자체이다. 여기에 더해 김극기는 미련에서 도치법을 사용하여 자문자답하며 가을의 풍요로움에 대해서까지 말했다. 주인 없는 빈 가을 산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산 배와 산 밤이 썩기 전에 거두어들여야 한다는 것은 다른 어떤 계절에도 불가능한, 오로지 가을에만 맛볼 수 있는 넉넉함과 부유함이다. 이 시는 당시 농가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그려낸 시로 평가받는데, 이 시에서는 가을의 정취를 담고 있는 자연물과 가을이라는 계절에 볼 수 있는 농가의 풍경을 그리고 있는 함련과 경련이 주목된다. 특히 함련에서 단풍의 붉은빛과 국화의 노란빛, 하늘을 나는 기러기와 땅에서 울고 있는 귀뚜라미, 단풍과 기러기를 모두 꾸며주는 서리[霜]와 국화와 귀뚜라미를 모두 꾸며주는 비[雨]의 대비는 이 시가 시적인 기교에서도 뛰어난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와 같은 평가나 시적인 기교보다 이 시에 주목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이 시가 치열하고 고된 여름 이후 맞이한 가을의 한적함과 여유로움 그리고 넉넉함을 편안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를 보면 가을은 기다려질 수밖에 없는 계절이 된다. 지금 세상은 김극기가 살았던 시대와 많은 것이 다르다. 삶의 방식과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김극기가 맞이했던 가을을 지금도 느낄 수 있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의 세상이 아무리 김극기가 살았던 시대와 다르다고 하더라도 더위에 찌들린 상황에서 가을을 기다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 가을이 김극기가 느낀 만큼의 한적함과 여유로움 또 넉넉함을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더위의 고통에서는 벗어날 수 있으니까. 더위에 힘들어질수록 김극기가 맞이했던 가을이 기다려지고, 그 가을에 김극기가 느꼈던 감정을 느끼고 싶어진다. 빨리 가을이 왔으면 좋겠다. 자꾸 가을이 기다려진다. |
글쓴이:윤재환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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