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비리속속리산(山非離俗俗離山)’을 찾아서 |
오래된 길에 사람 자취 사라져 울긋불긋 이끼가 끼었는데,
산이 속세를 떠난 게 아니라 속세가 산을 떠났구나!
古徑無人紫蘚斑, 山非離俗俗離山.
고경무인자선반, 산비리속속리산.
- 황준량(黃俊良), 『금계집(錦溪集)』 권2 「2일 유신(維新 충주(忠州))에 도착하여 속리산을 유람하는 김중원(金重遠 김홍도(金弘度))에게 부치다[二日 到維新 寄金重遠遊俗離山]」
어느새 바람도 제법 쌀쌀해지고 일교차도 커지면서 반팔을 입은 사람들도 부쩍 줄었다. 조금 더 있으면 곱게 물든 단풍을 즐기러 산행(山行)에 나설 이들이 많을 것이다. 단풍 명소의 하나로 속리산(俗離山)을 꼽는데, 이 산에 관한 명구로 ‘山非離俗俗離山’이 자주 회자(膾炙)된다. 인터넷을 훑어보니 이 구절이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의 작품이라고 한다. 더 찾아보면 그가 886년(헌강왕12) 속리산에 와서 ‘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도가 사람에게서 멀지 않은데 사람이 도를 멀리하고, 산이 속세를 떠난 게 아니라 속세가 산을 떠났구나!]’이라는 시구를 지어 산 이름이 ‘속리산’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런데 막상 최치원의 전기(傳記)를 수록한 『삼국사기(三國史記)』나 문집인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고운집(孤雲集)』을 검색해 보면, 그가 이 구절을 지었다는 기록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만년에 산천을 떠돌며 은거 생활을 하던 최치원이 어쩌면 속리산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확한 근거가 없는 이상, 최치원 창작설은 일단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그렇다면 ‘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은 누가 지었을까?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이러한 내용이 있다. 임제(林悌, 1549~1587)가 속리산에 들어가 『중용』을 800번 읽고 “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이라는 시구를 얻었으니, 『중용』의 말을 응용한 것이다. 林悌入俗離山, 讀《中庸》八百遍, 得句曰: “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 用《中庸》語也.(《芝峯類說》 卷14 〈文章部7 詩藝〉) 여기서 ‘『중용』의 말’은 『중용』 제13장의 ‘道不遠人[도가 사람에게서 멀지 않다.]’을 가리킨다. 그런데 정작 ‘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은 임제의 문집인 『임백호집(林白湖集)』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임제의 종제(從弟) 임서(林㥠, 1570~1624)가 1617년(광해군9)에 『임백호집』을 간행하면서 쓴 발문과 『임백호집』의 내용에 따르면, 임제가 20살이 되던 1568년(선조1)에 대곡(大谷) 성운(成運, 1497~1579)의 문하에서 『중용』을 배운 뒤 속리산에 들어가 몇 년 동안 글을 읽었다고 한다. 비록 『임백호집』에 없더라도 그의 작품이 맞다면 ‘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은 속리산 시절에 지었을 것이며, 적어도 이수광은 임제의 작품으로 알고 있었다. 훗날 영남(嶺南)의 선비 노우(魯宇) 정충필(鄭忠弼, 1725~1789)이 1776년(정조즉위) 고향 친구인 이헌유(李憲儒, 1733~1804)에게 보낸 시에서도 ‘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이라는 구절이 보인다. 때마침 이헌유는 옥천 군수(沃川郡守)가 되었는데, 당시 옥천이 속리산 서남쪽으로 하루거리에 있었다. 예전부터 속리산 유람을 하고 싶었던 정충필이 이헌유의 옥천 부임 소식을 듣고서 반가운 마음을 담아 이 시구를 지어 보낸 것이다. 임제가 이 구절을 지었다던 때로부터 약 200년이 흐른 당시에도 ‘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이 속리산 관련 명구로 사용된 예라고 하겠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山非離俗俗離山’을 쓴 사람이 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제자인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 1517~1563)인데, 그의 문집인 『금계집(錦溪集)』에 따르면 1557년(명종12) 3월 2일에 지었다고 한다. 이보다 한 해 전인 1556년 겨울에 황준량은 병으로 사직한 뒤 이곳저곳을 유람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충주(忠州)에 도착했을 때, 그와 교분이 있던 김홍도(金弘度, 1524~1557)가 마침 속리산을 유람하고 있었다. 이때 황준량이 그에게 지어 보낸 시의 맨 앞에 ‘古徑無人紫蘚斑, 山非離俗俗離山.’이라는 구절이 보이는데, 현재로서는 ‘山非離俗俗離山’이 가장 먼저 쓰인 사례로 보인다. 이번에 글을 쓰면서 중국의 포털 사이트 바이두(https://www.baidu.com)를 검색하다가 ‘山非離俗俗離山’에 대해 ‘江似龍黑黑龍江[강이 검은 용을 닮아 흑룡강이네.]’이라는 누군가의 대구(對句)를 보았다. 문맹(文盲)조차 자기도 모르게 성어(成語)를 입에 올린다고 할 만큼 중국인들이 한국인에 비해 한문(漢文)이 언어생활에 녹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江似龍黑黑龍江’만큼은 왠지 모르게 ‘山非離俗俗離山’과 같은 자연스러운 멋이 느껴지지 않는다. 필자만의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
글쓴이:조준호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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