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 오면/장영희
6월이 오면
나는 온종일
사랑하는 이와 향긋한 건초 속에 앉아
미풍 부는 하늘 높은 곳 흰 구름이 지은
햇빛 찬란한 궁전들을 바라보리라
그녀는 노래하고
난 그녀 위해 노래 만들고
하루 종일 아름다운 시 읽는다네
건초더미 우리 집에 남몰래 누워 있으면
아, 인생은 즐거워라
6월이 오면.
6월/김용택
하루 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에
바람이 불고 하루 해가 갑니다
불쑥불쑥 솟아나는
그대 보고 싶은 마음을
주저앉힐 수가 없습니다
창가에 턱을 괴고 오래오래 어딘가를
보고 있곤 합니다
느낌 없이 그런 나를 발견하고는
그것이 당신 생각이었음을 압니다
하루 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해가 갑니다.
6월의 장미/이해인
하늘은 고요하고
땅은 향기롭고
마음은 뜨겁다
6월의 장미가
말을 걸어옵니다
사소한 일로
우울할 적마다
'밝아져라'
'맑아져라'
웃음을 재촉하는 장미
삶의 길에서
가장 가까운 이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무심히 찌르는 가시를
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
부드러운 꽃잎을 피워낼 수 있다고
누구를 한 번씩 용서할 적마다
싱싱한 잎사귀가 돋아난다고
6월이 넝쿨장미들이
해 아래 나를 따라오며
자꾸만 말을 건네옵니다
사랑하는 이여
이 아름다운 장미의 계절에
내가 눈물 속에 피워 낸
기쁨 한 송이 받으시고
내내 행복하소서.
유월에/나태주
말없이 바라
보아주시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합니다
때때로 옆에 와
서 주시는 것만으로도
나는 따뜻합니다
산에 들에 하이얀 무찔레꽃
울타리에 넝쿨장미
어우러져 피어나는 유월에
그대 눈길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나는 황홀합니다
그대 생각 가슴속에
안개 되어 피어오름만으로도
나는 이렇게 가득합니다.
6월에는/나명욱
6월에는
평화로워지자
모든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쉬면서 가자
되돌아보아도
늦은 날의
후회 같은 쓰라림이어도
꽃의 부드러움으로
사는 일
가슴 상하고 아픈 일
한두 가지겠는가
6월의 붉은 장미 /태안 임석순
맑은 구름은 흘러가고
호수는 잔잔히 흐르고
분수는 힘차게 오른다
붉은 장미는 손짓하며
나에게 물으며 다가옵니다
하릴없이 무료한
나를 위로하며 부드러운 듯
숨겨진 돋아난 가시
내가 가는 길 위에
6월이면 담장 넘어 서성이며,
사랑하라 손짓으로 말을 한다
너의 가시는 자존심이라
알아주길 바라며
붉은 장미꽃을 꽃 피웠다
슬퍼하지도
어려워하지도 말아요
붉은 장미를 바라보고
이 아름다운 계절에 함께
사랑을 나누고 행복을 느끼며
붉은 장미 한 송이 받아주세요
6월 비 /오보영
떠나간 님
그리워서 흘리는
아픔의 눈물인지
떠나온 님
빈 가슴 채우려는
은전의 선물인지
잘은 모르겠다만
줄줄 쏟아져 내리는
네 빗줄기가
내 몸을 흠뻑 적셔주누나
내 맘을 시원하게
씻어주누나
6월의 들꽃 /이희춘
포화 속에
고개 떨군 시든 꽃잎
산산이 찢겨
땅속에 묻혀버린 그 날
멈춰버린 시간 속에
선혈로 갓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
외로이 산야를 지키네
유월의 숲 /성백군
유월은 한해의 중심
산마루에서 내려다보면
골짜기, 언덕, 다
삿갓 쓴 구렁, 파도치는 해원이다
훈훈한 바람 불어
이리 출렁 저리 출렁
초록은 짙고 햇살은 눈 부셔 자세히 볼 수 없어도
차라리 잘된 일
여기에 이르기까지 산정에 오르기까지
열어 보면
삭정이도 있고, 벌레 먹은 잎새도 보일 터
왜 아니 수난이 없었겠느냐 마는
지금은 정상이다. 다 옛일
이 기분으로 내려가다 보면
낙엽 지고 나목이 되어도
시원할 터
년 내내 초록물 들겠다.
유월에는 사랑을 하자 /이도연
삶이란
소중한 것들이 가까이 있을 때 알지 못하고
떠나간 뒤에 알게 된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꽃 피었을 때 알지 못하고
꽃이 질 때 아쉬워서 슬퍼한답니다
그리움이라는 단어는 후회와 동의어로
지금 이 순간
소중한 존재를 잊고 살아간 것에 대한 형벌입니다
그립다 그리워하니 더욱 그리워
소중한 것은 곁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한 것을 알지 못하는 우매함입니다
절반의 시간이 가고 절반의 시간을 향해
속절없는 강물은 흐르고 있습니다
유월에는
일월의 그리움이나 십이월에 후회라는 단어는 접어 버리고
내 소중한 것들의 시간을 놓치지 말고
애정의 눈길로 입맞춤해야 하는 것은
떠나간 것은 되돌릴 수 없기에
오늘을 사랑하고
지금 내 곁에
당신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6월의 장미 /오선 이민숙
6월이 오면
민족의 한 서린 핏빛 함성은
거친 숨을 휘몰아치며
푸른 고지로 향해 돌격할 때
지친 산마루 찢긴 살점 사이로
적군의 깃발이 솟아오르면
남은 핏빛을 끌어모아
북으로 남으로 뻗어 갔을 6윌의 장미여!
땅이 휘어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6월에는
님의 넋을 기리는
아군의 함성이 들리는 듯
어느 산야 가시덤불 속에 뒹굴던
주인 잃은 철모는
이름 없는 병사가 각혈을 토해
비목의 숲에 잠들었을 뜨거운 날
눈시울 붉은 장미도 울어버린 날입니다
온 산하를 뒤덮어 메아리치던 그날
호국 영령 이름이 새겨진 현충원에 비석은
그날을 잊지 마라 외치네요
붉다 못해 검붉은 6월의 장미여!
송이송이 조국에 바친 혼이여!
오천만의 가슴에 눈물꽃으로 맺힌
핏빛 장미를 끝끝내 잊지 말아요
5월 가고 6월 오네 /노정혜
가네 가네 봄이 가네
5월이 가고
6월이 오네
온 세상 청 초록 물들였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 두둥실
새들 하늘 나르며
행복 노래 지지배배
보리밭은 황금새 파도
보이곳마다 배 부르다
유월에 메꽃이 피었어요 /이도연
소박한 메꽃이 수줍게 피어나는 계절
시발점과 종점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버스는 유월에 꽃을 피우고 있다
저무는 노을 뒤에 비켜서 있던 눈썹달이 지긋하게 눈을 내리깔고 바라보고 있다
너는 물었지, 저 달이 무슨 달이냐고
초승달이라고 말했다
그믐달은 어떤 모습이냐고 물었을 때 본 적이 없다고 시치미를 떼며 딴청을 했다
상현달과 하현달 보름달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돌아야 할까 고민할 필요는 없다
고개 들어 밤하늘 쳐다보면 신기하게 상현달만 만나는 나는 언제나 보름달을 향해 걷고 있었다
꽃이 피는 아름다운 계절에 환호하고 꽃이 지는 계절에 아파했던 청춘의 시절은 강물에 띄워 보내고 세월의 뒤안길을 걷는 지금은 담담하다
꽃이 피던 날 꽃이 질 것을 알기에 꽃 핀다 호들갑 떨지 않고 꽃 진다 슬퍼하지 않는다
상현달이 초저녁에 밤하늘을 지나면 새벽녘 그믐달은 언제쯤 보름달이 될지 고민하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꽃을 피웠던 나날들
밤하늘에 휘영청 보름달이 뜨던 날의 추억은 기쁨으로 충만한 시간을 살아왔다
유월에 메꽃이 피고 버스는 반환점을 돌아 종점으로 달려가는 날에도
사계절 변함없이 꽃은 피고 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꽃 피고 진다 서러워 말자
내 마음 꽃밭에 언제나 꽃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꽃밭이 그러하듯이 그러하길 바라는 마음은 언제나 행복하고 옳다.
유월의 꽃 /이원문
기다린 듯 유월의 꽃
어느 꽃을 찾을까
냇가로 가면 냇가의 꽃
들길 찾아 걸어가면
늘 보았던 들꽃이 피었을 것이고
이름이나 아나
어느 꽃이 눈에 들어 올지
그저 고향의 꽃 이름
개망초 크로바뿐
더 무엇 어느 꽃 이름을 알고 모를까
부르는 이 이름마다
모두가 다른 꽃
감자밭 지나면 흰 감자꽃
이름 모를 그 많은 꽃
눈 안의 꽃 모두 추억의 꽃이라 부르고 싶다
유월 미려美麗 /淸草배창호
풀물이 하늘 바다를 견주려 하는
이맘때 담벼락을 잇댄 고만고만한
단비와 같은, 바르르 눈시울을 떨게 하는
접시꽃이 다정한 이웃이 되었습니다
산 뻐꾹새 울음소리가 낯설지 않게
가시처럼 돋아난 그리움을 풀어내고
보리밭 이랑에는 만삭의 감자꽃이
주렁주렁 시절 인연을 반기려 합니다
졸졸 흐르는 돌 개천이 그렇듯이
날로 격식을 차리는 숲의 비명은
분수처럼 쏟아지는 화통 열차의
기적소리 장단과 같습니다
꽃 속에 달달한 바람이 일듯
산기슭 잔솔밭에도 초록의 융단은
낯익은 흐름에 한통속이 되었습니다
유월은, 아낌없는 신록 예찬이기 때문입니다
유월 /박태일
더디 넘는
봉산도 재넘이
오라버니 치상길
치마폭에 감겨 젖는 소발굽 요령소리며
사철쭉 덤불 아래
돌귀만 차도
산비 날아가는 유월도 초사흘
*치상(治喪): 초상을 치름(옮기면서)
어머니의 유월 /독운
어머니의 숨소리가 거칠어가고
눈까풀 마저 무거워하실 땐
속 모르고 담장 너머로 힘차게 뻗어
붉게 피어나는 덩굴장미가 못내 서운했지요
심란한 속을 긁 듯 이어 핀 꽃송이가 얄궂었지요
사망의 골짜기를 벗어나
꺼져가는 촛불에 생기가 돌아
당신의 영원한 고막손을 알아보시고
야윈 손을 내미십니다
집으로 돌가는길을 따르는 장미는
어쩌면 이리도 어여쁜지요
젖은 가슴으로 열린 유월은
부활의 해사한 햇살을 곰살궂게 뿌려줍니다.
텃밭의 유월 /이원문
이것들이 싸우지나 않고 잘 지내는지
뒤 텃밭에 무엇을 심어 한여름을 지내나
아이들 내려 오면 푸성기 뭐 심었냐 물어볼 것인데
손주 놈 오면 입에 넣어 줄 것도 심어야 하고
크지 않은 이 텃밭 가지에 오이 옥수수는 심었고
참외 한 고랑 수박 서너넝쿨 그것 가지고는 않될텐데
열무는 얼마나 상추에 시금치 좀 더 심을까
그것들이 사 먹으면 되렴만
에미에게 응석 하느라 마구 달라고 떼 쓰겠지
망할것들 뺀질이에 커서 그렇게 속 썪히더니
이제 에미 생각 좀 하겠지 저희들이 살어 보니 인생을 알고
오는 장날 호미 하고 무 배추 씨앗이나 사야겠구나
유월 /이동순
비는 안 오고
약초밭에서 참개고리만 운다
구름이 어쩌나 보려고 몇 개 떨어뜨리고 간
그 빗방울에도 깜박 속아
마당에 널어둔 소풀 걷으러 달려와서
혼자 헐떡헐떡 숨이 가쁜
산성마을의 유월 한낮.
유월의 낭만 /이원문
아직은 초여름
삼복 더위에 얼마나 뜨거울까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유월
때 찾느라 피는 꽃은 어떻게 아는지
산 기슭에 뻐꾹새 울음까지
이맘때의 그날 고향 생각에 머문다
언제 그랬더냐
드러난 논 바닥 메우는 벼잎새들
논 가운데 뜸북새는 안 찾았을까
앞 논에 맹꽁이 밤이면 개구리울음
초저녁 뒷문 밖 청개구리 울음
부침게의 그날 잃어버린 고향 다시 찾는다
6월의 달력을 보며 /藝香 도지현
불가에서 諸行無常이라 한다
세월은 가만히 있는데
내가 변해가고
사람에 의해 달력을 만들었다
흔히들 歲月 無常이라 하지만
세월이 무상한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이 무상하지 싶다
세월은 그 자리에 그냥 있는데
사람이 자라서 늙고 병들어
이 세상을 떠나게 하고
나는 이 세상에서 소멸하고 없어질 것이다
5월의 달력을 떼어 내고
6월의 달력을 보게 되며
거울을 보니 5개월 동안 변한 나를 본다
이제 6월의 달력을 떼게 되면
한 달 동안 또 얼마나 변했을꼬
6월, 희망참의 노래 /은파 오애숙
계절의 여왕 5월도
손사래 치며 재를 넘었고
이제 6월 창 활짝 열고
여름이라 노래하매
시나부로 초록여울
향그러움으로 물결치며
휘파람 불어 옛 추억 현 타고
연가 부르고 있기에
6월의 창 앞에서
새봄의 생그럽던 그 향기
적도 열꽃의 합창에 사위어
낙조되고 있는가
6월의 우렁찬 노래
산야 초록빛 바다 물결로
노 저어 오색 쌍무지개 언덕
그대 향해 윙크하매
적도의 너울 쓰고
젊은 날 그 불멸의 야성
용솟음 치던 찬란한 기백으로
함께 달리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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