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 - 임동윤
하룻밤, 구두끈 풀고 쉬어가라고
목쉰 대청마루가 흔들흔들 붙잡아댔다
등고선마저 지워진 무늬의 바닥
겹겹의 세월을 껴안고 비바람이 들이쳤다
우우 바람이 거친 팔을 뻗어오고
볏짚으로 엮은 흙벽이 가슴뼈를 드러냈다
떠난 사람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들이 퍼 올리던 우물물은 잦아들고
뚫린 지붕 위로 낮달이 머물다 떠난 자리
죽창처럼 빗줄기가 내리 꽂히고 있었다
다시 우지끈 쏟아지는 천둥과 번개
직립의 나무들이 허리를 꺾고 있었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무너지고
모든 것이 빗줄기 속으로 몸을 섞고 있었다
거미줄과 빈 풍경이 간단없이 찢기고
쑥부쟁이도 익모초도 흙탕물에 몸 묻은 마당
그리움은 발치에 묻어두는 법이라고
장지문 꼭꼭 닫아걸어도 바람은 피리가 되어
빗물 잠긴 화덕을 끼고 밤새 돌았다
사방에서 다가드는 풀, 나무, 꽃, 바위 ...
간당간당 모가지를 빼들고 일제히 울어댔다
빈집이, 화들짝 갈비뼈를 쏟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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