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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心에젖어

눈에 관한 시 모음

✦ 눈 내리는 날의 기도 - 양광모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누구에게나
첫눈처럼 기다려지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한 송이 한 송이씩 떨어지지만
이내 뭉쳐 하나가 되는 사람

세상의 모든 상처와 잘못을
깨끗함으로 덮어주는 사람

겨울의 깊은 어둠과 밤을
하얗게 빛으로 밝혀주는 사람

눈처럼 홀로 서 있어도
묵묵히 겨울바람을 이겨내는 사람

아이에게는 기쁨을,
연인에게는 사랑을
어른에게는 추억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사람

누군가 자신을 밟고 지나갈 때조차
뽀드득 뽀드득 맑은 소리를 내는 사람

이 세상 떠나는 날 누구에게나
첫눈보다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게 하소서

 

 

 

✦ 첫눈 오던 날 - 용혜원


새벽에
가장 먼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싶은 것처럼
그대에게 처음 사랑이고 싶습니다.

삶의 모든 날들이
그대와 살아가며
사랑을 나눌 날들이기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늘 간절한 마음으로
그대를 위하여
두 손을 모읍니다

그대를 축복하여 주시기를
늘 아쉬운 마음으로
살아가기에
그대에게 은총이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 눈 위에 남긴 발자국 - 용혜원


밤새 하얀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다

눈 덮인 새벽길에
첫 발자국을 남기려니
마음이 상쾌하고 즐겁다

온통 하얀 세상을 보니
내 마음에까지 눈이 내린 듯 하다

눈을 밟으며 걷노라니
노래가 절로 나온다

행복은 늘 주변에 있다
하얀 눈이 내리는 날이면
하늘에서 복을
내려 주는 것만 같다

오늘은 하얀 눈 위에
첫 발자국을 만들며
행복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련다.

 

눈  /민경대

온통 백설로 뒤덮힌 눈 세상
백색의 세상은 아름답고 깨끗한 세상
빛고을 광원에 더욱 아름다운 얼굴
너를 찾아온 장소가 하얀 종이로 다시 변하여
흔적을 지운다하여도 추억의 모서리에는
가을 편지가 난무한 언어의 속삭임
새벽 기도 드리러 간 모습에 사랑은 호주머니에 넣고
성경만 고이 간직한 이율배반적인 시간의 못자욱

 

 

음력 삼월의 눈  /이병률

 

한 사람과 너는

며칠 간격으로 떠났다

마비였다,

심장이라는 계절의 마비

 

때 아닌 눈발이 쏟아졌고

눈발을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길가에서 더러워졌다

 

널어놓은 양말은 비틀어졌으며

생활은 모든 비밀번호를 잃어버렸다

 

불 옆에 있어도 어두워졌다

재를 주워 먹어서 헛헛하였다

 

얻어온 지난 철의 과일은 할 일이 없어도

궁극적으로 익어갈 것인데

 

두 사람의 심장이 멈추었다는데

눈보라가 친다

잘 살고 있으므로 나는 충분히 실패한 것이다

 

사무치는 것은 봄으로 온다

너는 그렇게만 알아라

 

눈 /김윤현

  

그는 겨울에만 그림을 그리는 화가

한 점 두 점 흩날리듯 내려앉듯 덧칠하는

추위와 기다림이 배어있는

그가 온 산천에다 그림을 그릴 때는

작은 눈을 가진 산새도 숨죽이고

고라니도 동굴에 숨어서 지켜본다

헐벗은 나무와 말라비틀어진 풀들이 후원하는

눈도 손도 없이 몸으로 그리는

출신도 화단도 마음에 두지 않는다

겨울만 오면 가끔 그려서 오래 남기지 않아

맑은 눈을 가진 사람들을 설레게 하는 그는

백색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화가

나도 어렸을 때 그가 밤새 그려놓은 그림을

아침이 되어 문을 활짝 열면서야 보고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늦은 눈 /강영은 

 

  늦은 눈 오시는 날 희디흰 꽃씨들이 빈 봉투에 들어찬다

 

  온다는 조짐도 예측도 없는 기별은 불규칙한데 빈 봉투에 내리는 아주 규칙적이고 아름다운

꽃모양 눈

 

  공중으로 흩어지다 햇빛을 받을 때면 더 없이 빛나는 눈이 가장 우아한 무늬와 모양을 이루

는 바로 그 때 허공처럼 눈부신 정원

 

  당신은 당신 눈 속에 나는 내 눈 속에 눈꽃을 피워낸다 각기 다른 창가에 꽃눈을 티워낸다

 

  아, 당신과 나는 서로에게 늦은 눈.

 

  삼짇날 지나 흰 제비꽃 피어나듯 무수한 눈송이로 진화할지 모르지만 각막의 가장 안쪽에서

흐릿하게 피어나는 눈꽃은 이 계절에 없는 꽃이니

 

  잠깐 피었다 지는 눈의 씨앗들이여, 얼듯 녹을 듯 존재하는 그리움 속으로 가만가만 다녀가시라

 

 

눈과 황소  /고영민

 

눈이 온다

눈이 오는 산등성이에 황소가 묶여 있다

황소는 묶여 있고 눈이 온다

황소의 큰 눈을 닮은 눈이 황소의 새끼를 친다

눈은 그렁그렁 황소를 닮았다

울음소리를 닮았다

울음소리를 따라 황소를 닮은

함박눈이 온다

어미를 따라온 어린 눈이 황소의 등에 얹힌다

젖을 물듯 허공을 치받으며

눈은 오고

젖은 쇠방울 소리는 오고

황소는 묶여 온종일 잔등에 얹힌

제 새끼의

흰눈을 턴다

 

 

하얀 이불  /남원자

 

맑고 푸른 하늘은

저무는 한 해를

목화솜 같은 하얀 솜으로

따뜻한 이불을 덮어 주었다

 

산에도 예쁜 수채화

화가들 멋지게 붓칠을 하고

송이송이 눈꽃 송이

예쁘게 수 놓은 따뜻한 이불

 

어머니의 장독대

먼지만 가득한 장독대 위에

하얀 모자 씌워 주었네

 

마음은 차가운 얼음 속

나무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하얀 이불

옷 벗은 겨울 나무에

따뜻한 이불 덮어 주었다.

 

 

눈은 마당에 깃드는 꿈 /황인숙

눈이 온다
먼 북극 하늘로부터
잠든 마당을 다독이면서

단풍나무 꼭대기에서 갸우뚱거리던 눈송이가
살풋이 내려앉는다
살풋살풋 둥그렇게
마당이 부푼다
둥그렇게, 둥그렇게

눈은 마당에 깃드는 꿈
마당은 커다란 새가 됐다
그리고 단풍나무 꼭대기에서
작은 새가 내려앉는다

저 죽지에
뺨을 대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그의 잠을 깨우지 않고?

 

 

눈 내리는 마음 /윤민순

 

눈이 내려라

뽀얀 눈이 내리면

그 눈으로 상처난 마음을 씻어 햐염없이 가리라

 

내가 가는 그곳에

누군가 불러준다며

햐이얀 꽃송이로 말해 주리라

 

내가 가는 어디에

낯선 발걸음 소리에 놀란 가슴

밝은 빛으로 걸어오는 소리

그 누구도 반기리라

 

눈이 날리면

그 눈 속에 내 얼굴 닮아

눈송이 온세상 피우리라

 

끝없이 펼친 편안한 마음

담고 어디서나 전하리라.

 

 

눈 내리는 강  /구 상

 

강에 눈이 내린다.

내 가슴에 한가닥 온기만 남기고

가버리는 꿈결 속의 여인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

순수한 아름다움은

이렇듯 단명한 것인가?

 

어떠한 진실을 고하려고

흰 눈은 소리도 없이 내려서

순식간에 물로 변신하는가?

 

나의 안에서 피고 스러진

억만의 사념들은

어디로 가서 무엇이 되었을까?

 

멀리서 기항지 잃은

뱃고동이 들린다.

 

 

강산이 백의 白衣를 입다  /미산 윤의섭
 
홍익인간의 유구한 혼의 魂衣인가
민족의 색 흰 비단으로 짠 강산의 겨울옷
때 묻지 않은 맨살을 흰 눈이 감싸고 있다

결백의 성정이 흰 무늬로 아롱지고
바위산은 부드럽고 수풀은 싱싱하게
눈가루를 뿌리고 세한 歲寒을 기다린다

솔 푸름의 기개는 눈 속에 빛나고
나목의 강골 强骨은 대지를 꽉 물고
강산의 주인으로 당당하구나.

 

 

눈보라   /윤석산​

 

헤아릴 수 없이 휘날리는 그 빽빽한 밀도

현란함으로 우리는

그러나 늘 아득하기만 한

우리를 가둔 그 순백의 시간

그래서 우리 모두 황홀한 방황일 뿐이네.

 

 

눈   /윤준경  
 
  눈이 왔다. 검은 길이 덮이도록 반가운 눈이 "아!" 소리도 못
내게 밤에 내렸다. 공익근로어른들이 내 골목까지 와서 눈을 치운
다. 미안했다.
  그들은 차에서 눈을 털어내리는 걸 싫어했다. 하는 수 없이 나
는 눈을 싣고 갔다,
  거리마다 눈을 날리며.

  눈이 왔다. 내 어릴 적 벚나무 가지 사이로, 회색의 하늘을 지
우며 눈은 내리고, 눈은 밤내 내려 온 천지에 쌓이고, 기와담장
위로 초가 지붕 위로, 눈부시게.
  장판이 낡은 키 낮은 우리의 안방. 허리 구부정한 키 큰 오라
버니가 서서 나즉나즉 말씀을 건네시고, 어머니 해진 내복걸레로
아래 윗목을 훔치시며 두런두런 대꾸하시고, 큰언니 작은언니 작
은오빠 그리고 나, 뭔가 다 자기 일들을 하며, 그리 바쁠 것도
없이 그리 급할 것도 없이, 늘 그렇게 눈처럼 쌓이던 날들, 그
립다, 우리 집.
 우리…였던 것들.....

 

 

눈길 /장석주

 

종일 눈보라가 쳤다.

누구였을까.

눈보라 속을 뚫고 왔다가 돌아간 사람,

눈 위에 찍힌 어지러운 발자국,

그 옆에 족제비 발자국도 가지런하다.

 

언 내(川)를 건너는 눈보라,

 

눈 맞고 서 있는

자두나무야, 너는 외롭냐?

 

저문 뒤

귀가 큰 어둠과 귀신이 왔다가 돌아갔는데

눈길에는 발자국이 없다

밤은 三更,

다시 귀가 큰 어둠이 내려와 있다.

 

눈 그친 아침

밤새 눈보라 속에서 제 몸에 채찍질을 하며

달려간 바람의 흔적,

바람의 발자국들

 

 

눈의 축제 /김남조
   
불시에 기억난 듯
찾아온 손님
백설 분분,
억만의 나비떼,
만발하는 흰빛의 황홀,
환경오염의 땅에
이리 지순함 괜찮은가

얼음강에도 눈
거대한 수정거울에
수정부르서기 부슬부슬 내리는 이거
산성눈
그런 것일 순 없지
불인두처럼
살결 데일 꺼야 꺼야...
소리치며 뛰어 내리는
화끈한 순종의
그 백설이고 말고

한 초월자 임하시어
혈관 실꾸리 자꾸자꾸 풀어
땅 속에도 물 밑에도
피가 잘 돌아,
투명한 보석두레박의
피곤 접곤 하시는구나

천상의 정령들이여
얼음과 소금으로
사람의 세상을 소독해다오
사람의 마음도 그렇게 해다오

누구라도 참기 어려운
매혹의 흰 살결에
바람들 흘려 뒤쫓아가는데
아름다움이여
절망함으로
차라리 나는 평안하다
눈이여 땅끝까지 내려라
내려라 내려라

 

 

눈 오는 밤  /주일례 

 

잠 못 들고 뒤척이는 까닭이야

펑펑 쏟아지는 저 함박눈에게 물어봐라

 

답이 없다고 한들

답이 있다고 한들

 

심장에 깃든 고요만큼 무거우랴

 

 

눈은 녹는다  /김황흠

 

한낮이 되어서야

노루 궁둥이 꼬리 같은 햇살이

뜨뜻해진다

마당을 덮은 눈이 녹는다

밟고 지나간 자리부터

눈발이 투덜거리며 쌓이던 마당

햇빛이 잘 드는 곳부터

녹는다, 천천히

얼어붙은 강은 어디서부터 녹는가

한가운데 물오리 몇 마리

너울너울 뛰노는 잔물결은

얼음 조각을 끌고 간다

눅눅한 마음은 어디서부터 녹아

고드름 같은 눈물도 따뜻해지는가

 

 

늦눈마저 보내고 /문순자 

 

목질이 단단할수록 옹이가 깊이 박힌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그것이 눈이라는 걸

몸으로,

몸으로 말하는

갱년기 잣밤나무

 

 

눈 /靑心 장광규

 

눈이 온다

티 하나 없이

솜처럼 부드러운

저 눈은

누가 만들까

어머니일까

누나일까

귀여운 꼬마일까

 

눈이 내린다

알맞은 크기로

적당한 간격으로

뿌리는 사람은 누굴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함께 뿌릴까

아버지가 뿌릴까

솜씨 좋은 형이 뿌릴까

 

눈이 온다

눈이 내려

소복소복 쌓이고

생각도 쌓인다.

 

 출처:섭이의 놀이마당 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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