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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心에젖어

동백꽃에 관한 시 모음

 

동백꽃

- 유안진

엄동 눈바람에

어쩌자고

피느냐

좋은 세월

다 놓치고

이제야 피느냐

목숨마저 켜 드는

등불임에도

별무리마저 가슴 죄어

차마

지켜 새우는

겨울 뜨락의

한 자루 촛불

나의 신혼이여.

동박새

- 정호승

죽어서도 기뻐해야 할 일 찾아다니다가

죽어서도 사랑해야 할 일 찾아다니다가

어느 날 네 가슴에 핀 동백꽃을 보고

평생 동안 날아가 나는 울었다

동백꽃처럼

- 남정림

필 때나 질 때나

동백꽃처럼 온몸으로 살고 싶어요

실핏줄이 팔딱거릴 만큼 사랑하고

혈서로 적신 꽃잎이 나풀거릴 만큼

진실하고 따습게 살고 싶어요

때 되면 물러갈 때는

동백꽃처럼 송이 채로 뚝 떨어지는

아름다운 소멸을 꿈꾸고 있어요

시들지 않는 풍성한 죽음,

온전히 더 붉은 사랑으로

다시 꿈을 키우고 있어요

지고 나서 땅을 더 아름답게

덮어주는 저 불타는 동백꽃처럼

 

 

동백꽃이 질 때

- 이해인

비에 젖은 동백꽃이

바다를 안고

종일토록 토해내는

처절한 울음소리

들어보셨어요

피 흘러도

사랑은 찬란한 것이라고

순간마다 외치며 꽃을 피워냈듯이

이제는 온몸으로 노래하며

떨어지는 꽃잎들

사랑하면서도

상처를 거부하고

편히 살고 싶은 나의 생각들

쌓이고 쌓이면

죄가 될 것 같아서

마침내 여기

섬에 이르러 행복하네요

동백꽃 지고 나면

내가 그대로

붉게 타오르는

꽃이 되려는

남쪽의 동백섬에서

동백꽃에게 / 이해인

 

네가 있어 겨울에도

춥지 않구나

빛나는 잎새마다 쏟아 놓은

해를 닮은 웃음소리

 

하얀 눈 내리는 날

붉게 토해내는

너의 사랑이야기

 

노란 꽃밥 가득히

눈물을 담고

떠날 때는 고운 모습 그대로

미련 없이 무너져 내리는

너에게서..

 

우린 모두

슬픔 중에도

아름답게 이별을 하는 법을

배우는구나

 

 

동백꽃이 질 때 / 이해인

 

비에 젖은 동백꽃이

바다를 안고

종일토록 토해내는

처절한 울음소리

들어보셨어요

 

피 흘려도

사랑은 찬란한 것이라고

순간마다 외치며 꽃을 피워냈듯이

이제는 온몸으로 노래하며

떨어지는 꽃잎들

 

사랑하면서도

상처를 거부하고

편히 살고 싶은 나의 생각들

쌓이고 쌓이면

죄가 될 것 같아서

 

마침내 여기

섬에 이르러 행복하네요

 

동백꽃 지고 나면

내가 그대로

붉게 타오르는

꽃이 되려는

남쪽의 동백섬에서

 

 

동백꽃 / 박노해

 

동백꽃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땅 위에 붉게 떨어지는 순간

 

동백꽃의 절창은

땅바닥에 목숨 떨어지는 둔탁

 

땅바닥에 떨어져 뒹구는 자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래, 무슨 말이 있겠는가

제 가슴 안에 떨어지는 붉은 목숨의 노래

들리지 않는 천둥소리

봄불

 

 

동백꽃은 세 번 핀다지요 / 박노해

 

눈 쌓인 나무에서

한 번 피고

 

떨어져 땅에서

또 한 번 피고

 

이 내 가슴에

붉게 다시 피지요

 동백꽃 / 나태주

 

눈이 그쳤다

통곡 소리가 그쳤다

 

애달픈 음악소리도 멈췄다

 

누군가를 가슴에 안고

붉은 꽃 한송이 피워내던 일 또한

잠깐 사이다

 

다만 허공에 어여쁜

피멍 하나 걸렸을 뿐이다

동백꽃처럼 / 윤보영

 

어디를 가도

당신이 먼저 보입니다

붉게 핀 동백꽃이 먼저 보이듯

내 사랑 독차지 하고

일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당신이 말입니다

 

 

동백꽃을 보다가 / 윤보영

 

나도 

저런 사랑 한 번

 해보았으면

 

엄동설한 먼저 이겨내고

눈이 시리도록 붉은 꽃 피워내는

정열적인 사랑을

 

 동백꽃 / 유안진

엄동 눈바람에

어쩌자고

피느냐

좋은 세월

다 놓치고

이제야 피느냐

목숨마저 켜 드는

등불임에도

별무리마저 가슴 죄어

차마

지켜 새우는

겨울 뜨락의

한 자루 촛불

나의 신혼이여.​​

 선운사 동백꽃 / 유안진

무너지고 싶습니다

녹아지고 싶습니다라고

여우바람으로

자맥질치는 불길

미친 이 불길 잡아 달라고

눈비를 맞아봅니다만

밤마다 고개 드는

죄를 죽입니다만

눈서리가 매울수록

오히려 뜨거워만집니다

마침내는 왈칵

각혈 쏟고 말았습니다. 부처님

선운사 동백꽃 / 박남준

선운사 동백꽃 보러 갔습니다

대웅전 뒷산 동백꽃 당당 멀었다 여겼는데요

도솔암 너머 마애불 앞 남으로 내린 한 동백 가지

선홍빛 수줍은 연지곤지 새색시로 피었습니다

휜 눈 밭에 울컥 각혈을 하듯 가슴도

철렁 떨어졌습니다그려

 

 선운사 동백꽃 / 이산하

나비도 없고 벌도 없고 동박새뿐

그 동박새에게 마지막 씨를 남기고

흰 눈 위에 떨어진 한 치 흐트러짐 없이

통째로 툭 떨어진 선운사 붉은 동백꽃

떨어지지 않은 꽃보다 더 붉구나

 

선운사 동백꽃 / 오순택

선운사 동백꽃은

누나 입술같이 곱더라

고운 입술에 봄빛 듬뿍 물고

배시시 웃고 있더라

지난 겨울 싸락눈 먹고 자란

초록잎사귀가 저렇게 붉은 꽃 피웠겠지

꽃이 지면 어쩌지

붉은 동백꽃 똑똑 따며 봄이 가버리면 어쩌지

어디서 날아왔는지

꽁지 몽땅한 새 한 마리

떨어진 꽃잎을 쪼아먹고 있더라

 동백 피는 날 / 도종환

 

허공에 진눈깨비 치는 날에도

동백꽃 붉게 피어 아름답구나

눈비 오는 저 하늘에 길이 없어도

길을 내어 돌아오는 새들 있으리니

살아 생전 뜻한 일 못다 이루고

그대 앞길 눈보라 가득하여도

동백 한 송이는 가슴에 품어 가시라

다시 올 꽃 한 송이 품어 가시라

 

지는 동백꽃을 보며 / 도종환

내가 다만 인정하기 주저하고 있을 뿐

내 인생도 꽃잎은 지고 열매 역시

시원치 않음을 나는 안다

담 밑에 개나리 환장하게 피는데

내 인생의 봄날은 이미 가고 있음을 안다

몸은 바쁘고 걸쳐놓은 가지 많았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거두어들인 것 없고

마음먹은 만큼 이 땅을

아름답게 하지도 못하였다

겨울바람 속에서 먼저 피었다는 걸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나를 앞질러가는 시간과 강물

뒤쫓아오는 온갖 꽃의 새순들과

나뭇가지마다 용솟음치는 많은 꽃의 봉오리들로

오래오래 이 세상이 환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선연하게도 붉던 꽃잎 툭툭 지는 봄날에

어머니의 동백꽃 / 도종환

 

특별한 사람을 만나 특별한

사랑을 하기를 꿈꾼다.

나를 특별히 사랑해주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그러나 특별한 사랑은 특별한 사람을

만나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보통의 사람을 만나 그를 특별히

사랑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선운사, 그 똥낭구 / 김선우

- 불혹의 누이 영덕 스님께 -

선운사에 와

해우소 앞 은행나무 아래 잠시 앉았습니다

이상한 냄새에 내 뒤춤을 자꾸 흘끔거렸는데

갓 여문 은행열매가 피우는 냄새였습니다

애기똥 냄새... 달작지근한

저렇게 대기 속에 하초를 활짝 펼치고

배내똥 같은 열매를 길러낼 수 있다면

당신 생각이 생각났습니다

폐소공포증을 앓는 당신이 지하서울역에서

황급히 뛰어올라가 파하, 하던

그 계단의 끝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바랑을 지고 플랫폼을 들어서던

당신이 문득 그랬지요...썩자...

푹 썩어 맑은 물 한국자 우려낼 수 있다면

목어가 울립니다

짭쪼롬하니 곰삭은 목어 소리 속에

온갖 허드렛물 이윽히 발효시키는

선운사 이 똥낭구가 나를 때립니다

동백 / 양광모

한 봄날이어도

지는 놈은 어느새 지고

피는 놈은 이제사 피는데

질 때는 한결같이 모가지째 뚝 떨어져

이래 봬도 내가 한때는 꽃이었노라

땅 위에 반듯이 누워 큰소리 치며

사나흘쯤 더 뜨거운 숨을 몰아쉬다

붉은 글씨로 마지막 유언을 남긴다

징하게 살다 가네

 

동백꽃 / 오세영

 

괜찮다.

괜찮다.

부풀어오르는 밀물 탓이다.

개펄을 채우고 둑을 넘쳐서

마당까지 벙벙히 넘실대는

물,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탓이다.

옷고름 풀어헤치고 치마를 들치며

속살 간질이는

갯바람,

괜찮다.

괜찮다.

 

사릿날

초조(初潮)의 부끄러움으로

발갛게 달아오르는

처녀의

볼.

동백꽃 / 오세영

 

강설로 하얗게 얼어붙은 숲속에

누가 지폈나

빨갛게 달아 오른 한떨기 숯불

사람들은 한갓 동백이라 하지만

사람들은 그저 가녀린 꽃이라 하지만

아니다 그것은

추위를 막아주는 겨울 산의 화롯불

다람쥐 쪼르르 언 발을 녹이고

메꿩 푸드득 언 부리 녹이고

굴참나무 바르르 언 몸 녹이고...

온 숲의 따뜻한 겨울 나기다

옳거니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가슴에 불을 안아야

혹한을 이겨내는 것

그래서 아름다움을

항상 가슴에서 타 오른다 하지 않던가

 

선운사 동백꽃 / 김용택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고사포 앞바다 / 김용택

사랑도 이만큼 붉으면 지리

선운사에 가서 동백꽃을 보고 온 사람아

그대가 그리워서

견딜 수 없을 때

붉게 터지는 것이

선운사 동백꽃이냐

그대가 보고 싶어

참다가 참다가 참을 수 없어서

뚝 떨어지는 것이

선운사의 동백꽃이더냐

변산 반도를 다 돌아다니다가

고사포 앞 바다 하얀 모래밭으로 달려와서

소리도 없이 잦아지는 파도야

수평선 끝에서 지금 떨어지는

붉은 저것이 시방

네 몸이냐

내 몸이냐

선운사의 동백꽃이다냐

선운사 동백꽃 / 용혜원

선운사 뒤편 산비탈에는 소문 난 만큼이나

무성하게 아름드리 동백니무가 숲을

이루어셀수도 없을 만큼 많고 많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가지가지 마다 탐스런 열매라도 달린듯

큼지막 하게 피어나는 동백꽃을 바라보면

미칠듯한 독한 사랑에 흠뻑 취할것만 같았다.

가슴저린 한이 얼마나 크면

이 환장 하도록 화창한 봄날에

피를 머금은듯 피를 토한듯이

보기에도 섬뜩하게 검붉게 피어나고

있는가?

 선운사 동백꽃 / 김윤자

사랑의 불밭이구나 수백년을 기다린 꽃의 화신이

오늘밤 정녕 너를 남겼구나 선운산

고봉으로 해는 넘어가도

삼천 그루 동백 꽃등불에 길이 밝으니

선운사 초입에서 대웅전 뒤켠 네가 선

산허리까지 먼 길이어도 님은 넘어지지 않고

한달음에 달려 오시겠구나

해풍을 만나야 그리움 하나 피워 올리고

겨울강을 건너야 사랑의 심지 하나 돋우는

저 뽀얀 발목 누가 네 앞에서 봄을 짧다 하겠는가

이밤 바람도 잠들고 산도 눈감고 세월의

문이 닫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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