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시
박목월
목련꽃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을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4월의 노래
노천명
사월이 오면은,
사월이 오면은
향기로운 라일락이 우거지리
회색빛 우울을 걷어 버리고
가지 않으려나 나의 사람아
저 라일락 아래로
라일락 아래로
푸른 물 다담뿍 안고 사월이 오면
가냘픈 맥박에도 피가 더하리니
나의 사람아 눈물을 걷자
청춘의 노래를 사월의 정령을
드높이 기운차게 불려 보지 않으려나
앙상한 얼골이 구름을 벗기고
사월의 태양을 맞기 위해
다시 거문고의 줄을 골라
내 노래에 맞추지 않으려나
나의 사람아!
사월의 시
이해인
꽃 무더기 세상을 삽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세상은
오만가지 색색의 고운 꽃들이
자기가 제일인양 활짝 들
피었답니다.
정말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새삼스레 두 눈으로 볼 수 있어
감사한 맘이고,
고운 향기 느낄 수 있어
감격적이며,
꽃들 가득한 사월의 길목에
살고 있음이 감동입니다.
눈이 짓무르도록
이 봄을 느끼며
가슴 터지도록
이 봄을 느끼면
오늘 이 봄을 사랑합니다.
오른 곁에 있는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4월이 문을 엽니다.
4월 아침 / 김상아
오래 잊고 있던 아련한 기억이
너로 인해 목련꽃 만개하듯
가슴에 피어오른다
너를 만나고 있으면 사랑하는 이의
촉촉한 눈망울에서 새어 나오는
고요한 울림으로 이내 맑은 시냇물이고
삶은 시금치 빛깔의 네가 그리도 좋아
간절한 그리움의 늪에서
첫사랑의 그림자 같은 너를 붙들고
네가 떠나갈까 가늘게 신음한다
너만 곁에 있다면
너만 곁에 있다면
3. 윤사월 / 박목월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4. 봄길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아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5. 양지(陽地)쪽 / 윤동주
저쪽으로 황토(黃土) 실은 이땅 봄바람이
호인(胡人)의 물레바퀴처럼 돌아 지나고
아롱진 4월태양(四月太陽)의 손길이
벽(壁)을 등진 섫은 가슴마다 올올이 만진다.
지도(地圖)째기 놀음에 뉘 땅인줄 모르는 애 둘이
한 뻠 손가락이 짧음을 한(恨)함이어
아서라! 가뜩이나 엷은 평화(平和)가
깨어질까 근심스럽다.
1936년 6월
6. 4월 비빔밥 / 박남수
햇살 한 줌 주세요
새순도 몇 잎 넣어주세요
바람 잔잔한 오후 한 큰 술에
산목련 향은 두 방울만
새들의 함창을 실은 아기병아리
걸음은 열 걸음이 좋겠어요
수줍은 아랫마을 순이 생각을 듬뿍 넣을래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고명으로 얹어주세요
7. 4월 / 김주대
못다 한 말 있어
바람 속에
꽃 피고
꽃 지거든
다녀간 줄 알아라
8. 4월 / 홍수희
벚나무 바라보다
뜨거워라
흐드러진 꽃잎에
눈을 다친다
저 여린 향기로도
독한 겨울을 견뎠는데
까짓 그리움 하나
삼키지 못할까
봄비 내려
싸늘하게 식은 체온
비벼대던 꽃잎
하르르 떨구어져도
무한대로 흐르는 꽃소식
으슬으슬 열 감기가
가지마다 열꽃을 피워댄다
9. 4월의 시 / 이해인 수녀님
꽃 무더기 세상을 삽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세상은 오만가지 색색의 고운 꽃들이
자기가 제일인 양
활짝들 피었답니다
정말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새삼스레 두 눈으로 볼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고
고운 향기 느낄 수 있어 감격이며
꽃들 가득한 사월의 길목에
살고 있음이 감동입니다
눈이 짓무르도록
이 봄을 느끼며
가슴 터지도록
이 봄을 즐기며
두발 부르트도록
꽃길 걸어볼랍니다
내일도 내 것이 아닌데
내년 봄은 너무 멀지요
오늘 이 봄을 사랑합니다
오늘 곁에 있는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4월이 문을 엽니다.
10.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훍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11. 4월 아침 / 김상아
오래 잊고 있던 아련한 기억이
너로 인해 목련꽃 만개하듯
가슴에 피어오른다
너를 만나고 있으면 사랑하는 이의
촉촉한 눈망울에서 새어 나오는
고요한 울림으로 이내 맑은 시냇물이고
삶은 시금치 빛깔의 네가 그리도 좋아
간절한 그리움의 늪에서
첫사랑의 그림자 같은 너를 붙들고
네가 떠나갈까 가늘게 신음한다
너만 곁에 있다면
너만 곁에 있다면
13. 봄날들판에서 / 용혜원
봄햇살과 봄비가데리고온
연초록빛이산과들에
가득한4월 춤을추며나온듯한
초록잎사귀들이피어나서
마치동화나라에서
꿈꾸고있는듯하다 봄날들판에서있으면
온몸에보드라운촉감이느껴져
사랑하고싶어진다
14. 4월 / 김용전
얼었다
풀리는 노곤한
강물 위엔 아리운
불륜의 욕망이 흐르고
황소 눈물처럼 뚝뚝
지는 하얀 목련 아래 서면
어느 사랑이 영원하랴
문득 미소가 돌아
4월은 눈물 없이도
떠나기 좋은 계절
벚꽃 눈보라 치는
길 위에 서면
서러운 이별조차
눈이부시어라
15. 4월 / 반기룡
바람의 힘으로
눈 뜬 새싹이 나풀거리고
동안거 끝낸 새잎이 파르르
목단꽃 같은 웃음 사분사분 보낸다
미호천 미루나무는
양손 흔들며 환호하고
조치원 농원에 옹기종기 박힌
복숭아나무는 복사꽃 활짝 피우며
파안대소로 벌들을 유혹하고
산수유 개나리 목련화는
사천왕처럼 눈망울 치켜뜨고
약동의 소리에 귓바퀴 굴린다
동구 밖 들판에는
달래 냉이 쑥 씀바귀가
아장아장 걸어 나와
미각 돋우라 추파 던지고
둑방길에는 밥알 같은
조팝나무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다
16. 4월 / 문인수
절을에워싼 산빛이 수상하다
잡목 사이로 여기 저기
펄럭 걸린 진달래
단청 엎질린 것 같다
등산로를 따라 한 무리
어린 여자들이 내려와서
마을 쪽으로 사라진다
조용하라, 조용히 하라 마음이여
절을 에워싼 산빛이 바릿하다
17. 4월 / 변영숙
톡톡 버들강아지 눈튼다
홍매화...가지마다 홍등 달고
앞산 진달래도
갸여히 가슴에 불당 겼디
몽실 부푼 백목련 젖가슴에 배시시
곁눈질로 웃던
벚꽃도 그만
꽃눈 펑펑 난리가 났다
난데없이 덥친 비바람에 심통에
훌훌 땅바닥에 질펀한 저 아픈
사람들
오늘밤
남은 저 꽃들
또다시 왕창 무너진다면... 어쩌나
숨이 차 오른다
숨이 막 멎을 것 같다
18. 4월 / 안재동
사회의 엘리트 그룹에 진입하는 지름길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수천 편의 응모작품들 중 단 한 사람의
작품만이 행운의 여신에 의해 선택되는
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일도
참 어려운 일이다.
해외유학 길에 올라 상처받지 않고
버젖하게 박사학위를 따오는 일도
돈도 있어야 하고 실력도 있어야 하는,
참 어려운 일이고
수십 내지 수백, 아니 수천 명이나 되는
종업원의 밥줄이 걸린, 크고 작은
사업체 하나 망하지 않게 운영하는 일도
참 어려운 일이다.
먹고살기 위해 무더위나 강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일 년 내내 막노동판에서
등짐을 져다 나르는 일도
참 어려운 일이고
일하고 싶어도 일할 곳 없어
세월아 네월아 하고 빈둥거리는 일도
참 어려운 일이다.
고통스러운 기나긴 겨울 동안 묵묵히,
바야흐로 세상 모든 나무들이
다시 푸른 싹을 틔우며
개선장군처럼 당당한 자태를 갖추는데
세상 모든 꽃들이
오래전 잃어버린 얼굴을 찾기나 한 듯
감동처럼 느껴지는 새 얼굴과
짙은 향기를 세상에 들이미는데
긴 시간, 내 속의 살았으되 죽은 영혼,
저 나무와 꽃들처럼 참 어려웠던 듯
쉬운 듯
이제 소생했으면 하는, 4월.
19. 4월 / 오세영
언제 우레 소리 그쳤던가,
문득 내다보면
4월이 거기 있어라.
우르를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
언제 먹구름 개었던가.
문득 내다보면
푸르게 빛나는 강물,
4월은 거기 있어라.
젊은 날은 또 얼마나 괴로웠던가.
열병의 뜨거운 입술이
꽃잎으로 벙그는 4월.
눈뜨면 문득
너는 한 송이 목련인 것을,
누가 이별을 서럽다고 했던가.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
돌아보면 문득
사방은 눈부시게 푸르른 강물.
ㅣ20. 4월 / 용혜원
봄이 들판에 손을 뻗치면
초록을 예찬하는 노래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버드나무 잎새의 연초록 빛깔이
만져보고 싶도록 아름답다
봄바람이
가슴에 불어온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한다
창문을 활짝열게 하고
옷의 무게가 더 가벼워져
발걸음의 속도를 점점 더 가볍게 한다
4월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이
더 정답게 더 가까이
귓가에 들려온다
21. 4월 / 위선환
햇빛 내리는 소리가 자욱하네요
수풀 밑에까지 빛살이 내려와서
푸르고 밝아요
가지 마디마다 망울을 부풀리고
터트리는 어린싹들,
눈꺼풀에 쏟아지는 햇살이
부시어 고갯짓도 하네요
갓 핀 싹들이 얼마나 부지런히
속잎을 비벼대는지,
숨어 있는 작은 손들이 얼마나
많은 잎새를 피우는지요
내 내부의 마디마디에서 불꽃이 일어요
몸 안에 닿은 빛이 일순에 발광했어요
환하고 물밑이듯 조용하네요
내가 들어있던 어머니 몸 안이 이랬지요
눈도 귀도 잠겨 있었지만 물이 빠지는 소리
어머니 몸 열리는 소리가 다 들렸어요
내 생명으로 들어오는 빛살이 보였어요
그래요. 빛살 푸른 거기쯤이면
어머님이 계실 듯 싶네요
갓 낳은 누이를 묻고 나서
바람소리만 듣던 어머니
작은 씨앗이거나 흰 풀꽃이거나
내 어릴 적 주린 허리를 꺾던
쑥나물 잎이 되었을 거예요
아니, 뒷뫼 허리에 걸려서
바람꽃이 되었거나
누이의 눈 맑은 영혼을 키우는
정령이 되었겠지요
가지들이 은빛으로 빛나고 있어요
햇살이 겹으로 그물 친 하늘에
한낮에도 별들이 떠있네요
별밭에서도 잎 피는 소리 들려요
숲은 어디나 빛찬 눈짓들을
숨겨두고 있지요
은밀해요 예감한 이들은 수림 아래로
내려가서 빛의 맥을 캐고 있어요
더 깊이 내장內藏한 누이의 혼백에는
푸르고 질긴 햇살이 감겨있을 거예요
어머니 아랫몸에 맑은 피가 고이고 있어요
이런 날에 어머니는 몸을 열어요
보세요 기다리기 한참인데 저만치
풀섶에서 치맛말을 추스르시며
어머니는
진달래 꽃 환한 꽃 그루로 일어서시네요
깊고 은밀한 곳이 비쳐 보이는
부끄러운 한낮이에요
햇빛이 지천으로 깔려 있어요
22. 4월 / 이응준
내가 기차같이 별자기같이
느껴질 때
슬며시 잡은 빈 손을 놓았다
누군가 속삭였다 어쩔 수 없을
거라고, 귀를 막은 나는
녹슨 피 속으로 가라앉으면서
너의
여러 얼굴들을 되뇌었다
벚꽃 움트는 밤 아래
무릎 끓었다
어쩔 수 없었다
23. 4월 / 장석주
금치산자 같은 4월이 왔다간다
사는 게 왜 이렇게 시시하지?
하는 얼굴을 하고
방부 처리되지 않은 추억들이
질척거리는 침출수를
삶의 빈 틈으로 조금씩 흘러보낸다
개척자는 아니지만 무능이
뼈에 사무치는 것은
일품요리 같은 여자와의 연애가
곧 끝나고 말리라는 예감 때문이다
무능과 게으름은
내 삶에 붙은 이면옵션이다
나쁜 패를 잡고 전전긍긍하는
노름꾼에게도
4월이 오고 내게도
사지를 절단한 편지가 도착하고
끔찍한 날들이 이어진다
머리 없는 남자가
낚시터로 가는 길을 묻는다
24. 4월 / 조창환
내소사 앞 마당에
분홍 겹동백
달빛 내린 봄밤에 벙긋 웃는다
ㅡ 내 다 안다
ㅡ 청대숲 흔들던 바람
건너 산 흰 산목련을 끌어안는다
25. 4월 / 정영애
사랑을 한 적 있었네
수세기 전에 일어났던 연애가 부활되었네
꽃이 지듯 나를 버릴 결심을
그때 했네
모자란 나이를 이어가며
서둘러 늙고 싶었네
사랑은 황폐했지만
죄 짓는 스무 살은 아름다웠네
자주
버스정류장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곤 했었네
활활 불 지르고 싶었네
나를 엎지르고 싶었네
불쏘시개로 희박해져 가는 이름
일으켜 세우고 싶었네
그을린 머리채로 맹세하고 싶었네
나이를 먹지 않는 그리움이
지루한 생에 그림을 그리네
기억은 핏줄처럼 돌아
길 밖에 있는 스무 살, 아직 풋풋하네
길어진 나이를 끊어내며
청년처럼 걸어가면
다시
필사적인 사랑이 시작될까 두근거리네
습지 속 억새처럼
우리 끝내 늙지 못하네
26. 4월에 / 정희성
보이지 않은 것은 죽음만이 아니다.
굳이 돌에 새긴 피
그 시절의 무덤을 홀로
지키고 있는 것은 석탑뿐
이 땅의 정처 없는 넋이
다만 풀 가운데 누워
풀로서 자라게 한다.
봄이 와도 우리가 이룬 것은 없고
죽은 자가 또다시 무엇을 이루겠느냐
봄이 오면 속절없이 찾는 자 하나를
젖은 눈물에 다시 젖게 하려느냐
4월이여
27. 4월에 / 채호기
겨울이 다 가도
봄을 기다리지 않았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깡깡한 얼음덩어리 속에서
불쑥 몸을 돌려
꽃으로 변신하고 싶지도 않았다.
가끔 깨어져 날카롭게 일어서는
동지들의 아름다움이
심장을 쩡쩡 울린다.
잎 트고 어지러이 봄꽃들 피어나도
얼음은 얼음
영하 20도의
차갑고 분명한 정신으로
오월의 맞는다.
28. 4월나무 / 최연창
움직임이 없다는 것
소리가 없다는 것
그것은 생명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움직임도 없이
소리도 없이
4월의 나무는
생명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움을 틔우는가 싶더니
어느새 연록의 잎들을
가득 품고
푸른 봄을 이루었습니다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커다란 몸부림이었고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그것은 아름다운
침묵의 노래였습니다
29. 4월에는 / 목필균
축축해진 내 마음에
아주 작은 씨앗 하나
떨구렵니다
새벽마다 출렁대는
그리움 하나
연둣빛 새잎으로
돋아나라고
여린 보라 꽃으로
피어나라고
양지쪽으로 가슴을 열어
떡잎 하나 곱게 가꾸렵니다.
30. 4월 엽서 / 정일근
막차가 끝나기 전에 돌아가려 합니다
그곳에는 하마 분분한 낙화 끝나고
지는 꽃잎? 잎 사이
착하고 어린 새 잎들 눈뜨고 있겠지요
바다가 보이는 교정 4월 나무에 기대어
낮은 휘파람 불며 그리움이
시편들을 날려 보내던
추억의 그림자가 그곳에 남아 있습니까
작은 바람 한 줌에도 온몸으로
대답하던 새 잎들처럼
나는 참으로 푸르게 시의 길을 걸어
그대 마을로 가고 싶었습니다
날이 저물면 바다로 향해 난 길 걸어
돌아가던 옛집 진해에는 따뜻한
저녁 불빛 돋아나고
옛 친구들은 잘 익은 술내음으로
남아 있겠지요
4월입니다
막차가 끝나기 전에 길이 끝나기 전에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31. 4월의 꽃 / 남정림
4월의 꽃밭에서
가장 반가운 꽃은
꽃 피우지 못할 것 같았던
그 꽃
4월의 꽃밭에서
가장 달콤한 꽃은
꽃 피우며 온몸으로 아팠던
그 꽃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그 꽃 바로 너
32. 4월의 시 / 박목월
목련꽃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을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33. 4월과 아침 / 오규원
나무에서 생년월일이 같은 잎들이
와르르 태어나
잠시 서로 어리둥절하네
밤새 젖은 풀 사이에 서 있다가
몸이 축축해진 바람이 풀밭에서 나와
나무 위로 올라가 있네
어제 밤하늘에 가서 별이 되어 반짝이다가
슬그머니 제 자리로 돌아온 돌들이
늦은 아침잠에 단단하게 들어 있네
34. 4월 비빔밥 / 박남수
햇살 한 줌 주세요
새순도 몇 잎 넣어주세요
바람 잔잔한 오후 한 큰 술에
산목련 향은 두 방울만
새들의 합창을 실은
아기병아리 걸음은
열 걸음이 좋겠어요
수줍은 아랫마을 순이 생각을
듬뿍 넣을래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고명으로 얹어주세요
35. 4월의 노래 / 곽재구
4월이면
등꽃이 피는 것을 기다리며
첼로 음악을 듣는다
바람은
마음의 골짜기
골짜기를 들쑤시고
구름은 하늘의
큰 꽃잎 하나로
마음의 불을 가만히 덮어주네
노래하는 새여
너의 노래가 끝난 뒤에
내 사랑의 노래를
다시 한번 불러다오
새로 돋은 나뭇잎마다
반짝이는 연둣빛 햇살처럼
찬란하고 서러운
그 노래를 불러다오
36. 4월의 노래 / 노천명
사월이 오면은,
사월이 오면은
향기로운 라일락이 우거지리
회색빛 우울을 걷어 버리고
가지 않으려나 나의 사람아
저 라일락 아래로
라일락 아래로
푸른 물 다담뿍 안고 사월이 오면
가냘픈 맥박에도 피가 더하리니
나의 사람아 눈물을 걷자
청춘의 노래를 사월의 정령을
드높이 기운차게 불려 보지 않으려나
앙상한 얼골이 구름을 벗기고
사월의 태양을 맞기 위해
다시 거문고의 줄을 골라
내 노래에 맞추지 않으려나
나의 사람아!
37. 4월의 노래 / 안성란
4월. 그대는 천진한 아이처럼
장난스러운 언어로
행복한 웃음을 만드는
더듬이를 달고
추억을 찾아가는 즐거움으로 시작되었다.
그대는 새로움을 창조한
희망의 초록빛 여린 싹을 잉태하고
꽃피는 날
아름다운 색채로 수채화를 그리는
들녘에 푸릇한 새날의 축복을 낳아
꽃들의 향연이 열리는 푸른 초장으로
안내하는 초대장을 보내 주었다.
꽃의 향기는 조용히 와서
재잘거리며 수다를 떨다가
행복한 미소로 덮어놓고
우리네 삶에 새 생명을 주는
4월. 그대는 희망을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다.
38. 4월의 불꽃 / 장수남
그가 돌아왔다
뜨거운 미소로 창을 두르리며
나를 흔들어 깨웠다.
4월의 민주의거
영원한 민주의 불꽃
4월 진달래 삼천리 흐드러지게
붉게 꽃 피우리라.
39. 4월이 오면 / 권영상
4월이 오면
마른 들판을
파랗게 색칠하는 보리처럼
나도 좀 달라져야지.
솜사탕처럼 벙그는
살구꽃같이
나도 좀 꿈에 젖어
부풀어 봐야지.
봄비 내린 뒷날
개울을 마구 달리는
힘찬 개울물처럼
나도 좀 앞을 향해 달려 봐야지.
오, 4월이 오면
좀 산뜻해져야지.
참나무 가지에 새로 돋는 속잎같이.
40. 4월의 사랑은 / 이재민
잔잔함 음악이 흐르는 공간
잔 거품 오르는 생맥주가 앞에 있다
그리움 한 모금을 삼킨다
이른 아침 산을 오르며
가슴속 그리움을 물갈이하는 여인은
같은 시간
물을 차며 수영을 하듯
내 그리움을 가른다
별빛 같은 아파트 저녁 불빛 속에
사랑의 등대를 찾아
항로를 바꾼 여인은
자신만의 선착장에
그리움의 배를 대고 안식하고 싶어 한다
그곳엔 폭풍우도
세상을 가를 듯한 천둥번개도 없기를
간절한 기도로 소망한다
사랑의 동산에
4월의 향기 짙은 개나리꽃도 피어주고
다가올
7월의 뜨거운 햇살처럼
41. 4월에 내리는 눈 / 조준수
이곳 태백에는
4월에도 눈이 내린다
모시적삼과도 같은 서걱거림으로
찾아온 4월의 눈은
아침 햇살에 더불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산 녘 그늘진 곳에
편지처럼 남아
봄소식을 그리는 우리들에게
기다림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4월에 눈이 내린 신설의 아침은
나뭇가지에 서려
지난겨울을 기억하는 우리들에게
한줄기 추억 선물 남기고
찬란한 아침 속으로
사라져 간다....
4월에 내리는 봄비 / 나상국
누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던가?
삼동추위 떠나가는 자리
봄 언제 올까, 기다리는데
꽃샘추위가 시샘을 부리더니
며칠째 몸져누운 파리한
온기마저도 사라진
텅 빈 허허로운 벌판 같은 방안으로
우울이 한 움큼씩 찾아들더니
저렇게 봄비가 내린다
44. 봄 / 김기림
4월은 게으른 표범처럼
인제사 잠이 깼다
눈이 부시다
가려웁다
소름 친다
등을 살린다
주춤거린다
성큼 겨울을 뛰어넘는다
45. 사월 / 조성심
사월, 사월
사월을 입 속에서 되뇌다 보면
파아란 잎사귀가 돋아난다
하루도 같은 날이 없는
사월에 어찌 자리를 묵힐 수 있으랴
그냥 길을 보라
발을 내디딜 때마다
눈 속에 들어오는 건
어제와 또 다른 숨 막히는
사월의 드라마
그냥 빈 마음만 준비해도
사월 내내 누구나
초대받은 손님이 된다.
46. 봄, 사월에 / 이재무
꽃이 피는 속도를 그대 아는가
시속 40km
남에서 북으로 나는 달리며
숨이 가쁘다네
저 사랑의 속도
뒤따르며 내 쉽게 지치는 것은
몸이 지친 탓만이 아니라네
꽃으로 살지 않고
함부로 꽃 사랑하고 노래한 죄
저리 커서 달아나는 님
길의 고비마다 불쑥 얼굴 내미는
돌팍과 자갈의 충고
그걸 알고 부르튼 마음의 맨발바닥
꽃이 피는 속도에 숨이 가빠서
나는 슬프네 나는 기쁘네
47. 사월의 시 / 이해인
꽃 무더기 세상을 삽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세상은
오만가지 색색의 고운 꽃들이
자기가 제일인양 활짝 들
피었답니다.
정말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새삼스레 두 눈으로 볼 수 있어
감사한 맘이고,
고운 향기 느낄 수 있어
감격적이며,
꽃들 가득한 사월의 길목에
살고 있음이 감동입니다.
눈이 짓무르도록
이 봄을 느끼며
가슴 터지도록
이 봄을 느끼면
오늘 이 봄을 사랑합니다.
오른 곁에 있는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4월이 문을 엽니다.
48. 사월의 노래 / 이태수
앞산이 걸어오네, 일요일 늦은 아침
간밤 꿈 지우고 가부좌로 앉아 있으면
가슴에 진달래, 발치엔 흐드러진 벚꽃
갈지자로 앞산이 느릿느릿 걸어오네
넓은 이마에는 구름 몇 자락 걸친 채
물소리, 새소리를 거느리고 오네
베란다의 난초 꽃잎 위에 감돌고 있네
창유리 스치던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앞산을 슬며시 제자리로 끌고 가지만
꽃 피는 봄 사월 마음은 허공에 뜨고
복사꽃, 살구꽃, 매화들이 다투어 피네
갈지자로 앞산이 느릿느릿 걸어오네
49. 사월의 일기 / 나호열
말문을 그만 닫으라고
하느님께서 병을 주셨다
몇 차례 황사가 지나가고
꽃들은 다투어 피었다 졌다
며칠을 눈으로 듣고
귀로 말하는 동안
나무속에도 한 영혼이 살고 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허공에 가지를 뻗고
파란 잎을 내미는 일
꽃을 피우고
심지어 제 머리 위에 둥지 하나
새로 허락하는 일까지
혼자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파란 하늘에서 떨어진 별처럼
주먹만큼 빛나는 새 한 마리가
잠시 머물고 간 뒤
사월의 나무들은 일제히 강물 흘러가는
소리를 뿜어내고 있다
말문을 닫으라고
하느님이 내린 병을 앓고 있는 동안
50. 다시 오는 봄 / 도종환
햇빛이 너무 맑아 눈물 납니다
살아있구나 느끼니 눈물납니다
기러기떼 열 지어 북으로 가고
길섶에 풀들도 돌아오는데
당신은 가고 그리움만 남아서가 아닙니다
이렇게 살아있구나 생각하니 눈물 납니다
51. 할머니의 4월 / 전숙영
시장 한 귀퉁이
변변한 돋보기 없이도
따스한 봄볕
할머니의 눈이 되어주고 있다
땟물 든 전대 든든히 배를 감싸고
한 올 한 올 대바늘 지나간 자리마다
품이 넓어지는 스웨터
할머니의 웃음 옴실옴실 커져만 간다
함지박 속 산나물이 줄지 않아도
헝클어진 백발 귀밑이 간지러워도
여전히 볕이 있는 한
바람도 할머니에게는 고마운 선물이다
흙 위에 누운 산나물 돌아앉아 소망이 되니
꿈을 쪼개 새 빛을 짜는 실타래
함지박엔 토실토실 보름달이 내려앉고
별무리로 살아난 눈망울 동구밖 길 밝혀준다
52. 내 4월의 향기를 / 윤보영
내 4월은
향기가 났으면 좋겠습니다
3월의 피었던 꽃향기와
4월에 피게 될 꽃향기
고스란히 내 안으로 스며들어
눈빛가지 향기가 났으면 좋겠습니다
향기를 나누며
향기를 즐기며
아름다운 4월로 만들고
싱그러운 5월을 맞을 수 있게
마음을 열어 두어야겠어요
4월에는
한 달 내내 향기 속의 나처럼
당신에게도 향기가 났으면 더 좋겠습니다
마주 보며 웃을 수 있게
그 웃음이 내 행복이 될 수 있기에...
53. 봄이여, 4월이여 / 조병화
하늘로 하늘로 당겨 오르는 가슴
이걸 생명이라고 할까 자유라고 할까
해방이라고 할까
4월은 이러한 힘으로
겨울 내내 움츠렸던 몸을
밖으로, 밖으로, 인생 밖으로
한없이, 한없이 끌어내어
하늘에 가득히 풀어놓는다
멀리 가물거리는 것은 유혹인가
그리움인가
사랑이라는 아지랑인가
잊었던 꿈이 다시 살아난다
오, 봄이여, 4월이여
이 어지러움을 어찌하라
54. 4월 / 박종숙
숨죽인 빈 공간을 차고
새가 난다
물오른 나무들의 귀가
쏟아지는 빛 속으로
솟아오르고
목숨의 눈부신 4월은
유채꽃향기로 가득하다.
아름다워라
침묵만큼이나
안으로 충동질하며
온 피 걸려
생명의 진액으로 타는
4월의 하늘이여.
다만 살아있음이
눈물겨워
55. 4월에는 / 이명희
4월의 하늘은 친절하고 햇살은 상냥합니다
담장에 기대인 목련의 성근 가지에도
하얀 꽃이 피고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던 그리운 소식들이
한꺼번에 들려올 것 같습니다
쌀쌀한 마음을 거두고 포근한 무릎을 내민
그대의 살 내음에 취하고 싶은 날
내 맘의 위안이고 희망인 그대를 만나기 위해
땅을 일궈야 하겠습니다
잡초를 뽑아내고 꽃씨를 뿌려
꽃을 피워야 하겠습니다
인연으로 시작하는 사람들과
다시는 끝날 것 같지 않은 설렘으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희망의 밭을 기름지게 일궈야 하겠습니다
56. 4월 햇살 / 김태인
어머니, 어머니여
자애로운 어머니여
가지마다 새싹 돋게 하였듯
콘크리트 벽에 갇혀
핏기 잃은 가여운 생명에게도
당신의 젖꼭지
57. 4월의 봄 / 곽기용
오롯이 봄날 곁에 머문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몸살 앓듯 꽃불 지피고
마냥 설레이는
가쁜 웃음 터트린다
가끔은 아지랑이 쫒는
내 마음이 너무 커서
한숨짓고 미워하며 아플지라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연실
아지랑이 실을 뽑아 엮는다
잠 못 드는 밤을
오롯이
미움도 사랑하고 픈
설레임 한 가지 이유만으로
쉼 없이 아낌없이 나누고 꿰맨다
나! 오롯이 4월을 맞아
미소가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고 픈 까닭이다
58. 4월과 5월 / 박정만
4월과 5월 사이, 사랑아
봄빛보다 찬란하게 사라져 간 너를 그린다
그린 듯이 그린 듯이
너는 라일락 꽃잎 속에 숨어서
라일락 꽃잎 같은 얼굴로 웃고 있지만
4월과 5월 사이, 사랑아
너는 나를 그리며 더 큰 웃음을 웃고 있지만
네가 던진 함성도 돌멩이도 꿈 밖에 지고
모호한 안개, 모호한 슬픔 속으로
저 첫새벽의 단꿈도 사라지는 것을
사라지는 것은 언제나 사라진다
4월과 5월 사이, 사랑아
세월의 앙금처럼 가라앉아
그것이 거대한 나무의 뿌리가 되고
그 뿌리 속에 묻어 둔 불씨가
되는 너를 그린다
59. 4월 꽃바람 / 성배군
할미꽃, 분꽃, 골담초, 진달래
홍도화, 매화, 라일락, 박태기
저 많은 꽃을
못 본 체하면 조폭이다
나비가 되든지
벌이 되든지
바람이 되어서라도 흔들어 놓아야지
저 가득한 색기를 어떡하나
개처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취객처럼 비틀거리며 색깔을 먹고,
토해내어
빨강, 하양, 노랑 화원을 만들고
한 일주일
셋 서빙인 척하고 저 화원에 들려
목련, 유채꽃, 배꽃, 조팝나무 꽃에 안겨
실컷 바람이라도 피워봤으면
ㅣ60. 4월의 기도 / 임영준
부디 단 하루를 살더라도
버림받고 핍박받는 이들을
잊지 않게 하여 주소서
삶의 초점을 흐리게 하는
탐욕과 술수에 철퇴를 가해
더는 썩지 않게 하소서
쓸쓸하고 나약한 풀꽃들도
종종 그지없는 사랑의 볕뉘를
누리며 안주하게 하소서
61. 4월의 노래 / 고지영
온갖 향기 퍼지는 4월
늘어진 벚꽃 가지에 탐스러운 꽃송이가
뭉텅이 뭉텅이 터질 듯 피어있고
눈발 날 리 듯 벚꽃잎 날리니
떨어지는 꽃잎 쫓아 받아먹던
유년 시절이 그립습니다
하얗게 분칠 한 싸리꽃 향기에
내 마음 사로잡혀 한 마리 나비 되어
유혹하는 꽃길 따라 날아간다
어느 곳 하나 초록 물결 넘친 곳 없는
이 강산에 울긋불긋 활짝 핀 꽃들이여
참으로 너를 사랑하노라
그래 우리 함께 노래 부르자
자연의 풍요가 꽉 차오른
아름다운 4월의 노래를
62. 4월의 봄날 / 염인덕
하늘이 울면
꽃도 울고 있다는 것을
그대는 아시나요
꽃잎 아프면 꽃을 품고 있는
흙도 아프다는 것을
그대는 아시나요
꽃이 웃으면
하늘도 웃고 있다는 것을
그대는 아시나요
꽃잎이 활짝 웃는 날에는
꽃을 품고 있는 흙도
향기에 취해 있다는 것을
그대는 아시나요
솔솔 부는 바람에
봄바람에 고운 향기
그대에게 보내 드리리
하늘이 울면 임도 울고
하늘이 웃으면 함께 웃는 봄날
그대의 눈 속에 내가 있고
내 웃음 속에 그대가 있음을
그대는 아시나요.
63. 4월의 악마 / 임석순
강한 바람 폭풍으로
작은 전기불꽃 틔우니
파도처럼 밀려오는
온통 붉은 불바다
불 도깨비 날아 날아서
뜬눈으로 밤 지새우고
갈 곳을 잃어
다 타버리고 잿더미로
몸뚱이만 간신히
내 혼을 여기에 묻었는데
긴 하루
혼란에 휩싸이고
눈물에 한숨만 나오네
64. 4월이 오면 / 곽종철
연초록으로 단장한 앞산은
연분홍 옷으로 갈아입고
내 잠든 추억을 깨우려는데
벌 나비도 날개를 펴고
꽃을 찾아 헤매는데
4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벚나무는 꽃잎을 휘날리면서
여인의 계절을 알리고
개나리 노란 꽃잎으로
은근한 향기 보내주니
모두가 웃음으로 맞이하는
기분 좋은 날들인데도.
꽃잎 떨어지니 잎 피어나는
계절의 윤회(輪廻) 앞에서
슬픔만 안겨주고 떠나버린
임이 행여나 돌아올까
잠시라도 더 머물고 가라며
붙잡아 놓고 싶은 날이기도 해.
65. 4월의 환희 / 이해인
깊은 동굴 속에 엎디어 있던
내 무의식의 기도가
해와 바람에 씻겨
얼굴을 드는 4월
산기슭마다 쏟아 놓은
진달래꽃
웃음소리
설레이는 가슴은
바다로 뛴다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린 사랑을 향해
바위 끝에 부서지는
그리움의 파도
못자국 선연한
당신의 손을 볼 제
남루했던 내 믿음은
새 옷을 갈아입고
이웃을 불러 모아
일제히 춤을 추는
풀잎들의 무도회
나는
어디서나 당신을 본다
우주를 환희로 이은
아름다운 상흔을
눈 비비며 들여다본다
하찮은 일로 몸살 하며
늪으로 침몰했던
초조한 기다림이
이제는 행복한
별이 되어
승천한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부활하신 당신 앞에
숙명처럼 돌아와
진달래 꽃빛 짙은
사랑을 고백한다
66. 4월이 되면 / 김정희
4월이 되면
4월이 되면
나는 들길에 꽃나무 심겠네
꽃피어 향기 날리면
노란 가방 멘 아이
뛰어다니고
숲 우거지고
새들이 노래 하는 날
내 안의 그대 불러
작은 나무 의자 앉아
커피 마시면서
사랑한다고 고백도 할 텐데
4월이 되면
내 4월이 오면.
67. 4월이 오다 / 구분옥
못내 이별이 아쉬워
훌쩍훌쩍거리던 3월
언제 갔는지
흔적없이 사라졌다
어두운 밤 밀치고
떠나간 그 빈자리에
사랑의 입맞춤으로
유혹하는 4월
흔들리는 여심
서둘러 봄 내음 상큼한
아침 밥상 준비한다
뚝배기 속에 봄이
보글보글 지글지글
달래 냉이 막춤을 춘다
덩달아 춤을 추는 4월
어느새 입가에는
꽃이 활짝 피었다
영원히
지지 않은 그대라는
향기 나는 꽃으로
68. 4월, 진해만 / 정일근
바다는 푸른 접시에 담겨
신의 아침 식탁에 놓여 있다
신은 아페리티프를 주문해 놓고
노래하듯 시를 읽거나
슈트라우스의 왈츠를 듣는다
세일러복을 입은 갈매기들이
거수경례를 하며 지나간다
향커피 한 잔이 뜨거워지는 사이
바다의 표정은 세룰리 언 블루에서
색스블루로 변해 가고
사월 바람에 꽃잎 몇 장 날아와
접시 속의 가벼운 섬으로 앉는다
후, 하고 꽃잎들을 불어본다
자욱한 꽃향기 바다를 덮는다
69. 4월 아침바다 / 김덕성
어두움을 뚫고 오른 태양
붉게 타는 듯 늠름한 얼굴 드러내며
신비를 연출하는 수평선
어두움이 사라지고
요란하던 바다 울음소리 잠재우며
화산 같은 열기로
열리는 아침
너무 찬란하고 깨끗한
햇살에 젖으며
새로운 신비를 맛보는 자연의 조화
경건한 자세 취한다
오색 물결 속에
수없이 씻어내는 파도
내 영혼마저 은빛 물결에 씻은 나
갓 태어난 맛을 본다
4월 친구에게 / 김경철
서늘한 봄인가 싶더니
어느새
더운 여름이 온 듯
바람마저 뜨겁다
아직 4월인데
벌써
봄은 가고
여름이 왔나
겨울이 떠난 지
얼마나 되었을까
보름 한 달
짧아진 봄이
떠날 시간을 재는
4월 친구에게
푸념을 늘어놓는다
추운 겨울도
더운 여름도 싫으니까
제발
봄바람이 불어오면
겨울은 얼른 가고
여름은 천천히 왔으면
하는 바람을 해보지만
말도 안 듣는 계절이
괜히 미움을 받는다
위로의 뜻인가
보슬보슬 내리는
봄비가
대지를 적셔주려고
하늘에서
한없이 내려준다
4월, 회색 종점 / 이향지
수수비를 타고 온다, 비
기다리지 않을 때 오는
비 같은 여자
뱃고동도 울지 않는
새벽 거리
방금 열차에서 내린 신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시계탑을 본다
배와 차를 갈아타는 사이에
스무 시간이 갔군, 철길
밤새도록 평행선을 달려왔는데
시계의 얼굴은 둥글다
회색 안개 속에서 까만 테를 두르고
피어라, 피어라, 제 몸을 두드리는 수수꽃다리꽃
안녕! 나는 다도해에서 왔어, 저기 저
택시를 잡으러 뛰어가는 남자는 내 신랑
회색 비둘기가 날아간다
회색 차가 굴러온다
회색 문이 열린다
안녕! 여기는 회색 종점
안녕! 난 회색 종점에서 출발해
4월의 숨결속에 / 오애숙
봄이 올 듯 말 듯
가녀린 실바람 사이사이
삼월의 장막 거둔 사월 초하루
싱그럼 피어나 살랑이는
살폿한 이아침
싸리문가 노란 개나리
거룩한 희망의 속삭임으로
빰빠라 빰빠 기상나팔 불며
일어나거라 동창이 밝았다
봄의 소리로 깨울 때
요한 슈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오케스트라연주
경쾌한 하모니 봄처녀 가슴에
사월의 숨결이 왈츠의 물결로
스미어 휘파람 부는 사월
어디선가 봄의 소리
연분홍 꽃잎 흩날리는 물결
첫사랑의 숨결 속에 일렁이고 있어
그 옛날 추억들 아련한 숨결로
그리움 물결치는 4월입니다
4월이 지나가는 길목 / 김용수
4월이 지나가는
새벽길에 비가 내리면
모래알처럼 흩어졌던
그리움이 사방에서 돌아온다.
훈풍이 불어오면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 산벚 꽃잎은
젖은 콘크리트 바닥에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바싹 붙어 있다가
도심에 쌓인 묵은 때와 함께
맨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벌써 여름이 무릎까지 와 있을까?
벚나무는 작년 이맘때처럼 아무 일 없다는 듯
화관보다 더 큰 잎사귀를 밤새 만들어
남아있는 꽃잎을 덮어버린다.
잠시 후 비가 멎고
아침 햇살이 동녘에 올라오면 또
까닭 없이 멀어져 갈 그리움은
그림 속의 풍경처럼 더욱 가깝게 들려온다.
사월 / 김현승
플라타너스의 순들도 아직 어린
염소의 뿔처럼 돋아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도시는 그들 첨탑 안에 든
예언의 종을 울려
지금 파종의 시간을 아뢰어 준다.
깊은 상처에 잠겼던 골짜기들도
이제 그 낡고 허연 붕대를
풀어 버린 지 오래이다.
시간은 다시 황금의 빛을 얻고,
의혹의 안개는 한동안 우리들의
불안한 거리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다.
검은 연돌(煙突)들은 떼어다 망각의
창고 속에 넣어 버리고,
유순한 남풍을 불러다 밤새도록
어린 수선(水仙)들의 쳐든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개구리의 숨통도 지금쯤은
어느 땅 밑에서 불룩거릴 게다.
추억도 절반, 희망도 절반이어
사월은 언제나 어설프지만,
먼 북녘에까지 해동(解凍)의 기적이 울리이면
또다시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 달은 어딘가 미신(迷信)의 달 …….
사월 / 임미숙
모든 사물이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설레이고 울렁이는 달
붉은 동백이 뚝 떨어지는 아픔도
연분홍 벚꽃이 흩날리는 그리움도
노오란 개나리의 간절한 소망도
사월이라 느낄 수 있는 달
긴 겨울 보내고
따스한 봄볕에
종종거리는
병아리 떼처럼
새 생명
새 희망
새 출발을
다시금 할 수 있는 사월이 있어 좋다
중년에도 꽃을 보며
가슴 뛰고 울렁이는
내가
더 좋다.
사월 비 / 이제하
보소, 보이소로 오시는 사월 가랑비
헤어진 여자 같은 사월 가랑비
잔치도 끝나고 술도 깨고 피도 삭고 꿈도 걷히고
주머니마저 텅텅 빈 이른 새벽에
가신 이들 보이는 건널목 저편
사랑한다, 한다 횡설수설하면서
어디까지 따라오는 사월 가랑비
미친 4월 / 정옥령
하늘이 껌껌해지기 시작했다
뭐가 오려나?
새순 가득한 가지들 사이로 하얀 눈꽃
흩뿌려진다
조상님 노하셨나? 창조주님 노하셨나?
꽃잎 나부끼는 이 4월에 눈이라니
허허허 세상이 어찌 된 건지
어찌 되려고 이러는 건지
사월 끝날 / 임재화
사택의 창 너머 동산 위에서
수줍게 빛나는 달빛이 고운
사월의 마지막 날 깊은 밤에
정신없이 숨 가쁘게 달려왔는데
여러모로 부족하기만 하였던
지난 삶의 나날을 되돌아봅니다.
그동안 잘했든 잘못했든
삶의 질곡과 흔적을 반추하면서
심기일전 마음을 추슬러 봅니다.
사월에게 / 전은행
이제
시를 쓰다오
바람의 말로
꽃의 말로
헛헛하고 쓸쓸하여
딱딱하게 굳은 내 심장을
다시 뛰게 해 다오
붉은 입술의 말로
팔딱이는 심장의 말로
부드러운 백색의 말로
시를 쓰다오
너무
사용하여
헐거워진 마음은
너의 말로
바짝 끌어당기고
침잠하고 어두운 마음은
훌렁 뒤집어 다오
오직
너의 말로 가득
사월 / 김종덕
사월에는
모든 생명이 일어날 수 있게
봄비가 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속에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피게 하여 주시옵소서
황량한 마음속의 밭을 갈아
고운 새싹이 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는 비가 창가를 노크하여
잠자고 있는 눈을 뜨게 하여 주시옵소서
진한 초록색의 들판에 자유와
생명이 함께 할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그다지 크지 않는 소리로 불러도
서로에게 닿을 수 있는 귀와 마음을
열게 하여 주시옵소서
바다를 잠잠케 하시어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일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번데기에서 갓 깨어난 노오란
나비들이 날개를 말릴 수 있게
따스한 햇빛을 주시옵소서
밤에는 별에 사는 외로운 넋들을 볼 수
있게 구름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그리워 목이 터져라 불러보는
그리운 이들을 서로 만나게 해 주시옵소서
서로서로 손을 맞잡고 따스한
마음을 나눌 수 있게 한량없는
정을 뿌려 주시옵소서
못다 한 이야기들을 새길 수 있도록
차가운 가슴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월의 꽃 / 김경숙
전국은 비상사태다
봄바람에 꽃들이
참았던 웃음 보내느라
하루해가 짧다고
노을 붙잡더니,
그것도 모자라서
밤이면 달빛 끌어안더니,
밤낮 가리지 않고
함박웃음 터뜨려 유혹하더니,
향기에 취한 사월
흔들리며 걸어간다
꽃바람 따라 어디든
사월의 봄 / 고옥선
소담한 봄꽃이 헛헛한 마음에
소나기 쏟아붓는다
후두득 피우고 후두득
떨어지고 말 일
꽃은 활짝 피우며 설렘을 주다가
후두득 바람이 이끄는 대로
지고 만다
마음이 외로워지는 이유다
봄은 나무에게 마술을 걸었다
푸른 숲이 되라고
소나기가 지나간 자리처럼
푸르게 올라온다
초록으로 물들이며
허해진 봄 여인이 되지 말라고
녹색 위에 사월이 출렁거린다
희망의 봄 봄 봄
사월의 나무 / 윤꽃님
그대의 소리를 듣는다
시냇물의 흐름이
조약돌의 막음을
넘을 때 내는
달콤한 신음 소리 같은!
물고기처럼 퍼덕 솟아올라
흐름을 계속하고
또 퍼덕 솟아올라
흐름을 계속하는,
영원을 향해 뛰어가는!
소라 고동 같은 내 귀의
시내를 규칙적으로 흘러
내 심장을, 몸을, 마음을
구석구석 평온함으로 물들이며
두근두근 물살을 뻗어 나가는!
오늘도 부족함 없이
생생하게 발화되는
연둣빛 언어, liebe dich!!!
하루, 하루
그대는 사랑스럽다
사월의 노래 / 조순자
오오, 꽃피고 새들 노래하는
만삭 된 사월의 태양이 찬란하다
찬란한 태양은 온 대지를 축복하고
자연은 연록 빛 푸름으로 맑게 빛난다
나뭇가지마다 어린 나뭇잎 반짝이고
꽃 입술마다 생긋 방긋 웃음 짓는다
오오. 삼라만상 푸르른 사월은
잉태한 오월을 출산하는 희망의 달
라일락 향기 나는 숲 속으로 출산하러 간다
오오, 나는 축복된 사월의 뜨락에서
희망찬 오월을 꿈꾸며 향긋한 보랏빛을
꿈꾸며 고요히 임 향해 세레나데를 부른다.
사월의 엽서 / 이철우
사월의
눈보라에 한통 보냈고
흩날리는
벚꽃에 한통 보냈고
살랑살랑
정겨운 봄바람에게도
한통 보냈습니다.
그리움의 안부
사랑의 안부
인생의
곱고 맑음 마음 넣은 엽서
하나 보냈습니다
꽃길 걸으며
아름다운 마음 느껴보라고
인생길 걸으며
비우고, 내려놓는 마음 되어보라고
사월이 심술부려도
꽃비 흩날려도
하루하루 아름다운
삶이 되시라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매일매일 사랑합니다
같은 말 일지라도
보내고
또 보내고 싶습니다.
사월의 찬가 / 김덕성
긴 인고의 나날을 보내고
움츠렸던 산야에 훈풍이 불어와
따사로운 생명을 불어넣으며
긴 잠에서 깨어나 봄이 열린다
샘물이 솟듯 생명력이 솟는 사월
꿈꾸던 꿈의 봄을 순산한다
빛과 색깔의 향연이 벌어지며
이 땅에 봄의 뿌리를 내렸다
오랜 기다림은 아닐지라도
성급하게 피어놓는 고운 꽃잎들
앞을 다투어 풍기는 꽃향내
꾸며진 봄의 화려한 솜씨를 보라
꽃바람 불어오는 봄의 숨결
그림 같이 창조된 사월의 봄
창조주의 위대한 그 솜씨를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사월의 향기 / 홍대복
싱그러운 봄 내음 스며드는 초록 향
아나 한 꽃잎 내게 오라는 봄의 손짓
이슬 맺힌 이파리 찬란한 언저리에
햇살마저 부끄러워 분홍빛 홍안이라
마음껏 여유로운 사월의 푸른 희망
진달래 동산에 꽃잎 띄운 차 향처럼
연둣빛 풀꽃 사랑 청초한 꽃잎 향기
보석보다 더 귀한 사월의 향기여라
슬픈 사월에 / 도지현
피 끓는 청춘의 가슴에서
푸른 선혈이 콸콸 쏟아진다
더 높은 이상과 조국을 위해
한목숨 밑거름으로 바쳤다
피워보지 못한 송이송이 꽃
낙화가 되어 땅에 굴러도
그 빛을 자양분으로 삼아
풍요로운 토양을 만들었지
새로운 이념을 새워
한 나라의 주춧돌이 되었고
그들의 선혈로 물들인 거리가
자유의 물결로 노도가 되었다
슬퍼도 결코 슬프지만은 않은
거룩한 영혼을 받들어
조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자
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나라로
*4.19 혁명을 생각하며
사월의 아이 / 권순자
아이야
그 먼 나라에서 조개를 줍고 있니
지금 봄이 한창인데
거기에도 벚꽃이 활짝 피었니
진달래 꽃망울보다 더 붉고 아름답던 아이야
버들가지보다 싱그럽던 아이야
영영 멀어진 건 아니지?
고래와 솟구치고 잠수하고 있을 아이야
검푸른 바다를 운동장처럼 뛰고 다닐 아이야
영원히 웃고 웃을 아이야
물고기 꼬리지느러미 잡고 헤엄치고 있니
네 따뜻한 가슴이 날마다 퍼 올리는
햇살을 받아 마시고
뜨거운 열망이 세상을 환하게 펼치는구나
네가 파도소리로 날마다
소곤대는 소리를 듣는다
핏방울이 돌고 돌며 너를 기억하며
네 목소리를 듣는다
네가 지나간 자리에 내가 서서
네 목소리를 듣는다
검은 구름이 몰려오더라도
난 이제 울지 않는단다
네가 말갈기 휘날리도록 파도를 타고
바다의 울음을 재우려고 애쓰는 걸
알고 있단다
웅크리고 있던 것들이 일어서고
침묵한 것들이 끓어오르도록
끓어올라 스스로 눈물이 되고
소리가 되고 웃음이 되도록
이끄는 아이야
투명해져 버린 아이야
꽃이 되고 기도가 된 아이야
다시 바람이 일고
여기서 꽃들이 지고 있구나
붉게 서늘하게 지고 있구나
사월의 배나무 / 배두순
물오름의 끝, 맥박이 빨라진다
탄력 좋은 가지부터 꽃을 뱉어내기 시작한다
황사만 일없이 풀썩거리고
지금 나는 배나무들의 초례청을 찾은 것이다
벌들이 게을러지고
나비들이 인공의 장신구로 돌아간 지금
꽃들의 합궁은 이제 사람의 몫이다
붓질이 바빠지고 하얀 베일 속 남녀가
그림자만 보이는 듯한 한 낮
지금은 잠시 공중의 태양도 달이 되어
내 무심한 행동에 입방아가 찧어지고
초야, 저녁이 오기까지 계속 이어진다
사월의 배나무에 혼례 일을 한다
붓질은 더 이상 안빈낙도를 새겨주지 않고
벌과 나비가 찾아들지 않는
사월의 배나무 사이를 쓱쓱
휴우- 망측하기도
내 사월에는 향기를 / 윤보영
내 4월은
향기가 났으면 좋겠습니다
3월에 피었던 꽃향기와
4월을 기다렸던 꽃향기
고스란히 내 안으로 스며들어
눈빛에도 향기가 났으면 좋겠습니다
향기를 나누며
아름다운 4월을 만들고
싱그러운 5월을 맞을 수 있게
마음을 열어 두어야겠지요
4월에는
한 달 내내 향기 속에 나처럼
당신에게도
향기가 났으면 좋겠습니다
마주 보며 웃을 수 있게
그 웃음이 내 행복이 될 수 있게
사월의 산사에서 / 최숙경
비 내리는 봄길 따라
치열했던 삼월이 떨어져
그 열정을 적시 우고
꽉 채워진 것과
덜 채워진 것들이
또 그대로 뒤섞여 뒹굴고 있다
사월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조용한 산사 대웅전 모래마당
서걱서걱 옮겨 선 자리마다
하나씩 또 하나씩 내려놓기를 한다
작은 잎은 허공으로 퍼져
연무로 쏟아 오르고
영원히 꺼지지 않을
부끄러움의 심지 하나 품고
사월의 깊은 골짜기로 빠져들고
어느 사월의 단편 / 주응규
봄바람이 사르르 꽃불을 놓아 희롱하는 사월
어느 산기슭에 두견새 우니는 소리
꼬막손 잎새로 메아리를 굴리며
누구를 하염없이 되부르는 겐가
조팝나무 가녀린 가지가지마다
가슴이 하얗게 부셔나도록
먼 그리움을 잎잎이 피운
조팝꽃 휘늘어진 꽃떨기 덤불에
볕뉘가 살며시 손을 뻗쳐
꽃불을 소담스레 받쳐 들고
옛 임을 기다리는가
초록빛 함빡 머금은 바람이 훑고 지나
잿빛에 싸인 대지(大地)는 허물을 벗고
파릇파릇한 물빛이 봇물 터져
산야는 쪽빛으로 차고 넘치누나.
사월의 끝자락에서 / 정옥령
청보리 비바람 맞으며
알알이 영글고
강 둔턱 비치는 여울목 따라
분홍빛 사과 향 꽃바람에 흩날릴 적에
어디선가 다가오는
여름 아저씨의 털털한 웃음소리
여름을 재촉하는 소리에
청개구리 꾸억꾸억 인사하는 냇가를 따라
수초 속 버들치 뻐끔뻐끔
아침 인사 한번 요란하네
夏夏夏
크게 한 번 웃고 맞아들이지요
어느 사월에 내린 봄비 / 이강철
비가 내린다
메마른 산과 들
향긋한 꽃내음으로 적시며
맺혔던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한다
빗방울을 털면서 춘풍이 일렁인다
어쩌나!
어쩌나!
저것 좀 봐…….
어여쁘게 피어나던 꽃잎 떨어지겠네
꽃샘바람아
저 어여쁜 꽃잎 떨어져 누우면
우리들의 마음은
다시 허전함과 슬픔에 잠겨 버린다오
끝없이 내려다오
사월의 봄비야
내려서
메마른 산과 들
끝없이 적셔다오
사월의 봄비야
4월 / 김용전
얼었다
풀리는 노곤한
강물 위엔 아리운
불륜의 욕망이 흐르고
황소 눈물처럼 뚝뚝
지는 하얀 목련 아래 서면
어느 사랑이 영원하랴
문득 미소가 돌아
4월은 눈물 없이도
떠나기 좋은 계절
벚꽃 눈보라 치는
길 위에 서면
서러운 이별조차
눈이
4월 / 반기룡
바람의 힘으로
눈 뜬 새싹이 나풀거리고
동안거 끝낸 새잎이 파르르
목단꽃 같은 웃음 사분사분 보낸다
미호천 미루나무는
양손 흔들며 환호하고
조치원 농원에 옹기종기 박힌
복숭아나무는 복사꽃 활짝 피우며
파안대소로 벌들을 유혹하고
산수유 개나리 목련화는
사천왕처럼 눈망울 치켜뜨고
약동의 소리에 귓바퀴 굴린다
동구 밖 들판에는
달래 냉이 쑥 씀바귀가
아장아장 걸어 나와
미각 돋우라 추파 던지고
둑방길에는 밥알 같은
조팝나무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다
4월 / 문인수
절을에워싼 산빛이 수상하다
잡목 사이로 여기 저기
펄럭 걸린 진달래
단청 엎질린 것 같다
등산로를 따라 한 무리
어린 여자들이 내려와서
마을 쪽으로 사라진다
조용하라, 조용히 하라 마음이여
절을 에워싼 산빛이 바릿하다
4월 / 변영숙
톡톡 버들강아지 눈튼다
홍매화...가지마다 홍등 달고
앞산 진달래도
갸여히 가슴에 불당 겼디
몽실 부푼 백목련 젖가슴에 배시시
곁눈질로 웃던
벚꽃도 그만
꽃눈 펑펑 난리가 났다
난데없이 덥친 비바람에 심통에
훌훌 땅바닥에 질펀한 저 아픈
사람들
오늘밤
남은 저 꽃들
또다시 왕창 무너진다면... 어쩌나
숨이 차 오른다
숨이 막 멎을 것 같다
4월 / 안재동
사회의 엘리트 그룹에 진입하는 지름길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수천 편의 응모작품들 중 단 한 사람의
작품만이 행운의 여신에 의해 선택되는
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일도
참 어려운 일이다.
해외유학 길에 올라 상처받지 않고
버젖하게 박사학위를 따오는 일도
돈도 있어야 하고 실력도 있어야 하는,
참 어려운 일이고
수십 내지 수백, 아니 수천 명이나 되는
종업원의 밥줄이 걸린, 크고 작은
사업체 하나 망하지 않게 운영하는 일도
참 어려운 일이다.
먹고살기 위해 무더위나 강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일 년 내내 막노동판에서
등짐을 져다 나르는 일도
참 어려운 일이고
일하고 싶어도 일할 곳 없어
세월아 네월아 하고 빈둥거리는 일도
참 어려운 일이다.
고통스러운 기나긴 겨울 동안 묵묵히,
바야흐로 세상 모든 나무들이
다시 푸른 싹을 틔우며
개선장군처럼 당당한 자태를 갖추는데
세상 모든 꽃들이
오래전 잃어버린 얼굴을 찾기나 한 듯
감동처럼 느껴지는 새 얼굴과
짙은 향기를 세상에 들이미는데
긴 시간, 내 속의 살았으되 죽은 영혼,
저 나무와 꽃들처럼 참 어려웠던 듯
쉬운 듯
이제 소생했으면 하는,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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