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돌아가시던 해인 경오년(1570 선조3)에 장손인 이안도(李安道, 1541~1584)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로 강습할 때 혹은 타인과 토론할 때에 지켜야 할 예절에 대해 훈계를 남긴 글입니다. 편지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는 어른들 앞에서 응당 마음을 비우고 기운을 낮추어 서로 다른 중론을 경청하여 천천히 연구하고 세밀하게 살펴 장점을 따르고 배움을 구하기를 바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중략) 가령 너의 주장이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미 무례하게 큰 소리 치는 것은 학자가 배움을 구하는 도리가 아닌데 하물며 그릇된 견해가 잘못 그 속에 들어있음에도 이와 같이 행동하니 옳다고 하겠느냐. 이런 행동을 속히 고치거라.[汝於諸丈前 當虛心下氣 參聽衆論之不一 徐究而細察之 以庶幾從其長而得其益 可也 (중략) 假使汝說不違理 已是咆哮無禮 非學者求益之道 況妄見誤入而如此 其可乎 其速改之] 손자가 어른들 앞에서 자신의 소견을 굽히지 않는 모습에 조금은 칭찬해 줄 법도 합니다. 그러나 퇴계는 오히려 설익은 학문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바빠 도리어 배움의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호되게 꾸짖고 있습니다. 이안도는 비록 마흔 넷의 젊은 나이로 운명을 달리 하지만 당대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는 평을 들었고 사후 동계서원(東溪書院)에 제향된 점으로 보아 편지를 받은 서른쯤에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학문적 성취가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손자를 직접 훈육한 퇴계인들 어찌 이 같은 사실을 몰랐겠습니까마는 학문의 성취에 앞서 겸양의 덕을 갖춤이 곧 학자의 근본 자세임을 일깨우려 한 훈계였다고 하겠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문득 과거에 스터디나 회의 도중 나도 모르게 얕은 지식으로 언성을 높여 자신의 주장만 늘어놓던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물론 각자 소견을 적극 피력하는 것을 무조건 나쁘다 말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강습하고 토론하는 궁극적 목적이 중론을 들어 나의 편견을 줄이고 학업을 성취함에 있음을 감안한다면 서로가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에서야 어찌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물이 빈 곳으로 모이듯 겸허한 곳으로 중론이 모이는 이치를 일깨워 주려한 퇴계의 훈계야말로 배움을 구하는 기본 덕목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