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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心에젖어

첫 사랑에 관한 詩 모음

첫사랑 시 모음 (시인 가나다 순)

첫사랑 / 고재종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워낸 저 황홀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뜨린다.


(고재종·시인, 1959-)

 

 

 

첫사랑 / 괴테

아, 누가 돌려주랴, 그 아름답던 날

첫사랑 그때를
아, 누가 돌려줄 수 있으랴
그 아름답던 날의 오직 한 순간만이라도

외로이 나는 이 상처를 키우며
쉼 없이 되살아오는 슬픔에
가버린 행복을 서러워할 뿐
아, 누가 돌려주랴, 그 아름답던 나날
첫사랑 그 즐거운 때를


(괴테·독일 시인, 1749-1832)

 

 

 

첫사랑 / 김소월

아까부터 노을은 오고 있었다.
내가 만약 달이 된다면
지금 그 사람의 창가에도
아마 몇줄기는 내려지겠지

사랑하기 위하여
서로를 사랑하기 위하여
숲속의 외딴집 하나
거기 초록빛위 구구구
비둘기 산다

이제 막 장미가 시들고
다시 무슨꽃이 피려한다.

아까부터 노을은 오고 있었다.
산너머 갈매 하늘이
호수에 가득 담기고
아까부터 노을은 오고 있었다.

 

(김정식·시인, 1902∼1934)

 

 

 

사랑의 물리학 / 김인육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김인육·시인, 1963~)

 

 

 

첫사랑 / 문향란

나 그대를 사랑하려 합니다.
그대의 낯설지 않은 미소와 눈웃음을 기억하며
그 모든 것이 내 곁을 떠나간다 해도
영원을 약속하렵니다.

그대에게 건네지도 못하는 사랑
나 그대 앞에 나설 용기가 없습니다.

그대에게 내가 누구인지도
애써 밝히지 않으렵니다.

그저 소중히 내 마음의 일기장을 넘기며
오늘 또 한 페이지 그대 모습 그리렵니다.


(문향란·시인, 1971~)

 

 

 

첫사랑 그 사람은 / 박재삼

첫사랑 그 사람은
입맞춘 다음엔
고개를 못 들었네.
나도 딴 곳을 보고 있었네.

비단올 머리칼
하늘 속에 살랑살랑
햇미역 냄새를 흘리고,
그 냄새 어느덧
마음 아파라
내 손에도 묻어 있었네.

오, 부끄러움이여, 몸부림이여,
골짜기에서 흘려보내는
실개천을 보아라,
물비늘 쓴 채 물살은 울고 있고,
우는 물살 따라
달빛도 포개어진 채 울고 있었네.


(박재삼·시인, 1933-1997)

 

 

 

첫사랑의 시 / 서정주

초등학교 3학년 때
나는 열두살이었는데요.
우리 이쁜 여선생님을
너무나 좋아해서요.
손톱도 그분같이 늘 깨끗이 깎고,
공부도 첫째를 노려서 하고,
그러면서 산에 가선 산돌을 줏어다가
국화밭에 놓아두곤
날마다 물을 주어 길렀어요.


(서정주·시인, 1915~2000)




첫사랑 / 시마자키 토오손

막 올리기 시작한 앞머리가
사과 아래에 보였을 때
앞머리에 꽂은 꽃 장식처럼
아름다운 그대라고 생각했지요.

상냥하게 하얀 손 내밀어
사과를 내게 건네주었고
연분홍 빛깔의 가을 열매로
사랑이 처음 시작되었지요.

나의 정신없는 고백의 한숨이
그대 머리카락에 닿을 때에
행복한 그리움의 잔을 그대가
사랑으로 채워주어 마셨지요.

사과밭 사과나무 아래로
저절로 생겨난 오솔길은
누가 밟기 시작해 남아있는지
물어보시니 더욱 그리웠어요


(시마자키 토오손·일본의 시인 1872~1943)

 

 

 

첫사랑 / 안도현

그 여름 내내 장마가 다 끝나도록 나는
봉숭아 잎사귀 뒤에 붙어 있던
한 마리 무당벌레였습니다

비 그친 뒤에, 꼭
한번 날아가보려고 바둥댔지만
그때는 뜰 안 가득 성큼
가을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코 밑에는 듬성듬성 수염이 돋기 시작하였습니다

(안도현·시인·시인, 1961~)

 

 

 

첫 사랑 (First love) / 예이츠

 

하늘에 떠가는 달과도 같이

잔인한 아름다움의 종족(種族)으로 자라긴 했지만

그녀는 잠시 걷다 얼굴을 붉히고

내 가는 길을 막고 서 있었다.

마침내 나는 생각했다.

 

그녀의 몸이

살과 피의 심장을 지니고 있다고

 

그러나 내 손을 그 위에 올려 놓고

돌의 심장임을 알아낸 이후

나는 많은 것을 시도하였으나

하나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

 

달 위를 지나가는 모든 손은

미치고야 만다.

 

그녀의 미소에 나는 변해서

그만 시골뜨기가 되어 버렸다.

 

여기저기를 서성거리며 달이 나타날 때

하늘에 떠도는 별들보다

한층 더 공허한 마음이 되었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아일랜드 1864~1939)

 

 

 

첫사랑 / 이양우


첫사랑은 흡연 같은 걸 거야,
처음에는 세차게 빨아들인다.
마시고 난 찌꺼기는
타다가 남은 재,

마신 연기는
가슴속에 심장을 태우고
니코틴이 되어
까맣게 앙금으로 남는다.

그리고 또 남은 연기는
이미 날아갔다.


(이양우·시인, 1941~)

 

 

 

첫사랑과 매화 / 이해인


해마다
첫사랑의 애틋함으로
제일 먼저 매화 끝에
피어나는 나의 봄.

눈 속에 묻어두었던
이별의 슬픔도
문득 새가 되어 날아오네
꽃나무 앞에 서면
갈곳 없는 바람도
따스하여라.


(이해인·시인,수녀, 1945~)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 장석주

어떤 일이 있어도 첫사랑을 잃지 않으리라
지금보다 더 많은 별자리의 이름을 외우리라
성경책을 끝까지 읽어보리라
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그 길의 끝까지 가보리라
시골의 작은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과
폐가와 잡초가 한데 엉겨 있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걸어가리라
깨끗한 여름 아침 햇빛 속에 벌거벗고 서 있어 보리라
지금보다 더 자주 미소짓고 사랑하는 이에겐
더 자주 <정말 행복해>라고 말하리라
사랑하는 이의 머리를 감겨주고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더 자주 안으리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 자주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보리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상처받는 일과 나쁜 소문, 꿈이 깨어지는 것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벼랑 끝에 서서 파도가 가장 높이 솟아오를 때
바다에 온몸을 던지리라


(장석주·시인, 1954~)

 

 


첫사랑 / 조병화

밤나무숲 우거진
마을 먼 변두리
새하얀 여름 달밤
얼마만큼이나 나란히
이슬을 맞으며 앉아 있었을까
손도 잡지 못한 수줍음
짙은 밤꽃 냄새 아래
들리는 것은
천지를 진동하는 개구리 소리
유월 논밭에 깔린
개구리 소리

아, 지금은 먼 옛날
하얀 달밤
밤꽃 내
개구리 소리.


(조병화·시인, 1921~2003)

 

 


첫키스 / 함기석

너의 입술에서
장미꽃이 피어난다
새들이 날아오른다
새들이 날아가는 호수가 보인다
눈이 예쁜 물뱀 하나 뭍으로 올라온다
꽃밭을 지난다
앵두밭을 지난다
탱자나무 울타리 지나 내게로 온다
흰 벽돌담 넘어 내게로 온다
미끈미끈 내게로 다가오는 어린 뱀은
미끈미끈 내게로 다가오는 너의 혀
두근두근 내 입술에 살을 비빈다
나의 입술에서
빠알간 금붕어들이 쏟아진다
빠알간 코스모스 꽃잎들이 쏟아진다
아 가을이다
나는 손을 쭈욱 뻗어
구름을 따 네 눈에 넣어준다
해와 달을 따 네 입에 넣어준다
하늘 가득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 울려 퍼진다


(함기석·시인, 1966~)

 

 

 

님이여, 나는 여직도 나그네로 걷습니다 / 흙돌

 

사랑의 말이
사랑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면
나에게는
열 개의 손가락까지 필요하지 않습니다

 

고향의 당산
느티나무에 기대서서
인적없는 신작로를 바라보며

휘파람이나 불던 그날도
나는 고독에 취한 나그네였습니다

 

밤이면
하늘의 별은 또 얼마나 많던지
나의 별을 점치지 못하고
밤은 예나 이제나 어둡기만 한데
안개 흐르는
새벽길의 미로가 나는 좋습니다

 

무성한 숲의 깊은 영혼에선
뛰르르 뛰르르 찬가가 울려 나오고
빛의 베일은 어둠이었습니다
방랑은 끝나지 않았어도
근원을 알 수 없는
폐부 깊숙이 스미는 이 행복!


사랑의 말이
사랑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면
세상은
처음부터 하나의 손가락!

님이여,
나는 여직도 나그네로 걷습니다

 

( 심재방·시인,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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