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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心에젖어

첫눈에 관한 시 모음

첫눈에 관한 시모음 [첫눈 시] [눈 시]

첫눈 오는 날 / 정호승

 

남한테 비굴하게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고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첫눈이 내릴 때

첫눈한테는 무릎을 꿇어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날

첫눈 오는 날

길 잃어 쓰러진 강아지를 품에 안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첫눈 / 목필균

 

까아만 밤에

내리는 함박눈

 

바라만 보아도

순결해지는 가슴속에

기척 없이 남겨진

발자국 하나

 

한 겹, 두 겹, 세 겹

덮히고 덮히고 덮혀서

아득히 지워졌던 기억

 

선명하게

다가오는

얼굴 하나

 

 

첫눈 / 박인걸

 

첫눈을 맞으며

마냥 좋아 날뛰던

그 시절 추억도

이제는 희미한 그림자로

황혼이 내려앉아

찬바람에 뼈가 시린

수척한 나그네는

눈이 와도 감격이 없다.

가로등 언저리에

벌떼처럼 나는

순백의 눈발을 볼 때

그녀를 떠올리며

가슴 설레던

심장의 고동소리 대신

이제는 눈길을 걸으며

숨이 찰 뿐이다.

 

 

첫눈 / 정연복

 

첫눈 오는 날

그때 그 자리에서 만나자는

 

당신의 말씀 아직도

귀에 생생해요.

 

하루도 빠짐없이

손꼽아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

 

하늘에서 내리는 첫눈

조금은 더 빨라질 수 있을까요.

 

당신과 함께할 첫눈이

언제 올지는 몰라도

 

매일 밤 내 꿈속에서는

송이송이 눈이 내려요.

 

 

첫눈편지 / 이해인

 

1

차갑고도 따스하게

송이송이 시가 되어 내리는 눈

눈 나라의 흰 평화는 눈이 부셔라

 

털어내면 그 뿐

다신 달라 붙지 않는

깨끗한 자유로움

 

가볍게 쌓여서

조용히 이루어 내는

무게와 깊이

 

하얀 고집을 꺽고

끝내는 녹아버릴 줄도 아는

온유함이여

 

나도 그런 사랑을 해야겠네

그대가 하얀 눈사람으로

나를 기다리는 눈나라에서

 

하얗게 피어날 줄 밖에 모르는

​눈꽃처럼  그렇게 단순하고

순결한 사랑을 해야겠네

 

2​

평생 오들오들

떨기만 해서 가여웠던

해묵은 그리움도

포근히 눈밭에 눕혀놓고

하늘을 보고 싶네

 

어느날 네가

지상의 모든 것과 작별하는 날도

눈이 내리면 좋으리

 

하얀 눈 속에 길게 누워

오래도록 사랑했던

신과 이웃을 위해

이기심의 짠맛은 다 빠진

맑고 투명한 물이 되어 흐를까

 

녹지않는 꿀들일랑 얼음으로 남기고

누워서도 잠 못 드는

하얀 침묵으로 깨어 있을까

 

3

첫눈 위에

첫 그리움으로

내가 써보는 네 이름

 

맑고 순한 눈빛의 새 한마리

나뭇가지에서 기침하며

나를 내려다본다

 

자꾸 쌓이는 눈 속에

네 이름은 고이 묻히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무수히 피어나는 눈꽃속에

 

나 혼자 감당못할

사랑의 말들은

내 가슴속으로 녹아 흐르고

나는 그대로

하얀 눈물이 되려는데

 

누구에게도 말 못할

한방울의 피와 같은 아픔도

눈밭에 다 쏟아놓고 가라

 

부리 고운 저 분홍 가슴새는

자꾸 나를 재촉하고...

정말 누군가 나를 기다려 주지도 않고

만나기로 약속을 한 사람은 없지만

첫눈이 오면 괜스레 설레이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첫눈을 맞으며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거란 기대감을 가지게 되는데

 

 

첫눈 / 문정희

 

기도가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내 잃어버린 시간에   쓰러지는 눈빛으로

당신의 내의를 마련합니다.

조용히 그러나 뜨겁게 머뭇거리며

저만치서   눈감은 사랑

밤새도록 용납한   꿈이었다가

산이 되어   내 이름을 부르시는

아아 한 생애에 돌아오는 목소리입니다 

 

 

눈과 함께 부치는 편지 / 고은영

 

이 밤

가슴에 엉긴 그리움으로

내 삶의 비루한 상처를 어루만지며

첫눈이 내립니다

먼발치 그대 사랑의 기억 위에

떨리는 몽환의 조각을 기워가며

그곳에도 눈이 내리고 있나요

계절은 이제

겨울의 한없는 미궁으로 빠져들고

11월 밤 하늘에 잿빛 음표들이 끊임없이

그리움의 추상화를 그려냅니다

절망과 환희를 오가며 허물어지는

나의 영혼 위에 번지는 저 하이얀 눈

단절의 고립 안에서

고독과 설렘의 이중주에 놓인

보고픈 그대의 얼굴처럼

애환이 서린 굵은 눈송이들이

온 밤을 나풀대고 있습니다

마치 그대의 미소에 베이던

행복의 부피처럼

 

 

첫눈처럼 오신 그대 / 손희락

 

바람도 쉬고 있는 밤에

창가에 내려앉는 첫눈처럼

그대 역시

그렇게 오셨습니다

 

삶의 피곤에 쓰러져

절망의 깊은 잠을 잘 때

천사의 날개 짓으로

기쁨의 아침을 주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그대를 만난 것은

춤추는 첫눈을 손으로 잡으며

환호하는 기쁨과 같습니다

 

첫눈처럼 다가오신

그대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눈꽃이 활짝 핀

한 그루, 행복나무로 변합니다

 

 

첫눈 오는 날 / 서주홍

 

1

행여

잊어버릴까 영영

잃어버린 사람의

추억 한편에

 

첫눈이 내린다

 

2

열서너 살 적 처음

설레는 마음으로

길 모퉁이에서 숨어 보았던

나의 첫겨울 첫소녀의

모습같이 하얀

 

그 날도 이렇게 내리고 있었지

 

3

까마득한 저

하늘가로 멀어져 간

첫사랑의

한 조각 한조각 꿈들이

 

하얀 불티 되어

하늘하늘 첫눈으로 내리는

 

오늘

나는 첫사랑을 만난다 

 

 

첫눈 / 나태주

 

요즘 며칠 너 보지 못해

목이 말랐다

 

어제 밤에도 깜깜한 밤

보고싶은 마음에

더욱 깜깜한 마음이었다

 

몇날 며칠 보고 싶어

목이 말랐던 마음

깜깜한 마음이

눈이 되어 내렸다

 

네 하얀 마음이 나를

감싸 안았다.

 

 

첫눈 / 오보영

 

첫눈

 

하얀 흩날림에

 

마음 설레이는 건

 

아직 덜 채워진

 

어린

마음에선지

 

훌쩍 떠나고 싶은

 

텅빈

마음에선지

 

그저 좋기만 해

 

창밖

 

퍼붓는 함박눈에

 

마냥 들뜬다 

 

 

첫눈 / 서연정

 

오래도록 기다리던

그 사람이야 분명

저기 저 거침없이 써내리는

글발 좀 보아

그리워, 그리워, 그리워, 라고만

가득가득 적어 보내는 것 좀 보아

 

꽃씨를 받듯 고이 받아

생각나면 펄펄펄

꽃잎으로 펴 보고 싶지만

반가워 메인 가슴에

흔적없이 녹아버리는 인연

 

눈물로밖에

보여주지 못하는

그 사람 마음

자진모리 대금산조에

감겨 내려온다.

 

 

첫눈은 오히려 따뜻하다 / 고은영

 

아침 창문을 여니

저 암회색 지층으로

소리없이 눈발이 흩날리고 있다

첫눈이다

까무룩 한참 멍한 감동이 흐른 뒤 혼자 중얼거린다

 

"첫눈이 오는구나 첫눈이 "

 

저 눈은 비수처럼 가슴을 베어 물고

마치 어느 시공을 넘어서면

거기에 존재하는 준비된 운명 속에

풋풋한 첫 것의 사랑을 부르고 있다

설렘이 눈과 나풀거린다

 

선명하게 와 닿는 추위

뼛속까지 시리기만 한 날것들의 비린 슬픔

늘 추운 가슴으로 휘청이던 삶

냉혹한 추위에도 흰 눈은 작은 위안으로

언 가슴 녹여주는 오히려 따뜻한 안부다

 

 

첫눈이 가고 난 자리 / 정군수

 

내 첫사랑도

그렇게 와서 가버린 걸까

하늘 끝에 걸리어

오듯마듯 내리는 첫눈

실핏줄을 흘러

눈물 같은 흔적만 남겨놓고

가버린 사람

첫 눈이 가고 난 자리

낯선 바람 불어와

얼굴 모르던 임

내 사랑 거두어 가네

첫눈이 가고 난 자리

 

 

첫 눈 / 김옥진

머리맡에 놓인
한 권의 시집만큼이나
간절한 당신이여

봄 여름 갈에
때묻은 맘
훌훌 벗어버리고

오늘은
하얀 살 맨몸으로
내 뜰에
사뿐이 내리십니다

어느날엔
파랗고 커다란 하늘로
코스모스의 기쁨을
가르쳐 주고

목이 긴 사슴으로
애타는 기다림도
가르쳐 주시더니

가끔은
서러운 내 가슴의
눈물까지도
품어갈 줄 아는

당신은
말없이 안으로만 흐르는
지혜로운 바다

내 가슴 깊숙한 곳에
하얀 눈꽃으로
곱게곱게 피어나는
첫사랑이십니다

 

 

첫눈도 내리련만 / 정철훈

첫눈도 내리련만
찬바람은 소매를 쏙닥대고
남대문 턱 지하도내려가면
거기 가갸거겨로 누운 사람들
라면박스 요를 깔고
신문지 홑청을 덮었다
띠팡처럼 웅크린 새우잠 속에서도
농사 짓고 처마 올리고 벽지를 바르는가
꽃모종 마당, 조리개 물줄기가 간지러운 듯
꿈이나마 얼굴을 찡그린다
머리맡으로 먼지뭉치는 굴러가고
그래, 다리에 힘이 남아 있는 한
내일도 다시 걸어보잔 것일까
첫눈도 내리련만
누군가 진저리 치는 통에
곱때 번들한 뒷굽치도 삐죽
세상 구경을 하는데
시계처럼 지하검표원은 나타나
발길질을 해대는 것이었다

 

 

첫 눈 / 정숙자

 

그대여

이제 곧

내릴 첫눈을

예약하여 보내노라

 

그대

사는 곳

어디인지

주소를 염려하지 않노라

 

황홀하고

순결한 선물은

신께서 직접 배달하시리니 

 

 

첫눈이 내리면 / 손채주
 
첫눈이 내리는 날이면
첫사랑을
잊을 수가 없기에
나 홀로 눈길을 걸어본다
 
첫눈이 내리는 날
다시 만나자고 다짐했던 그 약속
옛 이야기로 흘러 가 버리고
 
추억 속으로 남겨진
너에 그리움
살며시 미소 속에 떠오른다
 
나 그렇게
너를 그리워하며 잊혀진다 해도
아름다운 그 미소로
내 작은 가슴 속에 간직하고

오랜 세월 지나 가 버린
철이 없었던
우리들의 첫사랑
 
또다시
첫눈이 내리는 그 날이 와도
나 이렇게
아름다운 첫 사랑으로
영원히 영원히 간직하련다

 

 

첫눈 나리는 날 / 선미숙

듣고 있는 듯
보고 있는 듯
나려옵니다.
쓸쓸한 내 품으로
하얀 웃음 되어 나립니다.

듣고 싶어서
보고 싶어서
오늘도 하늘을 봅니다.

오매불망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이송이 그리움으로
하얗게 나립니다.

 

 

첫눈이 오는 날을 위해 / 박영교

말없이 그렇게 떨려옵니다.
추위 때문도 아닙니다.
나뭇잎 지는 소리에
세월 모두 문 닫는 계절,
하얗게
긴 밤 떠올리며 지샌
그리움 때문입니다.

 

 

첫눈 사랑 / 서경원

 

하늘 저편 어딘 가에선

박 속보다 희고 고운 살결의 여인

사랑하는 임을 만나

서리서리 감긴 그리움 색실타래 풀듯

풀고 있겠지

 

청초하고 순결한 영혼

꿈속에서나 만나질 줄 알았는데

손톱 끝에 아롱진 봉숭아 꽃물 보며

기쁨의 눈물 흘리던 너

유릿가루처럼 흩날리는 은빛 축복 사이로

나뭇가지 흔들며 살몃살몃 노래하는

영혼의 새벽 창가에 찾아든

방울새 같아, 넌

 

손등에 따습게 포개 얹은 손

너의 목소리만큼이나 떨려오고

희디흰 너의 미소는 눈이 부셨지

가슴 속 아련히 울려오던

온 우주를 흔들어버릴 것 같은 전율은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지

 

사박사박 품속 안겨드는 사랑의 포만감

이지러질까 두려움에

초저녁 붉은 달은

손톱 끝 봉숭아 꽃물만 깨물고 있었지.

 

 

첫 눈 / 박천서

바람도 잠자는
새벽 골목길
아무도 지나지 않은
순백 융단위에 내 발자국
지나온 흔적은 선명함으로
말없이 뒤 따르고

걸음마다에
뽀드득 뽀드득
눈은 반갑다 소리 지른다

 

 

첫눈 오는 날 / 박종영

 

막힘이 없었습니다

내리는 꽃 비를 손으로 막으려 해도

하늘 틈으로

분분히 퍼지는 웃음 막을 길이 없습니다.

 

공허한 심사로

세상을 탓하고 있을 때

탐닉의 열병을 나무라며 식혀 내립니다.

 

자유를 외치며 산과 들에 달라붙습니다

널브러져 아름다운 것,

불결하고 더러운 것,

온갖 부정을 덮어 진정한 삶으로 함께하는

동행의 길을 열어줍니다.

 

눈이 펑펑 내립니다

마른 나무에는 순백의 꽃을 피워내고,

바람으로 밀리는

하얀 생명의 축제가 알몸으로 춤을 춥니다.

 

얼마나 아련한 기다림의 숨결인지 모릅니다

첫눈 오는 날,

하얀 가슴을 열어 안기는

그대 속삭임이 들립니다

나도 눈이 되어 하늘에서 뛰어내립니다.

 

 

첫눈 / 김말란

 

예쁘게 치장한 신부 드레스다

 

첫사랑 내임 보듯

가슴 뛰는 하얀 눈

 

길 위에 떨어져 사르르

녹아드는 눈꽃들

 

잊고 있던 추억

하나둘 불러준다

 

아무도 걷지 않던 시골길

강아지 앞세워 껑충대며

쏟아지는 눈 먹으며

깔깔거렸던 그때

 

그리운 조각되어 가슴에 흐른다

 

눈송이가 주는 겨울 선물

마음 한가득 받아들고 길 떠나고 파

추억 속 그 흔적 찾아서

 

 

첫눈이 함박눈으로 내리던 날 / 오경옥

 

사락사락 어렴풋이 길을 더듬는

오선 위의 팔분음표들

민들레 홀씨인 양

빛바랜 편지 속의 낯익은 글자들에게

물어보는

순백의 안부

 

잘 지내지?

보고 싶다

 

 

첫눈 / 이보숙

 

그해의 첫눈은

베토벤의 웅장한 합창처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내려

그대 만나러 가는 길이 늦었지요

 

눈을 맞으며

눈사람처럼 서 있던 그대

옷에 소복이 쌓인 눈을 털고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해주며

활짝 웃었지요

 

희미하게 보이는

어둠 속의 카페 불빛

그 빛따라 걷던 그 길엔

함박눈이 축복처럼 내리고

성당의 크리스마스트리에

주렁주렁 매달린 반딧불이도

우리를 축복하는 듯 반짝였지요

 

격렬했던

그대의 가슴 뛰는 소리가

내 가슴으로 전해왔던 그 카페엔

때 이른 캐롤이 흐르고 있었지요

그해의 첫눈이 내리던 날은

 

 

첫 눈 / 김동철

 

첫 눈이 휘날리는

야릇한 풍경속에

그리운 님에 자리

살며시 품에 안고

가던 길 돌아보며

옛시절 추억으로

덩그러니 잠기네

 

무엇이 안타까워

무엇이 속상해서

머나 먼 그곳에서

애간장 태우는지

그리움 날개되어

고독을 등에 업고

눈 속을 걸어보네

 

삶이란 그런건가

도화지에 점 하나

찍어서 미궁속에

볼 수 없는 썬팅지

긴가 민가 그런가

물음표 달랑 하나

마음이 복잡하네

 

사는 곳 어디든지

건강이 함께하는

오늘이 되시기를

탐스런 애정으로

그대의 품 속으로

달려가는 한 남자

처량한 한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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